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스럽고도 단조로운 '달리기'의 정감


 금요일 아침, 축제가 있는 날이지만 아침시간은 상당히 호젓했다. 오후부터 시작하는 경시대회와 축제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 축제를 준비하는 선생님과 학생 몇 명만 눈에 띌 뿐이었다.
 나는 축제의 한 코너에 출연하기로 되어있어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했다. 약속한 시간이 남아있기에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한잔 탔다. 검은 배경화면을 가리고 있는 커피 잔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차가웠던 아침공기가 달콤하게 데워졌다. 출근길 버스에서 보던 책을 편다.

 최순우 님의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말한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고자 얼마 전에 구입한 책이다.
 번잡한 거리를 질주하는 버스에서 그의 한국미 사랑을 들었다. 과장된 몸짓이나 지나친 감상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문화를 끌어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화려한 기교나 무거운 비장함으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편안함과 적당한 무심함으로 그 주변의 사람들을 편하게 감싸는 우리의 문화를 소담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스산스럽고도 단조로운 정감’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다. 최순우 선생의 글을 보면 유독 ‘스산하다’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사전에는 ‘몹시 어수선하고 쓸쓸하다’라고 조금은 어두운 면을 강조했지만 최순우 님의 썼던 의미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아무도 없어 썰렁하다는 말이 아니라 혼자 있는 호젓함을 즐기는, 능동형의 허전함 같다고 할까.

 달리기도 비슷하지 싶다. 어떻게 달리든 결국에는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할 시간이 아니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결국에는 혼자서 달려야 하지 않던가.
 이번 수요일에는 여러 회원들(부산교사마라톤)이 모여 함께 달렸다. 녹색 잔디구장 위로 쏟아지는 라이트를 중심으로 시간을 달렸다. 달리기 방향으로 봤을 땐 시계 반대반향이니 시간을 거슬러 달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아무튼 타원형으로 휘감은 주황색 트랙 위를 끝없이 질주했다. 하얀색으로 구분된 트랙의 경계선을 따라 외줄타기를 하듯 뛰었다. 여덟 명의 회원들이 1, 2레인, 2, 3레인을 사이에 두고 평행하게 달려 나갔다.
 하지만 결국 모두는 혼자서 뛰고 있었다. 서로의 발은 보조를 맞추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각자의 심장은 자신만의 레인 위를 달리고 있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화려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만의 유희에 사로잡혀 오늘을 뭉쳤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여기에 모였다.
  ‘스산스럽고도 단조로운 정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무리 많은 사람들 사이에 묻혀 있더라도 모든 의미는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것,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오늘의 나, 지금의 나를 고스란히 홀로 감당한다는 것은 아닐까. 달리기라는 단조로운 반복을 통해 나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찾아보는 것,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정을 음미해보는 것이 최순우 님이 하고자 했던 스산스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강당에서는 축제 연습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진다. 이번에 내가 맡은 코너는 학생 11명과 함께 수화노래를 하는 것이다. 일주일간의 연습으로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한 만큼 열심히, 즐기면서 임하고 싶다. 책이 그러하고 달리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럿이 오르는 무대지만 결국 나 혼자만의 무대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 2010/11/26
 교사마라톤( http://cafe.daum.net/marathongayaji ) 수요훈련(2010.11.24)의 후기를 대신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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