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道 1 - 천하제일상 상도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서울의 한 서점에서 최인호님의 사인회가 있었다. 인호 형님이야 그전부터 잘 알고 있던 터라 굳이 인호 형님의 초대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상도 '100만부 출판기념 사인회'라 이름 붙여진 현수막 아래, 조그만 책상에서 연신 펜을 날리시고 계시던 모습으로 간단히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 얼굴 가득 묻어있는 미소...인생의 선배로서, 친구로서 배우고 싶은 분... 최인호...책을 구입하고, 사인을 받고, 악수를 나누면서 최인호님의 <상도>를 만나게 되었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 적힌 기평그룹의 김기섭 회장의 유품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 커다란 기대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긴다...

이야기의 초반, 거상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임상옥에 대한 상당히 긴 분량의 이야깃거리를 간단히 훑으며 넘어간다. 일장일단이 있으리라... 임상옥이라는 장사치가 '천하제일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미흡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미흡한 속에서도 사건의 전개는 빠르게, 동적으로 흘러간다. 그만큼의 호기심과 박진감은 느껴지지만 '진지한 재미'로 발전하지 못하고 이내 사그라든다. 임상옥의 지나치게 빠른 '성장'과 함께, 그 외 부수적인 역사는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설명한다. 재미를 위한 소설에서 지나치게 역사성이나 교훈적 내용을 끼워 넣으려는 듯한 흔적들... 이러한 주객전도의 상황으로 인해 글의 중심에서 밀려난 인물들의 심리묘사...아쉽고, 아쉬울 따름...

마침네 상업으로 크게 일어선 임상옥... 하지만 그에게 닥치는 세 번의 위기. 그 위기를 석숭스님의 '비기'(죽을 사(死), 솥 정(鼎), 계영배(戒盈盃))와 '추사 김정희'의 도움으로 풀어나간다는 이야기인 듯 보인다. 나름대로 흥미진지한 구석도 보이지만 역시나... 시간의 조율이 조금 걸린다. 빠르고 긴박한 부분에서는 책을 놓기 무섭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 긴박감 사이의 연결의 고리가 조금 어색하고, 허술해 보인다.

그리고 너무나도 직설적인... 마치 아무 이유도 없이 결과만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어 날 당황하게 만든다. '절을 올린다. 문득 득도했다' 이 같은 식... 원래 한순간의 찰나에 얻어지는 것이 깨달음이라고는 하지만 그 깨달음의 크기에 비해 글의 내용은 부실하기까지 하다. 마치 5공시절 '퍽'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안기부의 조서처럼...기승전결의 과정이 삭제된 짜투리 껍데기만을 보는 듯...책 내용의 깊은 부분은 외적인 형태의 삶이 아닌 자신으로부터의 내적인 삶을 말하면서도 정작 이를 표현하는 글은 그 내적 아름다움을 쉽게 덮어버린다는 느낌...

또한 매 대단락이 끝날 때마다 자세히 알려주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마치 미니시리즈가 방송되기 직전 그 전주의 주요장면을 설명해주는 듯 자상(?)해 보인다. But 어색해 보인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독자들을 어린아이로 취급해 하나에서 열까지 다 집어주려 한다. 으~ 존심상해...

'혹성탈출'이라는 팀버튼이 다시 만들었다는 공상과학 영화가 있다. 하지만 의외의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팀버튼이 만들었기에 사람들의 기대감은 더 하였으리라... 하지만, 팀버튼이 만든 팀버튼 같지 않은 영화...최인호님의 <상도>... 하지만 최인호님이 쓴 최인호님 같지 않은 소설...꿈은 장대했지만 표현된 부분은 적었다. 이야기의 강약의 조절이 아쉽다.

'상도'라지만 상업 이야기가 중심에서 멀어져버린 앙꼬없는 붕어빵...그리고 지나치게 역사적 자료를 직접적으로 남발했다는 느낌...너무너무 친절해 지나간 줄거리를 수십번식 되집어 주는 자상함과 그 속의 지루함...철저히 현실적인 '돈'이야기에서 철저히 신화적인 '천', '불'이야기...우야리...한번의 희망뒤에 오는 한번의 실망이던가...다음의 희망을 기대한다. 최인호님의 큰 글 욕심에 '상도' 본연의 의미가 퇴색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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