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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ㅣ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고등학교 때 이과에서 공부를 했고, 수능도 이과로 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나의 문제점은 수학을 잘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를 볼 때면 항상 수학에서 점수를 잃었고, 다행이 다른 과목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아 그럭저럭 이과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수능 때 수학을 못 본 것은 치명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나는 이과에서 문과로 교차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난 수학 때문에 인생에서 첫 쓰라린 패배를 느꼈다. 그만큼 수학은 내게 익숙한 것도 아니었고, 좋아할 수 없는 학문이었다.
그런 내가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 전역한 이후다.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간단한 이유는 수학적 능력이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철저하게 인문학도가 되어 있었고, 인문학도에게 수학적 복잡함은 필요 없는 부가적인 능력이었다. 그러나 수학적 능력도 필요하다는 무언의 끌림이 있었고, 급기야 고등학교 때 보았던 ‘정석’책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교과서로 바뀐 지금 내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그 책을 다시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접하게 되었을 때, 책의 대강을 살펴보면서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익숙한 말만 찾다보니 제대로 읽을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정독을 해야 했다. 정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책이 보기보다 어려운 부분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째서 대칭은 자연에서 그렇게도 흔할까? 이것은 단순히 미적인 문제가 아니다. 나를 포함한 수학자들에게, 자연 속 대칭은 하나의 언어이다. 그것은 동식물들이 우성 형질에서부터 영양 정보에 이르기까지 다량의 정보들을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대칭은 흔히 의미 기호로 간주되어 매우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형태의 의사전달로 해석되기도 한다. 벌과 같은 곤충들에게 대칭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25~26p>
영국의 젊은 수학자인 저자 마커스 드 사토이는 자신이 여행했던 장소들에서 겪었던 경험들과 예전의 추억들을 되살리며 대칭에 관한 재미있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얼굴 대칭에 대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폭발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인기 연예인들의 얼굴과 일반들의 얼굴 등 정면에서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대칭을 살펴보고 비대칭한 얼굴들에게는 구설수를 선물로 부여했다.
왜 사람들은 대칭에 민감한 것일까? 짝짝이 신발이나 패션은 보는 이들에게 불안정한 느낌을 주고 한쪽이 없는 것보다 양쪽이 없는 것에 더 안정감을 느낀다. 사실 그게 더 손해일 때가 더 많은데도 그렇다. 저자는 그것이 대칭이 가져다주는 매력으로 보고 있고, 대칭은 인간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실생활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큰 영향을 준다.
이외에도 다소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수에 대한 증명도 수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특히 대수학 같은 대학교 수준의 수학을 공부를 한 사람에게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학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좋아했던 학문이다. 의문투성인 세상에서 진리를 찾아 한 평생을 바치던 철학자들은 ‘수’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고대 이오니아인들 중에 피타고라스는 동료 철학자들이 흙, 공기, 불, 물 등의 물질적 원소들로써 설명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실재의 본질이 비물질적인 ‘수’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우주가 수의 속성들 및 그들 간의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고, 수를 가지고 독특한 합리주의와 신비주의를 결합하여 종교적인 위치까지 올려다 놓았다. 피타고라스보다 후세의 사람인 회의주의자 데카르트도 “오직 명증할 수 있는 진리는 수학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수의 개념과 비율은 불변하고 온전한 진리를 추구하려는 철학자와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본 수학은 내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수학책보다는 한결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생각은 가질 수 있었다. 갑자기 학창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