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국에 밥을 말았다. 늘 같은 시간에 혼자 그렇게. 나는 접시마다 먹음직스러운 반찬을 담아냈지만, 젓가락은 거의라도 해도 될 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거, 골고루 좀 먹지.”

 

나는 옆에서 전을 오물거리며 식사를 감독했다. 그러자 마지못해 전 한 점을 든다.

 

“이것도 먹어.” “이것도.” “이것도.” “이거는?”

 

노인은 나의 잔소리 속에서 대강 식사를 마치고는 젓가락을 탁 놨다. 간섭받기 싫어하는 태도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하다. 주름진 눈에 전의만은 젊게 불타고 있었다. 그래, 싸우자. 나도 식품영양에 대해서라면 한 시간은 너끈히 떠들 수 있다.

 

노인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왜정 때였다. 이종 동생이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다. 쌀독을 긁어 밥을 하고 식구들을 먹이면 자기 먹을 밥은 없었다. 끼니가 되면 뒷산에 가서 울었다.”

 

반격의 시간이다.

 

“또 그놈의 ‘왜정’ 얘기인가. 검사 결과 할머니의 골밀도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칼슘은 곡류에 소량 포함되어 있으나 생선, 시금치 등 반찬에 풍부하다. 내가 아름답게 부쳐놓은 각종 전이야말로 칼슘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반찬값보다 병원값이 더 나오게 하는 우를 범할 생각인가.”

 

“해방되던 해였다. 윗집에는 가난한 부부가 살았다. 시어머니를 모셨는데, 성격이 모진 이였다. 남편은 죽을병에 걸렸다. 아직 아이는 없었다. 새댁은 골몰해도 살 방도가 없어 자진하기로 결심하고 끈을 챙겨 헛간에 갔다. 목을 매달 요량이었다. 남편은 와병 중에도 낌새가 심상찮아 색시를 찾으러 갔다. 헛간 문을 열었을 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목을 매기 전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오.’ 묻자 색시가 말했다. ‘이만저만하니 먼저 가겠소.’ 남편은 차마 색시를 붙들지 못하고 울며 헛간 문을 닫았다. 색시가 죽고, 며칠 후에 남편도 죽었다. 죽지 못한 건 모진 시어미뿐이었다.“

 

흥, 질까보냐.

 

“집에 냉장고가 세대다. 옆집 사는 최현석 셰프네보다 우리집 냉장고가 좋더라. 음식이 많아 상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음식은 소비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제 먹을 농사를 짓지 않는다. 소비하지 않으면 농사짓는 이들은 가난해진다. 그것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또한, 이렇게 내 말 안 듣다가 골골거리면 어디 후미진 요양원에라도 처넣어버리겠다.”

 
“열 아홉에 시집와서 두 해 쯤 지났을 때였다. 이 새끼야. 이 친정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아버지가 시댁으로 먹을 것을 꾸러 왔다. 시댁은 논밭이 꽤 있어 먹고 살만 했지만, 일찍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살림을 맡은 시어머니는 두려워 웅크리고만 있었다. 부엌 쌀독은 넉넉했지만 시어머니는 한 말도 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냥 돌아가시라고 했다. 차가운 날씨였다. 아버지는 어깨를 작게 말고 돌아가셨다. 나는 아직도 먹는 것을 어렵게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할머니는 내가 어떻게 하면 빡치는지 잘 알고 있는 거 같애."

 

"이놈의 새끼가."

 

"이 망할 노인네가."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그건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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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7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7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3-21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이디어도 그렇고 글도 재미각~

뷰리풀말미잘 2018-03-22 10:43   좋아요 0 | URL
제가 띄엄띄엄 가서 뭐 하나 눌르면 옛다하고 댓글 투척해주시는 경향이 있는데, 동정따윈 필요 없다고욧! 아시겠어욧!?

AgalmA 2018-03-22 10:53   좋아요 0 | URL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제 글 챙겨서 읽어주시는 분 모두를 챙길 수 없어서 틈틈이 눈에 띄면 찾아뵙는 건데 너무 하시네요...;_;)
일일이 이웃글 다 보고 댓글까지 달면 최하 하루 2~3시간이에요. 님 글이 자주 올라오는 것도 아니라 반가워서 온 사람한테...
님 어법이 그런 거 모르진 않지만 나도 사람이라고욧!
버럭! 흥! 나도 삐질 테다.

뷰리풀말미잘 2018-03-22 10:55   좋아요 0 | URL
우, 울지는 마세요. 그냥 늘 하던 농담이었는데.. 이상한 농담한 점 사과드릴게요. ㅠ_ㅠ

AgalmA 2018-03-22 11:25   좋아요 0 | URL
나도 농담 좀 해본 건데-_-) 쳇, 농담도 서로 맞아야 하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