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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寓畵箱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외수 형님께...
안녕하십니까 외수 형님. 이게 얼마만 입니까? 그 동안 몸은 건강하셨는지... 간간이 형님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파지'속을 헤엄치고 계시는 '꾸부정한' 모습의 형님을 연상할 수 있었죠. 그러다 얼마전 모 TV프로에서 '알까기' 기사로 등단하시어 활동(?)하시는 모습을 잠시 뵈었을 뿐이죠. 그 모습이 어찌나 반갑던지... 책은 조금 늦게 손에 집었습니다. 형님의 글에 대한 기대감, 긴장감을 좀더 즐기기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그 '상상'의 즐거움을 책 속에서 느끼려합니다. 책장에 고이 모셔놨던 책을 오늘에서야 펼칩니다.
그럼 지금부터 형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처음엔 '우화'집이라 해서 <사부님, 싸부님>과 같은 소설이나 동화쯤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만 큰 실수를 범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아마 우화가 포함된 '풍자 산문집' 쯤으로 부르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더군요. 특정한 스토리를 갖는 이야기라기 보다 외수 형님의 단편, 단편의 느낌들을 간결하면서도, 다분히 철학적인 그림들과 함께 구성한 책이더라구요. 날카롭게 꼬집는 풍자와 간간이 터지는 웃음... 글과 이웃한 그림들이 그 흥을 잘 돋구고 있다 봅니다.
책은 한마디로 '도(道)' 이야기... 꼬마 도깨비(띠끼)가 말하는 세상 이치... 하지만 너무 '도', '도' 하는 건 아니신지... '道可道 非常道' 저 역시 미천한 중생으로 상도(上道)의 깊은 뜻을 깊이 헤아리는 건 아니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강조하시기에 그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연의 의미가 조금은 희석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절 망쳤는지, 제가 세상을 망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깨달음'이니 '도'니 하는 말들의 남발로 인해서 괜히 어색하게 들리더라구요. 마치 알맹이 없는 깡통의 요란함처럼... 설마 외수 형님은 아니시겠지요?
그리고 '우화'라고 하지만 <어린 왕자>나 <갈매기의 꿈>에서 봤던 깊이 있는 '삶'은 보이질 않고 세상을 투정하는 어린아이의 번지르르한 불평만 제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재밋는 우화 뒤에 숨어있는 극단적인 형태의 '논설문'을 보는 듯한 느낌도 조금은 받았습니다. '내'가 중요하고, '도'가 중요하듯, 약간의 부조리라 할지라도 그 의미는 중요하다 봅니다. 의사당을 권투장으로 착각하고 명패를 집어던지는 '손'들과 코앞의 금전에만 매달려 쩔쩔매는 '머리'들, 껍데기로 사람과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우리'들, 일년에 한 권의 책도 보지 않는 '당신'들, 이 모두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바람직하다고 해서 중요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전체를 이루는 다양한 각자의, 자기모습이기에 중요하다 봅니다. 눈에 거슬리는 '쓰레기'라 하여 무조건 매도하기에 앞서 '우리'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사랑하고, 포용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들도 인간이기에... 끝으로 한 말씀만 더 올리겠습니다. 외수 형님... 부디 더 높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올라가십시오. 모두가 하나되고, 모두가 사랑하는 그 곳에 가십시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길 좀 알켜주십시오. 제가 가는 길에 길눈 멀지 않도록...
제가 한때 미치고 환장하던 그 책들의 이름엔 늘 '이외수'라는 말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땐 형님 책의 표지만 봐도 가슴이 어찌나 설레던지... 하지만 지금은 그때만큼의 설렘이나 흥분이 되살아나질 않더군요. 형님이 더 심오해지셨는지, 제가 더 타락한 건진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란 게 다 안 그렇습니까... 어쩌면,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한 문장의 글이라도 그 의미가 사뭇 다르게 와 닿는 것이 '책'과 '인생'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형님. 반가웠습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