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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우스 ㅣ 범우희곡선 6
피터 셰퍼 지음, 신정옥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09년 4월
평점 :
희곡,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만 봤지 맘 잡고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기존의 소설이나 다른 장르의 책과 구별되는 확실한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눈앞에서 공연이 펼쳐지는 것 같다고 할까. 마술 봉을 손에 쥔 소년처럼 눈앞의 환상을 즐기게 된다.
사실 처음부터 희곡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조재현이 다이사트(정신과 의사) 역으로 출연하는 연극, <에쿠우스>를 예매한 뒤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쿠우스라는 연극이야 공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두 번 쯤은 들어봤던 유명한 연극이고, 거기서 조재현이 알런 역을 맞으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는 것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연극을 부산에서 한다기에 일단 예매부터 했었다. 조재현을 더욱 탄탄한 배우로 만든 에쿠우스를 직접 보고 확인해보고 싶었다. 거기다 조금 난해하면서도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 것 같은 모호함이 내 호기심과 자존심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공연을 미리 예매해 놓은 상태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연극 감상을 위해 원작을 읽기 시작했다.
흥분된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두운 무대에 한 줄기 조명이 비치자 배우들이 대화를 시작한다. 배우들의 동선이 맞춰 마룻바닥이 삐걱거린다. 관객의 시선을 움켜진 배우의 동작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쇠꼬챙이로 여섯 마리 말의 눈을 찔러버린 알런과 이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가 중심이 되어 연극이 진행된다. 다이사트는 알런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들을 하나씩 알게 된다. 엄격하고 억압된 가정, 텔레비전이라는 탈출구, 예수에 대한 동경과 말에 대한 대입, 아버지에 대한 일상적 발견과 여자 친구에 대한 애틋한 감정, 그리고 신적인 존재와도 같았던 에쿠우스 앞에서의 사랑. 알런은 이 모든 사건 속에서 자신을 부정하며, 신을 부정하며 말의 눈을 찔러버렸다.
거대한 미로를 통과하듯이 인간의 내면에 씌워진 재갈은 무엇이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가족, 사랑, 운명에서부터 신에 대한 물음까지, 모순적인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에쿠우스를 둘러싼 찬사가 허튼 소리는 아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연극을 위해 써진 희곡이라지만 그 이상의 가치로 다가온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이후에는 희곡 예찬론자가 될 것 같다.
연극 <에쿠우스> 역시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 같다. 피터 셰퍼가 쓴 <아마데우스> 역시 꼭 읽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