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있을 때 그 여자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 스파게티는 다 삶아지기 직전이었고, 나는 FM라디오에 맞춰서, 로시니의 <도둑 까치> 서곡에 따라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스파게티를 삶는 데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 같았다.
“10분간만 통화하고 싶어요” 하고 그 여자가 당돌하게 말했다.
#. 1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의 도입부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늘 음악을 들으며 스파게티를 삶는다. 나도 주식처럼 스파게티를 삶았다. 단가가 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리가 쉽고, 설거지도 간단하다. 바리에이션도 다양해서 쉽게 질리지도 않으니 자취생의 벗 같은 존재였달까. 당시, 한 반년 가량 스파게티를 삶으며 상당한 조예를 갖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 친구 K를 만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그는 알리오 올리오를 시켰다. 맛있는 알리오 올리오를 발견 할 때 까지 알리오 올리오만 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언젠가 단 한번, 100%의 알리오 올리오를 먹어봤단다. 빕스의 뷔페 코너에서였다. 그 알리오 올리오를 먹으러 다시 빕스를 찾았을 때는, 이미 그 때의 맛이 아니었다. "다시 100%의 알리오 올리오를 만날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K는 눈물을 글썽였다.
기대와는 달리 그날의 알리오 올리오는 100%의 알리오 올리오가 아니었다. 향이 강한 훈제 연어를 썰어 넣은 탓으로, 비릿한 생선향이 맛을 덮었다. 사실 쉐프 입장에서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으려고 오는 사람들에게 기본기에 충실한 알리오 올리오를 내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언뜻 보면 삶아서 기름이나 좀 쳐 놓은 면 덩어리처럼 보일테니까. 또 아무리 잘 만들어 봤자 달고 짜고 신 맛에 길들여진 맛객들에게 그 담백한 맛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리라. 그래서 꽤 많은 파스타 전문점에서는 아예 메뉴에 알리오 올리오가 빠져있다. 아마 우리가 들른 레스토랑의 쉐프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고민 끝에 알리오 올리오를 메뉴판에서 빼는 대신 연어를 넣는 자충수를 두었겠지.
실망하는 K에게 그깟 알리오 올리오, 내가 만들어 주께! 하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사실 나도 기억에 남는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를 위해 제대로 된 레시피를 준비해 두고 싶었다.
마트에 갔다.
사야 될 재료는, 면과 페퍼로치노, 후추.
스파게티면은 터키산 듀럼밀로 넣었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내 줄 것이다. 후추는 검정통후추, 일반적으로 파스타 종류에는 흑후추를 쓰는데 장담하건대 브랜드에 상관없이 맛은 같다. 피코크에서 나온 저렴한 제품을 담았다. 페퍼론치노홀을 넣을까 했다가 가격에 멈칫 했다. 10g에 2490원. 100g에 24900원. 이만하면 고급 소고기 값이 아닌가. 조금 망설인 끝에 베트남 건고추를 샀다. 10g에 500원 꼴이니 네 배 차이다. 맛은 거기서 거기
재료를 모아놓고 조리에 들어갔다.
#. 2
아차, 파마산 치즈! 냉장고에 치즈류를 찾아보니 체다 치즈와 크림치즈 뿐. 과감히 생략할까 하다가 크림치즈를 넣기로 했다. '이건 사이비야. 이건 사이비야' 하는 양심의 외침이 있긴 했으나, 파마산의 고소한 맛에 부드러운 밀크향까지 어쩌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양파도 넣기로 했다. 고민 끝에 새우젓도 조금 넣기로 했다. 연초에 잡아 숙성시킨 좋은 풋젓인데, 마늘 볶을 때 같이 잘 볶으면 감칠맛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저질렀으니까 바질도 조금 쳐보기로 했다.
순서는 간단하다.
1. 스파게티 물을 끓이는 동시에 후라이팬에 올리브 유 5큰 술을 넣고, 마늘, 페퍼론치노, 양파를 볶는다.
2. 스파게티가 다 끓으면,
3. 합체.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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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실패..
사진찍느라. ㅠ_ㅠ
걍.. 먹음.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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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아침 재도전!
두둥.
올리브 유와 마늘, 새우젓의 베이스가 단단하다. 오래 볶은 양파에서는 달착지근한 캐러멜 향이 나고, 고추와 후추의 매콤함이 지루함을 없애준다. 순수한 소금간이 담백하고 크림치즈의 향미가 맛의 품격을 더한다. 하이데거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재료에 은폐된 맛을 요리로 드러내니, 오오 맛의 신전이 열리는구나.'
기다려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