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인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단편집을 읽었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도 책을 출판하기도 했던 작가 로맹 가리는 1980년 파리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무튼 조금은 유별난 삶을 살았을 그의 난해한 책을 읽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어떤 이들은 상당한 깊이와 감명을 받았다는데 나는 도무지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도, 위트 섞인 유머도, 허를 찌르는 반전도 와 닿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한 사건의 요지는 물론 몇 줄로 이루어진 문단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 나는 단편인간이다.
사건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을 작가 나름의 시선으로 함축해서 보여주는 단편소설을 이해하기에 나의 머리는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하나의 사건을 등장인물과 사건, 시간과 공간의 묘사로 풀어놓는 장편에서는 잘 돌아가는 머리가 이런 단편만 만나면 앞이 캄캄해지는 먹통으로 변해버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뭔가 줄거리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문학적 강박관념인지, 시작과 끝이 명확해야된다는 결벽증적인 집착인지 단편이 갖는 모호함을 따라갈 수가 없다.
남들이 추천한 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모욕처럼 다가와서 다시 책장을 펼쳐보지만 그럴수록 책을 이해해야 한다는 중압감만 더 커질 뿐이다. 한 문장씩 끊어 읽어보지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이전 문장의 의미를 찾고 있을 뿐이다.

수십 페이지 안쪽의 단편소설로 답답해진다. 단편의 모호함을 떠나 이런 짧은 글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고 미간을 찌푸리는 내 자신이 안쓰럽다.
좀더 너그럽게 책을 대하고 읽었으면 좋겠다. 책 속의 글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작가의 말이 와닿지 않더라도 대범하게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말을 인식하고 분석하려들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웃어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단편’을 벗어던지고 싶다.


- 2007/06/04
  어렵다... 읽기도, 말하기도,..
  파트라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가 생각난다.
  어쩌면 내 스스로 파놓은 깊이에 함몰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내 글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
  아, 단편인간의 비애!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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