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1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0년 1월
평점 :
합본절판


설레임... 2000년 후반기부터 헤리포터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요즘, 나는 나만의 동화(끝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모>를 통해 '미하엘 엔데'를 알게된 뒤부터 나에게 불기 시작한 또다른 '마법의 서풍'이다...

현실. 바스티안(주인공)이 훔쳐온 책을 읽는다. 이 부분은 붉은색의 텍스트로 표현되어 있고, 환상. 바스티안이 훔쳐온 책, 속의 책에서 펼쳐지는 환상세계의 모험. 이 부분은 푸른색의 텍스트로 나타나 있다.

멋진 구성에 울트라 캡숑 짱! 이야기... 마치 내가 소설(끝없는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현실과 환상세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가 내가 지금 존재하는 현실의 공간감마저 책 속에서 존재하는 환상세계로 오인 할만큼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암흑'과 '없음'로 대변되는 '무'가 점점 성장하면서 환상세계는 점점 사라지게 되고...그에 따른 여파로 현실세계마저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잊혀져 가는 환상세계와 우리의 현실세계를 동시에 구할 수 있는 사람... 바스티안...이 바스티안의 모험 이야기.

환상세계와의 조우... Good! 환상적이면서 내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은 느낌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따라다닌다.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현실은 책 속에서 이야기된다...

환상세계로 여행을 떠난 바스티유. 어린 여제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줌으로서 환상세계는 구했지만 현실세계에서의 열등감과 환상세계의 신비함,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막강한 힘에 점점 심취하게 되면서 점점 자신의 본 모습을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과거의 기억은 물론 자신의 이름까지도 잊어버리게 된 바스티유...

한편으론 마치 오늘날의 힘과 권력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 부끄러움... 자의든 타의든 일단의 신분상승으로 기득권만이 지닐 수 있는 '힘의 맛'에 중독되어 과거의 기억과 자신의 본성마저도 잊어버리고 마는 현실... 우리 사회, 문화, 정치... 사람이 계급을 이끌어 나가는 게 아니라 계급이 사람을 평가하는 오늘날...즐거움의 '환상소설'속의 서글픈 '현실세계'.

결국 바스티유는 민투르 광산에서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고, 친구(아트레유)의 도움으로 현실세계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대단하기만 하다. 책장을 다 덮었을 때의 느낌이란 바스티안과 함께 환상세계의 구석구석을 모험하고 돌아온 듯한 느낌이랄까. 아름다운 책이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만의 환상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환상여행 왕복 티켓'이리라. 인간의 상상력과 그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하지만 이 책을 '마법의 책'처럼 만들고 싶었다는 미하엘 엔데는 '구릿빛 나는 가죽 표지와 놋쇠 단추'로 표지를 만들었다 한다. 하지만 책의 원판에서의 느낌은 지금의 책 표지(비닐 코팅 표지)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가격이라는 큰 걸림돌이 있다지만 원작자의 의도를 한국에서는 그대로 맛볼 수 없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거기다 한 권으로 만들어도 될 것을 왜 세 권으로 나눠놨는지... ('두툼하고 너덜거리는 마법서'는 들어봤어도 세 권짜리 마법서는 본적이 없다!)

인간의 상상력과 그 가치의 소중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책을 '문화'로서 대하지 못하고 하나의 상품으로서만 인식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전태일과의 만남

... 아직은 무어라 말할 수 없네...시대를 뛰어넘은 거리감에서 오는 무심...불행한 삶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약간의 거리감...주위 어른들의 시시콜콜한 과거사를 들을 때의 왠지 모를 거부감. 어쩌면 이 거부감은 그렇게나 불완전했던 여건 속에서 나보다도 더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나의 초라함일 수도...

책 속에 간간이 첨가된 전태일의 생전의 사진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홍경인의 라스트 신(분신 장면)이 자주 오버랩 됨을 느낀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화염 속에서의 외침... 그의 죽음에 대한 나의 무감각으로 그의 이야기 <전태일 평전>을 읽기 시작한다.

그의 사상이나 노동운동 이전에, 책 속에 삽입된 전태일이 쓴 일기라든가 그가 구상중인 소설을 볼 때면 느껴지는 초라함.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낙서라는 것에서도 전태일의 생각과 감정이 느껴지는 글들.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풀어쓴 글들. 중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사람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랍다. 대학까지 나온 나, 우리들의 어휘력을 훨 뛰어넘는 글과 생각...

글이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반영하여 나온 산물. 하지만 전태일처럼 어려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런 알찬 자신을 키울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마음을 부유하게 가졌고, 그 넘쳐나는 마음을 세상 속에 사랑으로 실천했기에 그 삶의 가치만큼 글에 무게가 실리는 게 아닌가 싶다. 거기다 학력은 비록 짧았지만 그 열의만큼은 어떤 이들보다 크기에 항상 생각하고 느끼며, 읽고 그리고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노동자들의 '인간임'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아니 세상의 위선과 허영에 불을 지른 투사를 앞에 놓고 그의 사상이나 투쟁의 가치를 논하기보다는 그의 글빨만을 얘기하고 있다니...

대학생 정도면 이 같은 노동문제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내 자신 내부의 채찍으로 읽기 시작한 책. 하지만 여전히 나는 전태일을 이해하기 힘들고, 전태일 역시 날 이해하기 힘들고... 배부른 소가 읽는 배고픈 소크라테스 이야기라는 느낌마저 든다.
이 평전이 가치 없다거나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글이 나의 마음에 진심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는 것. 그의 현실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고 길들여진데서 오는 거리감...

이런 내 모습을 부끄러워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현실적인 문제에 둔감한 나 자신이 아쉽다. 어쩌면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가난과 인간에 대한 사랑, 노력과 좌절, 노동운동. 그리고 전태일의 죽음. 죽음만이 전태일이 할 수 있었던 마지막 투쟁이었는가. 아니면 죽음을 통해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는가... 죽어야만 되는 현실, 죽어서도 편히 눈감을 수 없었던 전태일...

죽음... 무엇이 전태일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구조화된 사회의 모순, 암묵적인 억압과 무의식적 굴종. 스스로의 나약함과 모든 문제를 주변 환경의 책임으로만 전가하는 회피.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이 가진 현실에 대한 무지와 타인에 대한 외면... 우리 모두가 공범자...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우리시대의 아픔. 전태일의 용기와 열정, 그리고 사랑... 책을 덮을 즈음에야 그의 말들이 하나 둘 이해되기 시작한다. 어떻게 자신과 이웃을 사랑해야하며, 무엇을 만들고 찾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누구 한사람의 것이 아닌 모든 이웃들의 사회라는 것을...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던 그 뜻이 설명하기 힘든 약간의 공감대로 나에게 전해진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지금 없지만 그 정신은 영원해야 할 것이다. '투사'로서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전태일이 더 큰 부분으로 나에게 남겨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리산 편지
정도상 지음, 남준기 사진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지리산... 얼마나 반가운 이름인가... 비록 태어나지는 않았으되 묻힐 때는 그 뼛가루라도 뿌려두고 싶은 산, 내 마음 속 고향집 같은 산, 언제나 포근하고 따신 어머니 같은 산... 마음은 항상 그녀와 함께 있지만 몸은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없기에 이 책을 통해서나마 그 정취를 느껴보려 한다.

'운서'라는 대상에게 쓰는 지리산에 대한 편지 형식의 글들... 어쩌면 '운서'에게 말하는 '지리산' 이야기가 아니라 '지리산'에게 말하는 저자(정도상) 자신의 독백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음, 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한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부딪혔을 자신 내면으로부터의 갈등과 고뇌. 이런 이야기들을 지리산이라는 대상을 통해 풀어놓는다. 그래서,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 자신을 가두기보다는 자연을 통해서 지리산의 넉넉함을 배우고자 하는 지은이의 마음가짐이 좋아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앞표지 뒷면에 씌어진 지은이의 소개를 보게된다. 문장 곳곳에 자연의 냄새는 솔솔 풍겨나지만 어찌 보면 이 책은 자연 속에서 씌어졌다기 보다는 자연 밖에서 자연을 그리워하며 씌어진 글인지라 '시골' 토박이로 자연 속에서만 살아온 이들에 비해 도심지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오히려 각별히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주자주 지은이를 다시 보게 된다. 지은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상? 어디서 태어났지? 학교는 어딜 나왔고, 어디서 살고있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지?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그 단단함 속에 자연이 숨어있을 줄이야...

하지만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격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개인적으로 지리산을 바라본 것일까... 조금은 무거운 느낌. 물이 흐르고, 산들바람이 부는 평온하면서 고요한 모습의 지리산도 우리에겐 또 다른 기쁨인데...

'천왕봉에 서니 이상하게도 판문점이 맨 먼저 떠오릅니다...'라 이야기한다.

어쩌면 '자연' 앞에서 자학하며 늘어놓는 너무도 커다란 짐이 아닐까하는 생각... 나는 전쟁을 격은 세대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세대도 아니다. 굳이 말을 하자면 X세대와 컴퓨터게임으로 대변되는 세대라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지난 시절의 역사적 무게감을 몸소 느끼기엔 다소 시간적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인식을 부풀려 포장하거나, 그 포장을 통해 '역사의식'을 남에게 보여주려 해서는 안될 일. 중요한 건... 항상, 어떤 상황에서건 '역사와 민중'을 운운하며 자신이 짊어지지도 못할 거대한 무게만을 짊어진 '척' 가식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앙꼬없는 껍데기'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물론 민중의 고통과 기쁨이 담긴 '역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너무나 함부로 사용하는 건 아닌지... 너무 사물을 확대 해석하고 포장해서 그 본 의미를 왜곡하는 건 아닌지... 무엇이건 '역사성'을 부여해야만 그 사물이 가치가 있어지는지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산을 산으로, 물은 물로 볼 수 있는 '사심' 없는 '동심'이 필요할 수도...

지리산 편지... 글 속에 나타난 이런저런 생각들로 인해 '편지 읽기'가 계속 늦어졌다. 하지만 그 '느림'이 좋았다. 손에 든 즉시 읽어치우는 '잘 넘어가는'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야 느낄 수 있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여유와 멋이 느껴진다. 마치 지리산을 오를 때의 그 느낌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슬퍼해야 합니다.
이런 엿같은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이 있다는 것을...

너무 많은 욕심에 나와 타인의 맘속에 상처만 남기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이 모든 것을 떨쳐버려야 하리라.
불의 현란함을 갖기 위해 그 속으로 뛰어들어 버리는 하루살이의 삶처럼, 지금의 '자신' 속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고 너무 많은 욕심에 '나'를 집어던져, 스스로 소진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들...

그래서 다시 읽은 무소유. 이 책을 처음 접할 때의 그 청량감, 비어있어 가득 담을 수 있는 여유를 다시 한번 배우고 싶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많이 변했으리라. 따라서 이 글 역시 오늘의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일. 하지만 다시 한번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젠 정말 모든 걸 다 잊고 살고 싶다. 부모님의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내일의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으로 그 모든 걸 찾기 위해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면서, 훗날 내 자신을 되돌아볼 때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후회는 없도록...
너무 멀리 보지도 말고, 지난 과거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오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그래서 '소유'가 아닌 '무소유'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책 중의 책, 최고의 책...
한마디, 한마디 놓치고 싶은 말이 없다. 간결하면서 정곡만을 찔러 이야기한다. '글이란 이런 거야... 인생이란 이런 거야...' 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간결한 필치와 여백으로 그 넓은 무한 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한 마리 학, 그 여유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책. 이 짧은 새치 혀로써 이 책을 논한다는 건 한낮 부처님 손바닥 위의 천방지축 날뛰는 손오공과도 같으리라...

아~ 이게 바로 소유에서 오는 집착일까...
버려야하리라. 모든 허물을 벗고, 집착을 벗고 텅 비어있으므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여유를 배워야하리라... 하지만 이 책만큼은 기꺼이 집착하고 싶다. 철저한 집착을 통해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무소유>. 나에겐 단순한 '책'이 아닌 한 권의 '경전'과 같은 존재다.
그 경전 속, 세상을 살아가는 '버림의 미학'.
책은 덮되 그 내용만은 덮을 수 없는 책... <무소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商道 1 - 천하제일상 상도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서울의 한 서점에서 최인호님의 사인회가 있었다. 인호 형님이야 그전부터 잘 알고 있던 터라 굳이 인호 형님의 초대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상도 '100만부 출판기념 사인회'라 이름 붙여진 현수막 아래, 조그만 책상에서 연신 펜을 날리시고 계시던 모습으로 간단히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 얼굴 가득 묻어있는 미소...인생의 선배로서, 친구로서 배우고 싶은 분... 최인호...책을 구입하고, 사인을 받고, 악수를 나누면서 최인호님의 <상도>를 만나게 되었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 적힌 기평그룹의 김기섭 회장의 유품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 커다란 기대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긴다...

이야기의 초반, 거상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임상옥에 대한 상당히 긴 분량의 이야깃거리를 간단히 훑으며 넘어간다. 일장일단이 있으리라... 임상옥이라는 장사치가 '천하제일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미흡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미흡한 속에서도 사건의 전개는 빠르게, 동적으로 흘러간다. 그만큼의 호기심과 박진감은 느껴지지만 '진지한 재미'로 발전하지 못하고 이내 사그라든다. 임상옥의 지나치게 빠른 '성장'과 함께, 그 외 부수적인 역사는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설명한다. 재미를 위한 소설에서 지나치게 역사성이나 교훈적 내용을 끼워 넣으려는 듯한 흔적들... 이러한 주객전도의 상황으로 인해 글의 중심에서 밀려난 인물들의 심리묘사...아쉽고, 아쉬울 따름...

마침네 상업으로 크게 일어선 임상옥... 하지만 그에게 닥치는 세 번의 위기. 그 위기를 석숭스님의 '비기'(죽을 사(死), 솥 정(鼎), 계영배(戒盈盃))와 '추사 김정희'의 도움으로 풀어나간다는 이야기인 듯 보인다. 나름대로 흥미진지한 구석도 보이지만 역시나... 시간의 조율이 조금 걸린다. 빠르고 긴박한 부분에서는 책을 놓기 무섭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 긴박감 사이의 연결의 고리가 조금 어색하고, 허술해 보인다.

그리고 너무나도 직설적인... 마치 아무 이유도 없이 결과만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어 날 당황하게 만든다. '절을 올린다. 문득 득도했다' 이 같은 식... 원래 한순간의 찰나에 얻어지는 것이 깨달음이라고는 하지만 그 깨달음의 크기에 비해 글의 내용은 부실하기까지 하다. 마치 5공시절 '퍽'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안기부의 조서처럼...기승전결의 과정이 삭제된 짜투리 껍데기만을 보는 듯...책 내용의 깊은 부분은 외적인 형태의 삶이 아닌 자신으로부터의 내적인 삶을 말하면서도 정작 이를 표현하는 글은 그 내적 아름다움을 쉽게 덮어버린다는 느낌...

또한 매 대단락이 끝날 때마다 자세히 알려주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마치 미니시리즈가 방송되기 직전 그 전주의 주요장면을 설명해주는 듯 자상(?)해 보인다. But 어색해 보인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독자들을 어린아이로 취급해 하나에서 열까지 다 집어주려 한다. 으~ 존심상해...

'혹성탈출'이라는 팀버튼이 다시 만들었다는 공상과학 영화가 있다. 하지만 의외의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팀버튼이 만들었기에 사람들의 기대감은 더 하였으리라... 하지만, 팀버튼이 만든 팀버튼 같지 않은 영화...최인호님의 <상도>... 하지만 최인호님이 쓴 최인호님 같지 않은 소설...꿈은 장대했지만 표현된 부분은 적었다. 이야기의 강약의 조절이 아쉽다.

'상도'라지만 상업 이야기가 중심에서 멀어져버린 앙꼬없는 붕어빵...그리고 지나치게 역사적 자료를 직접적으로 남발했다는 느낌...너무너무 친절해 지나간 줄거리를 수십번식 되집어 주는 자상함과 그 속의 지루함...철저히 현실적인 '돈'이야기에서 철저히 신화적인 '천', '불'이야기...우야리...한번의 희망뒤에 오는 한번의 실망이던가...다음의 희망을 기대한다. 최인호님의 큰 글 욕심에 '상도' 본연의 의미가 퇴색된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