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계급사회 우리시대의 논리 11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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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국민이 다함께 읽고 한 자리 모여 세미나를 해야 할 책!”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 2008년 8월)

 때로는 장황하게 서평을 쓰는 것마저 민망하게 느껴지는 책이 있다. 그저 “일단 읽어 봐라”, “반드시 읽어라”, “읽고 나서 얘기해보자”, 뭐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책이 가끔 있는 법이다.

 작년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가 단연 그런 책이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이 제기한 ‘청년실업’ 혹은 ‘청년백수’는 단 순히 20대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10대들을 입시라는 족쇄를 채워 인질로 잡아놓고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 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베틀 로얄’의 무한경쟁사회”이자, 그러한 “세대 간 경쟁의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20대를 윗세대(특히 386세대)가 악랄하게 착취하고 있는 사회”이며, “민주화라는 이데올로기의 이름하에 더욱 강화된 신자유주의, 독과점의 강화로 특징지어지는 승자독식사회”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전체적 모순 구조가 20대들에게 이르러 특수화된 사례가 바로 ‘88만원 세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책은 결국 세대를 막론한 한국 사회 전체 구성원들을 향해 긴급히 토론을 요구하는 책이었고, 그 자체로 하나의 ‘아젠다(agender)’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올해 그 역할을 할 책이 바로 손낙구(http://blog.daum.net/bomnal3)의 『부동산 계급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88만원 세대』보다 더 보편적이고 그만큼 오래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그 핵심부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는 책이다. 다행히 책의 내용이나 구성은 그리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정말로 고등학생 수준의 독해 능력만 되어도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쉽다고 그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다. 이 책이 갖는 여러 가지 측면의 중요한 담론적 가치와 별개로, 지금까지 나온 많은 양의 부동산 관련 책들과 대조하여 특징적으로 구별되는 점을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이 책이 부동산 투기의 문제를 경제사회학적 차원에서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그 실상을 정치사회학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니까 부동산 재테크의 비법 따위나 알려주겠다고 선전하는 수다한 책들과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른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은 그 모든 이야기를 철저하게 통계로 뒷받침하려는 시도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냈다. 부동산과 관련한 좌파적 혹은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의 비판적 담론이야 계속 있어 왔지만 정작 부동산 문제가 ‘언제부터’ ․ ‘어떻게’ ․ ‘왜’ ․ ‘누구에 의해’ 이 지경이 되었나 하는 문제의 실체는 보다 정교하게 해명되지 못하고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도덕적 비판으로만 그치고 말았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그와 같은 기존 담론의 한계를 실증적인 자료와 통계를 무기삼아 한결 진일보된 방법론으로 돌파하고 있다.

 저자가 제기하는 한국사회 부동산 문제는 너무 빨리 오른다→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부동산 보유 여부 및 부동산가격 인상 여부에 따라 소득 및 재산 격차가 순식간에 심화된다→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사유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도로 요약이 가능할 듯싶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부동산은 당대 한국 사회에서 계급적대 혹은 빈부격차의 주범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한국 사회의 계급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근본적 모순이 부동산에 있는 것이다. 부동산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 가치이다. 당연히 이 부동산 소득 격차가 곧 계급 격차로 이어지고 있으며, 한번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게 됨에 계속 부자가 되고,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영원히 가난한 신세를 못 벗어난다. 부동산 소득 수준이 곧 계급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격차가 교육, 문화적 향유 수준의 차이를 넘어 건강 및 평균수명의 차이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 앞에서 독자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내 땅 내 집 내 맘대로 한다’는 논리는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는 물론이고 자본주의사회 안에서도 ‘돌연변이’에 가까울 정도로 극단적으로 비뚤어진 부동산관이라고. 이토록 천박하고 무례한 자본주의적 투기꾼의 궤변이라고나 할 억지 논리는 이것을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의 극단적인 사유재산 제일주의, 정부의 주택정책, 부동산 학자와 언론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수 십 년 동안 투기와 불로소득의 사유화를 비호하는 신념체계로 우리 사회 깊숙히 무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늘도 부동산 계급 카르텔은 끊임없이 부동산 신화를 불러들여 불로소득을 얻기 위한 새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런데 어떡하랴? 부동산 재산만 382억원(그 중 빌딩 재산이 무려 330억에 달하는)을 가졌다고 신고하신 분 그러니까 부동산 공직자 종합 1위를 차지하신 그 분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며, 집권여당의 의원들은 물론이고 청와대 비서진과 행정부 고위 공직자들 대다수가 부동산 투기로 그간의 부를 축적한 이들인데, 과연 부동산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2008년 초 현 정권의 첫 환경부 장관에 내정됐다가 땅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박 모 교수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며 항변했다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는데,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농사도 안 지으면서 농지를 사랑해서 땅을 사는 게 바로 투기라는 아주 상식적인 진리를 말이다.

 이 책을 읽지 않고 현 시기 한국 사회의 위기와 고통에 관해 논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마저 들 지경이다. 문득 올 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쇠고기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를 두고 ‘국민 MT’라고 한 어느 역사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그에 빗대어 나는 이 책이 ‘국민MT’에 가져가 다함께 밤새워 읽고 ‘세미나’라도 해야 할 그런 책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세미나 같이 한 번 해보고 싶으니 독자 여러분들도 꼭 좀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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