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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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아 님아 내 님아, 물을 건너가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니.
  아~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아~ 가신님을 어이 할꼬."

 이상은님의 공무도하가가 귓가에 맴돈다. 선선한 바람과도 같이 내 주위를 한 바퀴 맴돌고는 이내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교과서에 나왔던 상고시보다 이상은님의 노랫가락을 통해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깊은 여운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노래는 백수광부의 처가 불렀다는 원전을 다시 읊조린다.

 “公無渡河 (공무도하)
  公竟渡河 (공경도하)
  墮河而死 (타하이사)
  當奈公何 (당내공하)”


 김훈님은 공무도하가의 첫 소절인 공무도하(公無渡河), 사랑하는 님의 간청을 외면한 체 돌이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버린 백수광부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권의 장편을 엮어냈다. 우선 책 뒤표지에 적힌 소개 글을 보면,
 “'공무도하'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 이제 옛 노래의 선율은 들리지 않고 울음만이 전해오는데,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서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을까. 백수광부의 사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무도하>는 그의 말처럼 강으로 띄어든 백수광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강가에 남겨진 처, 여옥의 이야기인 샘이다. 사랑하는 임을 이유도 모른 체 떠나보내고 강가에 홀로 남겨진 막막함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애처로움인지도 모르겠다. 거친 세상 속에서 우연히 눈을 떴을 때, 내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던 적은 없었던가? 늘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었지만 결국에는 혼자이지 않았던가? 세상에서 떨어져나가기 싫어 어떻게든 버티려는 우리들을 보는 것 같다. 제발 날 버리지 말라는, 혼자 남겨두고 떠나지 말라는 절규가 세상의 막다른 골목에서 울려 펴진다.
"문정수는 뱀섬을 부수는 폭격기와 기르던 개에 물려 죽은 소년과 아들의 죽음을 버리는 그 어머니 오금자에 관하여 말했다. 그리고 소방청장 표창을 받은 소방관 박옥출의 업무상 배임과 절도, 해망 매립지의 장어와 민들레, 방조제 도로의 교통사고, 세습농부 방천석의 잠적에 관하여 문정수는 말했다." (p218)

 그곳에는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미군의 폭격장으로 쓰였던 뱀섬에 화약 냄새가 사라지자 이네 방조재가 들어섰고,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바다와 펄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메마른 땅에는 레저산업과 휴양시설이 들어섰고 철새들이 사라졌다.
 "갯벌이 마르고 민들레와 쑥부쟁이가 마른 펄에 퍼지자, 도요새의 다른 무리도 해망을 무착륙 통과했다. 방조제 도로가 끝나는 남쪽 끝 해안에 매립을 모면한 소택지가 펼쳐져 있는데, 무리를 이탈한 도요새 두 마리가 늪가에서 며칠을 서성거리다가 사라졌다. 보았다는 사람들은 두어 마리라고도 했고 서너 마리라고도 했다." (p226)

 죽음이나 사랑, 돈, 명예,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흐르는 강이 아닐까. 이 모든 생멸의 갈림길에서 우리사회의 이면을 절실하게 파해진다. 이쪽과 저쪽 모두 자신의 명분과 실리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와중에 우리가 믿어오고 신뢰했던 것들에 대한 의구심도 증폭된다. “우리의 모습이, 이 세상이 그런 것이었구나.”하는 한숨이 밀려온다.
 떠난 자는 말이 없으니 말없이 떠난 자를 이용해 현실을 틀어막았다. 이런 모순과 아이러니 속에 세상을 버리지 말라고, 도망가지 말라고 소리친다, 애증 섞인 김훈님의 목소리가 '공무도하'속에 절절하다.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이 이상은 님의 공무도하가처럼 잔잔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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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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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봉과 나, 우리는 한마디로 사과에 목숨 거는 놈들이다.
 복지시설에서 만난 우리들은 별 이유도 없이 복지사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한 가지씩 이유를 찾아 사과를 하자 그 폭력도 싫지만은 않았다. 사과할 건더기가 없을 때는 일단 사과부터 한 뒤 그 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렇게 매일매일 이어지는 폭행 속에서 사과의 기술(?)을 익혔고, ‘내부고발’로 복지시설에서 나왔을 때에는 이런 특기를 살려 사과대행업도 시작했다.
 오랜 잠복과 끈기 있는 추적으로 의뢰인을 찾기도 하고 제 발로 찾아오는 의뢰인의 사과를 대신해 주기도 했다. 물론 의뢰인의 죄가 사과의 정도와 대가에 합당하지 않으면 새로운 죄를 찾아서라도 기어이 사과의 레벨에 맞춰놓았다.

 얼핏 보면 정신병원을 뛰쳐나온 미치광이의 웃지 못 할 퍼포먼스 같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사과’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풍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거나 예상 밖의 실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 시작이 모호한 상황 속에서 서로의 이해와 양보로 원만하게 처리된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져 친인척간이나 오랜 지기가 등을 돌리는 경우도 많이 본다. 물론 금전적 합의나 법적 절차를 통해 시시비비와 잘잘못의 비중을 가려 대처할 수는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생긴 개개인의 상처와 고통은 오랜 시간 지속되기 마련이다. 이럴 때에는 이해 당사자들의 사과와 용서를 통해 서로간의 오해와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오랜 미덕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는 사과를 통해 죄를 용서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통해 사건(죄)을 재해석 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 가지 사과를 빌미로 모든 부정적인 요인을 몰아붙여 마녀사냥 식으로 단죄해버린다. 당신이 하는 일은 원래 그렇다거나 넌 뭘 해도 안 된다는 식의,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결과를 보고 원인을 유추해버린다.
 또한 사과를 그 자체로 표현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꿍꿍이를 위한 연막으로 사용하고 해석하려는 것이다. 우리 정치판을 보면서도 갖는 생각인데 사과나 발표, 그럴싸한 성명들이 잘 짜인 각본에 의해 처리되는 사무적 절차처럼 보일 때가 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처럼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적당한 눈치작전처럼 말이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오늘날의 사과가 사과 자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쇼맨십 같은 가식으로 비쳐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술자리에서의 농담 한마디가 내란음모죄로 되돌아왔던 군사독재 시절도 있었다. 단순한 말 한마디가 권력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하고 와전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봐왔다. 죄를 지어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된 사과를 통해 죄를 키워나가도록 뒤바뀐 것처럼 사과를 집단의 이익을 위한 말장난이나 뒤집어씌우기 식의 함정으로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국가기관이나 사회단체, 직장과 같은 권력집단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복종을 요구해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정확한 이유도 모른 체 권력의 힘에 복종해야 했고 그들의 명령에 굴복해야 했다. 심지어는 없던 죄까지 만들어 자백해야 했다. 그야말로 죄 권하는 사회였던 것이다.
 복지시설과 원장으로 대변되는 강력한 권력 앞에, 사과하며 굽실거리던 시봉과 나의 모습은 절대 권력의 사슬을 벗어던진 지금에도 계속되는 것 같다. 복지시설에서 적당한 죄목도 없이 일상적으로 해왔던 사과가 그곳을 벗어난 후에도 계속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습관적으로 이뤄지는 맹목적인 사과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민주’와 ‘합리’라는 가면을 쓴 권력 앞에 갇혀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보 혹은 미친놈으로 비춰진 시봉과 나는 사과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꼬집었다. 정말이지 오늘날의 ‘사과’는 진실성이 사라져버린 허접한 말 껍데기로 변질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간결하게 넘어가는 빠른 전개 속에 살갗을 후벼 파는 아픔이 전해진다.
 “당신들은 나한테 사과할 일 없어?”


 and, 독서토론회 

 우리의 죄를 대신한 예수와 그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난 우리. 삶 자체가 죄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쩌면 원초적 죄의식을 앉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다는 작가 이기호님.
 어제 부산 Y도서에서 주최하는 <사과는 잘해요> 독서토론회에 다녀왔다. 작가의 진한 눈썹과 검은 뿔테 안경은 이목구비를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켰고 길게 누운 S자형의 웨이브 머리가 이국적인 정취를 풍겼다. 단정하게 여민 하얀 티셔츠와 어우러져 다소 여성적이고 철학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 역시 느릿느릿 차분하게 흘러갔다. 수줍은 듯 보이는 웃음으로 시작해 섬세하게 소설 속 주인공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핵심적인 부분에 이르러서는 강한 어조로 악센트를 줬다.

 <사과는 잘해요>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예수와 성서에서 죄에 대한 모티브를 얻었다는 말에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거짓말과 사과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이나 지배계급의 억압과 일반 소시민의 순종에 대해 이야기로 봤던 나와는 달리 작가와 패널들은 예수와 성서, 인간의 원죄와 부조리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놓쳐버렸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확인하고 이야기하는 되새김의 과정을 즐기기 위해 독서토론회에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말과 설명에 약간 주눅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의 묘미, 그러니까 다양한 유추와 해석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이야기하며 독자들의 다양한 감상과 평가를 옹호했다. 거기다 나와 비슷하게 읽은 독자의 질문을 통해서도 내가 완전히 헛집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맥락으로 작가는 소설이나 기타 매체로 발표되는 “작가의 말”을 경계한다고도 했다. 작가, 특히 소설가는 소설로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 글에 대한 약간의 여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돌려야지 그것을 소설가가 직접 개입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핵심을 놓치지 않았고 그 속에는 웃음과 여유가 가득했다. 그리고 글과 소설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가 좋아보였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느껴진다.
 토론회 말미에 직접 글을 쓰라는, 소설을 쓰라는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밀려온다. 많이 읽고, 많이 쓰면서 나를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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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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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둘째가라면 서러울 책쟁이들이 다 모였다.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하면서 특정분야 마니아로 발전한 게 된 총각, 사제를 털어 책을 모으고 북카페를 차린 아저씨, 직업으로 책을 가까이 하다가 그 매력에 빠져버린 할아버지 등 책의 매력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곳에 모았다.
 "돈과 이름값에 오로지 미친 세상에서 책에 미친 미련퉁이들이 있어 더불어 살 만하다. 이들이 진짜 우리문화의 담지자들이다. 책 살 돈을 누가 따로 주는 것도 아니고 세금을 깎아주지도 않는데, 스스로 책을 사들여 읽고 쌓아 지식과 교양의 대를 잇는 이들. 나라의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할 일을 사사로이 떠맡고 있는 이들이 애국자가 아니라면 누구를 꼽을까." 
 
 28명의 책쟁이들을 다섯 챕터로 나눠 소개하는데 각 인물들의 소개사진 뒤로 빼곡히 진열된 책은 그들의 책사랑을 여실히 말해준다. 벽면을 가득 메운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책, 거기도 모자라 작업실 여기저기에 수북이 쌓여있는 책들. 물론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지만 조금은 억척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지식욕으로 포장된 소유욕인지도 모르겠어요."
 프롤로그에 언급된 김영직씨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책에 집착하는 그 모습이 추하거나 미련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 책 속에 담겨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낱권이 갖고 있는 갖가지 사연까지도 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날로그적인 진지함 때문이 아닐까. 인터넷과 디지털로는 구분하기 힘든 그 무엇이 분명, 책에는 존재하니까 말이다.

 "책은 물건이다. 그 물건은 펼쳐져 읽힐 때 책이 된다. 마지막 장이 덮이면 책은 다시 물건이 된다. 책이 책됨은 무척 짧다. 책은, 책으로서보다 책이 되려는 기다림으로 존재한다. 책은 곧 그러함일 터이다."
 책이라는 물건에 대해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좀 더 시간이 흘러 이들이 세상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 보통 이상의 경제사정에다 책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자손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답답해진다. 애꿎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결국에는 고물상의 폐지마냥 분해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작가의 열정과 독자의 애정이 합쳐져 한 시기를 사랑받았을 책이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동네어귀에서 사라져가는 소형 책방과 헌책방처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갖고 있던 책들에 대한 최후도 의심스러워졌다. 지금 내 등 뒤를 장식한 이 책들을 내가 다시 읽거나 활용할 수 있을까? 몇 십 권의 책은 평생을 두고 가까이 보고 싶지만 대부분은 그 정도의 애정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각각의 사연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금전과 공간의 제약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이제는 좀 나눠 읽어야겠다. 산문집이나 소설 등 상태가 좋은 놈은 중고책으로 되팔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은 학교 도서관에 기증해야겠다.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 아니고서는 도서관이나 중고서점을 통해 읽어야겠다. 숨 돌림 틈 없이 가득 찬 책장에도 여유를 주자. 어린왕자(<어린왕자>, 생텍쥐페리)나 조나단(<갈매기의 꿈>, 리차드 바크)에게 텅빈충만(<무소유>, 법정)의 여유를 말해줘야겠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책쟁이들의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는 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책에 미친 그들의 이야기기를 즐겁게 읽어 내렸다. 책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나 전질이 가지런히 정리된 멋스런 서재가 탐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그들의 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아닐까.
 책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몇 시간이고 서점에서 보냈던 그 때, 종로서적, 영광도서(부산) 같은 대형서점에서 일하려던 적이 있었다. 책을 나르고 정리하는 말단 아르바이트 자리였지만 그 몇 달만큼은 책 속에 빠져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물론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이 바로 그때의 느낌인 것 같다. 수천 개의 공으로 풀장을 채우고 놀 수 있는 볼풀처럼, 책이라는 문화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런 느낌, 살짝 흥분된 이 맛이 너무 좋다. (왠 자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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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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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출판된 역사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름이 ‘한홍구’일 것이다. 유명하다고 해서 반드시 최고라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와 같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 발 비껴 있었던 분야가 사람들의 입에 새로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나 비교적 근래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안티’들의 불편한 심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지 싶다.
 무한스피드 사회에서 과거의 일을 회고하고 반성해 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정확한 답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거기다 우리가 배웠던 암기식 교육으로 인해 역사라는 것 차체를 고리타분한 학문의 범주에만 가둬놓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역시를 보는 시각도 삐뚤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제한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한홍구님이 써내려가고 있는 한 줄의 역사(책)는 우리시대를 되돌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역사’이지 싶다.

 사실 한홍구님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근현대사 관련 글을 엮은 <대한민국史(사)>로 <한겨레21>에서 5년간 연재한 글을 엮었는데 촛불집해니 용산사태니 하는 혼란한 정국과 맞물려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4권이라는 분량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굵직한 사건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 생각되었기에 관심 있게 지켜봤었다. 그 와중에 출판된 책이 바로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이다. 2008년 이뤄진 강좌를 책으로 옮긴 것으로 이전의 4부작과는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여 선뜻 구입해버렸다. 그가 말하는 우리시대의 역사를 최근 이야기를 통해 유추해보고 그의 생각을 가름해보고자 했지만, 사실은 ‘역사’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부담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우리 역사도 제대로 읽어 내려가지 못할 것 같은, 무식이 탄로 날 것 같은 두려움, 혹은 부끄러움도 한 몫 했었다.


 1. 역사의내전,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
 뉴라이트, 신보수주의라 해야 할까, 해방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의 득세로 좌익은 몰살되다시피 했고 그 틈을 노려 한국의 대표우익으로 자리매김해온 현실을 개탄한다. 제대로 된 우파가 없는 상황 속에서 정치적 계산에 의해 급조되었다는 뉴라이트!
 최근 촛불시위와 맞물려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호국집회 역시 국가라는 거대 권력을 내세워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지나치게 간섭하려는 편협한 애국주의는 아니지 되돌아본다. 보수진영은 진보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우리 역사에 대한 냉철한 의식과 반성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2. 간첩이 돌아왔다, 잊혀진 추억이 현실로
 군대에 있을 때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간첩이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그 많다던 간첩들의 대부분이 허술한 조작사건이 있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중앙정보부, 안기부와 같은 집권층이 꾸며낸 이야기에 익숙해져 우리의 사고도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부지불식간에 전이된 우편향적 모순점을 여실히 드러난다.

 3. 토건족의 나라, 대한민국은 공사 중
 박정희 시대부터 앞뒤 안보고 달려온 토건국가를 비판한다. 관(關)이 연합해 땅을 매립하고 도시를 계획한다. 뒷돈을 주고 캐낸 정보로 땅값을 굴리며 그들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이렇게 우리는 땀 흘리지 않고 부자 되는 법을 너무 쉽게 알아버렸다. 힘들게 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근시안적으로 파헤치는 강산에서부터 우리시대를 휘감고 있는 투기 열풍까지 부에 대한 삐뚤어진 열정을 비판한다.

 4. 헌법 정신과 민영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묻는다
 "결국 공공성 부분이 사라지고, 노동 강도가 더욱 세지고, 서비스의 질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동시에 민영화의 본질인 수익 창출을 위한 전기, 가스, 수도, 교통 요금 등 국민들의 기초생활 부분들이 터무니없이 비싸지겠죠.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요?"
 사실 자본주의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무한경쟁을 모토로 내건 사업들이 줄기차게 벌어진다. 나 아니면 적이 될 수밖에 상황이다 보니 공공의 편익보다는 개인과 집단의 이익에만 집착해 온 것도 사실이다. 누구를 위한 정책이고 누구를 위한 기업인지 살펴본다.

 5. 괴담의 사회사, 여고괴담에서 광우병 괴담까지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오던 소문은 인터넷의 폭발적인 발전과 더불어 그 영향력을 증폭시키고 있다. 작은 견해차에서 비롯된 오해일지라도 수십만 건의 댓글과 악플을 통해 괴담으로 발전되어 사회와 여론을 움직이고 사람을 죽인다. 한홍구님은 이런 괴담마저도 즐길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을 주문한다.
 "무조건 없애려고 할 게 아니라 괴담을 만들어내는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따라갈 때 괴담은 줄어들 겁니다. 그리고 괴담보다 더 재미있는 일들, 더 신나는 일들이 많을 때 괴담은 줄어들 겁니다. 괴담은 그저 괴담으로, 이야기로, 우리가 가볍게 소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민주화와 정보 공개를 통해 풀어가야 합니다."

 6. 경찰 폭력의 역사, 일본 순사에서 백골단 부활까지
 일제 강점기 이후 경찰이 갖고 있는 한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친일파들은 해방 후에도 미군정의 정책과 맞물려 경찰이라는 공권력으로 계속적인 힘을 우위에 서게 되었다. 이런 모순 속에 시작된 경찰은 스스로의 허물을 벗어버리지 못한 체 몇몇 집단의 행동대원으로 일선에 나서며 군대로까지 그 ‘폭력’의 영역을 확대했다.

 7. 사교육 공화국, 잃어버린 교육을 찾아서
 딜레마에 빠져버린 우리나라 교육을 살펴본다. 공교육은 무력화 되고 사교육은 거대한 공룡으로 증식하면서 권력세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을 개탄한다. 또한 전교조 등 교사 집단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지나친 왜곡과 과장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학교라는 존재를 규제와 억압이라는 틀 속에서 해석하거나 지식교육의 가치를 등한시한 체 교육의 표면적 평준화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게 마음에 안 들고, 심지어는 학생을 가르친다는 교육의 본질적인 면까지도 공교육의 병폐라며 매도하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한홍구님의 말대로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점도 많고 고칠 점도 많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의 노력들을 평론집에나 쓰일 논리로만 저울질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웠다.

 8. 촛불, 몸에 밴 민주주의의 역동성
 1987년 6월항쟁부터 오늘날의 촛불시위까지 민주주의를 향한 대중들의 노력을 이야기한다. 특히 현장에 뛰어든 학생들의 순수함과 열정에 의미를 찾으며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들의 노력을 강구한다.
 사실 나는 촛불시위에 참가한 적이 없다. 물론 호국시위도 참여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촛불을 들고 거리고 나서지도 않았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한 몫을 했지만 그보다는 대중 집회가 갖고 있는 선동성, 자신의 생각보다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생각을 끼워 맞추고 논리화시키는 집단화에 반신반의한 것이 사실이다. 나 스스로도 명확한 기준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이끌려, 학생들이 나서니 나도 가야 한다는 당위성만으로는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촛불이라는 몽환적인 이미지에 이끌려 달려가기에는 내 생각이 정리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거리에 나섰던 그들을 욕하는 것은 아니다. 진지함을 빙자한 나의 비겁함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손에 피어난 한 송이의 촛불이 모여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힐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단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섣부르게 말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행동이 갖고 있는 힘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힘이나마 진지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물론 이런 무지 때문에 <특강>을 읽고 있지만 말이다.


 역사에 대해 강준만 교수님의 책은 몇 권 꾸준히 읽어 봤지만 특히 이런 진보적 색체가 강한 글은 그 경험이 별로 없었다. 사실 진보를 넘어 체제비판적인 글이 주를 이루는 소위 ‘빨간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긴 이것 역시 기존의 틀을 유지해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보수진영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진보보다는 보수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개혁보다는 안정을, 무엇을 얻으려하기 보다는 더 이상 빼앗기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
 그럴수록 균형 잡힌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더 필요하지 싶다.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어느 쪽으로 치우쳐버린 편협된 생각이 아니라 상하좌우의 장단점을 두루 살피고 행동하되 그 중심은 언제나 사람,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넓은 시선을 가졌으면 좋겠다.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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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년에 50권 읽기


 한비야님이 <그건 사랑이었네>를 보면 '1년에 백 권 읽기 운동 본부'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일 년에 백 권이라면 일주일에 두 권 이상을 꾸준히 읽어야 된다는 결론인데 외계인 생명체나 가능할 경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외계인을 못 따라잡으란 법도 없지 않은가. 수업이 없을 때 인터넷을 켜지 말고 책을 읽는다면, 약속 장소로 가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면, 하루 두 번씩 치르는 큰 볼일 중에 책을 읽는다면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내 최고의 전성기(?)인 군대에서 일주일에 두 세권씩 꾸준히 읽었던 경험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계획만도 아닌 것이다.
 그러던 차에 학생들에게 나눠줄 겨울방학 안내서에 끼워진 '권장 도서 목록'을 보게 되었다. 학생들에게만 읽어라, 읽어라 했지 정작 나도 읽지 못했던 책이 수두룩했다. 남에게 권하기 이전에 나부터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 이거다. 내년 2010년에는 이걸 기준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되겠네. 조금만 노력한다면 누구처럼 1년에 백 권은 아니더라도 50권 정도는 읽을 수 있겠지."


 일단, 우리 학교(금정전자공고) 권장도서목록에서 이미 읽었던 아홉 권을 제외한 나머지 스물네 권을 옮겨 적어 본다.

   

 닥터 노먼 베쑨 - 테드 알렌, 시드니 고든
 21세기 과학의 포커스 - 서울대 자연대학 교수 20인
 소유냐 삶이냐 - 에리히 프롬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 헬레나 노르베르
 수난 이대 - 하근찬
 역마 - 김동리
 무녀도 - 김동리
 비곗덩어리 - 모파상
 벌 -토스토엡스키

   

 햄릿 - 셰익스피어 
 치숙 - 채만식
 삼포 가는 길 - 황석영
 사하촌/모래톱 이야기 - 김정한
 풍금이 있던 자리 - 신경숙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 홍세화
  앙드레지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릴케
 나무들 비탈에 서다 - 황순원
 장마 - 윤흥길
   

 날개 - 이상
 병신과 머저리 - 이청준
 아버지의 땅 - 임철우
 성채 - AJ 크로닌
 우상의 눈물 - 전상국


숨차다...
하지만 이 목록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동안 읽지 못하고 책장에 쌓아둔 책 스물여섯 권을 나머지로 채워본다.


   

 나의 자서전 - 찰리 채플린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희박한 공기 속으로 - 존 크라카우어
 곱게 늙은 절집 - 심인보
 한강 (1~10) - 조정래
 철학콘서트 - 황광우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김용규
 원미동 사람들 - 양귀자
 커피프린스 1호점 - 이선미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 - 남영신
 프레디 머큐리 - 그래이 브룩스
 신들의 봉우리 (1~2) - 다니구치 지로
 한국의 책쟁이들 - 임종업
 1984 - 조지 오웰
 공무도하가 - 김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 - 필리프 아르바이자 외


 읽지 않고 쌓아둔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라우면서도 부끄럽다.
 그나저나 이 엄청난 양의 책을 어떻게 다 먹어 치운다? 나태함에 찌들어버린 내 생활습관을 본다면 만만할 것 같지가 않다. 그래. 조금은 가식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야겠다. 책 읽기를 막 시작했을 때 군대에서 하던 방식으로 목록을 인쇄해 읽은 책 이름 옆에 굵직한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자. 조금은 유치하게 보이지만 책을 읽는 것에 대한 가식적인 결과물이 눈에 보이니 그만큼 분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시라. 2010년의 12월, 50권의 책 이름 옆에는 과연 몇 개의 동그라미가 채워질 것인지!



- 2009/12/24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종업식 날. 새로운 목표 하나를 새워본다.
  이참에 여기에다 목록(1년에 50권 읽기)을 만들어 붙여야겠다.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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