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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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타들어가는 건조한 겨울날에는 촉촉하게 가슴을 적셔줄 수 있는 ‘사랑 이야기’가 제격이 아닐까. 그러던 중 한 독서토론회에서 12월의 대상도서로 <능소화>가 선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토론회도 참여할 겸 서둘러 장만했다.

표지에 그려진 수묵화풍의 검붉은 능소화와 검게 흘려 쓴 제목에선 시간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버린 사랑의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오랜 세월 속에 묵혀둔 진한 과일주 같다고나 할까.
또한 띠지에 적힌 “4백 년 시공을 뛰어넘은 슬픈 사랑”이라는 문구도 인상 깊다. 마치 은행나무에 깃든 천년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 <은행나무침대>의 카피를 보는 것 같아 그 내용에 궁금증을 자아냈다.

소설은 1998년 4월 경북 안동에서 이응태(1556~1586)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능소화의 이미지를 빌어 그려내고 있다.

“소화는 기품이 넘치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원래 이 세상의 꽃이 아니라 하늘의 꽃이라고 합니다. 하늘정원에 있던 꽃을 누군가가 훔쳐 인간세상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 따를 것이 없고 사람들이 다투어 어여삐 여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궁궐과 양반가에서 그 꽃을 심고 즐겨온 것이 수백 년이옵니다. 워낙 기품 있는 꽃인 만큼 양민이나 천민들은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꽃이옵니다. 상민이 제 집에 소화를 심으면 이웃 양반가의 노염을 사 매를 버는 지경이지요. 누구나 가까이 하기엔 아까우리만큼 기품이 넘치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소화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기 십상이나 그 속에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독이 있습니다.”
(본문 34쪽)

능소화, 너무 아름답기에 그 속에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를 슬픔의 ‘독’을 실제 사건과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그려놓았다. 남편(응태)을 먼저 보내는 여인(여늬)의 애절한 마음과 이들 앞에 놓인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 한여름, 화려한 꽃을 피우고는 시들지 않고 송이채 떨어지는 능소화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더욱이 쉽고 간결하게 씌어진 문체와 빠른 전개가 진부해지기 쉬운 러브스토리를 넘어 빠르게 몰입하게 만든다. 조금 진부할 수도 있는 전설 같은 먼 이야기를 마치 옆에서 듣는 듯 잔잔하게 써내려간다.

하지만 이를 밝혀내고 풀어놓았던 화자 개입은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다. 맘껏 잡아놓은 사랑의 애잔한 분위기를 한순간에 흐려놓는 느낌이랄까. 화자의 개입을 최소로 줄이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조금 상투적일 수도 있는 평이한 내용이지만 그 속에 담겨진 지고지순한 사랑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미완으로 끝난 이들의 사랑을 4백 년이 지난 오늘, 아름답게 이어가고 싶다.

( http://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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