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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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슬로바키아(현재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를 중심으로 벌어진 '프라하의 봄'이 중요 배경이기에 이것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에서 소련은 아군에서 적군으로 바뀌는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소련은 2차대전 막바지에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를 해방하기 위해 진군했던 천사 같은 존재였지만, 종전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화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어 반감을 사게 된다. 이때 체코슬로바키아의 둡체크의 개혁(1968년)을 통해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소련의 무력 침공으로 무산되었다. '프라하의 봄'은 이 7개월 동안을 일컫는 말로, 세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박정희 정권 후반(1979년)에 터져 나온 민주화 열기(5.18 광주민주화운동)를 '서울의 봄'으로 비유해 표현하기도 한다.
  아무튼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알면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책은 무거운 시대 상황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만큼이나 가벼웠던 사랑'을 이야기한다. 순박했던 테레자는 가벼운 사랑을 찾아다니던 바람둥이 토마시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토마시가 자신에게 좀 더 충실하기를, 깊고 무거운 사랑을 원했다. 그리고 토마시가 가볍게 만나던 사비나 역시, 모험적인 삶을 동경하는 유부남 프란츠와의 밀회를 즐기고 있다.
  테레자가 원했던 깊은 사랑과 이를 단순한 놀이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토마시는, 앞서 말한 체코와 소련의 정치적 상황과 비교되면서 교차한다. 자신에게 자유를 안겨 주며 영원히 자기편인 줄 알았던 상대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더욱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존재가 되었다. 가볍게 시작한 사랑은 깊은 존재감으로 다가오고, 현실을 마주하는 시선의 작은 차이는 서로 간의 상이한 성장 과정과 생활방식으로 무거운 거리감을 만들었다.

  프란츠는 부인 마리클로드에게 사비나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의무감처럼 유지해오던 부부관계를 끝내지만, 정작 사비나는 뜨거운 정사 뒤에 프란츠를 떠난다. 그 뒤 프란츠는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다른 젊은 여자를 만났고, 파리에 머물던 사비나는 전 연인이었던 토마시와 테레자의 부고를 듣게 된다.

  가정이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의 사랑은 허울만 남긴채 사그라들었고, 대신 가볍게 시작된 외도가 점차 그 깊이를 더해간다. 사랑은 형식이나 방향도 없이, 의도하지 않게 흘러가면서, 나름의 이유와 가치를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가볍게 시작된 사랑은 깊은 존재로 남게 되었다.

  소설은 텍스트가 난해하고 철학적인데다, 화자의 시점과 시간이 뒤섞여있어 등장인물 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외국 소설이 갖는 번역 과정에서의 거리감인지, 나의 짧은 문해력으로 인한 이해 부족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각 문장이 가진 세부적인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문장과 챕터 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편이 밀란 쿤데라의 글을 이해하는 쉬운 방법인 것 같다.

  하긴 청소년 소설이나 에세이의 쉬운 책도 좋지만, 이런 두껍고 이해하기 힘든 책도 읽어 줘야 내 정신의 폭도 깊어지지 않을까 한다. '참을 수 없는 독서의 어려움'이랄까! ^^

  유명한 책인데 명작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보니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이전에 읽었던 <책은 도끼다>(박웅현)에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글이 있다고 해서 다시 읽어봤다.
  확실히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니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막연하게 흘려 읽었던 문장들의 관계와 의미가 이해되면서 단순한 사랑놀이 뒤에 숨겨진 다양한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깊이를 가름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중도에 읽는 것을 포기해버릴까도 생각했던 506쪽에 이르는 책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명작이라는 말에 집었고, 사랑에 취해 읽었지만, 난해함에 포기하려던 책을 주변의 도움으로 다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참을 수 없이 가벼웠던 텍스트가 거부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p506)
  결국 토마시와 테레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인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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