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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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청부업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맛깔스럽게 요리해낸 <설계자들>을 통해 작가 김언수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캐비닛>이라는 발칙한 소설로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나는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그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킨 화제작을 뒤늦게 펼쳐들었다.
 
  주인공이 회사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캐비닛에는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p30)에 대한 자료가 있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심토머'라고 했다.
  <캐비닛>에는 "진화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p33) 심토머의 이야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손가락에서 나무가 자라는 사람이나 도마뱀을 입에 넣고 다니는 여인,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고양이가 되고 싶은 사람, 시간이 사라져버리는 여인 등 <믿거나 말거나>에서나 나올법한 기괴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교모하게 비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모른 체 멍하게 살아갔으며 근시안적인 태도로 자연을 마구 훼손했다. 스펙으로 점수화된 사랑은 더 이상 진실할 수 없었고 시간에 묶인 체 계획과 규칙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캐비닛>은 빈틈없이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느긋하게, 이웃과 주변 환경도 둘러보면서 띄엄띄엄 살아볼 것을 은연중에 '썰'한다. 자기가 없다고 직장이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니니 지나친 근심, 걱정은 붙들어 매라고 말이다.

 

  기괴한 이야기로 우리들의 허점을 파고드는 김언수님의 글은 놀랍기만 하다. 허구의 언저리를 돌며 멋지게 풀어놓는 그의 ‘구라’는 단순한 유희거리를 넘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했다. 결국, <설계자들>에서 보여준 그의 기량이 한 순간 타오르다 마는 불꽃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그의 다음 작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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