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 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 당비의생각 1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광장의 정치에서 다시 현실의 문화로”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산책자(2008년 6월)
 

   

당대비평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흔히 당비라고 불렀던 이 잡지는 한국의 비판담론의 공간에서 꽤나 특이한 위치를 차지했다. 일단 우파적 성향의 잡지는 결코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숨겨진 야만과 모순을 읽어내는 시각이 너무나 불온했고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좌파라고 할 수도 없었던 것이 이들의 비평 대상에 바로 좌파 또는 진보진영이 단골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 잡지는 여타의 다른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비평지가 다루지 못했던 신선한 기획들을 많이 선보였다.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기억의 정치학, 우리 안의 이분법, 세대 갈등, 한국 사회의 고통과 차별의 구조, 민주화체제의 이면, 한국 사회의 소수자들, 테러의 정치학 등등.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6월 말 당대비평 기획위원회의 이름으로 책이 새로 하나 나왔다. 책의 제목만 봐도 다분히 촛불집회를 의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라는 제목에 “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서동진이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민주화 체제가 마감되고 난 지금 그 체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다양한 각도에서 되돌아보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를 사고하기 위해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쟁점들을 1부에서 검토한다. 예컨대 경제주의에 함몰된 기업형 사회의 등장(홍기빈, 「CEO 대통령, 주식회사 코리아」), 그 누구에게도 견제 받지 않은 채 사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 귀족들의 득세(홍세화, 「사회 귀족 체제와 촛불 광장」),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혹은 대표되는 새로운 여론형성 문화의 기저에 자리 잡은 ‘네티즌’들(이상길, 「인민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기러기 가족과 이주자 가족 혹은 동성 생활공동체, 반려동물 가족 등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야 할 가족 형태의 등장(임옥희, 「욕망의 민주화는 가족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등을 차례로 살피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민주화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체제의 변화를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부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새로이 등장한 권력들에 대한 탐색과 함께 정치적 힘들이 작동하는 장소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들도 돋보인다.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는, 그리하여 오히려 정치의 공간이 소멸되는 상황들(서동진, 「소송하는 사회, 불평하는 주체」), 국가가 보장해야 할 국민의 안전이 보험으로, 즉 개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되는 현실들(이택광, 「자본주의라는 공포물에서 살아남기」), 제도권의 순치로 실천적 교양의 자리를 잃어버린 지식인의 초상들(김원, 「대학 속의 지식인,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빈곤의 위협에 처한 이들에게 책임을 환원시키는 능동적 복지의 허상들(최예륜, 「생산적 복지에서 능동적 복지로」)을 차례로 접하면서 우리는 이 시대 빈곤한 정치적 삶의 형식들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즉 이러한 민주화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형식을 통해 빚어지는 사회적 주체라고 하는 것들이 능동적인 시민이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역설하는 ‘21세기의 성공적인 인재’이든 결국엔 ‘신자유주의적 발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피지배자의 형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섬뜩한 진실을 깨닫게 되는 것.

 

닫는 글로 실린 김진호의 글이 특히 압권인데, 지금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들의 저 축제가 어쩌면 사회적 배제 담론으로 표상되는 빈곤계층에 대한 사회적 학살을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던지고 있기 때문. 시민사회의 주변부를 배회하고 있는, 오로지 외국의 학계에서 빌려온 언어를 통해서만 부분적으로 묘사되고 있을 뿐인, 그래서 존재하고 있으나 전혀 만날 수 없고, 우리 주변에 엄연히 살아 있으나 단 한 번도 그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과연 사회란 무엇이고 또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덧붙여 한 가지 생각해볼만한 것이 있다. 이 책을 만든 이들은 아마도 “광장의 문화”가 “현실의 정치”와 대립되는 그 무엇으로 상정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촛불집회는 문화적 축제의 수준을 넘어 그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탄생시키고 이를 통해 정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까지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따라서 광장의 문화가 있고, 현실의 정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부터 이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광장이 정치가 되었고, 오히려 현실이 문화가 되어버린 세계 앞에서 우리는 질문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광장의 정치 즉 현실에 존재하지 못하던 정치를 창출한 그 축제의 공간이 현실의 문화의 한 단면은 아닌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이제는 거의 다 꺼져버린 촛불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촛불집회가 우리에게 보여준 정치적 삶의 형식과 그것을 실행할 정치적 주체들의 형상을 발굴해나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작업의 첫 번째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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