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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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찾는 미술관에 걸린 그림 한장속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찾을 때가 있다. 한 예술가의 영혼을 담아낸 작품속에서 작가가 창조해낸 새로운 이상, 현실, 가치를 배우기도 하고, 그 작가의 비극적 삶과 작품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는 하나의 작품에 대해 인식하고 기억하는 기회를 갖게되기도 한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조금은 무겁기만한 이 이름이 언제부터인가 우리곁에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중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권력가나 부유층들의 전유물이 아닌 낮은 이들에게도 한없는 영감과 사랑을 전해주는 그런 친근함이 바로 대중예술이 가진 매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곁을 지키는 '소설'은 어떨까?

 

제1회 자음과 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을] 을 만난다.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독특했던 이 작품에 대한 평단의 입장은 상당히 호의적인듯 보인다. 관계와 한계의 가능성을 탐색한 작품, 자기만의 뚜렷한 문체를 지닌 소설, '고백할 수 없는 공동체'를 고백하며 증언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평론가들의 평가가 어떤 이미지로,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무척이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평론가들의 반응이 좋으면 재미는 떨어지기도 해서 약간의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박솔뫼의 <을>은 존재의 발자국을 남기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존재의 발자국을 스스로 지우며 흔적없이 스쳐가는 존재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그려내는데 성공한것이다.' - P. 204 , 작품해설 中에서 - 

 

을, 민주, 씨안, 프래니, 주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장기 투숙 여행자를 위한 한 호텔이라는 공간에 거주하는 이 다섯명의 남녀들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외국어 학원에서 일하다 만난 을과 그녀의 남자친구 민주, 민주의 추억속 친구들 윤과 바원, 이 장기 투숙호텔의 하우스키퍼로 일하면서 매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씨안, 그리고 프래니와 주이... 굳이 그들속에서 특별한 관계를 찾을 수도, 장기 투숙 호텔에 투숙한다는 것 빼놓고는 굳이 끼어 맞출 필요도 없는 그들의 평범한 시간,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쓰여진다.  



특별한 사건도, 특별한 이야기도, 하나의 줄거리도, 특정한 관계적 흐름도 없이 이야기는 흐른다. 주로 을의 시선속에 담긴 민주, 민주의 시선속에 담긴 을과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 씨안과 영화관, 프래니와 주이가 그려가는 한계적 공간속,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을>은 장기 투숙호텔이라는 공간적 배경, 등장인물들 사이의 이어지고 끊어질지 모르는 관계속에서 현대인들에게 보여지는 소통과 관계라는 구성을 독특한 작가만의 향기로 재구성하고 있다.

 

모든 소리가 의미를 가지는 시간은 찾아오지만 모든 소리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대중소설, 앞서 언급했던 예술 장르중 소설이 가진 대중적 매력이 이 작품속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을 즐겨읽는 사람들에게 재미라는 요소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함이다. 앞서 다소 우려했던 평론가들의 극찬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현실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등장인물들, 하지만 특별할 것 없이, 무겁게 짖누르는 회색빛을 띤 이야기들이 재미와는 동떨어진 깊이만을 만들어내는 듯 싶다. 사실 책의 마지막 작품해설을 통해서야 <을>을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숨겨진, 아니 이해하지 못했던 이야기 뒷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박솔뫼의 <을>을 읽고 나면 우리가 친구나 연인이나 가족이나 동료라고 이름 불러왔더너 모든 관계에 새로운 이름표를 달아줘야 할 것만 같다' - P. 204 , 작품해설 中에서 - 

 

젊은 청춘들에게 찾아온 특별했던 시간, <을>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그 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을까? 참신한 젊은 작가의 독특했던 이야기는 평론가들의 탁월한 평가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깊이를 잃어버린 우리 문학에 기대할만한 작가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그녀의 작품속엔 깊이 있는 예술혼, 그녀만의 뚜렷한 문체와 더불어 독자와 함께 호흡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간도 전해지기를 기대해본다. <을>은 그렇게 노을처럼 깊이 있는 색色을 가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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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 개정판
원태연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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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연! 그의 작품을 말할때 사람들은 종종 장난삼아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손발이 오그라드는것 같다고...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 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만큼 널 사랑해', '사랑해요 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도' ... 제목 그 자체로도 고스란히 하나의 멋진 시가 되어버리는, 그만의 순수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보고싶다. 다시 헤어지고 다시 쓰라려도....' , '슬픔은 행복했던 것만큼 그대로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 P. 105 , [해바라기] 中에서 -

 

얼마전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라는 영화에 도전장을 내민것이다. 하지만 흥행에서는 그다지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한듯... 아쉽기도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 열정과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리고 이번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그 작품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다시 철없는 시인이 되고 싶은, 철없는 시인 원태연' 이라고 남긴 이 책, 저자의 말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금 시를 통해 말하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시인 원태연의 마음이 새삼 전해지는 듯하다.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이 작품은 벌써 10년이란 세월의 먼지를 떨어내고 새롭게 우리 곁은 찾아온 책이다. 10년전 이 책의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10년의 시간은 너무나 감미로운 일러스트로 사랑을 채색한듯 너무 예쁜 모습으로 태어난 듯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수수하면서 감성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색감과 일러스트들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눈물, 이별, 사랑,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에 깊이를 더해주는 느낌이다.

 

'꿈꾸지 않고 자는 잠처럼 남겨질 것 없는 현실의 시간이 표현하기도 싫은 통증을 자꾸만 만들어 낸다.' - P. 69 , [좁은 방] 中 에서 -

 



[나는 스물 한 살이었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여는 마음으로 다가선다. 스물한살 그때의 추억과 흔적들속에서 조금씩 사랑을 알고 이별을 배우며 삶을 이야기하는 듯 과거의 발걸음을 잠시 되짚어가는 여행!을 떠나본다. 이별에 빠져본다. [풍경]속 어느 가을 날처럼... 과거 우리가 함께 바라보던 예쁘고 아름답던 풍경은 이제 더이상 너에게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니, 이제 너에게 나란 이름도 그때 그 추억속 풍경이 되어버렸을지도... 그가 담아낸 작은 이야기, 시어들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사랑을 이별을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커피 중독] 이다'라고 말하는 일상의 이야기들도 있고, [난쟁이 코코] 나 [사랑의 전설]과 같은 소설이나 환상가득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이별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아주 오래전 그녀의 집 앞에서 담배 꽁초를 수북히 쌓던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빈 새장]은 이런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픈...' 그런 사랑과 이별, 추억을 기억하게 만든다.

 

오래전에 가수 장나라의 노래중에 이 작품과 같은 제목의 노래가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그 작사가의 이름이 바로 원태연이다. 가사의 내용은 시와는 다르지만... 그녀의 노래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가수들의 노래속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가끔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지만, 그가 창조해내는 시어들속에 담겨진 특별하고 색다른 이야기들이 오늘도 우리를 울리고 웃기고 추억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사랑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인가.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그렇게 서로를 버렸음에도 단 한 번뿐인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다...' - P. 130 ,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中에서 -

 

시인에서 작사가로, 영화감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에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그의 이름은, 그의 바램?처럼 '철없는 시인'의 모습일 것이다. 쓰라리던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과거 그 시절을 추억하며 크게 미소지을 수 있게 만들 그의 손길이 그리움처럼 다가오길 바래게된다. 원태연 작가를 잊지 않게 해준, 그때 그 순수와 열정, 철없던 시인을 기억하게 만든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가 반갑다. 원태연, 철없는 시인의 미소로 다시 우리를 찾아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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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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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속에 음악이 흐른다. 교회에서 들려오는 약간은 무거워보이는 바흐의 피아노 클래식 선율인지, 단조인지 장조인지 모를 바이올린 음율인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흥얼거림인지... 책속에서 이렇듯 음악이 흘러내린다. 보이는 것도, 냄새도, 만지는 것도 소리로 전해지는 한 남자, 카스퍼 크로네 ... 그의 이야기를, 아니 그의 소리를 들어보자.

 

'전능하신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음조를 점지해주셨고, 카스퍼는 그 음조를 들을 수 있다.'

 

<콰이어트걸>은 자신만의 '소리'로 세상을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커스 극단에서 광대일을 하는 카스퍼에게 한 소녀가 찾아온다. 침묵으로 그에게 다가온 소녀. 클라라마리아라는 이 소녀는 자신이 유괴되었가고, 엄마를 찾아서 자신을 구하러 와달라고 부탁하면서 해적의 보물지도와 같은 그림들과 단어 두개를 남기게된다. 아이들 소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어오던 카스퍼, 하지만 이 특별한 소녀와의 만남을 통해 색다른 모험속에 빠져들게 된다.

 

'난 음악가에요. 모든 음을 다 연주하기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죠. 불길한 음까지도.'

 

이 작품은 가까운 미래, 유럽의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소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카스퍼, 코펜하겐에 발생한 의문의 대지진, 마리아 수녀원장님, 클라라마리아를 포함한 열두명의 소년소녀들... '어느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문체를 가진 작가'라고 평가되는 이 작품의 작가 '페터 회'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한 독자로서 <콰이어트걸>은 독특함 그 자체로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클래식의 선율이 있고, 독특한 환상과 모험이, 문학적 철학적 교양이 향기처럼 묻어나는 작품이다.

 



'페터 회의 작품은 보석으로 수를 놓은 것 같다'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의 평가는 적절해보인다. 침묵의 소녀와 소리로 세상을 사는 남자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독특한 분위기속에서 전개된다. 중간 중간 담겨진 짧지만 고귀한 언어들이 책이 가진 성장과 모험, 환상을 쫓는 여정이라는 조금은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소재들에 무게를 부여한다.

 

'행복이란 얼마나 많이 모으고 잘 나가느냐에 달려 있는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지.' -P. 116 -

 

독특한 배경과 소재,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들, 스릴과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구성, 재미속에 녹아있는 철학적 사색, 모험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 작품은 익히 우리가 만날 수 없었던 특별한 매력과 매혹으로 자리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콰이어트걸>은 영웅들의 탄생과 활약, 판타지세계로의 초대로 우리를 이끌었던 조금은 편파적이었던 소설과 영화의 손짓에서, 조금은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즐거움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제가 좋아하는 게 한 가지있죠. 모든 사람은 한때 서로의 어머니 였다는 겁니다. 전생에 말이죠. 그리고 다시 그렇게 된답니다. 그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이 말은 우리 모두 서로의 연인이었단 뜻일 겁니다. 또다시 인연이 될 것이고, 당신과 나도 그렇죠.' - P. 164 -

 

책속에서 음악이 흐른다. 이야기의 초반 약간의 난해한 구성과 몰입에 조금은 방해를 받아 얼굴을 찌뿌리기도 했지만 이야기 전반을 흐르는 바흐의 선율에 곧 이야기속에 다시금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가 담아내는 색다른 소재와 주제들이 소리로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단순한 소리가 아닌 선명하고 매혹적인 색깔로 덫칠해진 무지개처럼... 한번 읽고는 그 깊이와 매력적 사색에 동화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듯 하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책을 손에 집어 들게 된다. 쉿! 나의 소리를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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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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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노무라 사유리,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여동생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온다. 갑자기 피를 토해 검사를 해본 결과 암으로 판명된다. 평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짝사랑하던 젊은 의사 야마사토 본타로는 축소된 잠수정을 타고 환자 몸속으로 잠입해 수술을 하는 그녀의 치료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그와 그녀의 오빠, 다른 두명의 의사와 함께 그녀 몸속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성공을 자축하며 그녀의 몸속에서 음주를 한 그들은 길을 잃게 된다.

 

수술실과는 연락 두절, 그녀의 장을 따라 떠내려가던 그들 일행중에서 사유리의 오빠는 ’제가 수술용 메스로 여동생의 똥에 구멍을 뚫겠습니다. 이 잠수정이 지날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요.’ 하며 잠수정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본타로도 함께... 청순한 그녀의 대장, 체내의 이상한 냄새, 그때 등장한 회색의 커다란 물체, 회충과의 사투, 결국 그녀의 방귀를 유도해 태풍처럼 몸속을 빠져나온 본타로와 일행들...

 

<유모아극장>의 첫페이지를 장식한 이 [마이크로 결사대]라는 단편을 읽으면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정말 미칠듯이 우습고 처절하기 까지도한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모두 12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엔도 슈사쿠의 단편집이다. 어렵게 장만한 자신의 집 울타리가 남자들의 노상방뇨 장소가 되어버린 [하지 말지어다], 도플갱어처럼 자신을 닮은 사람과의 관계를 담은 [나와 쏙 빼닮은 남자가...], 인간과 침팬치와의 교감과 사랑을 다룬 [아르바이트 학생] 등 다양한 소재와 독특한 이야기들이 웃음속에 우리를 빠뜨려버린다.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유모아의 진수!

이거 무슨 만화야? 하며 펼쳐든 작품이 바로 <유모아극장>이다. 표지가 꼭 만화를 연상시키는, 어린시절 코미디 프로그램속 제목과도 같은 이 작품은 ’성석제도 웃었다’라는 소개글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출간된 성석제의 작품 [인간적이다] 도 어쩌면 엔도 슈사쿠의 <유모아극장>에 자극받은 작품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코를 막고 선 결사대의 모습, 침팬치와 찰싹 달라붙어 있는 한남자... 책을 읽고 난 후 ’아하~!’하는 감탄사와 함께 그림만으로도 코믹하기만 했던 표지에 소리내어 웃어보게 된다.

 



 

짝사랑하던 미인의 몸속 회충과의 사투, 이사한 집 담벼락 노상방뇨와의 혈투, 동물과의 이상 야릇한 교감과 사랑, 도플갱어와 불륜... 인간의 의식속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부분에서부터 그저 웃음으로만 넘길 수 없는 엔도 슈사쿠가 담아내는 사회적 인식의 깊이가 적절하게 배어있는 작품들로 책을 가득 채운다. 포복절도하는 웃음도 좋지만 책을 들고 잠시 킥킥 소리죽여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이 단편들을 더욱 재미있고 빛나게 만든다.

 

가을은 깊어가고, 저 소리, 뭐 하는 사람일까?

어느 산문집에나 담겨있을 것 같은 이 짧은 글, 하지만 이 글은 자신의 나무 울타리에 오줌 누는 소리를 듣고 주인공이 내뱉는 말이다. 절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이렇듯 툭툭 튀어나오는 말들이 어김없이 ’큭큭큭’ 웃음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도용당한 나는 당신하고도 자지 못한 거잖아요.’ 라며 자신과 쏙 빼닮은 남자때문에 손해본 여자에게 거침없이 말하는 공무원의 이 말 또한 독특한 유머를 전해준다.

 

엔도 슈사쿠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았다면 그의 이 작품들을 그저 그런, 우스운 이야기책 정도로만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20세기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문예비평가이며, 수많은 작품들로 일본을 넘어 해외에서까지 사랑받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 계통의 저술작가,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그의 작품을 통해 쉼없이 질문하는 작가, 오히려 그에게 붙여진 이런 딱딱하고 고정된 이미지를 벗으려 하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 작품 <유모아극장>이 조금은 새롭게 보여지기도 한다.

 

웃음이 있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고, 그 웃음속에 소통과 대화가 있어 편안함을, 웃음 이면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잠시 인생의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그저 소탈하게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에 가까운것이 있을까? 깊이있는 인생의 질문, 다양한 사회적 물음보다 웃음으로써 우리를,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즐거움을 전해준다면 그보다 더 커다란 문학적 가치와 의의는 없을 것으로 본다. 웃음으로 행복을 주는 작가! 엔도 슈사쿠, 그리고 <유모아극장>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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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트릭
엔도 다케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밀실살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시모치 아사미의 [문은 아직 닫혀있는데] 이다. 안에서 잠긴문, 그리고 방안의 시체를 둘러싼 치열한 두뇌싸움으로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재미를 선물해준 이 작품과 같이 폐쇄된 공간, 한정된 등장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밀실살인은 종종 추리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프리즌 트릭>은 제목에서 연상되듯 교도소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밀실 살인사건과 그 범인을 쫓는, 작가와 독자간의 끊임없는 두뇌게임이다. 왜? 누가? 어떻게? 이제 그 물음에 도전해보자.

 

<프리즌 트릭>은 제55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작가로 데뷔한 '엔도 다케후미'의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란포란상 최고의 트릭이라고 찬사받았다는 이 작품은 그래서인지 더욱 관심을 집중 시킨다. 엔도 다케후미의 데뷔작으로 그의 작가로서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에 기대감이 커진다. 보험회사에 다녔다는 그의 이력은 교도소와 교통사고 범죄 현장과 연결된 이 작품속에서 얼마만큼 섬세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풀어냈을지 또 다른 기대를 한껏 하게 만든다.

 

모험, SF소설이 사랑받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세상과 모험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특별한 직업을 다루거나 독특한 배경속에서 벌어지는 작품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리즌 트릭>의 배경이 된 교도소라는 공간도 무척이나 우리의 관심을 끈다. 쉽게 들어가지도 못할뿐더러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특별한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이 작품에 대한 또 다른 관심으로 이어진다.

 

무면허운전으로 징역 9월을 선고받은 이시즈카 미쓰루는 가석방 결정률이 굉장히 높다는 이치하라 교도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그는 가석방이 아닌 살인 계획의 실행을 더욱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다. 얼마후 교도관 노다 구니오가 야간근무를 선 다음날 수형자 1명이 사라졌음을 알게된다. 사라진 수형자는 미야자키 하루오, 그리고 서쪽 사동 창고에서 황산을 뒤집어써 신원 확인이 안되며 두손이 앞으로 나란히를 한 채 죽어있는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직접적인 사인은 브롬화 판크로니움 투여로 인한 질식사. 그리고 그 곁에 써있는 쪽지... '이시즈카, 죽어 마땅하다 - 미야자키'

 

사흘뒤, 이치하라 경찰서에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다케다 요지는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죽은 시체가 이시즈카라 판단한 경찰은 미야자키를 범인으로 예상하지만 시체는 이시즈카가 아닌 미야자키임이 발켜지게 된다. 피해자와 용의자가 뒤바뀌게 되고, 이시즈카를 쫓던 경찰은 이시즈카 미쓰루가 현재 식물인간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교도관 노다 구니오의 죽음을 비롯해 유사 살인사건이 계속 일어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교도소에서 이스즈카 행세를 한 범인은 누구이고 그는 왜  미야자키를 죽여야 했는지, 더구나 교도소내에서 사건을 벌였고, 어떻게 탈출했는가?하는 수많은 의문들이 계속 꼬리를 물게된다.



맨 처음 이시즈카 미쓰루로 행세했던 범인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고 경찰인 다케다 요지, 그리고 또 다른 과거의 사건과 연결된 시게노 다카유키라는 전직 사회부 기자출신 보험회사 직원의 시선을 넘나든다. 아즈미 토마토 팜의 사장 가사하라, 미야자키와 다카하시 가네로 국회의원, 이치하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출소한 나카지마와 쓰다씨, 무라카미 료코의 가족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와 과거 교통사고로 얽혀진 또다른 사건들이 어지럽게 등장하는 듯 싶더니, 이야기는 어느새 하나의 접점으로 다시금 모여든다.

 

대부분의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초반 제기된 수많은 물음, 왜? 누가? 어떻게? 그리고 마지막 느낌표와 감탄사 하나로 끝맺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조금 아쉬운건 책의 마지막까지 물음표를 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무지 마지막 물음표에 느낌표를 끼어 맞출 수가 없다. 다른 독자들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사건들도 그렇지만, 장면 전환이나 사건을 진행하는 시선의 변화가 너무 급변하는 부분이다. 각 장의 전환시 시점의 변화말고도 하나의 장 내에서 갑작스럽게 시점이 변화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을 던져주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기사 하나로 피해자 가해자 모두 한평생 사고의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됐어.' ...

'기사 하나가 사람을 불행에 빠트리는 건 한순간이야. 그걸 모르는 인간은 기자 일 때려치워야 해' - P. 234 -

 

<프리즌 트릭>은 단순히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고 추리하는 즐거움과 함께 우리 사회에 던져진 법이 가진 맹점들을 파헤치는 등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前 기자 출신의 기게노 다카유키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자가 가져야할 공정한 보도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엔도 다케후미의 데뷔작인 만큼 작가의 열정과 의욕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진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극찬했지만, 치열한 두뇌싸움을 위한 작가만의 트릭이 역시 압권인 작품이다.

 

책을 내려놓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 살인사건의 범인이 결국 자신의 입으로 사건을 풀어 놓는 결말은 조금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경찰인 다케다 요지, 전직 기자출신 시게노 다카유키, 그리고 사회부 기자 아사이 유리...와 같은 멋진 캐릭터들의 매력을 조금더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프리즌 트릭>은 이런 아쉬움 보다는 기대감과 만족감으로 즐거운 만남이 되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엔도 다케후미'라는 이름 또한 최고의 트릭과 재미를 선사해준 작가로 또 다른 만남, 새로운 두뇌싸움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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