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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경제론 -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아서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평점 :
대안적 신진보주의의 실현 가능성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청와대 브리핑에 기고한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는 제목의 글이 진보진영 전반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인터넷 매체인 <레디앙>의 지면을 통해 진보학계 내부에서 시작된 2007년 대선 관련 논쟁에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진보학계와 제도 정치권을 넘나드는 사회적 이슈로 확산된 양상이다. 참여정부의 위기, 혹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진보의 위기 등으로 요약되는 일련의 정치상황에 대한 최장집, 조희연, 이병천, 손호철, 정태인, 우석훈 등 진보 진영 내부의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입장과 대안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입장까지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논쟁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겠다. 세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쟁점이 있겠지만, 다소 거칠게 본다면 이 논쟁에서의 핵심은 단연 87년 이후 노무현 정권 혹은 참여정부에 이르는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제도적 민주화를 견인한 진보개혁세력이 정치경제학적으로 실패했는가 아닌가로 모아지는 듯하다. 진보 진영 내부의 논쟁을 야기한 장본인이자 대통령도 자신의 글에서 거론하고 있는 “참여정부를 매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그 학자” 곧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그렇다’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아니다’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제외하고,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학자들 역시 노무현 정권 및 진보개혁 세력의 집권이 실패했다는 점에서만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진보적 시스템으로의 이행 과정에 관한 공과와 앞으로의 향방을 둘러싼 논쟁의 와중에, 진보개혁 세력의 이념과 능력에 대한 비판을 긍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비판에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책임 있게 대응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한반도경제론 -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아서」(창비, 2007년 1월)가 바로 그것인데, 이 책의 출간은 1997년 IMF 관리체제를 부른 동아시아 외환위기 뒤 개방화에 대한 대안연구를 위해 모인 ‘동아시아-한반도경제연구회’가 2005년 7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로부터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사회(복지)적 현실에 부합하는 국가전략의 비전에 관한 연구를 요청받은 것에 계기를 두고 있다. 당시 ‘동아시아-한반도경제연구회’는 13명의 연구팀을 구성하여, 넉 달 간의 토론과 연구를 거쳐 그 결과를 2005년 말 정책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이후 이 연구모임은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로 확대ㆍ정비되었고, 2006년 상반기에 십여 차례의 토론모임과 심포지엄을 더 연 끝에 기존 연구자 10명에 새로운 연구자 9명이 보강되어 책을 출간했다. \
[* 이 책의 출간 과정과 관련한 더욱 상세한 정보는 한국사회과학연구소가 발행하는 계간 「동향과 전망」 제67호에 ‘새로운 진보주의의 건설을 위하여’이라는 제목의 특집으로 기획ㆍ게재된 글인 “‘신진보주의 발전모델'이란 무엇인가”(좌담회 녹취록)와 “신진보주의 발전모델과 민주적 발전국가의 모색”(조형제, 정건화, 이정협 공저 논문)을 참조하기 바람. 한편, 이 책의 기초가 된 정책기획위원회의 연구과제 수행에서부터 최종적으로 출간된 책의 집필까지 참여한 학자들 가운데는 한신대 정건화(경제학), 이인재(재활학), 이일영(중국지역학) 교수가 있음.]
저자들은 기존의 진보주의가 지닌 긍정적 요소를 계승하되, 새로운 가치체계를 제시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진보의 내용을 실현하는 ‘신진보주의 발전모델' 곧 ‘한반도경제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한반도경제론’은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정치ㆍ행정ㆍ외교ㆍ통일ㆍ경제ㆍ사회(복지)ㆍ문화 등을 총괄하는 종합적인 국가전략 모델을 의미한다. 이러한 다양한 국가 발전 전략을 아우르는 이념적 가치는 연대ㆍ개방ㆍ혁신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연대’는 성장의 과실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고, ‘혁신’은 사회 변화의 동력이자 개혁의 추진력이다. 그러나 ‘혁신’은 불가피하게 경쟁을 수반하고, 경쟁은 불평등과 독점을 초래해 ‘연대’의 기반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에 두 가치는 상충된다. 이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제시되는 것이 ‘개방’이라는 원리이다. 열린 자세로 타자와 협력하는 방법론적 원리가 개방의 원리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원리 혹은 가치를 대외 협력의 차원으로 확대하기 위해 ‘한반도경제론’이라는 개념이 제시된 것이고, 이때 한반도는 남북한은 물론, 일본, 중국 등의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공동체를 함의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제1부 국가발전모델이 책의 전체적인 입론이라면, 제2부 대외전략부터 제6부 지역발전까지 실린 총 18편의 글은 개별 분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점에서 각론이라 볼 수 있다. 전통적 좌파 진보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이 책은 ‘新진보주의’의 입장을 강하게 담고 있다. “자본주의가 혁신해온 성과와 자유주의 이론이 추구해온 가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히는 대목(15쪽)이나 “국가는 방관자가 아니라 사려깊은 조정자로서 민주적 관여를 수행하면서 결사체를 통한 사회자본의 형성과 민주적 거버넌스의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라고 진술하는 대목(439쪽)에서 볼 때 확실히 이 책의 이념적 지향성은 한국판 ‘제3의 길’이라 할 만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의 저자들이 탁월하게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발전 모델을 실현해 나갈 정치적 주체가 한국 사회에서는 현재 부재한다는 사실. 애초에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된 참여정부는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만 보더라도 이미 그 무능함과 시대 역행적인 ‘反-민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학자들이 현실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진보적인 대안을 내놓아도 정작 이를 실행해나갈 정치적 주도권이 진보진영에게 없다면 과연 이 모든 구상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책에서 제시된 신진보주의 발전 모델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의 민중과 그러한 민중의 정치를 대변할 진보정당 내지는 진보적 사회운동의 정치적 세력화를 다시금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