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뒷모습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2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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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뒷모습에 더 관심이 생겼다. 나이가 들수록 발밑의 야생화가 새삼 눈에 띄듯이 뒷모습에도 점점 더 눈길이 가곤 한다. 아마도 뒷모습이 더 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 싶다. 앞모습은 대부분 의도하고, 의식해서 보여주게 마련이지만 뒷모습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곤 한다. 뒷모습에 관한 이야기는 그래서 늘 흥미롭다.'


그래서일까.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이나 밀란 쿤데라·존 버거 등이 쓴 <책 그림책> 같은 책을 좋아한다. 이유는 단지 뒷모습에 대해 다뤄서가 아니라 사유를 하게 해주는 책이어서다. 이런 책들은 기존의 시각이나 관념을 다른 방향에서 보게 해주고, 세상을 조금 더 세심하고 깊게 바라보게 해준다. <사물의 뒷모습>도 그런 사유 깊은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된 책이다.



저자는 조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다. 조각가인 저자는 작업을 통해 재료와 대화하고, 머리와 손이 대화하고, 짧은 산책이나 일상의 시간 속에 자기 자신과 침묵의 대화를 한다. 그러다가 잠시 정적의 순간이 찾아와 미처 알지 못했던 사물의 뒷모습을 만난다고 한다. 그는 이런 순간을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이런 사유의 시간은 작가의 눈을 더 밝게 하고,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며, 더 나은 작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라면 말할 것도 없고, 일상의 시간을 좀 더 깊이 있게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유의 시간은 필수적이다.



이 책은 작가의 세심한 관찰력과 깊은 사유가 합해진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관찰한 대상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에 관한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었다. 생각을 이끄는 소재는 흔한 사물이지만, 그것에서 나온 사유는 매우 철학적이다.

 

세상이라는 학교가 내게 박아 넣은 나사못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내 속에 들어와 지금의 나를 만든 이 이물질들, 나사못들로 엮여 있는 습관과 관념의 덩어리가 바로 나다. 그것들이 나를 만들었다면, 그 이전에 그것들이 아닌 원래의 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런 것이 정말 있기는 했을까. (p.56, 나사못)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고 완벽하게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고 부족함이 없는 이 형태는 자기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굴리면 굴리는 대로 구르고, 어디든 머무는 곳에 머문다. (p.36, )

 

이런 일련의 글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애(無碍)’()’ 사상과도 잇닿아 있다. 나무뿐 아니라 톱 역시 제 몸을 깎아내며 고된 삶을 살며, 그 톱의 주인도 톱처럼 무뎌지고 녹스는 시간을 맞이하는 데에서는 인생무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조각가인 저자는 조각 작품의 형태 외에 형태 아닌 것을 바라보고 공, 나사못, 유리잔 같은 일상의 사물들에 눈길을 준다. ‘사물의 뒷모습이라는 책 제목처럼 저자는 눈앞에 실재한 앞모습에 국한하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뒷모습까지 읽어낸다. ‘대리석 덩어리 속에서 조각상의 형태를 보는 눈’! 이런 사유야말로 현상이 아닌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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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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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 편 - 개정증보판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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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의 일이다. 홀로 떠났던 파리 여행에서 몇 가지를 쇼핑했는데 그중 마음에 쏙 드는 것이 빌레로이 보흐의 찻잔과 접시 시리즈다. 단종된 시리즈인데 방브 벼룩시장에서 운 좋게 살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예쁜 잔에 커피를 마실 때면 파리 생각도 나고 여행가고픈 마음도 다시 솟구친다. 도자기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좋은 그릇으로 내가 나를 대접해주는 느낌. 좋은 도자기는 이런 매력이 있다.



<유럽 도자기 여행>은 그런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도자기 여행 시리즈 중 동유럽편으로 이번에 개정 증보판으로 새로 나왔다. 그는 마이슨을 시작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의 도자기 회사와 박물관 등을 두루 돌아보며 각각의 도자기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갖고 싶은 테이블웨어와 아름다운 피겨린이 유럽의 풍경들과 함께 등장하니 보는 눈도 그 화려함에 금세 빠져든다.

 

작가의 여정 중 역시나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일본 도자는 조선 도공 이삼평으로부터 시작됐다는 드레스덴 박물관 입구의 글귀다. 책에는 마이슨과 드레스덴, 쯔비벨무스터와 로젠탈, 빌레로이 보흐, 로열 비엔나, 헤렌드 등 자기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익숙한 여러 이름이 등장한다. 책은 글 반, 사진 반이라고 할 만큼 사진이 풍성하게 실려서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사진의 선명도가 약간 떨어지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17세기 유럽 왕실에서 시누아즈리(Chinoiserie)’라고 하며 동양의 자기에 열광하던 시절. 폴란드 왕이자 작센 선제후인 아우구스투스 1세는 도자기 궁전을 완성하기 위해 아시아의 자기와 비슷한 마이슨 복제본을 만들어냈다. 2017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왕의 보물전전시에는 당시 마이슨이 복제했던 도자기와 중국의 청화백자가 나란히 전시된 적이 있다. 중국 청화백자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한 마이슨 제품을 같이 전시하였는데, 당시만 해도 마이슨은 모방의 초기 단계라 그림의 수준은 원본에 비해 많이 떨어져 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마이슨지만 거듭된 연구와 노력의 결실로 지금은 오히려 동양인들이 유럽 도자기에 열광하고 있다.

 

책을 보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쯔비벨무스터의 원조가 독일 마이슨이었다는 점이다. 제품을 쓰면서도 이제껏 체코 회사라고 알고 있었는데, 체코의 것은 비싼 마이슨 제품을 대신해 서민들을 대상으로 대량 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체코의 시골 펜션에서 서빙 식기로 나온 쯔비벨무스터를 두고 원조 부심을 부리는 여주인의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또 훈데르트 바서는 건축과 회화로 먼저 만났었는데 사금파리와 도자기 타일 위주로 다시 보게된 점도 반가웠다. 다시 여행이 자유로워지는 때가 오면 또 다른 빌레로이 보흐를 만나러 유럽 골목을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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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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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감 - 일본 유명 작가들의 마감분투기 작가 시리즈 1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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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감>이라는 제목을 본 순간 만감이 교차하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게다가 슬럼프’, ‘쓰지 못한 원고’, ‘위가 아프다’, ‘한밤중에 생각한 일’, ‘메모’, ‘원고료등등 내용을 읽기도 전에 공감 가는 소제목들이라니! 나 역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마감이라는 두 글자는 작가에게 참 묘한 존재다. 애증이자 필요악 같은 이 마성의 단어는 작가에게 두통과 불면증과 소화불량의 원인인 동시에 적당한(?) 긴장감으로 글을 쓰게끔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책상 앞에는 온종일 앉아 있었으면서 결국 한 줄도 못 쓰고 또 하루를 허비했다 싶은 날이면, ‘그냥 얼른얼른 쓰고 편하게 쉬지하는 자책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내킬 때는 A4 한두 장쯤 순식간에 써질 때도 있지만 그런 운 좋은 날은 어쩌다 한 번. 이건 놀아도 노는 게 아니고, 일해도 일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크게 진척도 없는 갑갑함을 늘 등에 지고 산다. 대부분은 자책과 자괴감의 연속이지만, 그 끝에 마음에 드는 된 글 한 편을 완성했을 때의 후련함과 쾌감은 꽤 짜릿하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은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같은 일본의 유명 작가들이다. 책 속의 작가들은 마감에 대해 저마다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작가들은 글을 쓸 수 없어 괴롭고, 그래도 써야 해서 괴롭다. 고작 열 매 내외의 원고에 사흘이고 나흘이고 끙끙대며(다자이 오사무), 쉬이 들어오지 않는 원고료를 손꼽아 기다린다(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실제 아픈 것보다 더 아픈 척 엄살을 부리거나(우메자키 하루오) 노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이 구분되어 있지 않으니 일도 놀이도 어느 하나 깊숙이 몸에 배지 않아 늘 안절부절못하며(다니자키 준이치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중 압권은 막상 쓸 수 없는 이유를 쓰려고 하니 이게 도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다카무라 고타로)는 말이었다.

 

내공이 더 쌓이고, 마감을 자주 하다 보면 자책과 자괴감이 좀 덜해질까 했는데, 이런 유명 작가들도 마감 앞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구나 싶으니 오히려 위로가 된다. 마감은 다가오고, 글은 안 풀리고,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자책하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 인간적이고 때론 귀엽기까지 하다. 길게는 100, 짧게는 50년 전에 주로 활동한 작가들이지만, 마감이란 단어 앞에서는 다들 비슷하구나 싶다.

 

 

책은 작가들의 마감 이야기에 이어 편집자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그중 눈에 띈 것은 이 페이지는 인쇄 실수가 아닙니다라며 백지로 내보낸 지면이었다. 이어진 편집 후기에는 마감 시간에 못 맞춘 작가와 그 충격으로 며칠 몸져누웠다는 담당자, 대혼란 상태인 편집부 등 웃픈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장정일 작가는 추천글에서 이 책은 발문도 해설도 필요 없는 책이라고 했는데 아마 마감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만하다. 수많은 책을 내고 꾸준히 글을 쓰는 그 역시 내 글은 아무도 안 봐, 아무도 안 봐하는 주문을 건 덕분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글이란 내 마음대로 써서, 내 마음대로 발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직업작가의 자유와 구속에 대해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에도 깊이 공감이 되었다. 글쓰기의 괴로움을 경험해봤거나 그 경험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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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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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나고 자라는 대부분의 요즘 아이들을 보면 저 아이들이 을 떠올릴 때는 머릿속에 어떤 풍경이 그려질까 궁금할 때가 있다. 배경은 추억을 지배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집 안팎에서 마당과 골목, 지붕, 마루, 다락, 벽장, 지하실, (창고), 수돗가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자란 우리 세대와 아파트만 경험하고 자란 그들 세대의 집은 아무래도 좀 다를 것 같다.

 

이 얘기를 집이 아닌 도시에 적용하면 우리 역시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시는 이미 존재했고, 도시에 살건 산속에 살건 우리 머릿속에는 도시라는 개념이 이미 존재했으니까. 요즘 아이들이 어디에 사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아파트를 알고 있듯이 우리는 도시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시를 근원부터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그는 문명의 발상지인 우르크, 요한계시록과 히브리 성경의 영향을 받은 바빌론, 목욕탕과 식도락 같은 쾌락의 도시 로마와 바그다드,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였던 리스본, 암스테르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카페, 마천루 등으로 상징되는 런던, 파리, 뉴욕 같은 도시의 배경,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중에는 한국의 송도도 등장한다. 저자는 송도를 첨단기술로 완벽히 통제되는 도시라며 미래가 아닌 현재에 실제로 존재하는 유비쿼터스 도시 Ubiquitous City라고 설명하였다. ‘역동성으로 꿈틀대는 미래 도시의 예로 서울과 라고스를 들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수렵, 유목 생활을 하던 인류에게 도시는 발상의 전환이자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었다. 한 곳에 정착한 것은 농경 시대의 마을도 마찬가지지만, 친족공동체적 성격의 마을이나 집단과 달리 도시는 사회적이고 계약적인 관계가 존재하는 한 차원 더 발전한 문명인 셈이다. 저자는 도시를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하면서, 도시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문명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르크에 대해 읽을 때는 전에 읽었던 수메르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고, 여행을 갔던 파리나 로마의 모습도 새삼 그리워졌다. 세계의 도시 문명을 다루는 책에서 만나는 서울 이야기도 반가웠고, 아직 가보지 못한 송도 신도시도 궁금해졌다.

 

<메트로폴리스>는 분량만으로도 650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이다. 흔히 벽돌책이라고 하는 이런 책들은 읽기도 전에 일단 분량만으로도 사실 좀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이게 또 한번 시작하고 나면 계속 다음 페이지로 끌고 가는 묘한 힘이 있어서 책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확실히 전에 몰랐던 새로운 지식이나 생각을 얻는 묘미가 있다. 꽤 많은 분량의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의 뭔지 모를 뿌듯함은 보너스다.

 

이런 벽돌책은 독자의 지구력도 필수지만,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필력이 필수다. 저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를 수차례 걸어보고, 다니면서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완성했다. 지식과 경험이 바탕이 된 저자의 내공은 일상처럼 무감해진 도시를 문명의 근원부터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책은 도시와 도시의 문명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각기 개별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어 어느 도시부터 먼저 읽어도 괜찮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도시의 문명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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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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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라고 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 그의 대표작을 떠올릴 수 있는 대문호다. 러시아뿐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그의 대표작들은 원작인 소설뿐 아니라 영화나 연극으로도 자주 공연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종교 저술도 다수 남긴 사상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부유한 지주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릴 때 양친을 여의고 한때는 방탕한 생활에 빠지기도 하고, 전쟁에 참전하기도 한다. 그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사실주의 문학 작품을 주로 썼지만, 중년 이후로는 신학과 성서 연구에 몰두하며 사상가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그는 기존의 기독교에 염증을 느끼고, 청빈과 금욕을 중시하는 새로운 기독교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 자신이 쾌락적이고 안락한 삶을 떨쳐버리지 못해 자괴감에 빠져들고, 가족들과의 불화도 심해져서 결국 가출을 하고 만다. 가출하여 기차 여행을 하던 중에 걸린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되고, 톨스토이는 결국 간이역의 역장 집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문호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이번에 읽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의 단편모음집이다. 책에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롯해 바보 이반’, ‘두 노인’,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작품들은 짧은 단편이지만 그 안에는 허를 찌르는 순수함,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비극과 페이소스가 반전을 만들어낸다.

 

러시아의 농노제가 폐지되는 시기 전후를 살았던 톨스토이는 영지의 농노들을 대상으로 계몽적인 시도를 하기도 하고, 농민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땅을 일구고, 손수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소중함을 아는 순박한 농민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톨스토이가 추구했던 계몽적 기독교의 사상이 작품 곳곳에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의 왕국에서는 지켜야 할 풍습이 하나 있었다. 손에 굳은살이 있는 사람은 식탁에 앉고, 없는 사람은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바보 이반)

 

영원히 자기 것이 된 땅에 나가 새싹과 목초지를 보고 오면서 빠홈은 기뻐 견딜 수가 없었다. 풀이 자라고 꽃이 피는데,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렇게 잘 자라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아브제이치는 꿈이 거짓이 아니었고, 바로 그날 구원자가 그에게 오셨으며, 자신이 구원자를 대접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

 

아브제니치의 일화처럼 성인을 만나고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이야기는 문수보살을 만난 세조의 전설이나 삼국유사의 노힐부득 달달박박같은 불교 설화에도 종종 등장하는 모티프다. 표현하는 말이 사랑이건 자비건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건네는 마음은 역시 통하는 것 같다.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작가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젊어서의 그는 방탕했고, 말년의 그는 가족과의 불화를 겪으며 굴곡지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의 단편 제목처럼 그는 자신의 삶 자체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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