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1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박연 옮김 / 세주문화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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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권까지 읽고는 못 참고 리뷰를 쓴다. 이 작가 참 대단하구나. 20세기 소년을 읽을 때도 감탄했는데, 솔직히 20세기 소년은 약간 유치찬란한 부분도 있었다(그게 뭐 작가의 의도라면 할 말은 없다만). 그런데 이 만화는 숨도 못 쉬게 만든다. 그러면서 또 한참 괴로운 생각에 잠겨들게 한다.

진짜 절대악이란 게 있는 걸까? 만화 속 인물들은 요한의 눈 속에서 절대악을 본다고 말한다. 물론 완벽한 악마인 요한은 항상 미소와 선량한 눈 속에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 사람들은 그에게서 악마를 보는 것이다. 정말, 마음 속 저 깊은 곳까지 악의로 가득찬 사람이 있을까? 선천적으로 그런 사람이 있을까? 몇십명을 죽였다는 연쇄살인범을 보면 우린 가끔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환경이나 배움의 영향이 아닌, 그냥, 원래,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악마같은 자가 있을까?

얼마 전에 TV에서 미국의 한 연쇄 살인범이 나와서 자기의 살인행위를 태연자약하게 설명하며 '그것은 나의 프로젝트였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같은 사람을 보면 절대악을 느낄 수 있을까? 그는 원래부터 나쁜 놈일까? 뇌구조상? 선악을 판별하는 장치가 뇌에 없다든가 하는? 그럼 양심이란 선천적인 거란 말인가?

지금까지 스토리를 보면 요한이 그렇게 나온다. 마치 악마라도 되는 것처럼. 완벽하고, 지능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그러면서 자신의 계획을 차근차근 실현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타고난 악마라고. 정말 그럴까? 결론은 뭘까? 그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라는 결론일까?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고 심리실험을 통해서 그렇게 변화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까?

옛날에 어떤 심리학자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나에게 주어진 아이를 천사로도, 악마로도, 성직자로도, 도둑으로도 길러낼 수 있다" 라던가 하는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하던데 인간의 심성은 선천적인 것일까, 아님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지금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의문은 그것이다. 물론 그런 의문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이 이야기는 휘몰아쳐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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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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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알라딘 첫페이지에 '삼식이도 읽더라'라고 써 있길래 무슨 책을 삼식이가 읽던가 하고 들어와 봤더니 바로 이 책이다. 그렇지, 얼마전에 삼순이 드라마에서 삼식이가 이 책을 집어드는 걸 나도 보았다.

이 책으로 말하자면 같은 책 두번 안 읽는 내가 적어도 열번을 읽은 책으로(물론 그때는 어려서 돈이 없었던 관계로 읽은 책을 또 읽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 중 내게 가장 많이 간택된 책이라고나 할까) 미하엘 엔데라는 작가를 어린 마음에 쾅쾅 각인 시켜준 바로 그 책이다.

주인공 소녀 모모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펼쳐지는 이 모험담은 그저 흥미진진하기만 하지 않다. 마치 동양의 선지식을 동화로 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정신없이 팽팽 돌아가고 삭막해지고 황폐해 진 자본주의 사회에 보내는 애타는 경고 같기도 하다.

난 가끔 내가 정신없이 바쁠 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회색도당이란 정말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바쁘게 살면 살수록 왜 내 인생은 내 손에서 술술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걸까? 이발사 아저씨가 어머니를 양로원에 맡겨버리고 찾아가는 횟수도 점점 줄이고, 외로운 여인에게 말동무 해주던 것도 시간낭비라며 발길을 끊었는데 왜 그에게는 여유시간이 생기지 않는 걸까?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든다. 삶의 여유란 빨리빨리 일하고 시간이건 돈이건 최대한 저축해서 그걸 나중에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순간순간이 소중한 삶이며 각각의 순간을 진심을 가지고 대하지 않으면 나에게 남는 시간이란 없다고. 시간이 흘러간다고 아까워서 아우성치면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가 버린다. 그 시간에 내 주위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에 귀를 귀울이는 것이 우리의 시간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작은 소녀 모모는 이 책에서 온 힘을 다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그걸 깨닫도록 해 준다. 시간도둑은,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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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휙휙 2005-07-1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마이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실비 2005-07-1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엔트로피 2005-07-1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축하해 주셔서.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아영엄마 2005-07-13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리구요, 저도 이 책 참 좋아해요~

울보 2005-07-13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엔트로피 2005-07-13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이름 귀여우시다), 고맙습니다.
아영엄마님도요. 이 책을 좋아하신다니 반갑네요.

거친아이 2005-07-1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어염~~^^ 책 제목만 알고 아직 읽지 못했는데..빨랑 빌려봐야겠어요^0^

엔트로피 2005-07-1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해바라기님. 아주 좋은 책입니다. 아마 빌려 보시고 나면 소장하고 싶어질 겁니다*^^*
 
무지개 물고기 무지개 물고기
마르쿠스 피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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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들은 반짝이는 거라면 아무리 유치해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 어릴 적을 더듬어 보면 크레파스에 금색과 은색이 너무도 특별해 보였고, 금종이 은종이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선생님이 금은종이를 가져오라 해서 뭘 오리라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까워서, 실수할까봐.

이 책에는 반짝이는 무지개 물고기가 나오는데 진짜로 반짝이 비늘 하나하나가 진짜 실물같다. 아이들이 보면 환장할 듯. 그리고 그 반짝이가 유치하지도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내용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게 있는 걸 남과 나누자'라는 교훈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정말 필요한 교훈이지만 그렇다고 그걸 하나씩 나눠 가질 건 또 뭐냐. 왜 다들 그걸 갖고 싶어 하냐고. 나 같으면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난 지금 이 모습도 충분히 이쁘거든. 니가 잘난척만 안하면 같이 놀 수 있어' 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취향인데 난 생활언어가 아닌 너무 문학적인 언어에는 약간의 알레르기가 있어서 '웅숭 깊은'이라던가 하는 표현이 영 어색했다. 물론, 아름다운 우리말을 어릴적부터 알아야지. 그냥 나 혼자 어색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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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루 2 - 괴물
소다 마사히토 지음, 장혜영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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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제 <20세기 소년>을 현재 출간된 18권까지 읽고 허탈감에 빠져들었다가(뒷권이 아직 안 나왔으므로) 아쉬움을 달래보려고 대여점에 갔다. 별 기대없이 대여점 책장을 뒤지다가 언뜻 눈에 띈 책이 바로 <스바루>. 이거 뭐야? 내가 왕건이를 건진 것 같은데?

일단 이 만화가 그림체가 무척 독특하다. 이렇게 생긴 여주인공은 좀처럼 본 적 없다. 순정만화, 더군다나 발레만화인데 보통은 얼마나 공주틱하게 그려놓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 작가 그림체는 마치 그리다 만 것처럼 거친 펜선이 다 드러나 있다. 게다가 보통 순정만화에서 주인공이 눈물을 흘릴 때는 얼굴 표정은 조금도 일그러뜨리지 않은 채 수정같은 눈물만 방울방울이 정석일텐데 이 만화는 주인공이건 누구건 울기만 하면 눈물 콧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요즘 추세에 비하자면 약간 오바스럽다.

그러나 이런 거친 펜선은 이 만화의 내용과 너무도 어울린다. 이 만화와 비슷하게 예술계의 천재소녀를 그린 것으로 <노다메 칸타빌레>가 있다. 노다메는 여러모로 스바루와 대조적이다. 스바루가 목숨을 걸고(이것은 단순히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스바루의 춤은 쌍둥이 남동생의 생사와 연관되어 있었다) 춤을 추며 격정적인 회오리바람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노다메는 자기가 피아노를 잘 치는지, 치고 싶은지에 대한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치아키와의 신혼살림(혼자만의 생각이지만)의 단꿈에 빠져 할랑할랑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물론 나중에 가면 노다메도 자각을 하겠지만 그때가 와도 이 만화는 절대 절박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스바루>는 너무도 절박하다. 스바루의 눈은 마치 뒤에서 육식동물이 덮치려고 달려들자 죽어라고 도망가다가 도저히 안되어 최후의 몸부림으로 뒤돌아서서 그 육식동물의 눈을 정면으로 노려보는 암사슴의 눈 같다. 그런 절박함을 채 미완성인 것 같은 거친 펜선이 잘 표현해 준다.

아직 2권 밖에 안 읽어 별 네개를 주었지만 읽다보면 이 평가는 어느쪽으로도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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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걷는 악어 우뚝이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52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마루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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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오 리오니의 동화를 다섯편 정도 보았는데 참 특이한 울림을 주는 내용이다. 교훈적이지만 구태의연한 교훈이 아니라 신선하고 샘물같은 교훈이다. 이 동화는 비디오로 보았는데 움직이는 그림에 글은 나레이션으로 잔잔히 흘렀다. 그리고 그게 참 어울렸다.

남과는 다르게 태어나서부터 설 수 있었던 우뚝이. 그러나 다른 악어들의 반응은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단 말이야" 이게 다다. 그들은 연못에서 농탕치며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생활에 만족하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 우뚝이를 잘난척이나 하는 멍청이로 취급해 버린다. 무리들 사이에서 좌절한 우뚝이는 자신이 확보한 넓은 시야가 미치는 곳으로 길을 떠난다. 거기서 그는 서서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물구나무서기와 나무에 매달리기까지 할 수 있는 도인을 만난다. 바로 원숭이다. 우뚝이는 바로 원숭이의 제자가 된다. 여기서 우뚝이와 다른 악어들의 다른 점이 도출된다. 우뚝이는 계속 배운다는 것이다. 그가 선천적인 재주에 만족하고 주저앉았다면 그야말로 잘난척이나 하는 멍청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새로운 재주를 배운 우뚝이는 친구들에게 가서 그 재주를 선보이는데 그때도 악어들의 반응은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단 말이야"

실망한 우뚝이가 떠나려다 뒤돌아본 순간, 그의 친구 악어들은 우뚝이를 따라하려고 난리들이었다. 그래, 이제 강가의 삶도 예전같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동화 속 글은 왠지 시적인 느낌이며 아주 짧다. 내가 위에 써 놓은 줄거리만큼 밖에 안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울림은 참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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