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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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주제로 최고의 상을 받는 영화들의 특징은 자연스러운 연출과 분위기 조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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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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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일요일 저녁에 영화를 보는데,

일주일의 피로와 월요일의 짜증이 한데 어우러져,

몸을 가눌 수 없는 피곤한 상태에서 보게 된다.

그래도 특별한 경우와 이 시간 외에는

영화를 볼 수 없어서 끝까지 보려한다. 

 

날씨가 주말에만 따뜻하고 주중에는 춥다.

리뷰를 쓰는 지금도 밖에 눈이 내리고,

나는 몰려오는 졸음에 스스로 잠을 쫓으며 리뷰를 쓴다.

비록 짧지만 이상하게 집중은 피곤할 때 잘 된다.

 



 

"바보 같은 놈들!"

 

"다들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들이오."

 

"그럼 공인된 바보들이군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전의를 불태울 강력한 왕이 필요한 영국. 

형인 에드워드 8세의 불의로 인하여 왕을 양위 받은 조지 6세는,

국민들과 신하들이 보기에 선왕들에 비해 뛰어난 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말을 더듬는 치명적 문제로 제대로 대중들 앞에서 연설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나타난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

라이오넬 로그를 찾아간 조지 6세는 로그의 파격적인 행보에 불쾌감을 갖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로 인해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느낀다. 

 



 

"욕설은 아주 훌륭해요, 욕설을 하실 때는 전혀 더듬지 않으시거든요."

 

"뭔 개소리야!"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의 콜린 퍼스(Colin Firth)는 인상적이었다.

신체적인 결함을 가진 캐릭터의 연기를 하는 것은 어느 배우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이 포인트라 생각한다.

게다가 그는 진정 영국인이다.

이런 요소들이 콜린 퍼스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샤인>, <캐리비안의 해적>의 제프리 러쉬(Geoffrey Rush).

나는 <샤인>을 보고 그의 연기에 반했는데,

이 영화랑 비슷한 점들이 있다면.

일단 둘 다 실화였고 <샤인>에서 그가 맡았던 '데이비드 헬프갓'과,

비록 자신이 연기하지 않았지만 '조지 6세'는,

크게 닮지는 않았지만 작게 닮은 면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연기는 더욱 농염해진다.

 

팀 버튼(Tim Burton)의 부인인 헬레나 본햄 카터(Helena Bonham Carter).

어느 영화에서든 자신의 연기와 개성을 보여주고,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내는 그녀는 기억되어져야 할 배우라 생각한다.

그녀도 아름답게 늙고 있다.

 

젊은 감독 톰 후퍼(Tom Hooper)는 실화를 아주 고풍스러운 영화로 만들었다.

 



 

"로그, 이 시간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당신이 해준 일에 고맙게 생각하오."

 

"기사 작위라도 한 개 주시렵니까?"

 

<킹스 스피치>는 2011년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최고의 상들을 받았다.

<블랙스완>, <파이터> 등 이번 아카데미 시싱삭에서

최고의 상들을 받은 영화들의 공통점은,

멘토링을 통한 자기 극복적 휴머니즘 영화들이다.

 

<파이터>와 더불어 실화를 근거로 한 <킹스 스피치>는,

이전의 비슷한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참신하거나 뛰어난 구성을 가진 영화는 아니다.

인상적인 것은 출연 배우들의 연기였고,

어떤 시나리오적 장치가 아닌 그들의 연기가 극중 분위기를 긴장시키고 이완시켰다.

상투적인 주제로 최고의 상을 받는 영화들의 특징은 자연스러운 연출과 분위기 조성이다.

이 영화는 보는 동안 각 부분에서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있었고,

엔딩곡으로 나온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은,

영국 왕실의 기품과 위엄이 동시에 느껴지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수고하셨소, 나의 친구여."

 

"고맙습니다. 국왕 폐하!"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들 중 한 사람인 영국의 국왕 조지 6세.

영화에서는 실화를 토대로 극화한 부분이 조금 있지만,

그의 왕위 계승은 형의 부도덕에 따른 불가피한 양위였다.

그래서 성대한 즉위식보다는 어색한 즉위식으로 충분히 위축될 수 있었다.

일부 국민들도 언론의 농간에 말려들어 에드워드 8세를 지지했고,

영국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뒤숭숭한 국가 분위기를 바꿀,

조지 5세와 같은 강력한 리더가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즉위한 조지 6세는 말 더듬이에 여러 지병까지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윈스턴 처칠을 비롯한 최고의 참모진이 있었고,

무엇보다 훗날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애국심과 굳은 의지가 있었다.

그는 영국이 독일의 공습으로 피해 받는 와중에도

수도 런던을 떠나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 있었으며,

실제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빛나게 했던 것은 영화의 절정에서 나온 것처럼,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알리는 라디오 연설이었다.

미국의 루즈벨트와 더불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함과 동시에,

조지 6세의 왕권과 항전 의지를 의심하던 관료들과 국민들의 신뢰를 단숨에 받았다. 

어색한 즉위식과 말을 더듬고 여러 지병을 앓고 있어도,

전설적인 영국 왕들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이런 조지 6세의 멘토는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

왕과 평민이라는 신분차이를 넘어서,

로그는 조지 6세의 말 더듬는 것을 치료하고 스스로 극복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충성된 신하가 아닌 충성된 평민이 왕을 구한 것이다. 

처음에 조지 6세는 로그의 치료법에 반발했지만,

치료 이전에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로그와 나눔으로써,

둘은 신분차이에 관계없이 깊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말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신분차이를 넘어선 사랑과 우정 이야기들은 많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신분으로 바라볼 것인지,

순수한 인격체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서로의 판단과 결정이다.

이 판단과 결정은 신분의 높고 낮음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된다.

 

왕자와 거지가, 직장 상사와 내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과,

대통령과 국민들이 서로 깊은 신뢰를 할 수 있는 것은 비슷한 방법에서 이루어진다.

간단하게 처음 친구를 사귀듯이,

서로의 다른 성격과 그동안의 환경적 차이를 인정하되 무시하지 않고 이해하면서,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역할을 둘 중 한 명이 먼저 시작하면 된다.

때때로 생기는 오해와 다툼은 서로의 관계가 악화될 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극복할 수 있다면 더 나은 관계 형성을 위한 좋은 이벤트이다.

 

항상 알고 있는 것들을 삶에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실천하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지금의 절친한 친구들과 내가 어떻게 만나고 친해졌는지 잊어 버릴 정도로..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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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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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누군가의 평전을 읽을 때마다 잠시 동안 망설이는 것은 “평전으로 기록된 대상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평전으로 기록된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알기 전에 그들이 남긴 유산들을 살펴보아야 삶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은 엄청난 평전이다. 그의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한 채 이 책을 읽는 것이 대문호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었고, 내 스스로는 자책할 일이었다. 하지만 잠시 그의 삶을 먼저 아는 것은 이해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만날 그의 유산들의 실마리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도스또예프스끼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 더 원시적이고 더 근원적인 지역이다. 그것은 낭만파들의 인공적인 황무지도 아니며 더욱이 프랑스의 고전주의 시대 또는 영국의 어거스틴 시대의 잘 가꾼 정원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중세기와 르네상스 시기의 접경기에 해당될 것 같다. 그것은 인간이 통제도 이해도 할 수 없는, 어두운 힘들의 숲 속에 트인 작은 공터다. 이 미지의 숲 속을 도스또예프스끼는 반쯤 놀란 눈으로, 그러나 통찰력을 가지고 쏘아보고 있다. <380p>

  나는 그의 대작 <까리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친부살해라는 충격적인 사건과 아버지의 죽음 후 세 아들이 겪는 적대감과 내면적, 외면적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해 고민하게 되는 “인간이란 무엇일까?”의 진한 고민들.. 도스또예프스키는 인간의 어느 면을 보고 그런 고민을 하며 이 책을 썼을까? 그의 평전을 읽다보면 그가 활동한 암울했던 시절과 생활에 그만 마음이 숙연해진다.  



  19세기 말 만 러시아에 만연했던 계급 간 갈등과, 갈등 해소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지식인과 종교인은 <죄와 벌>과 <까리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도스또예프스키의 문학의 전형적인 등장인물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사정없이 비판하며 아무짝에 쓸모없는 인간들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조국 러시아의 사회통합을 위해 화해와 참회를 주는 결말은 지금을 사는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준다.

  평생 지병인 간질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역작들을 쏟아내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는 도스또예프스키, 나는 그를 언젠가 넘어야 할 산으로 바라보고 있고, 한편으로는 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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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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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등학교 때 이과에서 공부를 했고, 수능도 이과로 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나의 문제점은 수학을 잘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를 볼 때면 항상 수학에서 점수를 잃었고, 다행이 다른 과목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아 그럭저럭 이과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수능 때 수학을 못 본 것은 치명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나는 이과에서 문과로 교차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난 수학 때문에 인생에서 첫 쓰라린 패배를 느꼈다. 그만큼 수학은 내게 익숙한 것도 아니었고, 좋아할 수 없는 학문이었다.

  그런 내가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 전역한 이후다.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간단한 이유는 수학적 능력이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철저하게 인문학도가 되어 있었고, 인문학도에게 수학적 복잡함은 필요 없는 부가적인 능력이었다. 그러나 수학적 능력도 필요하다는 무언의 끌림이 있었고, 급기야 고등학교 때 보았던 ‘정석’책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교과서로 바뀐 지금 내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그 책을 다시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접하게 되었을 때, 책의 대강을 살펴보면서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익숙한 말만 찾다보니 제대로 읽을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정독을 해야 했다. 정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책이 보기보다 어려운 부분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째서 대칭은 자연에서 그렇게도 흔할까? 이것은 단순히 미적인 문제가 아니다. 나를 포함한 수학자들에게, 자연 속 대칭은 하나의 언어이다. 그것은 동식물들이 우성 형질에서부터 영양 정보에 이르기까지 다량의 정보들을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대칭은 흔히 의미 기호로 간주되어 매우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형태의 의사전달로 해석되기도 한다. 벌과 같은 곤충들에게 대칭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25~26p>

  영국의 젊은 수학자인 저자 마커스 드 사토이는 자신이 여행했던 장소들에서 겪었던 경험들과 예전의 추억들을 되살리며 대칭에 관한 재미있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얼굴 대칭에 대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폭발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인기 연예인들의 얼굴과 일반들의 얼굴 등 정면에서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대칭을 살펴보고 비대칭한 얼굴들에게는 구설수를 선물로 부여했다.

  왜 사람들은 대칭에 민감한 것일까? 짝짝이 신발이나 패션은 보는 이들에게 불안정한 느낌을 주고 한쪽이 없는 것보다 양쪽이 없는 것에 더 안정감을 느낀다. 사실 그게 더 손해일 때가 더 많은데도 그렇다. 저자는 그것이 대칭이 가져다주는 매력으로 보고 있고, 대칭은 인간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실생활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큰 영향을 준다.

  이외에도 다소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수에 대한 증명도 수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특히 대수학 같은 대학교 수준의 수학을 공부를 한 사람에게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학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좋아했던 학문이다. 의문투성인 세상에서 진리를 찾아 한 평생을 바치던 철학자들은 ‘수’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고대 이오니아인들 중에 피타고라스는 동료 철학자들이 흙, 공기, 불, 물 등의 물질적 원소들로써 설명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실재의 본질이 비물질적인 ‘수’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우주가 수의 속성들 및 그들 간의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고, 수를 가지고 독특한 합리주의와 신비주의를 결합하여 종교적인 위치까지 올려다 놓았다. 피타고라스보다 후세의 사람인 회의주의자 데카르트도 “오직 명증할 수 있는 진리는 수학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수의 개념과 비율은 불변하고 온전한 진리를 추구하려는 철학자와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본 수학은 내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수학책보다는 한결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생각은 가질 수 있었다. 갑자기 학창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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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코치 카터> - 토마스 카터 감독

  이 영화를 말하자면 기존의 상투적인 스토리적인 감동물 영화는 아니다.  늘 문제아들을, 아니면 실패자들을 집결시켜 하나로 뭉치게 하고 결국 승리라는(어디까지나 보편적으로 사회가 인정하는) 것을 얻는 것으로 영화가 막을 내리곤 했지만 이 영화는 인생에 대한 진정한 승리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흔히 디펜딩 챔피언이라니 스테디 챔피언이라는 말이 있다. '반짝' 스타가 아닌 영원한 챔피언..  이 영화에서는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을 떠나 진정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챔피언이길 원한다. 좋은 추억거리라고, 내 인생의 전성기였다고, 인생에 있어 최고의 날이었다고..사실 우리 인생에서 좋은 추억과 전성기는 지금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 그러므로 늘 현존해있어야 하고 그것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승리가 꼭 영원한 승리를 의미하지 않고 패배가 영원한 패배가 되지 않는다. 때론 승리가 패배일 수 있고 패배가 승리일 수 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고 그 끝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 영화는 진정한 인생 가치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도전을 주는 영화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 류장하 감독 

  영화의 내용을 보면 헝그리 정신과 상투적인 스토리로 시골 관악부를 관악대회 우승하는 스토리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변화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를 통해 보았던 한 남자의 변화는 우리 자신의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한 이야기다. 일명 회귀성 스토리를 가진 영화들은 외부적으로는 과장과 우연성이 짙은 사건들이 깔려 있다.  <꽃피는 봄이 오면>도 역시 그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인생을 체념한 채 시간만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순수한 사람들을 만남으로 잃어버린 꿈을 찾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단순한 결심이 아닌 자연스러운 치유를 통한 완고한 결심이 되는 것이다.  

  그는 봄을 기다린다. 영화 중에 남자가 어머니한테 전화를 거는 장면은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되었다.

“엄마, 나 모든 것을 다시 할래..”

“야 너는 늘 처음이었어. 언제 무엇을 했다고 그러니?” 

  무언가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우리는 이 자리에 있고 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꿈을 찾을 때 우리는 기다린다. 
    

 

 

<블랙> - 산제이릴라 반살리 

  항상 불굴의 의지는 일반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해낸다. 기적을 믿지 않거나, 이해관계가 철저한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미 기적과 불가능을 극복한 경험이 있고, 누군가의 삶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과 상황들을 자신들이 배운 지식으로 그것들의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나는 그들의 방어들에 대해서 지식이 정체되어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지식은 표면적 이해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죽을 병도 고치지만,  사람이 우주선 밖의 우주를 보고 놀라워 하는 것과, 죽을 병이 나아 이전보다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도 지식이다.

  어둠을 어둠으로만 이해하면, 어둠 속에 빛이 있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없다. 장애를 장애로만 이해하면, 차별은 생길 수 밖에 없다.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치열하듯이,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 역시 치열하다.그 과정에는 지식은 좋은 친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우는 지식은 우리의 삶의 어느 일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든 적용되고 그 폭은 무한하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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