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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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 책을 집어든 첫 번째 이유는 '세계문학전집 6'(민음사)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책장에 쌓여가는 현대 소설을 보면서 과연 이렇게 읽은 책들 중에 몇 년 후에, 몇 십 년 후에 다시 읽고 싶은, 다시 읽게 될 책이 과연 몇 권이나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적이 있다. 내가 읽었던 책들을 내 아이들이 읽으면서 아버지의 생각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공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시대에서 몇 십 년 전의 베스트셀러는 이미 낡아빠진 구세대의 유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들이 부모님 세대를 통해 신물 나게 들어왔던 한국전쟁 이후의 궁핍한 생활이나 이를 벗어나기 위해 주경야독했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또한 요즘에 인기 있는 책이나 베스트셀러들은 그 가치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지 하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었다. 사실 10여 년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베스트셀러도 지금 와서 보면 한 때의 유행일 뿐 특별히 기억되진 못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것이 소위 '고전' 이라는 것. 시대의 유행을 벗어나 오랜 세월, 여러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책이야말로 앞으로도 계속 읽히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공을 초월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무엇이 있었기에 아직까지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데 이전에 읽었던 몇 권의 ‘고전’이 이 출판사에서 기획된 시리즈였기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연속된 시리즈를 찾아 읽게 된 것이 바로 민음사 판 세계문학전집이다. 
  어쩌면 도장깨기식 허영심과 맞물린 내 과시욕인지 모르겠다. 작년, 이미 절판된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 31번, <롤리타>을 어렵게 구해 읽고 적었던 것처럼 "책장에 꽂힌 비슷한 디자인의 문학전집을 보다보면 왠지 한 출판사의 전집류만 계속 고집" 하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변신 이야기>(1,2번), <햄릿>(3번), <변신>(4번), <동물농장>(5번)에 이어 고른 책이 '세계문학전집 6', <허클베리핀의 모험>인 것은 당연한 결과!

 

  거기다 미국 문학사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광고문구가 눈에 들어온 것도 한 몫 했다. 특히 마크 트웨인이 쓴 전작인 <톰 소여의 모험>과 비교했을 때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점이 의아했다. 대부분의 책이나 영화든 1편이 대표작이 되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여기선 속편이 전편을 능가해버리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 사설은 그만두고 이제 본격적인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책은 톰 소여의 친구인 허클베리 핀이 도망친 노예, 짐과 미시시피 강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로 구성되어 있다.

 

  잠깐, 그런데 사설이 자꾸 길어진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도 나름의 변명은 있는 법. 
  책을 읽고 그 느낌을 적는 것은 오랜 습관처럼 되다보니 이젠 단 몇 줄이라도 책에 대한 느낌을 적어놓지 않으면 마치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은 생각에 영 찝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난 한 순간의 영감만으로 수 천매의 원고지를 써내려가는 기성 작가들처럼 내 머리 속의 생각들이 술술 적지는 못한다. 거기다 직장에서 일도 해야 하고 집에 오면 마누라와 아이들과도 대면해야 한다. 이런저런 생활사가 내 팔 할을 차지하기에 책에만 집중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집중도가 떨어지는 현상까지 벌어지게 된다. 거기다 300 페이지를 넘어가는 두꺼운 책일 경우는 그 상태가 더 심해진다.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는 자그마치 600여 페이지. 하여간 책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고, 폈다가 접었다가를 몇 주 째 반복하다보니 책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도 산만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이런 사설만 주저리 늘어놓게 되는 것 같다.
  다시 책에 집중해보자.

 

  헉은 말썽쟁이일 뿐만 아니라 거짓말도 잘하고 도둑질까지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소위 '막돼먹은' 소년이다. 술주정뱅이에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아버지에게선 거의 아무런 양육도 받지 못했고 이웃 아줌마의 보살핌을 간간히 받은 정도.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개인적인 욕심이 개입되지 않은 탓에 마냥 나쁘게만 보이지 않는다. 버릇없고 괴팍해 보이는 그의 행동 속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도망친 노예를 친구나 가족처럼 대하는 모습이나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주는 등 개인적인 욕심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대가없이 행한다.
  노예라고는 하지만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의 삶과 가족에 대해 걱정해주는 모습은 흑인노예를 단순히 금전적인 가치만으로 인식하던 당시의 분위기와는 사뭇 구별된다. 세상이 아무리 짐을 도망친 노예라 하더라도 헉에게는 이미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것. 허클베리 핀은 이미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으려는  파수꾼, 아니 잔 다르크였던 것.
  어쩌면 학벌과 스펙만으로 겉만 번지르르한 오늘날의 우리들보다도 더 순수한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이 동하는 일에만 소신껏 움직이는 모습은 월든 호수를 벗 삼아 자연인으로 살아간 데이빗 소로우처럼 보였다.

 

  이 책의 전작이 되었던 <톰 소여의 모험>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톰이라는 친구가 있었기에 헉의 삶도 그만큼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미시시피 강의 온화함과 더불어 자신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불알친구'의 존재는 그 어떤 교과서 보다 훌륭한 교재가 되었지 싶다.
  우리 아이들도 자연에서 놀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는데 우리 주변엔 온통 사각형의 아파트와 검은 콘크리트뿐이니...

 

  산만한 텍스트로 읽는데 조금 애를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문학전집 6'(민음사)이라는 표제에 꽂혀 읽은 책 치고는 나름대로 만족한다. 미국 문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책인데다 어릴 때 봤던 만화영화의 원작을 읽었다는 점, 그리고 600 페이지를 넘는 민음사 판 문학전집 ‘6권’을 읽었다는 것! 이것은 7권 이후의 책을 읽어도 좋다는 일종의 허가증인 것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권, 끄-읕! (내가 생각해도 좀 유치뽕이다. ^^)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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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단편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9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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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태어난 벤자민 프랭클린.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은 오히려 젊어진다. 십대가 되었을 때 아버지의 동생으로 오해받기도 했고 이십대가 되면서 오히려 아버지보다 젊어져 버렸다. 급기아 삼십대에는 자신이 낳은 아들과 비슷한 연령대로 비쳐지기도 했다.
  벤자민은 사업가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영웅이 되었고 젊은 여자들로부터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등 생에 최고의 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도 잠시, 나이가 들면서 초등학생 수준의 모습으로 어려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손자와 함께 유치원에 다녀야 할 정도가 되었다. 급기야 누구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갓난아기 모습으로 늙어(?) 최후를 맞이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유명한 피츠 제럴드가 쓴, 조금 황당한 이 단편은 몇 해 전에 브레드피트가 주연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상영되기도 했었다. 당시 많은 광고를 통해 독특한 소재란 것은 알았지만 극장에서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내용이 더 궁금하던 차였는데 최근에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구매하면서 증정판을 제작된 이 단편을 받아보면서 그 원본을 접하게 되었다.


  독특한 설정에 비해 평이하게 흘러간다. 한 늙은 아이가 어린 늙은이로 변해가는 삶을 차분한 시선으로 그렸는데 이는 질곡 많은 인간들의 인생사를 더욱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지 싶다. 그래서인지 벤자민의 역전된 삶의 궤적을 통해 우리의 평이한, 아니 험난한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년기의 우정이나 설렜던 연애 감정, 그리고 결코 낭만적일 수만은 없는 결혼 생활과 가족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도 그 당시만 지나고 나면 한순간의 찰나인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한편의 코미디 드라마처럼 순식간이지 않았던가. 그 짧았던 희로애락이 바로 인생이었건만, 뭐가 그리도 안타깝고 두려웠던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는 결국 ‘시간’이라는 연출가 앞에서 극을 펼치는 단막극 배우가 아니었던가.
  피츠 제럴드는 길~지만 짧은,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인생을 나이나 체면, 겉으로 드러난 형식에서 벗어나 매 순간을 진지하게 살라고 조언해 주는 것 같다. 네가 낑낑거리며 흰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시간은 흘러가고 있으니 아예 좀 더 가치 있는 찾아보라는 일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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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바꾸는 아빠의 말 - 행복한 아이로 성장시키는 하루 10분 대화법
김범준 지음 / 애플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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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인 나의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주문을 한다. 아이들과 마주앉은 내 모습이 늘 2% 부족하게 보이는 모양인지 아내는 시간 있을 때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좀 더 주의 깊게 들고 반응해 주라거나, 좀 더 많은 시간을 놀아줄 것, 스킨십을 많이 하라는 등의 말을 자주 한다.
  그러다보니 육아에 대해 아내와 함께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감정코칭에 대한 연수를 듣기도 했고 책읽기와 영재교육, 아동기의 심리나 행동 특성에 대한 책을 같이 보기도 했다.
  특히 최성애 교수님의 감정코칭이 인상 깊었는데 아이의 마음상태에 대한 '공감'을 최고의 육아법, 교육법이라는 요지의 글이 생각난다. 아이의 행동을 다그치기 전에 그런 행동에 대한 심리상태를 먼저 공감하고 어루만져 주라는 것인데 최근 육아서의 대부분은 이 감청코칭에서 유래되거나 여기서 확장된 것이 많은 것 같다.

  최근에 아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해 나에게 읽어보라며 건네준 <내 아이를 바꾸는 아빠의 말> 역시 감청코칭의 '초보아빠용 보급판'으로 보면 되지 싶다. 어렵고 심각한 이야기 대신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소재를 통해 쉽게 접근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아홉 개의 말, 긍정말, 과정말, 침착말, 엄격말, 공감말, 메모말, 식사말, 놀이말, 취침말을 통해 초보아빠가 갖고 있는 아이와의 벽을 허물고 있다.
 물론 이 아홉 가지 말의 기본은 아이들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감정코칭에 있지 싶다. 아이의 감정에 귀 기울이되 상황별로 대처해야할 말과 행동을 정리해 뒀다고 보면 좋겠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늘 드는 생각이지만 백 개의 지식 보다는 한 번의 행동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이제는 이런 저런 말보다도 직접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신나게 뛰어놀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눈 높이를 맞춘 후 "아, 그랬구나~ 그래서 슬픈 거구나~"하는 공감의 한마디가 필요한 것 같다.
  오늘도 아내는 우리집 세 악동에 둘러싸여 도움을 청하고 있다. 나는 와이셔츠를 벗어던지고 아내를 구하러 가야겠다. 비록 S자가 그려진 슈트는 없지만 나는 언제나 아이들의 '슈퍼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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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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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비록 (懲毖錄) :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인 유성룡이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해 있을 때 집필한 것으로, 제목인 '징비'는 <시경(詩經)> 소비편(小毖篇)의 "여기징이비역환(其懲而毖役患)", 즉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이 인상깊다.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과오를 솔직하게 회고함으로써 다음에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비장하게 들린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어떠했는가. 정유재란의 비롯한 반복된 외세의 침입, 거기다 한일합방과 한국전쟁 등 임진왜란과 비슷한 국난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반성은 그때뿐이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버리면 다시 구시대의 과오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아니 인간의 역사란 말인가. 미련스럽고 안타깝다.

  그러나 <징비록>과 같은 노력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삶이나마 주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인간본성의 일면을 다독거리는 이런 유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그 속에 잠재된 일말의 정화노력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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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송 2014-01-2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블로그를 운영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귀하가 깨달은 것을 혼자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 대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인용하셨는데 "예기징이비역환"은 "여기징이비후환"이 옳다고 판단됩니다. 네이버백과 운영팀에게도 수정을 제의하였는데 귀하께서 아직 수정되지 않은 것을 인용하신것 같습니다.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은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으로 수정하시면 내용은 별 문제가 없는듯 보입니다. 네이버운영팀에는 2014.1.28 다시 수정제의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반송 드림

프리즘 2014-02-2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확인해봤습니다. 네이버에 오타가 있었던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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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김병수. 올해 일흔이 되었다." (p27)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p7)

 

"사람들은 은희가 내 손녀라고 생각한다. 딸이라고 하면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올해 칠십 줄에 들어섰지만 은희는 경우 스물 여덟이기 때문이다." (p16)

 

"은희 엄마가 내 마지막 제물이었다." (p22)

 

"제발 우리 딸만은 살려주세요." (p26)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마을에서 우연한 기회에 '박주태'라는 인물과 마주친다. 나는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이 때문일까, 그는 내 주변, 아니 은희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하나 뿐인 딸을 지키기 위해 그를 뒤쫓는다. 하지만 치매(알츠하이머 병)로 인해 과거는 물론 조금 전의 일까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나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심플하게 넘어간다. 구차한 설명이나 변명 없이, 숙달된 킬러처럼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사뿐히 흘러갔다. 한 눈에 쏙 들어오는 가벼운 텍스트는 동남아의 외딴섬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처럼 한가로웠다. 시원하게 뚫린 하늘과 바다는 하나 둘 지워지는 주인공의 머릿속처럼 황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

 그의 치매 증세가 나에게 전이된 것일까. 마지막장을 덮자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변해버린 느낌이다. 소설 속의 전후 이야기기가 두죽박죽 뒤섞이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의 기억법은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결국 그 자신으로 향했던 것일까.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은 끝없는 허상을 불러일으켜 그의 생각을, 그의 세상을, 그의 인생을 허구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살인자의 기억법>은 내가 느끼던 기존의 '기억법'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 end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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