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편지
정도상 지음, 남준기 사진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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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얼마나 반가운 이름인가... 비록 태어나지는 않았으되 묻힐 때는 그 뼛가루라도 뿌려두고 싶은 산, 내 마음 속 고향집 같은 산, 언제나 포근하고 따신 어머니 같은 산... 마음은 항상 그녀와 함께 있지만 몸은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없기에 이 책을 통해서나마 그 정취를 느껴보려 한다.

'운서'라는 대상에게 쓰는 지리산에 대한 편지 형식의 글들... 어쩌면 '운서'에게 말하는 '지리산' 이야기가 아니라 '지리산'에게 말하는 저자(정도상) 자신의 독백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음, 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한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부딪혔을 자신 내면으로부터의 갈등과 고뇌. 이런 이야기들을 지리산이라는 대상을 통해 풀어놓는다. 그래서,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 자신을 가두기보다는 자연을 통해서 지리산의 넉넉함을 배우고자 하는 지은이의 마음가짐이 좋아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앞표지 뒷면에 씌어진 지은이의 소개를 보게된다. 문장 곳곳에 자연의 냄새는 솔솔 풍겨나지만 어찌 보면 이 책은 자연 속에서 씌어졌다기 보다는 자연 밖에서 자연을 그리워하며 씌어진 글인지라 '시골' 토박이로 자연 속에서만 살아온 이들에 비해 도심지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오히려 각별히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주자주 지은이를 다시 보게 된다. 지은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상? 어디서 태어났지? 학교는 어딜 나왔고, 어디서 살고있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지?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그 단단함 속에 자연이 숨어있을 줄이야...

하지만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격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개인적으로 지리산을 바라본 것일까... 조금은 무거운 느낌. 물이 흐르고, 산들바람이 부는 평온하면서 고요한 모습의 지리산도 우리에겐 또 다른 기쁨인데...

'천왕봉에 서니 이상하게도 판문점이 맨 먼저 떠오릅니다...'라 이야기한다.

어쩌면 '자연' 앞에서 자학하며 늘어놓는 너무도 커다란 짐이 아닐까하는 생각... 나는 전쟁을 격은 세대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세대도 아니다. 굳이 말을 하자면 X세대와 컴퓨터게임으로 대변되는 세대라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지난 시절의 역사적 무게감을 몸소 느끼기엔 다소 시간적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인식을 부풀려 포장하거나, 그 포장을 통해 '역사의식'을 남에게 보여주려 해서는 안될 일. 중요한 건... 항상, 어떤 상황에서건 '역사와 민중'을 운운하며 자신이 짊어지지도 못할 거대한 무게만을 짊어진 '척' 가식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앙꼬없는 껍데기'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물론 민중의 고통과 기쁨이 담긴 '역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너무나 함부로 사용하는 건 아닌지... 너무 사물을 확대 해석하고 포장해서 그 본 의미를 왜곡하는 건 아닌지... 무엇이건 '역사성'을 부여해야만 그 사물이 가치가 있어지는지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산을 산으로, 물은 물로 볼 수 있는 '사심' 없는 '동심'이 필요할 수도...

지리산 편지... 글 속에 나타난 이런저런 생각들로 인해 '편지 읽기'가 계속 늦어졌다. 하지만 그 '느림'이 좋았다. 손에 든 즉시 읽어치우는 '잘 넘어가는'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야 느낄 수 있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여유와 멋이 느껴진다. 마치 지리산을 오를 때의 그 느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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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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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슬퍼해야 합니다.
이런 엿같은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이 있다는 것을...

너무 많은 욕심에 나와 타인의 맘속에 상처만 남기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이 모든 것을 떨쳐버려야 하리라.
불의 현란함을 갖기 위해 그 속으로 뛰어들어 버리는 하루살이의 삶처럼, 지금의 '자신' 속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고 너무 많은 욕심에 '나'를 집어던져, 스스로 소진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들...

그래서 다시 읽은 무소유. 이 책을 처음 접할 때의 그 청량감, 비어있어 가득 담을 수 있는 여유를 다시 한번 배우고 싶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많이 변했으리라. 따라서 이 글 역시 오늘의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일. 하지만 다시 한번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젠 정말 모든 걸 다 잊고 살고 싶다. 부모님의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내일의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으로 그 모든 걸 찾기 위해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면서, 훗날 내 자신을 되돌아볼 때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후회는 없도록...
너무 멀리 보지도 말고, 지난 과거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오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그래서 '소유'가 아닌 '무소유'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책 중의 책, 최고의 책...
한마디, 한마디 놓치고 싶은 말이 없다. 간결하면서 정곡만을 찔러 이야기한다. '글이란 이런 거야... 인생이란 이런 거야...' 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간결한 필치와 여백으로 그 넓은 무한 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한 마리 학, 그 여유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책. 이 짧은 새치 혀로써 이 책을 논한다는 건 한낮 부처님 손바닥 위의 천방지축 날뛰는 손오공과도 같으리라...

아~ 이게 바로 소유에서 오는 집착일까...
버려야하리라. 모든 허물을 벗고, 집착을 벗고 텅 비어있으므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여유를 배워야하리라... 하지만 이 책만큼은 기꺼이 집착하고 싶다. 철저한 집착을 통해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무소유>. 나에겐 단순한 '책'이 아닌 한 권의 '경전'과 같은 존재다.
그 경전 속, 세상을 살아가는 '버림의 미학'.
책은 덮되 그 내용만은 덮을 수 없는 책...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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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道 1 - 천하제일상 상도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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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의 한 서점에서 최인호님의 사인회가 있었다. 인호 형님이야 그전부터 잘 알고 있던 터라 굳이 인호 형님의 초대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상도 '100만부 출판기념 사인회'라 이름 붙여진 현수막 아래, 조그만 책상에서 연신 펜을 날리시고 계시던 모습으로 간단히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 얼굴 가득 묻어있는 미소...인생의 선배로서, 친구로서 배우고 싶은 분... 최인호...책을 구입하고, 사인을 받고, 악수를 나누면서 최인호님의 <상도>를 만나게 되었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 적힌 기평그룹의 김기섭 회장의 유품으로부터 시작되는 소설. 커다란 기대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긴다...

이야기의 초반, 거상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임상옥에 대한 상당히 긴 분량의 이야깃거리를 간단히 훑으며 넘어간다. 일장일단이 있으리라... 임상옥이라는 장사치가 '천하제일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미흡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미흡한 속에서도 사건의 전개는 빠르게, 동적으로 흘러간다. 그만큼의 호기심과 박진감은 느껴지지만 '진지한 재미'로 발전하지 못하고 이내 사그라든다. 임상옥의 지나치게 빠른 '성장'과 함께, 그 외 부수적인 역사는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설명한다. 재미를 위한 소설에서 지나치게 역사성이나 교훈적 내용을 끼워 넣으려는 듯한 흔적들... 이러한 주객전도의 상황으로 인해 글의 중심에서 밀려난 인물들의 심리묘사...아쉽고, 아쉬울 따름...

마침네 상업으로 크게 일어선 임상옥... 하지만 그에게 닥치는 세 번의 위기. 그 위기를 석숭스님의 '비기'(죽을 사(死), 솥 정(鼎), 계영배(戒盈盃))와 '추사 김정희'의 도움으로 풀어나간다는 이야기인 듯 보인다. 나름대로 흥미진지한 구석도 보이지만 역시나... 시간의 조율이 조금 걸린다. 빠르고 긴박한 부분에서는 책을 놓기 무섭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 긴박감 사이의 연결의 고리가 조금 어색하고, 허술해 보인다.

그리고 너무나도 직설적인... 마치 아무 이유도 없이 결과만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어 날 당황하게 만든다. '절을 올린다. 문득 득도했다' 이 같은 식... 원래 한순간의 찰나에 얻어지는 것이 깨달음이라고는 하지만 그 깨달음의 크기에 비해 글의 내용은 부실하기까지 하다. 마치 5공시절 '퍽'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안기부의 조서처럼...기승전결의 과정이 삭제된 짜투리 껍데기만을 보는 듯...책 내용의 깊은 부분은 외적인 형태의 삶이 아닌 자신으로부터의 내적인 삶을 말하면서도 정작 이를 표현하는 글은 그 내적 아름다움을 쉽게 덮어버린다는 느낌...

또한 매 대단락이 끝날 때마다 자세히 알려주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마치 미니시리즈가 방송되기 직전 그 전주의 주요장면을 설명해주는 듯 자상(?)해 보인다. But 어색해 보인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독자들을 어린아이로 취급해 하나에서 열까지 다 집어주려 한다. 으~ 존심상해...

'혹성탈출'이라는 팀버튼이 다시 만들었다는 공상과학 영화가 있다. 하지만 의외의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팀버튼이 만들었기에 사람들의 기대감은 더 하였으리라... 하지만, 팀버튼이 만든 팀버튼 같지 않은 영화...최인호님의 <상도>... 하지만 최인호님이 쓴 최인호님 같지 않은 소설...꿈은 장대했지만 표현된 부분은 적었다. 이야기의 강약의 조절이 아쉽다.

'상도'라지만 상업 이야기가 중심에서 멀어져버린 앙꼬없는 붕어빵...그리고 지나치게 역사적 자료를 직접적으로 남발했다는 느낌...너무너무 친절해 지나간 줄거리를 수십번식 되집어 주는 자상함과 그 속의 지루함...철저히 현실적인 '돈'이야기에서 철저히 신화적인 '천', '불'이야기...우야리...한번의 희망뒤에 오는 한번의 실망이던가...다음의 희망을 기대한다. 최인호님의 큰 글 욕심에 '상도' 본연의 의미가 퇴색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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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寓畵箱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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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수 형님께...

안녕하십니까 외수 형님. 이게 얼마만 입니까? 그 동안 몸은 건강하셨는지... 간간이 형님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파지'속을 헤엄치고 계시는 '꾸부정한' 모습의 형님을 연상할 수 있었죠. 그러다 얼마전 모 TV프로에서 '알까기' 기사로 등단하시어 활동(?)하시는 모습을 잠시 뵈었을 뿐이죠. 그 모습이 어찌나 반갑던지... 책은 조금 늦게 손에 집었습니다. 형님의 글에 대한 기대감, 긴장감을 좀더 즐기기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그 '상상'의 즐거움을 책 속에서 느끼려합니다. 책장에 고이 모셔놨던 책을 오늘에서야 펼칩니다.

그럼 지금부터 형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처음엔 '우화'집이라 해서 <사부님, 싸부님>과 같은 소설이나 동화쯤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만 큰 실수를 범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아마 우화가 포함된 '풍자 산문집' 쯤으로 부르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더군요. 특정한 스토리를 갖는 이야기라기 보다 외수 형님의 단편, 단편의 느낌들을 간결하면서도, 다분히 철학적인 그림들과 함께 구성한 책이더라구요. 날카롭게 꼬집는 풍자와 간간이 터지는 웃음... 글과 이웃한 그림들이 그 흥을 잘 돋구고 있다 봅니다.

책은 한마디로 '도(道)' 이야기... 꼬마 도깨비(띠끼)가 말하는 세상 이치... 하지만 너무 '도', '도' 하는 건 아니신지... '道可道 非常道' 저 역시 미천한 중생으로 상도(上道)의 깊은 뜻을 깊이 헤아리는 건 아니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강조하시기에 그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연의 의미가 조금은 희석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절 망쳤는지, 제가 세상을 망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깨달음'이니 '도'니 하는 말들의 남발로 인해서 괜히 어색하게 들리더라구요. 마치 알맹이 없는 깡통의 요란함처럼... 설마 외수 형님은 아니시겠지요?

그리고 '우화'라고 하지만 <어린 왕자>나 <갈매기의 꿈>에서 봤던 깊이 있는 '삶'은 보이질 않고 세상을 투정하는 어린아이의 번지르르한 불평만 제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재밋는 우화 뒤에 숨어있는 극단적인 형태의 '논설문'을 보는 듯한 느낌도 조금은 받았습니다. '내'가 중요하고, '도'가 중요하듯, 약간의 부조리라 할지라도 그 의미는 중요하다 봅니다. 의사당을 권투장으로 착각하고 명패를 집어던지는 '손'들과 코앞의 금전에만 매달려 쩔쩔매는 '머리'들, 껍데기로 사람과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우리'들, 일년에 한 권의 책도 보지 않는 '당신'들, 이 모두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바람직하다고 해서 중요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전체를 이루는 다양한 각자의, 자기모습이기에 중요하다 봅니다. 눈에 거슬리는 '쓰레기'라 하여 무조건 매도하기에 앞서 '우리'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사랑하고, 포용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들도 인간이기에... 끝으로 한 말씀만 더 올리겠습니다. 외수 형님... 부디 더 높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올라가십시오. 모두가 하나되고, 모두가 사랑하는 그 곳에 가십시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길 좀 알켜주십시오. 제가 가는 길에 길눈 멀지 않도록...

제가 한때 미치고 환장하던 그 책들의 이름엔 늘 '이외수'라는 말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땐 형님 책의 표지만 봐도 가슴이 어찌나 설레던지... 하지만 지금은 그때만큼의 설렘이나 흥분이 되살아나질 않더군요. 형님이 더 심오해지셨는지, 제가 더 타락한 건진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란 게 다 안 그렇습니까... 어쩌면,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한 문장의 글이라도 그 의미가 사뭇 다르게 와 닿는 것이 '책'과 '인생'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형님. 반가웠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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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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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뛰어난 번역자이자 이야기꾼으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책... 걸쭉한 진국처럼 <그리스 인 조르바>의 전설을 우리에게 전해준 이답게 쉬우면서 세련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단순히 그리스 로마 신화만을 옮겨 놓은 듯 하더니만, 금세 서양과 동양을 넘나들며 사상과 문화, 인간을 이야기한다. 외국의 신화라고는 하지만 오늘날의 문화와 비슷한 점들이 많아 쉬 읽혀진다. 단지 '삼국지'처럼 등장인물들이 많기에 대부분의 '신'들은 내 기억 속에서 곧 잊어질 것 같은 느낌이 좀 아쉽다.

신들의 전쟁. 그 부산물로 만들어진 인간... 그리고 오늘날...이렇게 아귀가 잘 맞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한 두 명의 작가가 쓴 글과는 비교될 수 없는, 시간과 사람의 입을 통해 만들어진 기막힌 '야사'...우리나라의 신화나 설화에서처럼 은유나 비유를 통해 숨어있는 깊이 있는 사상과는 다른, 서양 특유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들이 눈에 뛴다.
우리의 신화가 인간 이상의 절대자를 노래하고 있었다면, 이 신화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신을 빌어 노래하는 듯 보여진다.

이 책에선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접하는 독자를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어원은 물론 오늘날 우리 생활 근처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신명'의 풀이까지, 이야기의 향신료가 되어 글 읽는 재미를 돋운다.

'저승을 흐르는 이 강의 여신 스튁스와 지혜의 신 가운데 하나인 팔라스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식을 살펴보자. 질투의 여신 젤로스(Zelos), 승리의 여신 니케(Niche)가 이들의 딸이다. 젤로스의 이름은 '질투'를 뜻하는 영어 '젤러시(jealousy)'에 그대로 남아 있다. 니케의 영어식 발음은 '나이키'다. 운동 기구를 생산하는 한 회사의 상표를 '나이키(Nike)로 삼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질투의 여신과 승리의 여신이 자매간인 까닭은 독자들이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신화 속에 나타난 또다른 우리세상.'이 무수한 신들이 연출하는 드라마는 뒷날 인간 세상에서 그대로 되풀이된다. 신화를 아는 일은 인간을 미리 아는 일이다. 신화가 인간 이해의 열쇠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말이지 오늘날의 모습들이 모두 그려진 책, 아니 신화 이야기.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며,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뜬다.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그러다 시기하고 싸운다.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질 않는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신들도 우리와 똑같이 싸우고, 시기하고, 사랑한다는 것. 고로 우리들과 신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들이 바로 '신'일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

내가 제우스고, 내 친구는 헤라클레스... 주인집 아저씨는 프로메테우스....제우스랑 헤라클레스가 신전(자취방)에서 넥타르(술)를 마시며 뮤즈의 음악의 즐긴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가 넥타르를 뺏으며 말린다. '학생 술좀 고만 마시지?' 우리시대, 우리들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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