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 두시, 은빛 장판 위의 여행 가방, 가이드북, 카메라, 그리고 구석에 널브러진 속옷들. 여행의 여운을 뒤로하고 책을 읽는다.
엎드린 작은 방, 몇 해 전에 준비한 스탠드는 하얀 스포트라이트처럼 빛을 발하며 책읽기를 돕는다.

#1.
사실 잠이 오지 않아 펼쳐들었다. 스토리 중심의 책이라기보다 장면과 대화, 그 속의 은밀한 흔적을 찾아가는 조금은 새로운 형식 - 다시 말해 잠.오.는. 책인 것 같아 수면제 대용으로 펼쳤다. 하지만 짤막하게 이어진 상황과 무의미해 보이는 장면 속으로 금방 빠져들었다.
새벽이슬이 내리는 습한 골목길을 뚜벅거리며 걷는 느낌? 스쳐지나가는 옆 사람에게서 엿듣게 되는 - 나와 상관없어 뵈지만 괜스레 흥미가 가는 그런 대화 같다고 할까. 은근히 몰입하게 만드는 장면이 어쩌면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 속의 인물들이 날 훔쳐보는 건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든다.
싱숭생숭한 새벽의 기분과 맞아떨어진 ‘어둠의 저편’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2.
문득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느낄 수 있다고...
다시 ‘어둠의 저편’으로 걸어간다.
공간을 뛰어넘는 시점과 일상적이지만 상반되고 미묘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그녀에게 띄우는 편지처럼
알 수 없었다. 아니,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는 그 무엇을...

#3.
사랑, 열정, 욕망 and 인식과 의식.

#4.
“영화의 장면들처럼 마리와 에리의 밤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작가는, 더 이상 판단하고 조정하는 전통적인 저자가 아니다. 그는 권위적 입장에서 등장인물을 조정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소설이 영화처럼 쓰였으니, 독자도 판단을 보류하고, 카메라를 따라 천천히 가는 수밖에 없다.”
- 권택영 (‘어둠의 저편’을 위한 감상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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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인간 - 전2권 세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닭갈비와 양배추를 적당히 섞어 지글지글 뽁아 먹는 그 맛, 그리고 소주한잔... 은은한 달빛 아래서 맘 편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아쉬운 대로 <장외인간>이나 읽으며 허기진 가슴을 채우련다.

달과 함께 사라진 소녀와 우연히 만난 범상치 않은 노인, 그리고 ‘금불알’이라는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시인지망생을 중심으로 ‘달 실종 사건’을 맛깔스럽게 그려놓는다. ‘달’과 ‘닭’의 한판 명승부전이랄까.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처럼 ‘달’은 도시의 삭막함에 의해 사라져버린 정신적 가치, 예를 들면 이상이나 꿈, 낭만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달 따위에 신경 쓰기보다는 먹고 싸는, ‘닭’과 같은 물질적인 가치에만 집착하고 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들인지라 현실적인 문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지만 어느 정도는 정신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말이다.
결국 시인지망생 이헌수는 정신병원으로 들어가 스스로 ‘장외인간’이길 자처한다.
“내게는 바깥세상이 개방정신병원이다. 정체성과 가치관을 상실해 버린 정신병자들이 자신을 정상인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아수라장이다. 온갖 부조리와 흉악범이 난무하는 저 동물의 왕국에서 정상인이라면 어떻게 태연자약하게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내게는 퇴원수속이 곧 입원수속이나 다름이 없다.” (2권, p171)

하지만 후반부에는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뀐다. 현실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가상의 세계로, 논픽션에서 픽션으로 순식간에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포장마차에서 닭갈비를 먹고 있다가 일순간에 달빛아래, 선계로 이동해 버린 듯 얼떨떨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특성에서 볼 때 그리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도(道)와 술(酒), 백발의 노인, 일상의 소소함과 대비해서 엮어놓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이나 무릉도원과도 같은 이상향으로의 귀환 등 외수님만의 독특한 색깔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래서 약간은 식상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옛 외수님을 되찾은 듯한 생각에 반가움이 앞선다. 최근 작품들에서 봤던 밍밍한 이야기가 아니라 초기의 작품들처럼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다시 전해지는 것 같다. 세상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투정꾼에서 좀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보인다고 할까.
아무튼 근작들에 비해선 상당히, 외수다운 외수책!

술도 좋지만 우선은 커다란 보름달부터 보고 싶다.
설사, 구름에 가려 그 존재마저 희미하더라도
달은 여전히 은은한 빛으로 세상을 보듬고 있다.
기다리련다. 둥근 달이 차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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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링


스케일링[scaling] : 치아표면에 붙어 있는 치태, 치석, 니코틴, 색소 등을 제거하는 치료법.

윙~ 지직, 지직, 윙~
망할 놈의 기계는 이빨에 구멍을 뚫으려고 작정한 것 같다.
치신경에 금속성 물질이라도 찔러 데는 듯한 싸-한 느낌이 등을 타고 흐른다.
"내 돈 주고 뭔 고생이람?"

그때, 살며시 실눈을 뜨자 한치 앞으로 다가선 그녀와 마주한다.
은은한 샴푸향기와 늘어진 옷가지가 나의 얼굴을 스친다.
입속을 가득 메운 기계들만 없다면, 그녀의 코와 입을 막은 마스크만 없다면,
어느 연인들이 이만치 다정할 수 있을까....
‘윙~’ 하며 치석을 깎아내는 소리는 발라드 음악으로 바뀌고
치과의사를 애인으로 둔 나의 입가엔 음흉한 미소가 번진다.

화답이라도 하듯 그녀는 몸을 더욱 밀착시키며 감미롭게 속삭인다.
경직된 몸은 일순간에 나른해지고,
첫사랑의 키스가 감미롭게 떠오르는 순간,
“입술에 힘 빼라니까요.”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선 그녀에 대한 원망만 가득하다...




- memo
  치아건강을 위해 일년에 한번은 꼭 스케일링 받으세요.
  혹시 압니까? 근사한 일이 벌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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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갤러리를 가다


prologue

로댕, 로댕의 손길을 느끼다.
새해의 두 번째 날, 로댕갤러리로 향한다.
뭐, 미술이나 조각에 남다른 조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얼마 전에 서현님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로댕갤러리인지라 이번 서울행에서 꼭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시청 앞을 지난다. 몇 해 전 시청 광장의 설계 공모에서 서현님의 ‘빛의 광장’이 당선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잔디광장으로 변해버렸다. 탁상행정으로 왜곡된 건축가(아니 예술가다!)의 노력이 안타깝다.
태평로를 따라 걷자 저기에 남대문(숭례문)이 보인다. 사람의 마을과 동떨어져 자동차 물결에 휩싸인 외딴 섬 같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문을 누가 대문이라 하겠는가. 문화제보호와 도시계획의 여건상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일단은 사람들이 쉬 접근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문화여야 하지 않을까...




1. 로댕갤러리

삼성생명 본관 옆에 로댕갤러리가 보인다. 반투명 유리로 둥글게 장식된 갤러리로 로댕의 조각상을 들여오면서 만들었다.
“로댕을 담을 건물이 필요했다. 건축가가 직면한 문제는 모순된 것들이었다. 로댕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수준의 건물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로댕과 싸우겠다고 나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 건물은 로댕을 담는 그릇이고 로댕을 보여주는 배경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심해서도 안 되고, 무신경해서도 안 된다. 거듭, 필요한 것은 로댕의 수준에 맞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서)




2. 깔레의 시민

건물을 들어서자 먼저 <깔레의 시민>이 보인다.
“로댕의 대표적인 공공기념조각인 <깔레의 시민>은 프랑스 북서부의 항구도시인 깔레시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작품으로 백년전쟁 당시 깔레시의 대표자 여섯 명이 위기의 상황에서 도시를 구하기 위해 나선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여섯 인물상은 각각 따로 제작하여 마지막에 결합했으며, 옷을 입히기 전에 먼저 나신상을 만들고 의상을 덧씌운 것이다.
똑바로 서서 양발에 고루 무게를 둔 장 데르의 인물의 동세를 강조하는 콘트립포스토의 전통에서 비켜나 있지만 근육질 나신상의 온몸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때문에 전혀 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로댕갤러리, <근대조각 3인전> 작품설명서에서)

한 가닥의 근섬유에서 시작된 요동은 힘줄을 타고 몸 전체로 퍼지며 청동조각을 박살낼 것 같다. 그 힘의 끝에 선 여섯 영웅은 검게 그을린 집념처럼 단단해 보인다.
빙그르 한바퀴 돌면서 깔레의 영웅담을 둘러본다. 아니 각 조각들을 나신으로 만들고 거기다 옷을 덧씌우며 작업했다는 로댕의 진지함을 느껴본다.




3. 지옥의 문

그 뒤로는 고뇌하는 철학자의 굳게 다문 ‘입’처럼 엄청난 무게감으로 무장한 <지옥의 문>이 보인다.
“1880년 로댕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신축 장식미술관 입구의 대형 청동문 제작을 의뢰받는다. 당시 단테의 신곡에 심취해 있던 로댕은 신곡의 <지옥>편을 소재로 한 수백 개의 드로잉과 인물습작을 거쳐 <지옥의 문>을 제작해내었다. <지옥의 문> 안의 인물들은 각각 독립적인 조각작품으로도 유명하며 특히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지옥의 문> 상단 상인방 중앙에 홀로 자리잡은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 구성의 중심이자 작품을 지배하는 형상으로, 로댕의 정신적인 자화상이며 동시에 사유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형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로댕갤러리, <근대조각 3인전> 작품설명서에서)

끈끈한 개펄에서 힘겹게 버둥거리는 토막 난 지렁이처럼 수많은 군상들이 검은 어둠속에서 절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 남자... 그를 중심으로 ‘T'자형으로 길게 뻗은 문틈(수직선)은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처럼 부각되어 보인다.




episode

그때! 지.옥.을 보았다.
굳게 닫힌 <지옥의 문>을 살짝 비켜서자 생전 처음으로 지옥의 실체와 마주한다. ...
지옥은 네모다. 하얀색의 네모... ^^



계속해서 부르델, 마이욜의 조각작품을 둘러본다. 마침 가이드의 작품설명이 있어 좀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열심히 설명하던 ‘그녀’도 어느 조각상 못지않게 예뻤다.
아무튼 이것도 여행인지라 그냥 마무리할 수는 없는 일. 막걸리 한사발로 로댕을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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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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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리는 지하철에서 법정스님이 전하는 자연의 가르침을 듣는다.
물 흐르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달빛 넘어가는 소리가 지하철의 소음 속에서 나를 해방시킨다. 마치 이 열차가 저 산기슭의 고요한 오두막으로 달려가는 듯 하다. 어쩌면 스님과 차라도 한잔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책속에서 퍼진 은은한 향이 도심의 지하를 가득 메운다.

문득 산이 보고 싶어진다. 스님이 말한 자연과 직접 대화하며 온몸으로 걷고 싶다.
주변엔 온통 나무와 하늘, 산뿐이며 이름모를 곤충과 산새가 내 옆을 지나간다. 쉬엄쉬엄 구릉을 오르자 나무도 하늘도 쉬엄쉬엄 따라온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상쾌한 공기는 탁한 가슴을 씻어 내린다. 상상만으로도 시원해진다.

또한 스님이 읽은 여러 책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무소유>를 통해 알게 된 <어린왕자>처럼 스님을 통해 알게 된 책들 역시 아름답고 소중하게 읽은 기억이 난다. 나에게 있어 법정스님의 한마디가 어떤 추천사나 서평보다도 더 좋은 기준이 되는 것 같다.
‘홀로 사는’ 스님이 이번엔 허균의 <한정록>을 읽어보라 귀띔한다.

스님은 욕심을 버리라지만 이 책을 읽은 지금, 난 또 하나의 욕심이 늘어난 기분이다.
글에 대한 욕심이 그것인데 “채식을 해서 글이 이리도 소소하고 맛깔스러운가?” 하는 우스갯말까지 떠오를 정도다. 화려하거나 격정적이지 않지만 그 속에 흘러넘치는 여운으로 온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다. 법정스님이 글을 쓴 게 아니라 깊이 있고 온화한 글이 법정스님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단순하게 살고, 정갈하게 적고 싶다. 스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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