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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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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기계: 우리의 책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는 『천개의 고원』(자본주의와 분열증 제2권, 1980) 서론에서 ‘책’(text)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책은 그 ‘외부’를 갖는다. 여기서 외부란 단순히 책이 쓰여진 배경으로서 역사적ㆍ문화적 맥락(context)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그 책과 만나는 다른 책들, 그것과 대립되는 다른 사유체계들에서 이미 쓰여진 텍스트를 만날 때 발생하는 ‘사건’들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책의 외부는 또 다른 책일 수도 있고, 억압과 폭력으로 지칭되는 절망적인 현실일 수도 있고, 그러한 절망적인 현실을 변혁하고자 하는 운동이나 혁명의 시대적 열망일 수도 있고, 혹은 지금 어딘가에서 그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독자의 삶의 자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책이 외부를 갖는다”는 말은 책이 어떤 외부와 만나고 접속하는가에 따라 다른 텍스트로 작동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즉 경우에 따라 책은 일종의 ‘기계’적 장치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책이란 각각의 ‘의미-세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외부와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작동하고, 그 외부에 의해 다른 ‘책-기계’로 변환된다고 말한다.

‘책-기계’는 그 각각의 외부와 접속하여 작동하면서 그때마다 다른 사건의 ‘효과’를 생산한다. 책이란 이미 만들어진 채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어떤 외부를 만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우리 앞에 만들어내는 ‘기계’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다른 세계 속으로 끌어내는 것이고, 그것으로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저 유명한 문장, “철학자들은 그 동안 세계를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책’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신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그러니까 2007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20대들은 상위 5% 정도만이 한국전력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위협적으로’ 예언하는 이 책 『88만원세대: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은 그런 위협과 함께 곧바로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선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책-기계’로서 자신의 사명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오늘 대한민국의 20대들이 마주하고 있는 절망적인 세계―월 88만원 정도를 평균임금으로 받으며 살아가야 될―를 냉혹하게 보여주는 책인 동시에, 역사의 갈림길 위에서 조승희처럼 총을 들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전 세대인 386처럼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 것인가를 묻는,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이 세계를 단호히 부정하고 다른 세계의 ‘발명’을 위해 싸울 것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즉시로 사용해야 할 ‘무기’로서의 ‘책-기계’이다.

 

슬로건: 88만원 세대여,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책 표제이기도 한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는 마케팅 대상으로서의 용어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이름조차 없는 20대들에게 저자들이 붙인 이름인데, 20대의 95%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 아래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한 수치에 근거한 것이다. (저자들은 이 ‘88만원 세대’를 ‘승자독식 세대’, ‘배틀 로열 세대’라고도 부른다). 우리의 바로 이전 세대인 386세대는 ‘선동열 학점’이라는 0점대 학점을 받아도 직장을 골라가며 취직을 했지만, 지금의 1O대와 20대는 기껏해야 주유소나 편의점을 떠도는 ‘알바 인생’이거나 비정규직 신세다.

이런 현상은 일본의 ‘버블 세대’, 유럽의 ‘1천유로 세대’, 미국의 ‘빈털터리 세대’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훨씬 빠르고 훨씬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88만원 세대』는 이런 세대 간 불균형이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독점화가 진행되면서, 정치적 자기 보호 능력이 없는 지금의 20대에게 그 피해가 집중된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플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도 이미 닫혀진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젊은 세대를 볼모로 한 ‘인질 경제’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88만원 세대』는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들며, 세대 균형을 되찾는 길은 토플 점수가 아니라 ‘바리케이드와 짱돌’이라고 역설한다. 그렇담 설마 저자들은 정말 우리더러 거리로 나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죽창을 들고, 짱돌이나 화염병을 던지며 혁명의 시대라 불렸던 1980년대의 우리 선배들처럼 그렇게 가열찬 투쟁을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그런 식의 단순하고 얕은 사유를 결론이나 해법으로 제시하는 책은 절대 아니니까.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인 바리케이드와 짱돌의 투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읽어보고 확인하기 바란다.

다만, 여기서는 저자가 해법 이전에 미리 제시하는 몇 가지 제약 조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소위 ‘혁명’이라는 방식을 쓸 수 없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이나 동학란 아니면 농민란과 같은 혁명 혹은 난(亂)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와 같이 세대 간 문제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에서는 혁명과 같은 그런 사회변화 프로그램은 도구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둘째, ‘세계화’라는 조건이 붙는다. 흔히 좌파들은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이 문제의 해법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세계화라는 현상은 이미 한 나라가 정지시키거나 대안을 마련할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설령 할 수 있다 해도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포디즘’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것은 앞의 세계화와도 결부지어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가 스스로 임금을 깎아서 과거 수준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코 우리의 선배들(386세대)의 오늘을 있게 한 ‘과거’가 지금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 책의 주제이자 분석대상인 ‘88만원 세대’, 바로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이 책의 일차적인 독자가 되어야 한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하는 슬로건(명령어) 하나로 한국 사회 초유의 신빈곤 세대를 창안했을 뿐만 아니라, 그간 정치적으로건 경제적으로건 마케팅의 대상으로 밖에 호명되지 못하던 20대라는 이 불특정한 대중의 덩어리들을 세대론적으로 묶어 내어 한국 사회 전체 진보와 변혁의 키를 쥐고 있는 하나의 새로운 정치적 주체집단으로까지 구성해냈다.

‘명령어의 순간성’은 ‘슬로건의 순간성’으로 치환하여 말하는 순간 슬로건(명령어) 자체에 매우 결정적인 요소임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모든 슬로건에는 시의적절한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지나면 부적절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의 순간성은 그 슬로건의 호명 대상인 ‘88만원 세대’, 바로 당신과 내가,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그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다함께 모색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도 입증될 수도 없는 것이란 얘기다. 그럼, 이제 당장 이 책을 사서 읽도록 하자.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때늦은 후회하는 우리가 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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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88만원 세대>를 읽으며...
    from 영화진흥공화국 2007-09-19 14:21 
    회사에서 맡은 연구 주제 중에 하나가 미래전략이라서 계속 이런 주제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이 아니라 오늘 낮)에 읽은 책이 이 . 노바리 님의 블로그에서 한번 언급한 걸 읽었고 http://vedder.tistory.com/104 그 이후 어디선가 책의 내용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기사를 읽으면서 이 책은 꼭 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핵심적인 구도는 개혁-보수, 민주-반민주..
 
 
 
자아란 무엇인가
앤서니 엘리엇 지음, 김정훈 옮김 / 삼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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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이래로 근대 철학에서 ‘자아’(self)는 자신의 의도를 완벽하게 지각하고 세계 내의 자율적인 존재로서 완전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성과 지적 능력의 인도를 받는 존재를 지칭할 때 사용돼 온 용어이다. 물론 철학사에서 이러한 자아 개념은 끊임없이 비판되고 수정되어 왔다. 그래서 현대 철학에서는 ‘자아’라는 개념 대신에 ‘주체’(subject) 혹은 ‘주체성(subjectivity)’이라는 개념이 좀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아와 주체에 대한 개념적인 구분은 다음과 같다. 자아는 흔히 “내가 말이야”라고 말할 때의 그 ‘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관습적인 관점에서 ‘자아’는 언어를 생각의 전달 도구로 사용한다. 자아는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말하고, 자기가 말하는 바를 의도한다. 곧 자아는 주인으로서의 ‘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의 장소를 ‘주체’로 표시하는 것은 관점의 일대전환을 요구한다. 주체들은 자기를 형성하는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것, 즉 ‘무의식’이라 이름 붙여진 차원이 존재하기까지 한다. 즉, ‘나도 나를 모르겠어’라고 말할 때의 목적어 ‘나’가 주체인 것이다. 그 무의식으로서의 ‘나’가 표시하는 것은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 욕망과 긴장, 에너지, 억압 등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경험은 ‘자아’로서 인식되는 경험이 아니라, 주체 자신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을 소유하는 경험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는 이처럼 자아에서 주체로 가는 철학적인 사유의 비판적 발전의 맥락과는 별도로 여전히 ‘자아’라는 개념의 이론적, 분석적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만나 볼 책이 바로 그러한 자아 개념의 철학적 해체의 유행을 거스르며(혹은 자극을 받으며), 자아의 사회적 구성에 관한 물음, 개인이 자아의 서사를 짜는 데 사용하는 상징적인 재료들에 관계된 논쟁, 자아 형성이 문화와 사회의 재생산이나 붕괴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관련된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사회과학적 자아 개념과 이론의 연구들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 대학의 사회정치 이론 교수이며, 비판이론 센터 소장으로 재직 중인 사회학자 앤서니 엘리엇이 쓴 이 책(원제『자아의 개념들 Concepts of the Self』, 2001)은 사회과학에서 개념화ㆍ이론화해 온 ‘자아(the Self)’에 대한 현대의 논쟁을 명료하게 소개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사회ㆍ정치 이론, 사회학, 사회심리학, 문화연구, 젠더연구 등의 분야를 공부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자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을 위한 유용한 입문서인 이 책은 학제간의 관점들을 통합하는 새로운 길을 터놓고 있다. 저자인 앤서니 엘리엇이 사회학자로서 자신의 전공분야인 상징적 상호작용론, 근현대 사회학이론을 넘어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스트 이론과 퀴어 이론, 정신분석학(프로이트-라캉-지젝으로 이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정체성의 정치학 등의 다양한 사상적 전통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아에 관한 폭넓고도 명료한 논의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엘리엇은 자아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 사회 이론가와 문화 분석가들에 초점을 맞추어, 자아 정체성과 자아성과 사적 정체성의 경험을 해명해 온 주요한 연구들을 상세하게 조망하는데, 그전에 먼저 자신이 지지하는 주요한 사회학적 전통의 견지에서 자아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전제하고 있다. “자아는 개인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벼려 내는 상징적인 기획이다. 자아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더 넓게는 사회를 인도하는 지향점을 주는 상징적인 기획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아는 상징적으로 공들여 만들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 동기와 다른 사람들의 행위 동기를 해석하기 위해서, 정체성의 서사를 이야기하고 다시 이야기하느라고 상징적인 재료들(언어, 이미지, 기호)을 이용한다. 어떤 논평자들은 그러한 상징적 또는 해석적인 영역들이 자아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의 본질적인 매개체가 아니라는 주장을 해왔다. 이러한 주장에는, 자아를 개인의 자기 해석이나 개인을 둘러싼 사회 세계와는 상관없이, 대상으로 놓고 연구할 수 있다는 가정이 들어 있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상 내가 이 책에서 개진하려고 하는 한 가지 주장은, 개인적인 주체나 인격체의 자기 해석과 분리해서는 자아를 충분하게 연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론, pp.12-13)

이러한 자아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를 가지고 1장 ‘자아, 사회, 일상생활’에선 자아 문제가 어떻게 사회학 안으로 들어왔는지를 살핀다. 엘리엇에 따르면, 20세기의 사회학 이론들은 자아의 구성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무기들을 제공했다. “나는 자아가 사회적 또는 정치적 개념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개념이라는 그러한 생각에 의문을 던지면서 이 책을 시작했다. 또한 나는 개인적 주체성이란, 자아가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행위 주체가 아니라, 문화의 의무 사항과 사회적 삶의 요구들을 개인이 내면화하고 그 과정에서 대응하는 방식의 산물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이 모든 사회학의 중심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아의 사회학은 친밀성과 사적 생활의 변동을 열심히 탐색하지만, 자아 경험의 내적 세계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회학적 자아 이론의 맹점은 자아의 비합리적인 욕망과 사회문화적 질서의 억압적 성격을 간과한다는 데 있다. 정신분석학이 문제 삼는 것이 다름 아닌 사회학에서 말하는 단정하고 단단한 이성적 자아이다. 사회학적인 접근과는 달리 정신분석학은 자아를 무의식적인 억압과 환상에 의해서 형성되는 허구적 구성물로 파악한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자아의 자율성과 고결성과 독립성이야말로 인간의 나르시시즘이 만들어낸 환상이자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장 ‘자아의 억압’에서는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억압된 무의식은 자아가 자기 이해와 자기 인식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프로이트의 생각은 다양한 문화 분석가와 사회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허버트 마르쿠제부터 슬라보예 지젝에 이르기까지 자아에 대한 프로이트의 생각은 급진적인 사회 비평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적 연구가 이룬 개념적인 성과와 한계를 모두 보여준다.

3장 ‘자아의 테크놀로지’의 주인공은 미셸 푸코. 그가 자아, 권력, 언어 혹은 담론의 분석에 기여한 바를 검토한다. 개인이 권력의 체계를 통해 자아와 개인적 주체성의 수준에서 자신을 가두어 놓는다는 사실과 그러한 권력의 체계를 밝혀내려는 푸코의 시도를 논의한다. 푸코는 자아가 어떤 권력기제와 테크놀로지를 통해 생산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푸코에 의하면 의료 가부장들, 종교 사제들, 상담 치료사 등과 같이 테크놀로지를 가진 전문집단과 제도적 장치들은 자아의 전방위 감시체계이다. 이렇게 본다면 푸코에게 치료사(therapist)는 치료의 미명 아래 개인에 대한 지식과 고백을 얻어내는 정신의 강간범(the rapist)과 다를 바 없다. 이에 대해 엘리엇은 푸코의 선정적인 주장과는 달리 자아가 사회 권력에 일방적으로 순응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4장 ‘자아, 섹슈얼리티, 젠더’에선 낸시 초도로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또한 젠더 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에 대한 주디스 버틀러의 주장을 살펴보고 있다.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급진적 이론가들이라고 볼 수 있는 버틀러와 시지윅은 남성 중심적인 자아 이론에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도입함으로써 퀴어 정치성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엘리엇은 과격한 좌파 페미니스트들의 추상적 급진성이 오히려 반동적인 현실과 맞물리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탈근대성에 관한 논쟁을 다루는 5장 ‘탈근대적 자아’에서 저자는 왜 포스트모더니즘이 자아성에 대한 오늘날의 경험에 정서적 활기를 불어넣으면서도 동시에 경험을 어지럽히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범주로서의 자아 개념을 인정하는 것이 실천의 장을 여는 데 유효한 것으로 이해한다. 다른 말로 하면, 자아를 근대적이나 후기 근대적, 혹은 탈근대적이라고 하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체성들의 놀라운 혼합이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정신 상태와 자아 형태들은 종종 광적인 파괴와 폭력적 합리성에 사로잡힌 채로 계속된다. 전 세계에 걸친 인종적·민족적 갈등이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자아 정체성과 자아의 새로운 형식들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탈전통적이고 탈근대적인 방식들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아직 완전히 탈근대적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탈근대적 사회 세계가 언뜻언뜻 보인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회과학의 도전은, 달라진 사회적 환경이 지구를 휩쓰는 상황 속에서 탈근대적 자아, 혹은 자아들의 다원성과 다양성에 새로이 직면하는 것이다. (5장 탈근대적 자아, pp.235-236)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미덕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책은 자아라는 자칫 딱딱하고도 복잡하게 느껴질 법한 사회학적 개념을 대중들에게 흥미롭고도 유용한 성찰의 주제로 소개하고 있다. 둘째, 이 책은 주제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독자에 자아 및 자아 정체성과 관련된 최근의 사회학 및 문화 연구 분야의 이론 지형을 가늠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조지 허버트 미드, 허버트 블루머, 어빙 고프먼, 앤서니 기든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빌헬름 라이히, 자크 라캉, 슬라보예 지젝, 미셸 푸코, 낸시 초도로우, 줄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장 보드리야르, 브라이언 터너, 지그문트 바우만 등 엘리엇이 다양한 이론을 재단하는 잣대는, 독자가 엘리엇의 주제에 동의하는 만큼의 설득력을 갖게 된다. 나아가, 이 책에서 저자의 논지에 동의했던 독자라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화가 일상의 차원에서 정치적인 관심사로 복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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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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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 '세계공화국'에 이르는 길을 찾아 나선 가라타니 고진의 출사표!

 

 현재 한국맑스주의학계에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라고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독자들도 있으리라. ‘맑스주의학계’가 아니라 ‘문학계’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말”이라는 논문이 2004년 『문학동네』겨울호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당시에도 그 파장이 만만찮았지만, 그 글이 다시 작년 4월에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이라는 책의 표제작으로 실려 출간되면서, 대부분의 문학잡지들이 ‘문학의 종언’ 테제를 특집 타이틀의 일부로 삼거나 ‘소설’과 ‘비평’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담은 기획들을 경쟁하듯 실었던 점을 볼 때, 일본 출신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한국 문단의 위기논쟁을 더욱 가열시킨 주범이라 할만하다. 가라타니 자신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실감한 것이 바로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갔기 때문”이라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넘쳐나던 한국문학계에 그의 존재와 언설이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근대문학의 기원을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밝혀낸 그 근대문학의 종말까지도 선언해버린 가라타니가 문학을 그렇게 떠나 버린 후, 몰두해왔던 작업이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05년에 『트랜스크리틱』(한길사)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이미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 책의 번역 출간 후 얼마 못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문단에서 워낙 강렬한 논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정작 그의 새로운 혁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제4의 교환양식으로서 ‘어소시에이션’의 구상은 상대적으로 담론의 장(場)에서 묻혀 버린 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근대문학의 종언’이 문단에서 일으켰던 파문만큼, ‘세계공화국’도 맑스주의학계에서 논쟁의 불씨를 지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자, 그럼 이제 가라타니 자신의 말대로 『트랜스크리틱2』의 압축판으로서 “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본격적으로 좀 살펴보자. (그런데! 과연 어떤 고등학생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가라타니의 책을 지속적으로 읽어온 대학생인 나도 그 내용의 이해가 만만찮아 수도 없이 그의 전작(前作)들을 다시 읽어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 책에서, 가라타니는 국가를 수탈(약탈)과 재분배라는 교환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나아가 국가는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국가 없이 자본주의는 없으며, 자본주의 없이 국가는 없다고 까지 말한다. 이를테면 아메리카의 기업은 다국적 기업이지만 배후의 아메리카라는 국가 없이는 기업행위를 해나갈 수 없다. 따라서 자본, 네이션(=민족=국민), 국가(state), 어소시에이션의 구조가 그려지는데 이는 상호의존적이고 상호규정적이다. 바로 어소시에이션 X는 자본, 네이션, 국가의 연관 속에서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어소시에이션 X는 무엇인가.

 가라타니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세 가지 형태의 교환이 있는데 이는 상품교환, 호수제(reciprocity), 수탈(재분배)이라고 말한다. X란 유토피아이다. 그것이 제일 처음 나타난 것은 보편종교이다. 그것은 공동체를 부정하고, 또 시장사회를 부정하는 것에서 나왔다. 물론 그것이 발전함에 따라 반드시 공동체나 국가의 종교가 되어버리지만 X는 국가와 자본의 ‘지양’이라는 측면에서 나타나는 초월론적 가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X는 종교적인 또는 이념적인 것에 매우 가깝다. 전술한 바와 같이 X는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에 대한 대항 속에서 나오는데, 그것은 자본제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제 안에서 그것을 만들 계기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소비자로서의 노동자 투쟁’이나 그가 실제로 벌였던 NAM(New Association Movement)과 그 속에서 실험되었던 ‘지역통화(LETS)’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지금 생산과정에서가 아니라 유통과정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시민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추상적인 ‘시민’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소비만 하는 소비자는 어디에도 없으며 시민이나 소비자도 노동자로서는 스스로 환경을 파괴하는 물건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원론적인 의미에서 잉여가치가 늘 서로 다른 가치체계의 차액에서 발생한다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진정한 잉여가치는 소비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즉 자본가의 입장에서 잉여가치는 자본가가 구매한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자가 실제로 생산한 생산물의 가치 사이의 차액에 있다면,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총체로서의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것을 스스로 다시 살 때, 그 차액이 총자본의 잉여가치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진정한 계급의식은 생산지점에서는 무리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를테면 노동자로서의 국제적 연대는 곤란하지만, 소비자로서의 연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컨대 X란 제4의 교환형태의 공간으로서 상품교환, 호수제, 수탈-재분배라는 자본주의의 교환형태를 교란하고 이에 대항하여 결국 이것들을 ‘지양’하는 새로운 ‘교통공간’인 것이다.

 여기서 가라타니가 제시하는 ‘교통’의 개념은 자신의 출세작인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부터 『탐구』1, 2와 『은유로서의 건축』을 지나 『윤리21』에서 그 맹아를 드러내고, 마침내 『트랜스크리틱』과 『세계공화국으로』에 이르러 만개한 개념으로서, 그간 맑스주의자 내부에서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맑스의 'Verkehr'라는 단어에 새롭게 의미부여를 하고 이를 바흐친, 비트겐슈타인, 소쉬르, 칸트, 스피노자, 홉스, 들뢰즈&가타리 등이 이룩한 사유의 성과들과 결합시켜 마침내 “교환=교통=커뮤니케이션=진정한 공동체(사회적 공간)=어소시에이션”의 등식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주장하는 바, 종래의 ‘생산자=노동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소비자=노동자=시민’의 입장에서, 곧 유통과정의 입장에서 국가와 자본을 지양하는 어소시에이션의 혁명 전략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그 판단은 책을 다 읽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대안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비전에 목말라 있는 자들은 거두절미하고 일단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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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의 지층들 - 현대사회론 강의
이진경 엮음 / 그린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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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지층을 탐사하는 대중지성의 모험”

  

  들뢰즈(그리고 가타리)의 노마디즘과 접속되어 새롭게 생성된 맑스의 코뮨주의를 지속적으로 ‘다르게’ 반복하고 있는 이진경의 학문세계에 대해서 “훈고학 혹은 극단적 인문학의 레토릭의 폐쇄적 재생산”에 몰두하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계속 있어왔지만, 정작 이진경 본인은 스스로를 “불모가 된 폐허의 땅 ‘이념의 대지’를 헤집으며 새로운 혁명의 꿈을 찾는 몽상가”로 규정하고,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에 따른 교환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삶의 방식으로서 코뮨주의를 탐색하는 연구자의 길을 계속 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런 그의 ‘몽상’과 ‘탐색’이 현대사회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집단적인 연구의 성과로 또 한 번 나타났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사회학개론 등의 수업을 강의한 경험을 통해, 현대철학이나 사회이론이 그 사유의 심도가 깊어지고 분석의 의외성이 확장된 탓에 이론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이론 자체의 소외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포괄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근대성에 대한 포괄적인 개요에서 시작하여, 자본주의 및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각각의 축으로 삼아 ‘포스트모던’한 양상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시대로서 ‘모던’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이 책 『모더니티의 지층들』을 기획하고 출간했다는 것이다.

 

  책은 총 14개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주제 별로 네 개의 부로 다시 나누어져 있다. 제1부 근대성의 이론은 책 전체의 서론으로서 편저자 이진경이 모더니티와 합리성을 개념적으로 설명하고 있는「근대사회와 모더너티」가 실려 있다. 이 글에서 그는 모더니티, 혹은 근대성이 근대적 형태의 합리성을 뜻하고, 그것은 계산가능성을, 그리고 계산에 따른 통제가능성을 그 원리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더니티의 폭력이 이른바 봉건사회를 어떻게 근대사회로 변모시켰는지를 제2부 근대자본주의에 실린 네 편의 글들이 각각의 차별화된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는데, 제2강「자본주의, 혹은 자본의 공리계」(이진경)에서 제출된 테제인 “자본주의는 욕망의 체제이다”를 기초로 하여, 제3강「자본주의와 노동의 체제」(이수영), 제4강「화폐의 권력, 반화폐의 정치학」(디디), 제5강「자본주의와 계급이론」(조원광)의 논의가 펼쳐지고 있다. 특히 조원광의 글「자본주의와 계급이론」은 이진경이 이미 『미-래의 맑스주의』에서 개진한 바 있는 “한 개의 계급이론”이 한결 명료하게 제시되고 있다. 예컨대,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체제에는 오직 하나의 계급, 곧 부르주아 계급만이 있을 뿐이며, 노동자도 자본주의의 공리계를 욕망하는 한 부르주아의 일부일 뿐이라는 논쟁적인 해석이 제기된다. 부르주아는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는 한에서 노예계급이며, 모든 계층이 다 부르주아 계급이므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하나의 노예계급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진정한 계급투쟁은 맑스와 들뢰즈ㆍ가타리를 접속시켜 “프롤레탈리아트-되기”, 즉 자본주의의 공리계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질서의 '외부'를 만들어가는 “계급 대 비(非)-계급”의 투쟁으로 지양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제3부 근대적 체제에서는 자본주의가 근대인의 일상과 습속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가 설명된다. 그리고 제4부에서는 모더니티를 규정하는 합리성-계산가능성-통제가능성이 만들어낸 근대사회의 여러 가지 양상들이 탈근대로 명명되는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단절ㆍ지속되고 있는지가 분석된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두 편의 글이 주목할 만한데, 먼저 현민이 쓴 13강「소수자와 차이의 정치」는 그간 소수자의 개념적 정의ㆍ계급의 정치ㆍ인권과 시민권ㆍ다문화주의적인 차이의 인정ㆍ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ㆍ정체성의 정치 등의 논점들과 결부되어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주도하고 있는 “소수자 정치 혹은 차이의 정치” 담론을 향해 제기된 비판들에 대하여 조목조목 반론을 펴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정정훈의「전지구화, 혹은 제국과 다중」은 현재까지도 맑스주의 학계 내부에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문제작『제국』(Empire, 2001)과『Multitude』(2004)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전지구화된 자본주의 및 전지구적 정치질서,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반란의 집합적 주체성을 새롭게 분석하고 있는데, 이 역시 최근 사회과학의 발전된 자본주의론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을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14편에 달하는 글들이 한결같이 모더니티의 두 가지 측면 중 하나의 측면인 정치-경제적 및 사회적 모더니티에만 집중하여 모더니티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데 최근 문화사회학 분야에서 제출된 모더니티 관련 연구들을 보면, 미학적-문학적 모더니티의 측면이 정치-경제적 및 사회적 모더니티와 구별되어 논의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미학적-문학적 모더니티는 정치-경제적, 사회적 모더니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들과 끊임없이 긴장과 갈등, 그리고 투쟁 관계에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측면의 모더니티는 모두 모던 세계의 역사적 산물에 속한다. 이러한 사실은 근대 이후에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사회적―문화적 분화 과정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는 프리드리히 니체에서부터 가깝게는 게오르그 짐멜이나 발터 벤야민에 이르는 미학적-문학적 모더니티의 탁월한 이론가ㆍ비평가들의 작업이 이 책에서 보충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이 책이 주로 사회이론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모더니티에 대한 설명을 정치-경제적 및 사회적 모더니티에만 제한하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이는 아마도 이 책의 다음 시리즈로 기획되어 지난 4월에 출간된『문화-정치의 영토들』(현대문화론 강의)에서 보완되고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 합리성-계산가능성-통제가능성-진보의 신념 그리고 그 물적 실현인 근대화 과정의 규범적 지향을 내재적으로 비판하는 또 다른 흐름이 근대성의 영역에서 동시대적으로 생성되었던 바, 야우스, 버만, 래쉬, 푸코 등의 상이한 논자들이 공통적으로 포착하고자 했던 이 근대 내부의 대항근대성(counter-modernity)을 미학적-문학적 모더니티 혹은 예술적-문화적 모더니티로 개념화하는 경향이 최근 문화사회학계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적 모더니티는 19세기 중ㆍ후반으로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유럽의 지성사, 예술사, 문학사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표출되었던 근대적 삶과 사유의 양식에 대한 비판적 사유와 감수성의 표현들로 구성된 일종의 담론 구성체이다. 그것이 담론 구성체인 한에서 문화적 모더니티는 다양한 저자, 개념, 수사(修辭), 전망, 전략, 감수성, 테마 등을 포괄하는 복합적 성좌(constellation)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다성적 담론 구성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문제의식 중의 하나가 바로 시간과 역사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라는 점에서, 김홍중은 그것을 '순간의 역사시학'이라 명명하고 그 대표적인 예로 발터 벤야민을 거론한다(김홍중, 2006). 수용미학의 창시자 야우스(Hans Robert Jauß)가 사용한 미적 모더니티(ästhetische Moderne)라는 개념은 영미문학이론에서 하나의 장르로 파악되는 ‘모더니즘’이라는 협소한 개념과는 달리, 루소, 독일낭만주의, 괴테, 보들레르, 프루스트, 아방가르드, 미래파,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근대예술현상과 니체, 짐멜, 벤야민, 아도르노 등의 문화비판의 흐름을 포괄하는 근대의 독특한 미학적 선회를 특화시켜 지칭하는 용어이다(Jauß, 1970; Jauß, 1989). 야우스의 이러한 입론은 마샬 버만이나 스콧 래쉬처럼 다양한 문학작품들과 예술작품들을 폭넓게 소화하면서 모더니티의 개념을 미학의 영역을 중심으로 탄력적으로 사용하는 영미권의 논자들의 의견과도 은밀히 조응하고 있으며(Berman, 1982/1988; Berman, 1992; Lash, 1994), 모더니티를 기본적으로 시대 구분으로 파악하는 대신에 자기 시대에 대한 성찰적 거리 혹은 에토스로 설정하는 푸코의 논의와도 맥을 같이 한다(Foucault, 1984:1387). 근대성 내부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두 개의 상충하는 모더니티(Calinescu, 1977: 53)에 대한 천착은 모던/포스트모던의 이분법적 사유를 지양하면서 문화적 산물들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펼치고 있는 최근의 인문, 사회과학적 흐름 속에서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Bohrer, 1994; Habermas, 1984: 26-35; 남진우: 2001). 김홍중은 이러한 논의들의 핵심을 이루는 모더니티의 ‘미적’ 차원을 ‘문화’의 차원으로 확장시켜 ‘문화적 모더니티’라는 개념을 사용한다(김홍중, 2006). 한편 박성환은, 짐멜의 ‘사회학적 미학’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문화적 근대’라는 용어를 이미 사용한 바 있다(박성환, 1999). 또한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짐멜 연구자인 김덕영 역시 니체를 미학적-문학적 모더니티의 최초의 해석자로 규정하고 베버와 짐멜이 이러한 니체의 반(反)-사회학적인 모더니티 이론을 사회학적으로 전용하였음을 분석한다(김덕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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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경제론 -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아서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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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신진보주의의 실현 가능성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청와대 브리핑에 기고한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는 제목의 글이 진보진영 전반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인터넷 매체인 <레디앙>의 지면을 통해 진보학계 내부에서 시작된 2007년 대선 관련 논쟁에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진보학계와 제도 정치권을 넘나드는 사회적 이슈로 확산된 양상이다.  참여정부의 위기, 혹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진보의 위기 등으로 요약되는 일련의 정치상황에 대한 최장집, 조희연, 이병천, 손호철, 정태인, 우석훈 등 진보 진영 내부의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입장과 대안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입장까지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논쟁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겠다. 세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쟁점이 있겠지만, 다소 거칠게 본다면 이 논쟁에서의 핵심은 단연 87년 이후 노무현 정권 혹은 참여정부에 이르는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제도적 민주화를 견인한 진보개혁세력이 정치경제학적으로 실패했는가 아닌가로 모아지는 듯하다. 진보 진영 내부의 논쟁을 야기한 장본인이자 대통령도 자신의 글에서 거론하고 있는 “참여정부를 매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그 학자” 곧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그렇다’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아니다’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제외하고,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학자들 역시 노무현 정권 및 진보개혁 세력의 집권이 실패했다는 점에서만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진보적 시스템으로의 이행 과정에 관한 공과와 앞으로의 향방을 둘러싼 논쟁의 와중에, 진보개혁 세력의 이념과 능력에 대한 비판을 긍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비판에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책임 있게 대응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한반도경제론 -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아서」(창비, 2007년 1월)가 바로 그것인데, 이 책의 출간은 1997년 IMF 관리체제를 부른 동아시아 외환위기 뒤 개방화에 대한 대안연구를 위해 모인 ‘동아시아-한반도경제연구회’가 2005년 7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로부터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사회(복지)적 현실에 부합하는 국가전략의 비전에 관한 연구를 요청받은 것에 계기를 두고 있다. 당시 ‘동아시아-한반도경제연구회’는 13명의 연구팀을 구성하여, 넉 달 간의 토론과 연구를 거쳐 그 결과를 2005년 말 정책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이후 이 연구모임은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로 확대ㆍ정비되었고, 2006년 상반기에 십여 차례의 토론모임과 심포지엄을 더 연 끝에 기존 연구자 10명에 새로운 연구자 9명이 보강되어 책을 출간했다. \

[* 이 책의 출간 과정과 관련한 더욱 상세한 정보는 한국사회과학연구소가 발행하는 계간 「동향과 전망」 제67호에 ‘새로운 진보주의의 건설을 위하여’이라는 제목의 특집으로 기획ㆍ게재된 글인 “‘신진보주의 발전모델'이란 무엇인가”(좌담회 녹취록)와 “신진보주의 발전모델과 민주적 발전국가의 모색”(조형제, 정건화, 이정협 공저 논문)을 참조하기 바람. 한편, 이 책의 기초가 된 정책기획위원회의 연구과제 수행에서부터 최종적으로 출간된 책의 집필까지 참여한 학자들 가운데는 한신대 정건화(경제학), 이인재(재활학), 이일영(중국지역학) 교수가 있음.]

저자들은 기존의 진보주의가 지닌 긍정적 요소를 계승하되, 새로운 가치체계를 제시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진보의 내용을 실현하는 ‘신진보주의 발전모델' 곧 ‘한반도경제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한반도경제론’은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정치ㆍ행정ㆍ외교ㆍ통일ㆍ경제ㆍ사회(복지)ㆍ문화 등을 총괄하는 종합적인 국가전략 모델을 의미한다. 이러한 다양한 국가 발전 전략을 아우르는 이념적 가치는 연대ㆍ개방ㆍ혁신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연대’는 성장의 과실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고, ‘혁신’은 사회 변화의 동력이자 개혁의 추진력이다. 그러나 ‘혁신’은 불가피하게 경쟁을 수반하고, 경쟁은 불평등과 독점을 초래해 ‘연대’의 기반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에 두 가치는 상충된다. 이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제시되는 것이 ‘개방’이라는 원리이다. 열린 자세로 타자와 협력하는 방법론적 원리가 개방의 원리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원리 혹은 가치를 대외 협력의 차원으로 확대하기 위해 ‘한반도경제론’이라는 개념이 제시된 것이고, 이때 한반도는 남북한은 물론, 일본, 중국 등의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공동체를 함의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제1부 국가발전모델이 책의 전체적인 입론이라면, 제2부 대외전략부터 제6부 지역발전까지 실린 총 18편의 글은 개별 분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점에서 각론이라 볼 수 있다. 전통적 좌파 진보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이 책은 ‘新진보주의’의 입장을 강하게 담고 있다. “자본주의가 혁신해온 성과와 자유주의 이론이 추구해온 가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히는 대목(15쪽)이나 “국가는 방관자가 아니라 사려깊은 조정자로서 민주적 관여를 수행하면서 결사체를 통한 사회자본의 형성과 민주적 거버넌스의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라고 진술하는 대목(439쪽)에서 볼 때 확실히 이 책의 이념적 지향성은 한국판 ‘제3의 길’이라 할 만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의 저자들이 탁월하게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발전 모델을 실현해 나갈 정치적 주체가 한국 사회에서는 현재 부재한다는 사실. 애초에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된 참여정부는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만 보더라도 이미 그 무능함과 시대 역행적인 ‘反-민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학자들이 현실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진보적인 대안을 내놓아도 정작 이를 실행해나갈 정치적 주도권이 진보진영에게 없다면 과연 이 모든 구상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책에서 제시된 신진보주의 발전 모델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의 민중과 그러한 민중의 정치를 대변할 진보정당 내지는 진보적 사회운동의 정치적 세력화를 다시금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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