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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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은 인간사의 축소판이다.
메이너 농장의 동물들은 반란을 통해 인간을 몰아내고 그들이 꿈꿔온 이상적인 삶, 자유롭고 민주적인 방법의 자치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질서와 규칙이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몇 마리의 돼지가 지도층으로 부상한다. 순수했던 과거의 이상은 달콤한 권력의 유혹 앞에 하나씩 변색되어 갔고 이들을 따르던 동물들은 그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하게 된다.
결국 동물들은 그렇게 증오했던 인간의 모습,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과거로 점점 돌아가고 있었다.

과거 공산주의국가들의 흥망성쇠를 보는 것 같다.
억압과 착취가 없는, 빈부격차 없이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이상적인 사회건설을 표방했지만 실제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권력층은 줄지 않았고, 가난은 해소되질 않았다.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손에 들어오는 것은 몇 덩이의 감자가 전부였다. 결국 그 순수한 모토는 온데간데없고 끝없는 가난과 소수계층의 독재만이 남았을 뿐이다.
동독의 흡수와 소련의 붕괴, 북한의 고립에서 봐 왔던 일들이 이곳 동물농장에서 고스란히 재연되었다. 권력을 잡은 돼지의 횡포는 더욱 심해졌고, 늘 일만 했던 말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쓸쓸히 죽어갔다. 나머지 동물들은 비판할 능력도, 의욕도 잃어버린 체 현실에 안주했다.

하지만 꼭 공산주의의 생멸만을 기억나게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연일 신문과 텔레비전의 첫 장을 장식하는 ‘정치판’도 그렇거니와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쫓아가는 ‘경제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권력을 손에 잡기 위해 무성의한 공약을 남발하기 일쑤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얼굴엔 늘 번지르르한 미소가 가득하다. 경제성장을 내세워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우리의 문화나 자연은 안중에도 없다.
우리 사회 역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돈과 힘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한심한 <동물농장>이 되어버렸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가치는 무시된 지 오래고 용기와 만용을 구분하지 못했다. 강자에겐 약하지만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도록 길들어져 버렸다.

힘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심!
어쩌면 권력 뒤에 숨은 인간의 욕심이야말로 가장 큰 적이 아닐까.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오늘날의 인간사회를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불꽃으로 뛰어드는 하루살이의 날갯짓처럼 덧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당신의 애완견은 어쩌면, 우리를 <인간농장>이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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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랫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어른을 위한 동화 12
황석영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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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초반, ‘모랫말’에서 소년기를 보낸 황석영의 자전적 소설로 어렵고 궁핍한 그 시절의 기억을 여러 편의 에피소드로 살려냈다. 하지만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겪었다고 보기엔 너무 어렸기에 전쟁의 참혹함보다는 그런 혼란기를 함께 공유했던 이웃들의 생활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족하며 살아가는 이웃들과 함께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완전할 수 없었던 우리 부모님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왁자지껄한 시장통과 다리 밑에서 들리는 딸그락거리는 냄비 소리, 동네 꼬맹이의 소매에 엉겨 붙은 허연 콧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책 속에서는 나도 모랫말 아이들이 된 기분이다.
특히 간간히 삽입된 김세현님의 수묵그림이 어두컴컴하지만 보드라운 느낌으로 독자들을 감싸 안는다. 잊고 지냈던 고향 마을을 다시 찾은 기분이다.

책은 “젊었을 적에 내 아이들에게 자신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해주려는 마음으로 썼던 것들”이라는 작가의 후기처럼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읽기에 좋도록 단순화시켜 적어놓았다. 치밀한 사전 전개와 극적인 결말을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일기라 생각하면 어떨까.
성인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장편소설이 아니라 아이들의 시선으로 1950년의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는 단편동화라 생각된다.

이쯤에서 나의 유년시절도 기록해 보고픈 생각이 간절해진다.
50년대의 어려운 상황은 아니지만 7,80년대의 경제성장기에 한참 산업화로 내달리던 부산의 구석마을, 금사동. 검은 라디오가 텔레비전에 밀려 장롱 속으로 사라진 그 시절, 야구를 하며 뛰어놀던 공터에는 자동차 공장이 세워지고 돌멩이가 뒹굴던 골목길에는 회색 콘크리트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오후 5시가 되면 어김없이 울리던 애국가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나는 어느덧 20년 전, 옛 동네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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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인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단편집을 읽었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도 책을 출판하기도 했던 작가 로맹 가리는 1980년 파리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무튼 조금은 유별난 삶을 살았을 그의 난해한 책을 읽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어떤 이들은 상당한 깊이와 감명을 받았다는데 나는 도무지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도, 위트 섞인 유머도, 허를 찌르는 반전도 와 닿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한 사건의 요지는 물론 몇 줄로 이루어진 문단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 나는 단편인간이다.
사건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을 작가 나름의 시선으로 함축해서 보여주는 단편소설을 이해하기에 나의 머리는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하나의 사건을 등장인물과 사건, 시간과 공간의 묘사로 풀어놓는 장편에서는 잘 돌아가는 머리가 이런 단편만 만나면 앞이 캄캄해지는 먹통으로 변해버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뭔가 줄거리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문학적 강박관념인지, 시작과 끝이 명확해야된다는 결벽증적인 집착인지 단편이 갖는 모호함을 따라갈 수가 없다.
남들이 추천한 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모욕처럼 다가와서 다시 책장을 펼쳐보지만 그럴수록 책을 이해해야 한다는 중압감만 더 커질 뿐이다. 한 문장씩 끊어 읽어보지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전 문장의 의미를 찾고 있을 뿐이다.

수십 페이지 안쪽의 단편소설로 답답해진다. 단편의 모호함을 떠나 이런 짧은 글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고 미간을 찌푸리는 내 자신이 안쓰럽다.
좀더 너그럽게 책을 대하고 읽었으면 좋겠다. 책 속의 글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작가의 말이 와닿지 않더라도 대범하게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말을 인식하고 분석하려들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웃어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단편’을 벗어던지고 싶다.


- 2007/06/04
  어렵다... 읽기도, 말하기도,..
  파트라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가 생각난다.
  어쩌면 내 스스로 파놓은 깊이에 함몰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내 글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
  아, 단편인간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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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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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다시 펼쳐든다. 전체적은 구성이 잘 이해되지 않거나 읽는 기간이 늘어져 앞부분의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는 같은 책을 두 번 내리 읽는 경우는 없었지만 이 놈만은 달랐다.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구수한 된장국처럼 텁텁한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그 진 맛이 잊혀지지 않았다.
고향산천에 찍힌 개 발자국을 쫓아 즐거운 여행을 떠난다.

<갈매기의 꿈>에 조나단이 있다면 <개>에는 보리가 있었다. 조나단이 삶의 의미를 찾는 구도자였다면 보리는 세상을 향유하는 여행자 같다고 할까.
보리라는 수컷 진돗개의 눈에 비친 세상이 귀여운 꼬마의 노래소리처럼 조근하게 울려 퍼진다.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노모와 작은 촌마을에서 생활하는 동네꼬마들, 그리고 논과 바다를 터전으로 힘겨운 생활을 꾸려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리 발바닥의 굳은살로 진솔하게 그려진다.
조금 식상할 수도 있는 뻔한 스토리지만 보는 이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한편의 영화 같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인지라 채널을 돌려보지만 그 따스함에 이끌려 다시 채널을 맞추게 되는 ‘명화극장’처럼...
거기다 중간 중간 삽입된 김세현님의 삽화도 인상적이다. 거칠고 투박한 듯한 그림은 진돗개의 어깨를 휘감은 뻣뻣한 털처럼 거칠어 보이지만 한두 번 쓰다듬자 반질반질 윤을 내며 흘러내린다.

한편의 서정적인 동화를 본 느낌이랄까. 싱그러운 사계절이 담겨진 수묵화 같다고 할까. 구수하고 다정한 느낌에 내 마음도 따듯해진다.
하지만 그 속에 간간이 배여 있는 인간사의 씁쓸함에 안타까운 미소가 스쳐간다. 인간이 갖고 있는 이기심과 오만, 물질과 권력이 한 마리 개 앞에 부끄러워진다. 자연에 순응하며 거기서 모든 걸 느끼고 배웠던 보리가 더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어릴 때 나와 장난치던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아담한 체구에 나를 보면 언제나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그 친구, 네 발로 거친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언제나 반갑게 안기던 모습이 기억난다. 내 두 손위에 얹혀진 앞발의 토실토실한 감촉이 새롭게 느껴진다.
<개>는 굳은살 박힌 발바닥 하나로 세상과 맞서야했던 우리들의 안타까운 기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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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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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멀다. 온통 세상엔 온통 하얀 어둠만이 존재할 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된 ‘백색 어둠’은 전염병처럼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어 도시를 휘감았다. 급기야 국가에서는 이 원인모를 전염의 확산 금지를 위해 눈먼 자들을 수용하기로 한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용소 생활과 외부로부터의 폭력,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들은 더 큰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익숙하던 세상에 대한 낯설음과 언제 눈이 멀지 모른다는 군인들의 겁먹은 총질, 얼마간의 식량을 둘러싼 생존경쟁과 이를 둘러싼 검은 뒷거래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사라져버린 듯 보였다.

온갖 악취와 더러움이 진동할지언정 정작 눈에 보이는 건 순백의 맑고 환한 공간.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어쩌면 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유린당하는 현대인을 보는 것도 같다. 눈은 있으되 볼 수 없는, 본다고 한들 새하얀 포장지 속에 감추어진 진실은 볼 수가 없다.
눈 뜬 자들이 느끼는 단절감이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아등바등 손앞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등 뒤에 놓여진 진실은 놓치고 사는 건 아닐까. 사회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우리는 더 이상 눈을 뜨려 노력하지 않는다...

어렴풋이 다가오는 진실. 어둡고 습한 터널을 빠져 나올 때의 느낌이랄까.
딱히 뭘 말할 순 없지만 우리의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사회라는 공동체의 모순과 폭력, 우리를 둘러싼 거짓과 진실 사이를 어지럽게 오간 느낌이다.
어쩌면 소설 속 그들이 아닌, 이를 바라보는 현실의 우리들 눈이 멀어버린 것은 아닐까. 눈은 뜨고 있지만 진정으로 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자는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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