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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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는 것이 최고의 출세였던 시절, 신학교 입학 시험을 보기위해 주(州) 최고의 수재들이 슈트가르트에 모였다. 슈바벤 지역의 대표로 올라온 한스 기벤라트도 그중 한 명으로 마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2등으로 합격한다.
  이렇게 마울브론 수도원에는 입학한 한스는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 슈바르츠발트에서 온 헤르만 하일너와  가깝게 지낸다. 하일러는 엉뚱하지만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인물로 공부에만 매달려온 한스에게는 신선한 바람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하일러와 가까워지면서 한스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전부라고 믿었던 학문적인 공부 이외의 다른 세상을 접하면서 공부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시들어버린 것이다. 최고의 모범생으로 입소한 한스의 성적은 계속 떨어졌고 급기야 수도원의 문제아로 전락해버렸다. 한스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급기야 수도원에서 도망친 하일러로 인해 더욱 자포자기해 버린다. 결국 수도원에서 쫓겨난 한스는 주변의 안타까운 눈총 속에 귀향했고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들른 대장간에서 육체노동의 건전한 가치를 알게 되며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간다. 하지만 사랑에 눈을 뜸과 동시에 찾아온 배신으로 다시금 깊은 수렁에 빠진다. 결국 한스는 강물에 빠진 체 주검으로 발견되고 만다.
 
  한스의 장래식에서 마을 주민이 나눈 대화를 끝으로 소설은 끝난다.
  "'저기 걸어가는 신사 양반들 말입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사람들도 한스를 이지경에 빠지도록 도와준 셈이지요.'" (p263)
  "신사 양반"이란 다름 아닌 한스가 다닌 학교의 교사, 교장. 한스의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교육을 꼽으며 현실의 교육제도와 이를 수행하는 교사에 의해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희생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소설 중간에도 "수레바퀴 아래 놓인 달팽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수레바퀴가 현실의 교육제도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그 아래에 놓인 달팽이는 바로 학생들을 의미했다. 아무 잘못 없는 달팽이를 짓눌러버리는 무지막지한 수레바퀴를 교육으로 묘사한 것이다.
 
  아무래도 헤르만 헤세는 기존의 교육제도를 부정적으로 본 것 같다.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하고 고유한 특성을 무시한 체 특정분야의 지식만 측정, 평가함으로써 인간을 황폐화 시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소설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10대 때 자살을 시도했고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헤세의 이력이 마치 억압접인 교육으로 인해 기인한 듯 인상을 받게 된다. 기존의 교육제도가 없었다면 보다 더 자유로운 이상을 가졌을 수도, 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다는 무언의 시위처럼 보였다.
 
  우리나라의 일선 교육현장을  담당하는 내 역할 때문에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지도 모르겠지만 한 인간의 삶을 제도권 교육의 결과로서만 해석하려는 것은 아닐까 의아했다.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유년기의 가정 상황, 이를테면 부모님의 생활습관이나 경제적 정도, 가족 구성원의 상호관계에 따라 학교 교육의 영향이 천차만별로 나타나는데 말이다.
  제도권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회적 요인들은 배제한 체 교육제도만을 만병의 근원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교육은 가정과 사회 모두의 책임인데도 유독 학교와 교사만 모진 매를 맞아야 한다.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당신 탓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육의 역할이 크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제대로 된 교육은 한 인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모든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교육을 부정적인 요인만을 물고 늘어지며 책임을 운운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짧다.
  교육만을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반성과 협력이 필요하지 싶다. 드러난 문제점을 교육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경제, 문화, 정치, 언론 등의 분야에서 함께 바로잡아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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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와 프리즘 - 이윤기 산문집, 내일을 여는 글들 1
이윤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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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시절 읽은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책을 하나 읽었는데 그 책의 출판사가 "문성출판사"였다. 내 이름의 첫 두 글자가 같은 출판사 이름이기에 적잖이 관심을 갖던 기억이 난다. 펴낸이의 이름을 찾아보기고 하고(아마 문 씨였던 것 같다) 책 사이에 꽂혀있던 독자엽서도 보내기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성출판사에서는 작은 시집 한권을 보내 왔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번에 읽은 <무지개와 프리즘>도 이와 비슷한 연유에서 집어든 책이다. 내 홈페이지 이름이 프리즘(freeism.net)이라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궁금해 검색해봤더니 책 제목과 함께 '이윤기'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그는 우리나라에 그리스 로마신화 열풍을 불게 한 주역으로 그리스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려하고 정확한 번역문으로 명성이 자자했었고 나 또한 그가 번역한 <장미의 이름>, <그리스인 조르바>와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었기에 상당히 반가웠다. 특히 이윤기 님의 글을 모두 읽고는 그에게 주례를 부탁했다는 <전작주의자의 꿈>의 저자, 조희봉 님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아무튼 우리 시대를 빛내고 있는 최고의 글쟁이라는 점과 같은 '프리즘'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게 책을 펼쳐들었다.

 

  '1부 내가 사랑하는 인간들'에는 혜능, 니코스 카잔차키스, 생텍쥐페리, 베토벤, 소크라테스 등 인류의 삶에 빛을 가져다 준 현인들에 대한 단상들이 실려 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들려주며 새로운 관심을 불러오게 한다. 특히 베토벤에 대한 글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여기서 소개된 <베토벤의 생애> (로맹 롤랑)까지 덩달아 주문해버렸다. 마음 맞는 친구의 오랜 지기를 만났을 때의 호감, 바로 이 느낌이다. 친구가 덩달아 늘어난 느낌이다.

 

  '2부 신화는 힘이 세다'에서는 신화속의 이야기가 어떻게 현실 속에 반영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두고 전개되는 글이기에 조금 난해한 부분도 보인다. 하지만 현실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과거의 신화에서 발견해내는 해안이 돋보인다.

 

  '3부 청년들에게 고함'은 굳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글이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느낌을 적은 산문이나 수필로 보는 것이 가깝겠다. 그래서 심각하지 않으면서 어디 하나 얽매임이 없다. 깊은 성찰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그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가볍게 훑어보는 느낌이다.

 

  '4부 꿈이 너무 큰가요'는 후기를 대신해 29회 동인문학상(1998년)을 수상한 뒤의 인터뷰 글이 실려 있다. 그의 번역작업과 글쓰기에 대한 총평쯤으로 봐도 되겠다.
  특히 그가 매진했던 신화에 대한 견해가 인상 깊다. "신화와 고대 종교 읽기를 좋아합니다만 그 자체가 나의 목적은 아닙니다. 나의 목적은, 거기에 투사되어 있는 인간의 모습을 읽는 일입니다." (p342)
  신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소박한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온다. 결국엔 인간, 우리라는 말이 그의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프리즘’은 무지갯빛 글을 만들어내는 작가 자신이나 시대, 혹은 문화를 의미했다. 상황이 어떻든 이것이 만들어내는 글이야 말로 우리시대 최고의 무지개라는 말.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내 홈페이지(프리즘, freeism.net) 역시 나를 빚어내는 하나의 도구인 샘이다.
  이윤기 님에 대한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는 책으로 조금 더 일찍 알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도 아마 조희봉 님처럼 이윤기 작가의 전작주의자가 되려는 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에는 이미 이윤님의 소설, 번역서, 산문이 한 아름 쌓여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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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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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청부업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맛깔스럽게 요리해낸 <설계자들>을 통해 작가 김언수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캐비닛>이라는 발칙한 소설로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나는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그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킨 화제작을 뒤늦게 펼쳐들었다.
 
  주인공이 회사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캐비닛에는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p30)에 대한 자료가 있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심토머'라고 했다.
  <캐비닛>에는 "진화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p33) 심토머의 이야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손가락에서 나무가 자라는 사람이나 도마뱀을 입에 넣고 다니는 여인,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고양이가 되고 싶은 사람, 시간이 사라져버리는 여인 등 <믿거나 말거나>에서나 나올법한 기괴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교모하게 비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모른 체 멍하게 살아갔으며 근시안적인 태도로 자연을 마구 훼손했다. 스펙으로 점수화된 사랑은 더 이상 진실할 수 없었고 시간에 묶인 체 계획과 규칙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캐비닛>은 빈틈없이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느긋하게, 이웃과 주변 환경도 둘러보면서 띄엄띄엄 살아볼 것을 은연중에 '썰'한다. 자기가 없다고 직장이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니니 지나친 근심, 걱정은 붙들어 매라고 말이다.

 

  기괴한 이야기로 우리들의 허점을 파고드는 김언수님의 글은 놀랍기만 하다. 허구의 언저리를 돌며 멋지게 풀어놓는 그의 ‘구라’는 단순한 유희거리를 넘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했다. 결국, <설계자들>에서 보여준 그의 기량이 한 순간 타오르다 마는 불꽃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그의 다음 작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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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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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 우리 안에 감추어진 은밀한 욕구를 양파껍질을 벗기듯 사정없이 까발린다. 한 꺼풀씩, 더 이상 벗겨낼 것이 없어 보이다가도 또 다른 속살을 들춰낸다. 어느새 세상 앞에서 발가벗겨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글을 읽는 동안 한없이 불편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당혹스러우면서도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는 자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욕망에 대한 저자 김두식의 독백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중반, 책을 읽거나 여행을 다녀온 뒤에 글을 적어 홈페이지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무슨 책을 읽었고 어디를 다녀왔다는 식의 목록만 남겨두는 정도였는데 이런 기록들을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하나 둘 나만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기록 자체만을 즐긴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생소한 개인홈페이지를 관리하고 글로 올려놓는 과정에서 오는 시선을 즐겼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강의실에서건 어디서건 크게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나를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너희들처럼 멍청하게 강의시간만 때우지는 않아. 아무렇게나 살지도 않아. 내 홈페이지를 봐, 나는 이런 것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어"라는 자랑을 무언중에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이런 욕망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싶다. 인정받고 싶다는, 나를 과시하고 싶다는 욕망!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대학 신입생 때 줄기차게 따라다녔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얼굴이 예쁘다거나 키가 큰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보여준 작은 배려와 관심을 계기로 푹 빠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의 관심이 높아지고 서로 간에 조금씩 알아갈 즈음 그녀는 나에 대한 바람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더 적극적이고 다양해졌으면 좋겠어. 말도 좀 많이 하고. 소극적인 모습보다는 적극적이고 활기찬 모습이 좋아. 차 마시고 맥주 마시는 것 말고 색다른 것을 원해. 옷도 좀 바꿔 입고 멋지게 꾸며봐."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변화시키고도 싶었다. 활동적인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다른 이벤트를 마련해보기도 했지만 20년 가까이 살아온 내 삶을 한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녀 곁을 맴돌았지만 그녀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렇게 나는 군대를 갔고 휴가 때마다 전화를 걸어 시큰둥한 그녀를 몇 번을 만나기도 했다. 약속을 잡고 설렜던 기억과는 달리 상당히 어색한 만남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허둥댔고 이런 내 모습을 그녀는 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뻘쭘한 시간을 매우기 위해 그녀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고 나는 맥주만 쉴 새 없이 마셨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이렇게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가 좋아? 나를 바꾸면서까지 이런 자리를 유지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모든 것이 분명해 졌다. 소극적이라지만 책이나 여행에 대해서는 나만큼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고, 말이 적고 변화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진중하다는 이야기였다.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자신감이 있다는 증거였다.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자 그녀에 대한 집착은 물론 타인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침몰하는 난파선의 구석에서 구명조끼를 하나 발견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라는 대학 논술문제에서 모든 학생들이 '자신이 입고 도망간다'는 답변 대신에 '불쌍한 사람에게 건넨다'는 답을 선택했다고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도덕성 문제를 떠나서 우리는
이미 자신의 욕망보다는 사회에서 바라는 답만 내 놓도록 학습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사회는 자기 내부의 욕망을 숨긴 체 얼마나 가식적으로 살아가느냐가 성공의 열쇠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다. 욕망 자체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감추고 억압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욕망에 솔직해지자.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자. 중요한 것은 욕망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자신, 우리 자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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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김종대 지음 / 시루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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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에 담아둔 인물이 한두 명은 있게 마련이다.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처럼 일상 속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감화를 받은 경우도 있고,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책이나 언론을 통해 알게 된 유명인도 있다. 아니면 사회의 음지에서 조용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이가 될 수도 있고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을 동경하기도 한다.
  그 대상이야 어떻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을 가리켜 흔히 우상이나 위인, 영웅이라 한다. 나에게도 수많은 관객을 휘어잡으며 정열적으로 노래하는 영국의 보컬리스트나 소박한 생활과 글로 텅 빈 충만함을 알게 해 준 스님처럼 특정 세대나 한정된 시대를 빛낸 우상이나 위인은 있다. 하지만 국가나 민족적인 차원의 장벽까지도 뛰어넘어버린 '영웅'은 늘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거북선에 대해 객관적으로 쓴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정광수, 1989)를 읽었는데, 막연하게만 다가왔던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후부터 이순신은 나의 영웅이 되었다.

  이번에 읽은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는 기존의 임진왜란 이야기나 이순신 전기와는 달리 임진왜란을 중심에 두고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쫓는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 임금에게 올린 장계와 선조로 부터 받은 유서, 그가 언급된 글이나 편지 등을 통해 왜란 중에 행적을 소상히 정리했다. 특히 오랜 기간 하나의 길(재판관)에 매진해 온 저자의 경력답게 많은 부분을 인간관계나 소통과 같은 리더십의 관점에서 이순신을 설명한다. 개인과 국가, 책임과 의무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조직을 이끌어 왔는지를 오랜 병영 생활과 스물 세 번의 해전을 통해 보여준다.
  옥포, 당항포, 한산도, 부산, 명랑, 노량 등지에서 방심한 적의 틈을 노려 공격하기도 했고 물러서는 척 적을 유인해서 섬멸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의 용병술도 주효했지만 이를 추진하는 장수와 병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군율로 엄하게 다스리는 한편 아버지와 같은 신뢰로 장졸들을 보살폈다. 또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한정된 자원으로 싸워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을 믿고 의지한 백성을 온 몸으로 끌어안았고 다른 장수가 적의 수급에 집착할 때 장군은 전투의 과정을 통해 승패를 가름했다. 지극한 정성과 철저한 준비로 왜란을 이겨낸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을 지나치게 신성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에 대한 오랜 연구와 깊은 이해에서 나온 애정임은 알겠으나 아무런 심적 동요도 없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는 식의 표현은 왠지 어색했다. 멀리 있는 영웅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조금 부족하고 모순되더라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위인이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지나친 신성화로 오히려 거리감을 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문득 이순신 장군의 서슬 퍼런 칼날이 우리의 흐트러진 정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오늘날의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정치인들이 남발하는 선심성 공약, 실직과 함께 거리로 내몰린 가정, 거리를 활보하는 파렴치범, 늘어나는 대졸 취업자와 와해되고 있는 공교육 등 연일 계속되는 사건 사고와 어정쩡한 후속 처리는 임진왜란을 당해 우왕좌왕했던 조정과 도망가기 바빴던 일부 장수의 모습이었다. 무사 안일한 자세와 근시안적인 접근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렸고 임기응변식 대처로 매년 불미스런 일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화려한 이상향을 쫓아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달려왔다. 경제적 가치로 세상을 재단했을 뿐 사람과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이순신은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을 사랑했다. 나아가 부모, 처, 자식들과 친척을 사랑하고 부하들을 사랑했다. 그의 충만한 사랑은 사회와 나라로 이어져 백성을 사랑하고 국토를 사랑하는 데까지 이르렀다."(p213)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 누리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나라를 구한다는 거창한 명목은 아니더라도 내 자신과 가족, 이웃부터 챙길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지 싶다. 작은 실천이 모여 자신과 가족, 직장을 변화시키고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있다. '영웅'이란 수많은 적을 쓰러뜨렸기에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세상 위에 꽃피웠을 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영웅은 이제 우리의 몫인 것이다.
.  
 

* 서두에 언급한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 (정광수, 정신세계사, 1989>는 절판되었지만 저자 정광수님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이순신역사연구회'를 통해서 <이순신과 임진왜란> (이순신역사연구회, 비봉, 2005, 전4권)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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