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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종생기 외 5편 ㅣ 홍신 한국대표단편선 6
이상 외 지음 / 홍신문화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이상(李箱)의「종생기(終生記)」읽기
:‘종생(終生)’을 둘러싼 세 명의 ‘이상(李箱)’의 대화
개인적으로 웬만큼 어렵다는 책들을 나도 좀 읽었노라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적수를 만났다. 살다 살다 이렇게 난해한 글은 처음이었다. 생경스러운 한자어가 꽤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 한국어로 씌어 진 작품인데 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직 근대적 시공간의 구획이 심화되지도 않은 근대의 여명기를 통과하고 있던 동아시아 변방의 이름 없는 문인이 그것도 겨우 현재 내 나이 또래의 한 젊은이가 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도 분간이 잘 안가는 이 희한한 글에 내가 말 그대로 ‘Knock-down’ 되버렸다는 사실을 지금도 인정하기가 당혹스럽다. 역시 나는 이번에도 이상(李箱)에게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었다. 사실「종생기(終生記)」를 읽기 전에도 나는 소설「날개」와「건축무한육각면체」그리고「오감도」시리즈의 몇 편 정도는 읽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나마 읽고 나름대로 이해를 한 글은「날개」가 유일했지만. 오감도는 ‘감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구경’만 좀 해봤다. 이해를 할 수가 있어야 감상이라고 할 텐데, 아쉽게도 나는 이상(李箱)의 그 시 같지도 않은 시들을 경이로움과 불쾌함의 감정을 갖고 그저 구경만 했었다. 경이로움은 이상(李箱)에 대한 감정이며, 불쾌함은 이상(李箱)의 그 시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이었다.
그러니 결국 이번에도 필사적으로 작가 이상(李箱)과 작품「종생기(終生記)」에 관한 다종다양한 연구의 성과물들을 뒤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해석은 천차만별이었다. 시대별로 유행했던 비평이론이나 철학사조가 달랐음을 반영하기라도 하듯이「종생기(終生記)」에 관한 연구사는 흡사 최신 비평이론을 시범적으로 운용해보는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양소진에 따르자면1)「종생기(終生記)」연구의 접근 방식은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분류가 가능하다고 한다. 첫째로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를 둔 논의인데, 김현2)이나 정명환3)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김현은「종생기(終生記)」를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완전히 막힌 길’에 대한 기록으로 해석한다. 둘째, 이상(李箱) 개인의 일생과 관련하여「종생기(終生記)」를 분석하는 전기적 해석의 흐름이 있는데, 김윤식4)과 김성수5)가 이에 해당하는 연구자들이다. 김윤식은「종생기(終生記)」를 해석함에 있어 실제 작가 이상(李箱)의 결핵, 백부와의 관계, 까페여급과의 동거생활 등을 작품과 대응시켜 해석을 시도하였다. 김성수는「종생기(終生記)」를 이상(李箱) 문학의 정점에서 시와 소설, 그리고 산문까지를 포함하여 그의 전 문학을 수렴하고 통어하는 위치에 있는 작품으로 본다. 그는 서술층위와 유성의 양식 그리고 시간의식을 통해 ‘육체적 종언의 상징’이 아니라 ‘이상(李箱) 자신의 문학예술론’으로「종생기(終生記)」의 의미를 추출하였다. 셋째로는 정신분석학적인 증상을 작품에서 추출해내려는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방법인데, 조두영6)이나 권택영7)이 이러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권택영의 경우는 라캉의 ‘증상’ 개념을 이상(李箱)이라는 기표와 작품「종생기(終生記)」에 적용하여 이 작품이 자의식적 과잉의 주체가 죽고 정상적 자의식의 주체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글쓰기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증상으로서의 글쓰기는 텅 빈 기표를 찬란히 승화시켰기에 제아무리 해석해도 여전히 여분이 남는다. 여분을 인정하는 주체가 타자의식이고「종생기(終生記)」를 쓴 이상(李箱)의 주체라는 것이다. 넷째로 서술자에 주목하고 담론 체계를 분석한 비교적 최근의 논의 흐름이 있는데, 문홍술8)과 설영숙9), 김주현10), 박정수11)가 이에 해당된다. 문홍술은 작품에 나타나는 주체분열과 반(反)담론으로서의 언술체계의 분열에 주목하면서 그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인 무의식의 욕망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이상(李箱)이 근대적 지식의 모순을 인식한 탈근대적 인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일본어 텍스트를 통해서는 근대 과학적 지식을 비판하고, 한국어 텍스트를 통해서는 근대적 도시를 비판했다고 주장한다. 특히「종생기(終生記)」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전반부는 경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후반부는 동경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김주현은「종생기(終生記)」에 여러 겹의 서술자가 나타남을 지적하고 다른 문학 작품과의 상호텍스트성을 분석한다. 박정수는「종생기(終生記)」를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의 작품으로 보고 욕망의 문제를 해석하고자 한다. 주체인 이상(李箱)이 자신의 삶과 욕망을 지배하고 아버지의 법을 넘어서고자 하는 (소위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자기 파괴의 여정으로「종생기(終生記)」를 해석한다. 양소진 역시 내가 보기에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대체로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들뢰즈/가타리의 ‘욕망’ 개념을 중심으로「종생기(終生記)」에 나타난 서술 주체 및 인식 대상의 분열 양상을 분석하고 이를 추동하는 욕망을 밝혀내고자 시도한다. 또한 분열의 양상을 분석하여 변화를 통해 새롭게 생성되는 미적 가치를 ‘희극성’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더니즘이나 다다이즘 등의 문예사조적인 의미를 작품에서 해석해내려는 연구 경향이12) 있다. 특히 이상(李箱)의 모더니즘이 이광수의 계몽주의, 염상섭의 리얼리즘과 함께 한국 소설사에 있어 문학적 사고의 한 축을 연 것으로 파악한 서영채13)가 그 대표적인 연구자라 할 수 있다. 서영채의 설명을 따르자면, 문학적 모더니즘은 문학 자체가 지닌 잠재력을 고도화시켜 철저하게 자율적이고 자기 목적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조형해 내고자 하는 의식의 소산이어서, 여기에서 글쓰기의 주체는 일체의 외적 대상으로부터 관심을 철회하여 예술 자체를 향한 의지로 스스로를 몰입시킨다. 이때의 서술 주체는 예술가적 주체 혹은 미적 주체라 할 수 있으며, 이상(李箱)은 바로 이러한 문학적 근대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가라는 것이다. 서영채는 이상(李箱)의 문학에 관한 한 편의 논문과 이를 확대한 한 편의 연구서에서 이상(李箱) 소설의 수사학적 장치와 한국 문학의 근대성의 관계를 일관되게 추적하고 있다. 특히 그는「종생기(終生記)」에 세 층위의 서술자가 혼재함을 지적하고 이상(李箱) 소설의 수사학적 특징을 ‘권태’ 혹은 ‘위티즘’으로 규정한다. 근대적인 질서를 거부함으로써 발생하는 ‘권태’는「종생기(終生記)」에서 ‘진정성 없는 폭로’의 수사로 나타난다. 이상(李箱)은 자기은폐를 양식화함으로써 진정성의 양식에 맞섰고, 또 자신을 고립시킴으로써 자기보존의 양식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종생기(終生記)」라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도 기본적으로는 양소진과 서영채의 글이었다.「종생기(終生記)」라는 텍스트에 총 몇 명의 이상(李箱)이 등장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결국 이상(李箱)의 문학에서 조형되는 서술의 주체와 인식의 대상의 독특성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의 문학세계 전반에서 이상(李箱)이라는 인물 자체가 별도의 텍스트로 만들어지는 가운데, 이상(李箱)이라는 기호는 최소한 세 차원의 인격으로 형상화되고 있다.「종생기(終生記)」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만 26세의 나이로 일본에서 죽은 실존 인물 김해경 곧 작가 이상(李箱)과 그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내적 화자로 창조한 허구적 인격으로서의 작가 이상(李箱)이 존재하며, 작품 속에서 서술과 인식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이상(李箱)이 있다. 각각의 이상(李箱)의 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묘비명이라. 일세의 귀재 李箱은 그 통생(通生)의 대작「종생기」한 편을 남기고 서역기원후(西曆紀元後) 1937년 정축(丁丑) 3월 3일 미시(未時)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卒)하다. 정년 만 25세와 11개월. 오호(嗚呼)라! 상심커라. 허탈이야 잔존하는 또 하나의 李箱, 구천을 우러러 호곡하고 이 한산(寒山) 일편석(一片石)을 세우노라. 애인 정희는 그대의 몰후(歿後) 수 삼인의 비첩된 바 있고 오히려 장수하니 지하의 李箱아! 바라건댄 명목(暝目)하라.14)
그러면 아까 장만해 둔 세간 기구를 내세워 어디 차근차근 살림살이를 한 번 치러 볼 천우의 호기가 내 앞으로 다다랐나보다. 자- 태생은 어길 수 없이 비천한 「티」를 감추지 못하는 딸-- (전기(前記) 사치한 소녀 운운은 어디까지든지 이 바보 李箱의 호의에서 나온 곡해다. 모파상의 「지방 덩어리」를 생각하자. 가족은 미만(未滿) 14세의 딸에게 매음시켰다. 두 번째는 미만 19세의 딸이 자진했다. 아- 세 번째는 그 나이 스물 두 살이 되던 해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게다가 홍댕기를 드려 늘어뜨려 편발 처자(妻子)를 위조하여서는 대거(大擧)하여 강행으로 매끽(賣喫)하여 버렸다.)15)
홍천사 으슥한 구석방에 내 종생의 갈력(竭力)이 정희를 이끌어 들이기도 전에 나는 밤 쓸쓸히 거짓말 깨나 해 놓았나 보다. 나는 내가 그윽히 음모한 바 천고불양의 탕아, 李箱이 자지레한 문학의 빈민굴을 교란시키고자 하던 가지가지 진기한 연장이 어느 겨를에 뼈무르기 시작한 것을 여기서 깨달아야 되나보다. 사회는 어떠쿵, 도덕이 어떠쿵, 내면적 성찰 추구 적발 징벌은 어떠쿵, 자의식 과잉이 어떠쿵, 제 깜냥에 번지레한 칠을 해 내어 걸은 치사스러운 간판들이 미상불 우스꽝스럽기가 그지없다.16)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철천(徹天)의 원한에서 슬그머니 좀 비켜서고 싶다. 내 마음의 따뜻한 평화 따위가 다 그리워졌다. 즉, 나는 시체다. 시체는 생존하여 계신 만물의 영장을 향하여 질투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이리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정희, 간혹 정희의 후틋한 호흡이 내 묘비에 와 슬쩍 부딪는 수가 있다. 그런 때 시체는 홍당무처럼 화끈 달면서 구천을 꿰뚫어 슬피 호곡(號哭)한다. 그 동안에 정희는 여러 번 제(내 때꼽째기도 묻은) 이부자리를 찬란한 일광 아래 널어 말렸을 것이다. 누루(累累)한 이 내 혼수(昏睡) 덕으로 부디 이 내 시체에서도 생전의 슬픈 기억이 창공(蒼空) 높이 훨훨 날아가나 버렸으면 ------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도 한다. 그럼 ------ ------만 26세 3개월을 맞이하는 李箱 선생님이여! 허수아비여! 자네는 노옹(老翁) 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 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 일세.17)
첫 번째와 두 번째 인용문에서 정희를 만난 이상(李箱)이자「종생기(終生記)」라는 작품을 남긴 이상(李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상(李箱)이 배후에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작중인물로서 주인공 이상(李箱)과 일치하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구분되기도 하는 작품 내의 서술자인 작가 이상(李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와 네 번째 인용문에서는 그러한 작가 이상(李箱)과 주인공 이상(李箱)을 일치시키기도 하고 구분하기도 하면서 그 이상(李箱) 혹은 ‘이상(李箱)들’에 대하여 텍스트 밖의 실제 작가 이상(李箱)(김해경)이 배후에서 발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8)
1936년 11월 20일 만 26세 2개월의 나이로 이 소설「종생기(終生記)」를 쓰고 1937년 4월 17일에 만 26세 7개월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실제 종생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의 작가 곧 김해경이 자신의 작품「종생기(終生記)」안에서 주인공 이상(李箱)이 만 25세 11개월의 나이로 묘비명을 쓰게 하고 1937년 3월 3일에 종생하도록 했는데, 이 작품 안에서 주인공 이상(李箱)에 대해 말하고 있는 허구의 작가인 또 다른 이상(李箱)은 주인공 이상(李箱)이 묘비명을 새긴 후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 혹은 “허수아비”로 26세 3개월의 나이를 맞이하기까지 4개월을 더 살았다고 말해주고 있다. 즉 1937년 7월 3일까지 무덤 속에서 시체로 누워서 종생은 이미 했으되 종생기는 끝내지 못한 이상(李箱)으로서 말이다. 실제 작가 김해경은 이미 종생한 이상(李箱)이 종생기를 이제 막 끝낸 이상(李箱)의 “먼 조상”임을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종생기(終生記)」라는 산호편을 남기고 싶어 했던 아니 그전에 이미「오감도」와「날개」를 쓴 바 있는 “천고불양의 탕아”이며 “자지레한 문학의 빈민굴을 교란시키고자 하던” 작가 이상(李箱), 즉 김해경이 “그윽히 음모한” 그 작가 이상(李箱)의 “종생”을 우리에게 들려주며 그리고 ‘이상(以上)’이라는 말과 함께 실제 작품을 탈고한 날짜와 장소를 밝히며 소설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김해경 자신도 5개월 후인 1937년 4월에 사망(종생)하며 사망 후 1개월이 지나서 잡지『조광』을 통해「종생기(終生記)」을 발표한다. 다시 정리하면,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실제 작가 김해경은 자신이 죽기 5개월 전에「종생기(終生記)」라는 소설을 통해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으며 그 작품 안에서 자신이 창조하여 지금까지 자신의 문학관을 분신처럼 대언하게 했던 ‘작가 이상(李箱)’을 실제 자신이 죽고 약 세 달 후에 소설 속 주인공 이상(李箱)의「종생기(終生記)」를 마무리하고 종생하도록 그려놓고 있다. 그리고 김해경 본인은 그렇게 자신의 ‘종생기’이자 ‘유서’와도 같은 이 작품「종생기(終生記)」를 마치 미리 묘비명이라도 써두듯이 남기고 5개월이 지나서 요절한다. 그리고 무덤에서 해골로 한 달 정도를 보낸 후 이 작품은 세상에 1937년 5월에 김해경의 유작으로 세상에 발표된다. 마치 모든 일이 계획된 것처럼 소설과 작가 실제의 삶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에 나는 놀랐다. 정말 김해경이라는 인물의 삶과 작품 안에 세 명의 서로 다른 그러나 또 하나이기도 한 ‘이상(李箱)’이 공존하면서 함께「종생기(終生記)」라는 텍스트를 만들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종생기(終生記)」읽기”가「종생기(終生記)」라는 30페이지도 채 안되는 단편 소설 하나를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결국 ‘이상(李箱)’이라는 한 작가의 삶과 문학 전반을 읽는 것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에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여전히 이상은 내게 어려운 작가이긴 하지만 그를 알아가는 것이 결코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의 문학과 삶에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 양소진,「李箱「終生記」硏究 : 분열 양상의 희극성을 중심으로」, 고려대국문과 석사학위논문, 2003, p1~p3
2) 김현,「이상에 나타난 만남의 문제」,『자유문학』, 1962
3) 정명환,「부정과 생성」,『한국인과 문학사상』, 일조각, 1968
4) 김윤식,「「종생기」의 세계」,『이상연구』, 문학사상사, 1987
5) 김성수,「은폐와 성찰의 문학적 유서」,『이상 소설의 해석』, 태학사, 1999
6) 조두영,「이상초기작품의 정신분석」,『신경정신의학』, 1977
7) 권택영,「「종생기」: 증상으로 읽는 이상 문학」,『한국문학이론과 비평』제29집,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5, p11~p30
8) 문홍술,「이상문학에 나타난 주체분열과 반담론에 관한 연구」, 서울대국문과 석사학위논문, 1991
9) 설영숙,「이상소설의 탈중심적 담론연구」, 국민대국문과 석사학위논문, 1994
10) 김주현,「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서울대국문과 박사학위논문, 1998
_,「「終生記」와 복화술(複話術) - 이상 문학의 새로운 해석을 위한 시론」,『외국문학』, 1994
11) 박정수,「李箱「終生記」연구 : 언어, 욕망 그리고 죽음에 관하여」, 서강대국문과 석사학위논문, 1998
12) 서영채,「이상 소설의 수사학과 한국문학의 근대성」,『소설의 운명』, 1996
김성수,「근대 경험의 현상적 오감도」,『이상 소설의 해석』, 태학사, 1999
권택영,「출구없는 반복 - 이상의 모더니즘」,『이상문학 연구 60년』, 권영민 편, 문학사상사, 1998
권성우,「모더니티와 타자의 현상학」, 솔, 1999
나병철,「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서」, 소명출판, 2000
13) 서영채,「이상 소설의 수사학과 한국문학의 근대성」,『소설의 운명』, 1996
_,「매저키즘과 연애, 탕아로서의 예술가 : 이상」,『사랑의 문법 : 이광수, 염상섭, 이상』, 민음사, 2004
14) 이상,「종생기」,『날개ㆍ권태ㆍ종생기 (외)』, 범우사, 2001, p121
15) 이상,「종생기」,『날개ㆍ권태ㆍ종생기 (외)』, 범우사, 2001, p125
16) 이상,「종생기」,『날개ㆍ권태ㆍ종생기 (외)』, 범우사, 2001, p127
17) 이상,「종생기」,『날개ㆍ권태ㆍ종생기 (외)』, 범우사, 2001, p137
18) 참고로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인용문까지는 양소진, 서영채, 권택영의 해석을 각각 부분적으로 참조하여 종합한 것이며 네 번째 인용문은 서영채 교수의 논리를 내 나름대로 전용하여 찾아낸 본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