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석 지음 / &(앤드)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일 새벽, 졸린 눈을 비비고, 나를 조용히 반겨줄 바다로 간다.
  힘차게 물살을 가른 팔은 리커버리하며 수평선을 향해 길게 뻗는다.
  검지부터 차례로 입수하자 발끝까지 긴 유선형을 만들어 물을 가른다.
  상체를 틀고 꺾어진 팔꿈치부터 한 아름 잡은 물은 가슴을 지나 허벅지 아래로 밀어낸다.
  암청색의 바닷속에는 하얀 거품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수심 아래로 사라진다.
  나는 넓고 고요한 바다를 날카롭게 가르며 미끄러진다.

  바다는 반복된 일상의 갑갑함을 뒤로 밀어내고 나를 전진하게 한다.
  호흡과 함께 사선으로 모습을 드러낸 도시는 이내 찰랑거리는 물결 속에 잠겨버린다.
  나를 잡고 있던 책임과 의무, 질서와 규칙은 긴 물보라 속으로 사라진다.



  최근 수영하는 시간이 늘었다.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빡세게 수영하다 보니, 여기에 몸이 맞춰져 버렸는지 체중도 약간 줄면서 수영에 재미가 들기 시작했다. 주말 새벽에 진행하는 바다수영 외에도 약간의 틈이라도 주어지면 풀장이나 바다를 찾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수영과 관련된 읽을거리가 없을까 찾게 되었다. 수영과 관련된 책은 기술적인 입문서 외에 몇 권이 나와 있지만 수영의 과거사만 나열한 인문학 서적이나 수영 입문자가 겪은 일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에세이, 혹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이 대부분이라 수영에 관한 소설은 의외로 찾기 힘들었다. 거기다 청소년 도서로 분류되어 있어 무더운 여름날에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책의 가치를 보증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수경과 수모를 쓴 소년이 힘차게 물을 가르고 있는 모습의 표지가 너무 시원했다!

  바다고에 다니는 박욱은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바다고 수영부인 스피드(SPEED)에 가입하고, 거기서 아프리카에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죽은 아버지가 바다고 재학 시절에는 최고의 수영선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인생 최고의 정점에서 도핑 사건에 연류돼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욱은 아버지가 남겨둔 수영 일기를 보며 수영에 관한 기술과 자신감을 갖는 한편, 아버지가 수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정확한 사연도 함께 조사하게 된다.
  한편 저조한 실적의 스피드는 해체 통보를 받게 되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하늘고와의 수영 라이벌전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욱은 아버지의 도핑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고, 하늘고와의 수영 시합에서 이길 수 있을까?

 바다고 수영부의 해체를 막기 위해 이사장님 댁을 방문하던 욱은 동행한 수빈 선배의 폰에서 공성전 게임을 보게 된다. 곧이어 소설은 수영부 해체냐, 유지냐를 놓고 벌였던 이사장님과 담판을, 철옹성을 지키고 선 적군과 맹렬한 공격으로 성을 함락시키고자 하는 아군의 전쟁에 빗대 리얼하게 표현해 놓았다. 텍스트로 쓰인 아날로그 매체에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긴박함을 느낄 줄이야~
 바다고 수영부에게 스피드 해체는 전장에서의 패배와 같았다.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되었기에, 수영부 유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쟁에 이겨야 했다.

  반면 아버지의 도핑 사건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방점을 둔다. 전쟁 같은 극한의 한바탕 승부가 끝나고 난 뒤의 고요함, 아니 허무함이랄까. 결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어떠한 결과를 일으키고 피해를 불러오는지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거둔 최고의 성적은 주변의 감각을 마비시켰고, 1등이라는 결과물에 취해 결과만을 맹목적으로 추앙하게 되었다.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득권의 모든 혜택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었기에 아버지의 주변에서는 약물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겨야만 했다.

  무한의 속도 경쟁 속에 우리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경쟁에서의 순위나 그에 따른 포상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경쟁과 승패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다면 그 결과는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코어의 힘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지속적인 연습으로 내 안에 내재한 가치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힘이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