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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 '세계공화국'에 이르는 길을 찾아 나선 가라타니 고진의 출사표!

 

 현재 한국맑스주의학계에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라고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독자들도 있으리라. ‘맑스주의학계’가 아니라 ‘문학계’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말”이라는 논문이 2004년 『문학동네』겨울호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당시에도 그 파장이 만만찮았지만, 그 글이 다시 작년 4월에 『근대문학의 종언』(도서출판b)이라는 책의 표제작으로 실려 출간되면서, 대부분의 문학잡지들이 ‘문학의 종언’ 테제를 특집 타이틀의 일부로 삼거나 ‘소설’과 ‘비평’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담은 기획들을 경쟁하듯 실었던 점을 볼 때, 일본 출신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한국 문단의 위기논쟁을 더욱 가열시킨 주범이라 할만하다. 가라타니 자신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실감한 것이 바로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갔기 때문”이라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넘쳐나던 한국문학계에 그의 존재와 언설이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근대문학의 기원을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밝혀낸 그 근대문학의 종말까지도 선언해버린 가라타니가 문학을 그렇게 떠나 버린 후, 몰두해왔던 작업이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05년에 『트랜스크리틱』(한길사)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이미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 책의 번역 출간 후 얼마 못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가 문단에서 워낙 강렬한 논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정작 그의 새로운 혁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제4의 교환양식으로서 ‘어소시에이션’의 구상은 상대적으로 담론의 장(場)에서 묻혀 버린 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근대문학의 종언’이 문단에서 일으켰던 파문만큼, ‘세계공화국’도 맑스주의학계에서 논쟁의 불씨를 지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자, 그럼 이제 가라타니 자신의 말대로 『트랜스크리틱2』의 압축판으로서 “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본격적으로 좀 살펴보자. (그런데! 과연 어떤 고등학생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가라타니의 책을 지속적으로 읽어온 대학생인 나도 그 내용의 이해가 만만찮아 수도 없이 그의 전작(前作)들을 다시 읽어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 책에서, 가라타니는 국가를 수탈(약탈)과 재분배라는 교환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나아가 국가는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국가 없이 자본주의는 없으며, 자본주의 없이 국가는 없다고 까지 말한다. 이를테면 아메리카의 기업은 다국적 기업이지만 배후의 아메리카라는 국가 없이는 기업행위를 해나갈 수 없다. 따라서 자본, 네이션(=민족=국민), 국가(state), 어소시에이션의 구조가 그려지는데 이는 상호의존적이고 상호규정적이다. 바로 어소시에이션 X는 자본, 네이션, 국가의 연관 속에서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어소시에이션 X는 무엇인가.

 가라타니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세 가지 형태의 교환이 있는데 이는 상품교환, 호수제(reciprocity), 수탈(재분배)이라고 말한다. X란 유토피아이다. 그것이 제일 처음 나타난 것은 보편종교이다. 그것은 공동체를 부정하고, 또 시장사회를 부정하는 것에서 나왔다. 물론 그것이 발전함에 따라 반드시 공동체나 국가의 종교가 되어버리지만 X는 국가와 자본의 ‘지양’이라는 측면에서 나타나는 초월론적 가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X는 종교적인 또는 이념적인 것에 매우 가깝다. 전술한 바와 같이 X는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에 대한 대항 속에서 나오는데, 그것은 자본제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제 안에서 그것을 만들 계기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소비자로서의 노동자 투쟁’이나 그가 실제로 벌였던 NAM(New Association Movement)과 그 속에서 실험되었던 ‘지역통화(LETS)’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지금 생산과정에서가 아니라 유통과정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시민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추상적인 ‘시민’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소비만 하는 소비자는 어디에도 없으며 시민이나 소비자도 노동자로서는 스스로 환경을 파괴하는 물건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원론적인 의미에서 잉여가치가 늘 서로 다른 가치체계의 차액에서 발생한다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진정한 잉여가치는 소비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즉 자본가의 입장에서 잉여가치는 자본가가 구매한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자가 실제로 생산한 생산물의 가치 사이의 차액에 있다면,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총체로서의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것을 스스로 다시 살 때, 그 차액이 총자본의 잉여가치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진정한 계급의식은 생산지점에서는 무리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를테면 노동자로서의 국제적 연대는 곤란하지만, 소비자로서의 연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컨대 X란 제4의 교환형태의 공간으로서 상품교환, 호수제, 수탈-재분배라는 자본주의의 교환형태를 교란하고 이에 대항하여 결국 이것들을 ‘지양’하는 새로운 ‘교통공간’인 것이다.

 여기서 가라타니가 제시하는 ‘교통’의 개념은 자신의 출세작인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부터 『탐구』1, 2와 『은유로서의 건축』을 지나 『윤리21』에서 그 맹아를 드러내고, 마침내 『트랜스크리틱』과 『세계공화국으로』에 이르러 만개한 개념으로서, 그간 맑스주의자 내부에서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맑스의 'Verkehr'라는 단어에 새롭게 의미부여를 하고 이를 바흐친, 비트겐슈타인, 소쉬르, 칸트, 스피노자, 홉스, 들뢰즈&가타리 등이 이룩한 사유의 성과들과 결합시켜 마침내 “교환=교통=커뮤니케이션=진정한 공동체(사회적 공간)=어소시에이션”의 등식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주장하는 바, 종래의 ‘생산자=노동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소비자=노동자=시민’의 입장에서, 곧 유통과정의 입장에서 국가와 자본을 지양하는 어소시에이션의 혁명 전략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그 판단은 책을 다 읽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대안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비전에 목말라 있는 자들은 거두절미하고 일단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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