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최고로 뜨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면서 표절 문제로 시끄러운 작품이다. 덕혜옹주를 평생 동안 연구해왔다는 혼마 야스코(일본인)의 <덕혜옹주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를 표절했다는 것인데 최근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혼마는 <덕혜옹주>에 담긴 시를 비롯한 주요 내용들이 자신의 저서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권비영 작가는 <덕혜옹주>를 쓰면서 혼마 야스코의 책을 참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표절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내 글이 표절이면 모든 역사소설은 표절"이라며 역사적 사실은 누구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했다. 과연 어디까지가 참고이고 표절인지 모호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덕혜옹주>를 호기심과 기대감이 뒤섞인 묘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표절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선입견 때문인지 조금은 색안경을 끼고 봐지는 것 같다. 특히 독자가 느껴야할 감정의 몫까지도 서술해버리는 작가의 지나친 친절함은 글 읽기의 맛을 떨어뜨렸다.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무성영화의 춘사처럼 작위적이기까지 했다. 당연히 이야기는 밋밋해지고 사건과 인물의 깊이 있는 묘사는 작가의 서술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개입을 좀 더 최소화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시간적으로도 너무 방대한 느낌이다. 한일합방 이전 해인 1909년부터 덕혜옹주가 한국으로 귀국하던 1962년을 중심에 두고 있으니 대략 50여년의 시간이다. 이 오랜 시간을 순차적으로 서술하다보니 사건이나 인물 모두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지 않았나싶다. 오히려 덕혜옹주의 가장 극적인 부분을 택해서 전체 인생을 회고해 보는 방식은 어땠을까. 아니면 다른 등장인물을 중심에 내세워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이끌어갔어도 좋았지 싶다.
 소설은 쉼 없이 읽혔지만 별로 남는 것은 없었다.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에 비해서는 알맹이가 부실해 보였다. 술 술 잘 넘어간다는 몇몇 서평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작은 판형에다 넓은 줄 간격 때문이지 싶다. 인물과 사건이 중심이 되는 소설은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보다는 내용에 대한 몰입도를 가지고 승부해야하는데 말이다...

 책에 대한 비판적인 말만 많아진 것 같다. 그렇다고 먼 이국땅에서 세상과 격리된 체 조국만을 바라봤던 덕혜옹주의 절규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매 페이지를 타고 쓸쓸하게 흘러넘쳤다.
 "세월이여, 진정 따스한 손길을 보내주오. 내 속으로 낳은 아이마저 나를 모른다 하오. 나와 살을 섞은 남자도 나를 모른다 하오. 나를 낳은 나라도 나를 모른다 하오. 나는 부유하는 먼지처럼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소. 이토록 삶이 무겁다니. 이토록 고단하다니......"
 힘없이 무너져 내렸던 조선의 역사를 덕혜옹주는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체념, 삶에 대한, 자신에 대한 체념뿐이었다. 왕족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려놓고서라도 그녀가 겪었을 이국땅에서의 서러움은 시대의 아픔만큼이나 서글펐다. (물론 앞서 말했던 작가의 지나친 친절함에 그 느낌이 반감되기도 했지만...)

 덕혜옹주는 실제로 1962년이 되어서야 귀국했다고 한다. 전쟁의 소용돌이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잊혀졌던 불행한 삶이었지만 그나마 한국 땅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위태롭고 나약해 보인다. 남쪽으로 내려온 귀순 가족이나 이국땅에 건너와 새 삶을 시작하는 다문화 가족, 동남아시아에서 온 취업 이민자들의 어려움도 여전하다. 우리의 덕혜옹주가 그러했듯 그들의 삶에도 보다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지 싶다. 세계 몇 위라는 겉모습보다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땅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대한민국이었으면 좋겠다.


( www.freeism.net ) 문성만, 책, 글, 여행, 도서, 독후감, 감상, 서평, 여행, 트래킹, 캠핑, 도보, 글, 메모, 시, 사진, 일상,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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