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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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인근에 있는 대학 운동장을 달리면서 마라톤이라는 것을 해봤으니 시간으로 본다면 9년이나 된 샘이다. 처음 달렸을 때는 400m 정도 되는 대학 운동장이 왜이리 크고 넓게 보이던지. 헉헉거리며 한 바퀴만 돌아도 다리가 뻣뻣해졌고 나를 추월해가는 아주머니들의 씩씩한 걸음걸이가 괜히 얄밉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을 달리다보니 가쁜 숨도 안정되어 갔고 뛰는 거리도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달리기에 조금 자신감을 얻은 나는 그해 가을 부산 광안대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의 10Km 미니구간에 출전했다. 갓 개통한 광안대로를 달릴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많은 달림이들의 '끈질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날씬한 몸매로 바람을 가르는 아저씨도 있었지만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끝없이 뛰고 있는 아줌마, 할아버지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걷는 듯이 느릿느릿 뛰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그리 빠르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쉼 없이 움직이는 다리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반환점을 돌고부터 한없이 무거워진 나에게는 주로 위의 모든 사람들이 황영조이자 이봉주였다.
 어쨌든 나는 그날, 처음 출전한 마라톤대회에서 한 번도 걷지 않고 끝까지 뛰어서 완주했다. 1시간을 훌쩍 넘어선 기록이었지만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을 올림픽 금메달 못지않았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한 번도 걷지 않고 완주했다는 뿌듯함이 목에 걸린 완주매달처럼 주어졌다.

 오늘은 동호회 사람들과 사직보조경기장을 뛰었다. 보름정도 쉬어버린 탓도 있고 추운 겨울인 점을 가만해 조금 천천히 몸을 풀었다. 쌀쌀한 날씨 속에 400m 트랙을 25바퀴를 돌았으니 10km를 뛴 샘이다. 손목에 찬 타이머는 1시간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9년 전 처음 달릴 때와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다. 달리는 시간이나 거리가 꾸준히 늘었고 동호회를 통해 달리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0km 단축코스 뿐만 아니고 21Km 하프코스도 주기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42.195km 풀코스를 달려볼 용기를 내기도 한다.
 복잡한 장비나 별다른 준비물이 필요 없고 남과 경쟁을 통해 승부를 판가름하는 스포츠가 아니기에, 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운동이 이제는 내가 즐기는 최고의 여가가 되었다. 달리기라는 단순한 반복을 통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 묻혀버린 나를 끄집어낼 수 있었고 운동 뒤에 주어지는 휴식의 뿌듯함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달리기를 통해 세상을 둘러볼 수 있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하루키 역시 달리기를 통해 세상과 글쓰기, 혹은 글쓰기와 자신 사이의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글이라는 틀에 매몰되지 않도록 자신을 단련시키면서 동시에 오래도록 글줄기를 뽑아낼 수 있는 체력적 밑바탕을 만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해보일 수 있는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통해 내면에 감추어진 욕구를 풀어내는 힘과 절제력을 동시에 단련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달리기에 대한 그의 철학인 동시에 그에 대한 마라톤 이야기다. 어디에서건 매일 10Km 이상씩을 달리며 자신을 훈련시켜 온 작가가 마라톤과 철인삼종경기를 통해 끝없이 자신을 단련시켜나가는 한 인간의 자화상인 것이다.
 문득 뜨거운 아스팔트나 비오는 운동장을 몇 시간씩 달려보지 않은 이들에게 "텅 빈 가솔린 탱크를 안고 계속 달리는 자동차가 된 기분"을 전해준다는 게 인생의 커다란 해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은 아깝기도, 샘이 나기도 했다. 심장을 태우며 쏟아내는 진한 땀방울은 책상머리나 컴퓨터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인데 말이다.

 2011년이 시작된 지 얼마가 지났다. 올해는 42.195km의 풀코스를 달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로에 있겠지만 달리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일 것이다. 격해진 호흡과 굵은 땀방울로 온전한 나를 껴안고 싶다. 달리기라는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나와 마주하고 싶다. 아니, 나라는 존재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다. 그땐 아마도 하루키의 마음을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역시도 지구 어디선가 나와 같은 마음이 되어 달리기를 하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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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반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29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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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시간이 무한정 남아돌기 시작했다. 간병인으로 환자 옆을 지킨다고는 하지만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몰려오는 졸음으로 시간을 때우거나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손장난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인근 책방을 알게 되었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이 책을 골랐다.
 <싱커>라는 이름은 인터넷 서점에서 많이 들어봤었다. <완득이>와 같이 청소년을 주 타겟으로 한 미래 소설로 독자들의 평이 꽤 좋았었던 것이 기억된다. 그래서 언제고 한번 읽어봐야지 하면서 몇 달을 장바구니에 넣어뒀던 책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책들에 밀려 읽어보지 못하다가 이제야 '타임킬링' 용으로 집어 들게 되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SF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종종 등장했던 내용이다. 기후변화와 전쟁, 바이러스로 황폐해진 지구는 급기야 빙하기를 맞게 된다. 위기에 빠진 인류는 외계 행성에서의 생활을 위해 테스트용으로 만들어진 지하도시 '시안'에서 생활하게 되고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미마(주인공)는 '싱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안 밖의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이다. 참고로 싱커란 뇌파 동조(Sync)를 이용해 신아마존(시안과 함께 만들어져 방치되던 밀림지대)의 동물이 되어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를 통하면 도마뱀, 박쥐, 사자 같은 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미래를 다룬 책답게 미래의 유비쿼터스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유비쿼터스란 모든 사물이나 기기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초소형 센서(컴퓨터)가 옷, 책상, 출입문, 가로등 등 모든 물건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가령 옷에 부착된 센서가 사람 체온과 외부의 온도를 측정해서 옷의 발열 정도를 조정하고 이 정보를 이용해 건강을 체크해서 주치의에게 알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서는 앞으로 펼쳐진 이런 첨단 사회의 일면이 과학이나 컴퓨터 교과서의 예제로도 손색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마치 내가 2080년의 시안(미래도시)에 와 있는 것처럼...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의 집중력과 스토리의 개연성이 조금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공상과학소설을 너무 이성적인 논리로만 보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미래'라는 키워드 속에 숨어진 상상력을 봐야하지 않을까. <제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헛말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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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개정판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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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비야                                                                                       

 한비야, 그녀가 우리 땅에 섰다. 전라도 해남에서 강원도 민통선까지의 도보여행을 통해 6년간의 세계여행을 마무리 지으려했다. 1999년 3월에 시작된 여행(49일간)이었으니 시간으로만 보자면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하지만 그 시간의 간극은 아무런 장애도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묵은지에서 느끼는 쌉싸래한 시간의 맛이 더해져 나를 몰아세웠다.

 처음엔 그냥 심심풀이용으로 집어든 책이었지만 그녀의 진솔함과 도보여행의 끈끈함에 이끌려 내쳐 읽고 있다. 그전에 읽던 책이 있었지만 잠시 미뤄두고서 그녀의 이야기 속에 다시 빠졌다. 사실 그녀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에 읽은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그녀의 매력에 푹, 함몰되어 허우적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읽었고 몇 권을 더 주문해 지인들에게 선물까지 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과거 책들, 이를테면 6년간의 세계여행기를 다룬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나 오늘 읽은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에는 손이 가질 않았다. 인터넷으로 사놓고 미뤄뒀던 소설들도 많았지만,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던 책에 대한 거부감이 있은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건 사랑이었네>를 통해 그런 오해를 말끔히 씻어버릴 수는 있었지만 베스트셀러 자체가 갖고 있는 획일적인 느낌이 싫었다. 더군나 그녀의 여행기가 나의 방랑끼를 다시 부추기지나 않을까하는, 약간의 질투심도 한 몫 했었다.
 그녀가 주목받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까지 나는 제법 많은 도보여행을 기획했고 그중에 몇몇은 실제로 떠났다. 해남에서 서울까지 도보와 자전거로 올라가려고 길을 떠나기도 했고 변산반도의 강과 산, 바다를 일주하기도 했다. 지리산의 능선에서 몇날 며칠을 지내기도 했고 울릉도를 구석구석 걸어 다니기도 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그녀와의 정면대결을 애써 외면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던 책이었는데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고 급기야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잠시 읽고자했던 책에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방랑끼가 다시 동하기 시작했고 어느 틈에 나만의 보도여행기를 구상하게 되었다.
 "일단 그녀의 길을 따라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여행해야지. 책에 소개된 일지와 지도를 참고삼아 4개 구간으로 나눠 여름과 겨울, 이렇게 2년에 걸쳐 걸어가면 되겠군. 아들 녀석이 조금 크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보는 것도 좋을 거야. 참, 아들 녀석이랑은 울릉도 일주를 먼저 해보는 게 좋겠군. 그래서 걷는다는 것, 야영에 대한 재미를 보여줘야겠어."
 나는 이미 뜨거운 태양 속을 해치며 전국을 누비며 있었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산들바람을 쐬며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았다. 밍밍해진 물을 마시며 가야할 길을 확인한다. 땟물이 눌어붙은 목덜미에선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알고 있다. 나의 얼굴엔 뿌듯한 미소가 번져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녀의 환한 미소는 다시금 나의 배낭을 꾸리게 한다. 일상에 미뤄뒀던 일들을 작게나마 시작해봐야겠다. 아자!


 # 2. 여행                                                                                           

 그녀의 여행길은 대부분 혼자서 떠났지만 어디서고 혼자 있지는 않았다. 그녀를 알아보는 독자와 팬들도 있었지만 시골 촌구석의 할머니와 동네 아줌마까지도 그녀는 친구로 만들었다. 논밭을 매는 마을 할머니나 우연히 들른 매점의 아줌마까지도 그녀의 넉살에 이네 친구가 되었다. 친구뿐이겠는가, 기꺼이 하루 잠자리와 식사까지 대접(?)받는다.
 그녀의 얼굴은 보기와는 달리 몇 배는 두꺼워 보인다. 그녀를 모르는 초면의 사람도 몇 마디 대화만으로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여행은 풍경만 둘러보고 자신만 추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사람과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담아낸다. 그녀를 따라 다니다보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활하는 착각마저 들만큼 여행에서 오는 '외지인의 벽'이 없다. 겉만 훑고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그곳의 삶에 녹아들며 하나가 되어 동화된다.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에서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거침없이 돌진하는 비야님의 모습이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존중과 겸손, 그리고 용기가 인상 깊다.


 # 3. 환경                                                                                          

 즐겁고 유쾌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쏜살같이 달리는 자동차와 악의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낯선 이는 그나마 봐줄만했다. 무분별한 개발로 파헤쳐진 산하와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는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훼손해버린 자연은 결국 우리들의 숨통을 죄여올 것이다. 근시안적인 환경의식으로 자연을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 두시오"라고 외치는 좀머씨(파트라크 쥐스킨트의 <좀머씨의 하루> 중에서)의 절규 같았다. 가만히 놔두어도 스스로 자정해나갈 것을 왜 그리도 못살게 구는지. 자연에 대한 성급한 개발과 이로 인한 재난, 그리고 이를 복구하기 또 다른 개발... 이런 과정을 반복적인 거치면서 엄청난 돈과 인력을 쏟아 부었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에는 자연형 복원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처음의 자연 상태로 되돌려놓았다.
 자연의 힘은 인간의 상상 이상이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만 없다면 자연은 스스로를 지키며 정화시켜 나갈 것이다. 제발, 그대로 놔두자. 무슨무슨 사업이니 개발이니 하는 반자연적인 일들은 집어치우고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을 따라가자!


 # 4. 종교                                                                                          

 그녀는 천주교인이다. 비구니(여승)였던 할머니와는 달리 그녀의 식구들은 모두 천주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상당히 수용적이다. 사랑이건 자비건 결국에는 '인간'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중심에 둔 종교였기에, 이웃을 중심에 둔 사랑이고 자비였기에 종교의 차이는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이롱 천주교 신자'라는 말은 아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걸을 때나 쉴 때나 그녀는 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했다. 그분의 사랑을 잊지 않았으며 모든 것에 감사해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했다. 교회든 절이는, 목사님이든 스님이든 모두 자기편, 아니 자신의 종교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비야님의 모습은 종교를 어떻게 믿고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교본 같았다.


 # 5. epilogue                                                                                                        

 "내 발로 직접 걸으며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가슴으로 직접 느낀 국토는 더 이상 지도 위의 한 조각 땅덩어리가 아니다. 그 땅 위에 있는, 거기에 뿌리내리고 사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 역시 더 이상 남이 아니다."
 그녀야말로 우리의 땅과 인간의 발을 사랑한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그녀의 작은 걸음걸이는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축복하며 세계로 향하고 있다. 그녀의 힘찬 발걸음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비야 누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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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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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최고로 뜨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면서 표절 문제로 시끄러운 작품이다. 덕혜옹주를 평생 동안 연구해왔다는 혼마 야스코(일본인)의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표절했다는 것인데 최근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혼마는 <덕혜옹주>에 담긴 시를 비롯한 주요 내용들이 자신의 저서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권비영 작가는 <덕혜옹주>를 쓰면서 혼마 야스코의 책을 참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표절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내 글이 표절이면 모든 역사소설은 표절"이라며 역사적 사실은 누구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했다. 과연 어디까지가 참고이고 표절인지 모호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덕혜옹주>를 호기심과 기대감이 뒤섞인 묘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표절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선입견 때문인지 조금은 색안경을 끼고 봐지는 것 같다. 특히 독자가 느껴야할 감정의 몫까지도 서술해버리는 작가의 지나친 친절함은 글 읽기의 맛을 떨어뜨렸다.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무성영화의 춘사처럼 작위적이기까지 했다. 당연히 이야기는 밋밋해지고 사건과 인물의 깊이 있는 묘사는 작가의 서술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개입을 좀 더 최소화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시간적으로도 너무 방대한 느낌이다. 한일합방 이전 해인 1909년부터 덕혜옹주가 한국으로 귀국하던 1962년을 중심에 두고 있으니 대략 50여년의 시간이다. 이 오랜 시간을 순차적으로 서술하다보니 사건이나 인물 모두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지 않았나싶다. 오히려 덕혜옹주의 가장 극적인 부분을 택해서 전체 인생을 회고해 보는 방식은 어땠을까. 아니면 다른 등장인물을 중심에 내세워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이끌어갔어도 좋았지 싶다.
 소설은 쉼 없이 읽혔지만 별로 남는 것은 없었다.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에 비해서는 알맹이가 부실해 보였다. 술 술 잘 넘어간다는 몇몇 서평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작은 판형에다 넓은 줄 간격 때문이지 싶다. 인물과 사건이 중심이 되는 소설은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보다는 내용에 대한 몰입도를 가지고 승부해야하는데 말이다...

 책에 대한 비판적인 말만 많아진 것 같다. 그렇다고 먼 이국땅에서 세상과 격리된 체 조국만을 바라봤던 덕혜옹주의 절규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매 페이지를 타고 쓸쓸하게 흘러넘쳤다.
 "세월이여, 진정 따스한 손길을 보내주오. 내 속으로 낳은 아이마저 나를 모른다 하오. 나와 살을 섞은 남자도 나를 모른다 하오. 나를 낳은 나라도 나를 모른다 하오. 나는 부유하는 먼지처럼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소. 이토록 삶이 무겁다니. 이토록 고단하다니......"
 힘없이 무너져 내렸던 조선의 역사를 덕혜옹주는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체념, 삶에 대한, 자신에 대한 체념뿐이었다. 왕족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려놓고서라도 그녀가 겪었을 이국땅에서의 서러움은 시대의 아픔만큼이나 서글펐다. (물론 앞서 말했던 작가의 지나친 친절함에 그 느낌이 반감되기도 했지만...)

 덕혜옹주는 실제로 1962년이 되어서야 귀국했다고 한다. 전쟁의 소용돌이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잊혀졌던 불행한 삶이었지만 그나마 한국 땅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위태롭고 나약해 보인다. 남쪽으로 내려온 귀순 가족이나 이국땅에 건너와 새 삶을 시작하는 다문화 가족, 동남아시아에서 온 취업 이민자들의 어려움도 여전하다. 우리의 덕혜옹주가 그러했듯 그들의 삶에도 보다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지 싶다. 세계 몇 위라는 겉모습보다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땅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대한민국이었으면 좋겠다.


( www.freeism.net ) 문성만, 책, 글, 여행, 도서, 독후감, 감상, 서평, 여행, 트래킹, 캠핑, 도보, 글, 메모, 시, 사진, 일상,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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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과 머저리 ㅣ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2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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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12권, 중단편소설 10권, 연작소설 3권 등으로 이루어진 <이청준 문학전집> 중에서 주제별로 정리된 중단편집이다. 여기에 실린 중단편은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의 작품들로 아마도 병신, 머저리라는 제목이 갖고 있는 뉘앙스와 관련이 있는 중단편을 모아놓았지 싶다. 두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 혹은 약자들의 이야기거나 아니면 내, 외적인 요인에 의해 억압받고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인간 군상을 그리지 않았나 싶다.
 일단 여기에 실린 주요 작품을 살펴보면,


 <아이 밴 남자>
 복어중독으로 부모님을 잃고 사팔뜨기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 그는 장의사 일을 하면서 늘 죽음 곁을 맴돌았다. 언제고 돈을 벌어 여동생에게 오빠 구실 한번 제대로 해보는 것이 꿈이었지만 여동생의 약을 먹고 자살해 버린다. 부지불식간에 닥친 그녀의 죽음에 그는 심한 복통을 일으켰고 이를 본 행인이 "허허 그럼 애라도 서는 모양이구료!"라며 농을 던지고 사라진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의 복통은 동생에 대한 증오와 안타까움, 그리고 자신에 대한 연민이 어우러진 응어리가 아니었을까.

 <병신과 머저리>
 "형은 가엾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미웠다. 언제나 망설이기만 할 뿐 한 번도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의 행동의 결과나 주워 모아다 자기 고민거리로 삼는 기막힌 인텔리였다."
 의사인 형은 수술 도중 죽은 한 소녀를 통해서 동료를 죽인 뒤에야 적진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6.25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괴롭혔다. 하지만 나는 형처럼 뚜렸한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쳐버렸다. 사랑하는 여인을 무책임하게 떠나보내고 광활한 화폭 뒤로 숨어버렸다. '머저리 병신'이라는 형의 욕설에서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근원이 뚜렷한 아픔 이였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그 시작을 알 수없는 상처는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사회적 아픔과 내적 상처 사이의 경중을 놓고 벌이는 우리시대의 초상이 아닐까. 6.25와 같은 시대의 문제를 사랑이라는 개인의 이야기와 섞어 풀어낼 수 있는 이청준 님의 능력이 돋보인다.

 <등산기>
 서울 근교의 천마산을 오르는 부녀의 이야기다. 한때 산행 팀을 이끌기도 했지만 지금은 기력이 떨어져 일행의 끝을 쉬엄쉬엄 따라가는 처지가 된 아버지. 그를 보는 딸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꼭 기행문이나 산행기을 적었다. 얼마 전에는 설악산 산행기를 토대로 소설을 써 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 순으로 나열된 풍경과 감상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스토리가 없이 밋밋한 글이 되고 말았다. 이청준 님의 <등산기>는 산행기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산을 오르는 사람의 이야기가 산의 정경과 어우러져 극적인 사건 없이도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었다. 물론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나왔기에 기행문이나 산행기와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만큼은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이 단편집을 읽은 뒤에는 필사를 해봐야겠다.

 <낮은 목소리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가장 큰 반사회적 행동은 텔레비전 수상기 등록 없이 공짜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청료쯤으로 보면 되겠다. 아무튼 등록받으러 나온 방송공사 직원을 텔레비전이 없다고 속이고 불법적인 시청을 계속해왔다.
무능하게 비춰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 혹은 세상의 온갖 '한탕'에 끼어들지 못해 겉돌았던 자신의 대리만족이 아니었을까. 이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범생이 아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밖에도 보일듯 말듯 다가오는 한국식의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치자꽃 향기>, 조화가 갖고 있는 완전함과 비현실성을 으스스하게 다룬 <꽃과 뱀> 등 인간의 내면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여럿 등장한다. 그것은 개인적인 고통일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주어진 억압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 작가는 결국 허물어지고 비틀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불완전성, 그 속에 숨어있는 삶에 대한 갈구와 노력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수십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의 우리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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