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책-기계: 우리의 책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는 『천개의 고원』(자본주의와 분열증 제2권, 1980) 서론에서 ‘책’(text)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책은 그 ‘외부’를 갖는다. 여기서 외부란 단순히 책이 쓰여진 배경으로서 역사적ㆍ문화적 맥락(context)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그 책과 만나는 다른 책들, 그것과 대립되는 다른 사유체계들에서 이미 쓰여진 텍스트를 만날 때 발생하는 ‘사건’들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책의 외부는 또 다른 책일 수도 있고, 억압과 폭력으로 지칭되는 절망적인 현실일 수도 있고, 그러한 절망적인 현실을 변혁하고자 하는 운동이나 혁명의 시대적 열망일 수도 있고, 혹은 지금 어딘가에서 그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독자의 삶의 자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책이 외부를 갖는다”는 말은 책이 어떤 외부와 만나고 접속하는가에 따라 다른 텍스트로 작동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즉 경우에 따라 책은 일종의 ‘기계’적 장치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책이란 각각의 ‘의미-세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외부와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작동하고, 그 외부에 의해 다른 ‘책-기계’로 변환된다고 말한다.

‘책-기계’는 그 각각의 외부와 접속하여 작동하면서 그때마다 다른 사건의 ‘효과’를 생산한다. 책이란 이미 만들어진 채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어떤 외부를 만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우리 앞에 만들어내는 ‘기계’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다른 세계 속으로 끌어내는 것이고, 그것으로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저 유명한 문장, “철학자들은 그 동안 세계를 해석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책’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신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그러니까 2007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20대들은 상위 5% 정도만이 한국전력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위협적으로’ 예언하는 이 책 『88만원세대: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은 그런 위협과 함께 곧바로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선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책-기계’로서 자신의 사명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오늘 대한민국의 20대들이 마주하고 있는 절망적인 세계―월 88만원 정도를 평균임금으로 받으며 살아가야 될―를 냉혹하게 보여주는 책인 동시에, 역사의 갈림길 위에서 조승희처럼 총을 들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전 세대인 386처럼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 것인가를 묻는,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이 세계를 단호히 부정하고 다른 세계의 ‘발명’을 위해 싸울 것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즉시로 사용해야 할 ‘무기’로서의 ‘책-기계’이다.

 

슬로건: 88만원 세대여,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책 표제이기도 한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는 마케팅 대상으로서의 용어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이름조차 없는 20대들에게 저자들이 붙인 이름인데, 20대의 95%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 아래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한 수치에 근거한 것이다. (저자들은 이 ‘88만원 세대’를 ‘승자독식 세대’, ‘배틀 로열 세대’라고도 부른다). 우리의 바로 이전 세대인 386세대는 ‘선동열 학점’이라는 0점대 학점을 받아도 직장을 골라가며 취직을 했지만, 지금의 1O대와 20대는 기껏해야 주유소나 편의점을 떠도는 ‘알바 인생’이거나 비정규직 신세다.

이런 현상은 일본의 ‘버블 세대’, 유럽의 ‘1천유로 세대’, 미국의 ‘빈털터리 세대’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훨씬 빠르고 훨씬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88만원 세대』는 이런 세대 간 불균형이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독점화가 진행되면서, 정치적 자기 보호 능력이 없는 지금의 20대에게 그 피해가 집중된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플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도 이미 닫혀진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젊은 세대를 볼모로 한 ‘인질 경제’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88만원 세대』는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들며, 세대 균형을 되찾는 길은 토플 점수가 아니라 ‘바리케이드와 짱돌’이라고 역설한다. 그렇담 설마 저자들은 정말 우리더러 거리로 나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죽창을 들고, 짱돌이나 화염병을 던지며 혁명의 시대라 불렸던 1980년대의 우리 선배들처럼 그렇게 가열찬 투쟁을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그런 식의 단순하고 얕은 사유를 결론이나 해법으로 제시하는 책은 절대 아니니까.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인 바리케이드와 짱돌의 투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읽어보고 확인하기 바란다.

다만, 여기서는 저자가 해법 이전에 미리 제시하는 몇 가지 제약 조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소위 ‘혁명’이라는 방식을 쓸 수 없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이나 동학란 아니면 농민란과 같은 혁명 혹은 난(亂)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와 같이 세대 간 문제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에서는 혁명과 같은 그런 사회변화 프로그램은 도구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둘째, ‘세계화’라는 조건이 붙는다. 흔히 좌파들은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이 문제의 해법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세계화라는 현상은 이미 한 나라가 정지시키거나 대안을 마련할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설령 할 수 있다 해도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포디즘’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것은 앞의 세계화와도 결부지어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가 스스로 임금을 깎아서 과거 수준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코 우리의 선배들(386세대)의 오늘을 있게 한 ‘과거’가 지금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 책의 주제이자 분석대상인 ‘88만원 세대’, 바로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이 책의 일차적인 독자가 되어야 한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하는 슬로건(명령어) 하나로 한국 사회 초유의 신빈곤 세대를 창안했을 뿐만 아니라, 그간 정치적으로건 경제적으로건 마케팅의 대상으로 밖에 호명되지 못하던 20대라는 이 불특정한 대중의 덩어리들을 세대론적으로 묶어 내어 한국 사회 전체 진보와 변혁의 키를 쥐고 있는 하나의 새로운 정치적 주체집단으로까지 구성해냈다.

‘명령어의 순간성’은 ‘슬로건의 순간성’으로 치환하여 말하는 순간 슬로건(명령어) 자체에 매우 결정적인 요소임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모든 슬로건에는 시의적절한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지나면 부적절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의 순간성은 그 슬로건의 호명 대상인 ‘88만원 세대’, 바로 당신과 내가,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그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다함께 모색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도 입증될 수도 없는 것이란 얘기다. 그럼, 이제 당장 이 책을 사서 읽도록 하자.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때늦은 후회하는 우리가 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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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88만원 세대>를 읽으며...
    from 영화진흥공화국 2007-09-19 14:21 
    회사에서 맡은 연구 주제 중에 하나가 미래전략이라서 계속 이런 주제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이 아니라 오늘 낮)에 읽은 책이 이 . 노바리 님의 블로그에서 한번 언급한 걸 읽었고 http://vedder.tistory.com/104 그 이후 어디선가 책의 내용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기사를 읽으면서 이 책은 꼭 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핵심적인 구도는 개혁-보수, 민주-반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