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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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은 소설이 아니라 음악이다. 그것도 전쟁 직후의 절망과 혼란, 가난과 죽음이 뒤섞이며 우리 역사의 회색빛 상흔으로 남아 있던 시기의 진혼곡이다.

  럭키 서울(1948, 현인), 어메이징 그레이스, 목포의 눈물(1935, 이난영), 슈샨 보이(1952, 박단마), 테네시 왈츠(1950, 패티 페이지), 홍콩아가씨(1954, 금사향), 타향살이(1934, 고복수), 열아홉 순정(1959, 반야월), 베사메무쵸(1949, 현인), 이는 1950년대를 관통했던 음악이자 <아코디언>의 구성하는 각 장의 제목이다.

  그래서 둥이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 음악들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오래된 LP를 올려놓은 듯한 잡음과 함께 수줍은 반주가 시작되고, 구슬프고 아련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저 밑바닥에서 아코디언 소리가 들려온다.


 "동이는 아코디언을 집어 들어 자리에 앉은 채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즉흥연주였다. 음정도 박자도,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었다. 손 가는 대로 건반을 짚고 감정대로 바람통을 눌러 아련한 멜로디가 움막 안을 가득 채웠다. 뜻밖의 아코디언 소리에 아이들은 하나둘 울음을 그치고 동이의 즉흥연주를 감상했다. 그것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었지만 끊길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멜로디는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듯 짙은 슬픔이 깔려 있어 잘 아는 곡처럼 친숙한 느낌이었다."(p84)

  동이는 전쟁고아들을 모아 앵벌이를 시키는 양 목사 밑에서 힘겹게 생활한다. 하루 종일 구걸하고 와도 남는 것은 멀건 호밀죽뿐이다. 굶주림과 착취는 일상이 되었고, 무차별적이고 대책 없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때 동이의 눈에 아코디언이 들어온다. 교회에서 풍금을 치던 엄마를 떠올리며 동이는 아코디언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동이는 연주를 통해 그 이야기를 다시 세상에 풀어놓았다. 아코디언을 치는 동안, 슬픔과 고통은 깊은 깨달음으로 정화되고 안개처럼 뿌옇게 가려졌던 진실은 거울처럼 선명해졌다. 그렇게 동이는 글자가 아닌 소리를 통해 벽 너머의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었다."(p226)

  <아코디언>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이 일상이었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조차 버거웠던 시절. 법과 질서보다는 아첨과 협박, 때로는 주먹과 발길질이 문제를 해결하는 더 빠른 방법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직접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50대인 나에게도 낯설지만, 지금의 3~40대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질서가 저절로 주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배고픔과 굶주림을 겪고 나서야 밥 한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폭력과 혼란이 남긴 상처와 후유증을 경험한 뒤에야 법과 질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그 거칠고 불편했던 시간들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낸 토대였는지도 모른다.

  아코디언은 수많은 주름을 접고 펼쳐지기를 반복하면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우리의 역사도 그랬던 것 같다. 가난과 전쟁, 폭력과 혼란, 좌절과 궁핍이라는 수많은 주름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왔다.
  그래서 아코디언의 그 많은 주름은 단순히 우리가 지나온 고단한 흔적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주름은 우리를 다음 단계로 밀어 올린 스프링이 아니었을까. 과거의 고통과 혼란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견디고 극복해온 힘까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코디언>은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아코디언의 주름처럼 굴곡진 역사를 지나,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밀려 올렸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의 풍요와 질서 역시 그 수많은 주름이 만들어낸 한 소절의 음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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