부모로 산다는 것
오동명 지음 / 두리미디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데, 나는 수필을 거의 읽지 않는다. 대개 작가의 경험이나 환경에서 비롯되는 술회는 내가 겪거나 처해보지 않은 경우에 머리로 그려가면서 마음으로 느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유난히 감수성이 떨어지거나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아무리 집중해봐도 귓등으로 남의 얘기를 흘리는 것처럼 글의 감촉을 느낄 수가 없어서 읽는 맛이 별로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수필이니, 사실 내 취향과는 동떨어진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짝 기대에 차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던 이유는 제목이 풍기는 그 가슴 뻐근한 절절함과 눈 앞이 뿌예지는 아련함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부모로 살고 있고, 또 내가 부모가 되고서야 나의 부모의 마음을 하나둘 헤아리기 시작했으니, 평범해 보이는 이 제목에서부터 어떤 위로나 이해를 기대했던 것이 분명하다. 

책 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이력을 버림으로서 과거가 아닌 미래에 집중하고, 아들과 일본 자전거여행을 하기로 했다는 부분은 작가가 직접 쓴 것 같다. 누가 썼건 아무려면 어떠랴만, 인터넷 서점에서 작가의 과거 이력을 낱낱이 파헤쳐 소개하고 있는 까닭에 이 독특한 이력이 빛을 발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저자는 50대에 접어든 아버지. 위로는 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는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는(기대할 수 없는) 이른바 낀 세대다. 그래도 낀 세대의 아버지 치고는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든가,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미술활동을 하고 있다든가, 자식에게 늘 장난을 걸거나 때때로 등에도 업힌다든가, 자식을 유학이 아닌 '넓은 세상 보기'를 위해 괌으로 보냈다든가, 상당히 앞서가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아버지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 역시 '아버지'라는 이름이 가진 강한 모습 이면에 슬퍼하고 걱정하며 기뻐하고 기대하며 전전긍긍하고 애달퍼하는 솔직한 인간임을 고백하고 있으니, 아버지로서의 그 위에 한 인간으로서의 그가 더 부각된다. 

전체적으로 저자의 글이 크게 유려하거나 매력적이진 않아도 흐르는 물처럼 술술 잘 넘어간다. 조곤조곤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 가깝게 들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얇지 않은 이 책을 생각보다 빨리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아쉽다면 나 또한 깊게 공감할 수 있었던 대목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아들을 통해 느낀 부모로 산다는 것인데, 아들은 부모의 뜻을 잘 헤아리고 따르려 노력하고 책임감과 성실성을 가진 훌륭한 학생이고, 때로 부모 속을 썩일 때조차 애교로 봐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을 이야기할 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소소한 추억과 기쁨과 감동을 곱씹는 매우 개인적인 상념으로 느껴진다. 차라리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부모로 산다는 것을 느끼는 바에 더 공감하는데, 그에게 그리 잘 대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공경심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생의 마지막에 남길 말>에서 저자가 던진 화두, <내 생애 가장 기뻤던 생일선물>에서 '자식, 짜식..' 혼잣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던 일, <아버지가 늙어 보일 때>에서 자신의 늙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또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픈 손가락>에서 보여준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아닌 사랑 등은 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전부는 아니어도 이렇게 다만 몇 가지라도 건졌으니 다행이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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