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모처럼 방문한 처남에게 집 안을 전쟁터처럼 만들어버리는 세 아들을 보내버리고 안방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책을 펼쳤다. 그때 아내의 텔레비젼 켜는 소리가 들렸고 이야기 속에서 여행, 글, 소설이라는 단어를 얼핏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간만에 집어든 책인데다 뭔가 잘 읽히고 있던 책이라 앵앵거리는 텔레비젼 소리는 무시한 채 김영하의 새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책은 제목 그대로 김영하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를 풀어놓았다. 어떤 나라에 가면 꼭 방문해 봐야할 유적이나 숨은 맞집이 표시된 것이 아니라, 여행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고,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나려는지, 그리고 먼 여행지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작가의 경험을 통해 풀어놓는다.

  운동권 대학생 시절의 우연한 기회에 떠나게 된 중국 여행을 시작으로 작가가 되기 전의 여행과 작가가 된 이후의 여행을 이야기하고, 글쓰기와 여행, 인생과 여행의 공통점을 이야기한다.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행을 좋아하고 시간과 경제력이 된다면 자주 떠나려고 한다. 물론 공부와 담을 쌓은 대학생 때는 약간의 충동만 갖고도 쉽게 국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가족과 직장이 내 생활의 중심을 이루고 있기에 쉽게 떠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러하듯, 어떻게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마음먹기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일년에 한 번은 5일 이상의 여행을 떠나려고 마음먹고 있고,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다.

  이렇게 가끔 여행을 하다보면 왜 이렇게 떠나려고 하는지 스스로 자문할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국만 뜨면 좋아~"라는 생각이었는데, 정말이지 김영하 님이 말한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가 아닐까 싶다. 삶의 무게가 있고, 일상의 책임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몰리브요 하와이가 아닐까 싶다. 비행기가 뜨면 나를 잡고 있는 사회의 밧줄도 함께 끊어져 버린다. 나를 사로잡고 있던 탯줄을 끊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런 도피 후에 다시 나를 받아 줄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 때문에 이런 일탈이 더 기다려지는 것이겠지만... 

  이런 생각 때문인지 여행의 스타일도 휴양 중심으로 바뀌어버렸다. 빡빡한 일정표에 맞춰 명승지를 둘러보거나 하루종일 박물관에서 역사공부를 하기보다는 나를 숨길 수 있는 곳으로 휴양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까닭에 그 어디에도 나와 가족, 한국에서의 사회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점점 오지나 섬과 같은 구석을 찾아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에게 여행은 일상에 대한 도피이자 탈출이었고, 일 년을 버티게 하는 최고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이런 나에게 김영하 님은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그럴싸한 이유를 알려줬다. ^^

 

  여행의 의미와 가치, 이유는 물론,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여행의 이유>를 덮은 후 거실로 나가 아내가 보고 있던 텔레비젼 프로를 봤다. 유희열이 진행하는 <대화의 희열>로 사회 여러 분야의 유명인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로 몇번 본 적은 있었다. 그런데 이번 방송의 초대손님이 바로 김영하 님이 아니던가.

  김영하 작가와 이름 발음이 비슷한 아내는 얼마 전에 그의 모든 소설을 다 읽은 터였고, 나 역시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1999), <검은꽃>(2003), <살인자의 기억법>(2013), <오직 두 사람>(2017), 그리고 <여행의 이유>(2019)까지 그의 책을 제법 읽었기에 관심을 갖고 텔레비젼을 시청했다.

  아마 이 책에 출판되고 홍보차원에서 출연한 토크쇼였기에 책의 내용과 많이 중복되기는 했지만, 텍스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입체적인 입담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마치 여행기나 가이드북에서만 봐왔던 하나우마 베이(하와이)를 실제로 체험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따뜻한 해변를 지나 푸르도록 시원한 바다를 유영하며 출렁이는 물 속 열대어와 멀리 수평선을 동시에 바라보던 것처럼 생생했다. 

  다음 여행은 좀더 여행다운 여행이 될 것 같다. 여행 경비나 목적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여행의 이유와 가치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여행 가방에는 김영하 님의 <여행의 의미>가 들어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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