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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집어든 영화잡지에서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2007)의 소개글을 봤다. 수백억 재산을 모은 권순분 여사를 납치했지만 오히려 인질로 잡힌 여사가 경찰과 대치하며 납치극을 주도한다는 내용으로 특히 기사 옆에 난 코믹스러운 표지의 소설이 눈에 띄었다.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이 책은 일본에서 출판(1978년)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치밀한 사건전개와 반전으로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아이러니한 구성과 험악한 분위기 속에 숨어있을 유희를 기대하며 책을 주문했다.
교도소를 막 출소한 도나미 겐지, 아키바 마사요시, 미야케 헤이타는 '무지개 동자'라는 이름의 3인조 납치단을 결성해 일본 기슈 지방의 최고 갑부인 야나가와 도시 여사를 납치한다. 하지만 전혀 주눅 들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조차 없는 여사를 대하자 오히려 납치범 자신들이 더 당황한다. 설상가상으로 여사는 납치단에게 조언까지 하며 납치를 돕는 것이 아닌가.
여사의 몸값으로 100억 엔(약 840억 원)을 요구한 무지개 동자와 이에 경악하는 일본! 이 어수룩한 납치단은 대범함과 치밀함, 천진함을 두루 갖춘 도시 여사와 함께 몸값을 둘러싼 경찰과의 숨 막히는 두뇌싸움을 시작한다.
치밀한 계산 하에 전달되는 요구조건이나 여사의 안전을 증명하기 위해 진행되는 생방송. 그리고 100억 엔의 몸값을 안전하게 받아내기 위한 작전은 할리우드 첩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책을 읽을수록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어떤 식으로 풀릴지 궁금해진다.
사실 100억 엔이라는 액수나 몸값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가족의 변화된 결집력 등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도 들지만 코믹하게 전재되는 글의 흐름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같다.
한걸음 뒤쳐진 듯한 그들에게서 경쟁하듯 계산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무지개 동자는 돈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그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복면을 쓰고 할머니를 납치, 세상을 상대로 협상을 벌였는지도 모르겠다. 돈에 유괴되어버린 인간들의 무사 귀환을 기대해본다.
책을 덮자 가슴에서 올라온 따스함이 입가를 잔잔하게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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