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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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부산 송도해수욕장을 자주 갔었다. 같은 부산이라지만 우리 집과는 정 반대 방향인 남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 대중교통을 타고가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하지만 당시 건설 붐을 타고 잘나가셨던 이모부님의 그라나다 자가용을 타고 자주 들렀던 기억이 난다.

  시내에서 한참을 들어가 언덕 하나를 넘으면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해안도로가 작은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곳이었다. 그 길 곁으로 많은 횟집들이 성업 중이었고 그 앞 도로가에 아무렇게나 마련된 테이블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명개며 해삼을 먹었다.

  어떤 날에는 송도 앞바다에 위치한 거북섬으로 가기위해 나무로 엮어진 구름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발아래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바다가 투명했지만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그런 경치를 볼 여유는 없었다. 몸을 움직이며 다리를 더욱 출렁거리게 만드는 사촌 형들의 장난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그런 다리를 지나서 도착한 거북섬은 안락한 낙원처럼 포근했었다. 그곳에서 바다를 보며 회를 먹고 산책을 하고...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송도에서는 조그만 횟배도 탔었다. 네다섯 명이 간신히 탈 수 있는 작은 배에 천막을 올리고 방석을 깔아 횟배로 개조한 놈인데 관광객들로 분비는 해변에서 벗어나 바다 한가운데에서 회를 먹는 느낌이 일품이었다. 출렁이는 송도 앞다에 배를 띄워놓고 혈청소를 바라보며 먹는 아나고(붕장어)의 고소함이 아직도 선하다.

 

  바로 그 곳, 송도해수욕장(부산)이 주무대가 되었기에 더없이 반가웠다. 80년대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물론 내 어린 시절이 <뜨거운 피>처럼 힘겹거나 폭력적인 삶은 아니었지만, 이것 또한 어떠하리! 시간에 윤색된 기억은 언제나 푸르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을. 

  이렇듯 정겹게 남아있는 송도해수욕장이었지만 <뜨거운 피>에서는 그리 평온하게 그려놓지 않았다. 구암이라는고 소개된 이곳은 돈과 여자, 각종 이권을 찾아 모여든 건달로 넘쳐났다. 말이 좋아 건달이지 실은 조직폭력배, 전과자, 마약중독자, 사채업자, 도박꾼, 밀수꾼, 포주 등 사회의 어두운 면에 기생하는 깡패들이라 보면 되겠다. 그래서인지 폭력이나 욕설은 애교 수준으로 등장하고 살인은 물론 시체처리를 위한 분쇄기도 심심찮게 등장할 정도로 살벌했다. 

  무식함과 잔인함에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면이 오히려 나의 관심을 끌었다. 살인청부업을 그린 김언수 님의 전작, <설계자들>을 통해 그의 글 빨에 푹 빠져버린 것도 원인이었지만 폭력이 갖는 묘한 긴장감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멜로영화보다는 액션영화가 흥행에 더 유리한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내 안에 숨겨진 강한남자 콤플렉스-남자는 울어도 안 되고 힘도 쌔야 한다는- 때문인가?  

 

  구암의 터줏대감이자 실세로 만리장 호텔을 운영하는 손영감과 그의 밑에서 조직을 관리하고 각종 사업을 총괄하는 호텔 지배인 희수의 이야기로 80년대 우리 시대를 관통했던 조직폭력배의 생성과 번영, 암투와 잇권 다툼, 그리고 몰락과 부활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전개된다.

  손영감은 다른 조폭들처럼 세를 확장한다거나 밀수 등 큰 돈벌이에는 신경이 없고 구암을 관리하면서 받는 세금이나 중국산 고춧가루를 국내산과 섞어 파는 등 몸을 사리며 안전하게 조직을 운영한다. 그래서인지 외부세력과의 큰 마찰 없이 오랜 시간 구암을 지배했다.

  희수는 손영감의 오른팔로 구암의 질서를 잡거나 자잘한 싸움의 중재하는 등 바쁘게 살아가지만,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소모품 같은 자신의 삶에 불안을 느끼고 손영감 밑에서 나와 양동의 오락기 사업에 동참한다. 희수와 양동의 오락기 사업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급성장하지만 주류사업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양아들(아미)을 통해 자신과 구암을 둘러싼 이상한 기류를 감지한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평온하던 구암을 세력다툼의 중앙으로 내몰았고 푸른 바다는 핏빛으로 변해갔다.

 

  김언수 작가의 화려한 글 솜씨와 치밀한 전개로 지루할 틈 없이 읽었다. 기존의 조폭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봐온 의리와 배신이 뻔~하게 등장하지만 독특하고 미스터리한 손영감의 행보를 통해 이야기는 더욱 치밀해지고 인물은 더 따뜻해졌다. 손영감의 평범한 노파 모습 뒤에는 조직을 이끄는 보스의 잔인함이 숨겨져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과 자신과 구암을 위해 노력한 희수에 대한 애틋함이 녹아있었다. 

  그리고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희수를 통해 우리의 삶과 급변했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7~8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를 통해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그 여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화려한 외적성장을 감당할 의식수준도 부족했다. 경제가 살아나면서 돈의 가치는 올라갔지만 가족의 응집력은 약해졌고 이탈도 심해졌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소외감은 커졌고 하나 둘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회는 국가발전이라는 명제 아래 전제주의적인 군사문화를 확대해 나갔고 개인의 희생은 당연시 되었다.  법과 양심 보다는 편법과 돈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가진 자는 더 많은 배팅으로 이득을 챙겼을 뿐 이윤은 고르게 분배되지 못하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져갔다. 

  희수는 자신의 시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돈과 조직, 의리와 배신 사이를 오가며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는 모습은 인간적이다 못해 안쓰럽게까지 보였다. 어쩌면 희수는 몸뚱아리 빼놓고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우리들의 옛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책 이면에 깔려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암울하게 살아왔던 세월이 더 갑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현실을 타파해줄 무언가를 찾게 되고, 그 돌파구로 액션을 가장한 '폭력'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우리 시대 역시 폭력적이다. 정치는 어지럽고 교육은 근시안적이다. 산하는 더욱 오염되어 가고 예술마저 돈벌이의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어딜 가든 한 밑천 잡아보려는 깡패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끝나지 않은 폭력의 시대를 종식시킬 진정한 히어로는 없는 것일까. 희수가 간직했던 소박한 꿈을 이뤄줄 지도자는 없는 것인가. 크고 작은 폭력 속에 살아가는 '희수'는 여전히 고달프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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