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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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찾는 미술관에 걸린 그림 한장속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찾을 때가 있다. 한 예술가의 영혼을 담아낸 작품속에서 작가가 창조해낸 새로운 이상, 현실, 가치를 배우기도 하고, 그 작가의 비극적 삶과 작품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는 하나의 작품에 대해 인식하고 기억하는 기회를 갖게되기도 한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조금은 무겁기만한 이 이름이 언제부터인가 우리곁에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중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권력가나 부유층들의 전유물이 아닌 낮은 이들에게도 한없는 영감과 사랑을 전해주는 그런 친근함이 바로 대중예술이 가진 매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곁을 지키는 '소설'은 어떨까?

 

제1회 자음과 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을] 을 만난다.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독특했던 이 작품에 대한 평단의 입장은 상당히 호의적인듯 보인다. 관계와 한계의 가능성을 탐색한 작품, 자기만의 뚜렷한 문체를 지닌 소설, '고백할 수 없는 공동체'를 고백하며 증언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평론가들의 평가가 어떤 이미지로,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무척이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평론가들의 반응이 좋으면 재미는 떨어지기도 해서 약간의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박솔뫼의 <을>은 존재의 발자국을 남기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존재의 발자국을 스스로 지우며 흔적없이 스쳐가는 존재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그려내는데 성공한것이다.' - P. 204 , 작품해설 中에서 - 

 

을, 민주, 씨안, 프래니, 주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장기 투숙 여행자를 위한 한 호텔이라는 공간에 거주하는 이 다섯명의 남녀들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외국어 학원에서 일하다 만난 을과 그녀의 남자친구 민주, 민주의 추억속 친구들 윤과 바원, 이 장기 투숙호텔의 하우스키퍼로 일하면서 매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씨안, 그리고 프래니와 주이... 굳이 그들속에서 특별한 관계를 찾을 수도, 장기 투숙 호텔에 투숙한다는 것 빼놓고는 굳이 끼어 맞출 필요도 없는 그들의 평범한 시간,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쓰여진다.  



특별한 사건도, 특별한 이야기도, 하나의 줄거리도, 특정한 관계적 흐름도 없이 이야기는 흐른다. 주로 을의 시선속에 담긴 민주, 민주의 시선속에 담긴 을과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 씨안과 영화관, 프래니와 주이가 그려가는 한계적 공간속,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을>은 장기 투숙호텔이라는 공간적 배경, 등장인물들 사이의 이어지고 끊어질지 모르는 관계속에서 현대인들에게 보여지는 소통과 관계라는 구성을 독특한 작가만의 향기로 재구성하고 있다.

 

모든 소리가 의미를 가지는 시간은 찾아오지만 모든 소리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대중소설, 앞서 언급했던 예술 장르중 소설이 가진 대중적 매력이 이 작품속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을 즐겨읽는 사람들에게 재미라는 요소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함이다. 앞서 다소 우려했던 평론가들의 극찬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현실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등장인물들, 하지만 특별할 것 없이, 무겁게 짖누르는 회색빛을 띤 이야기들이 재미와는 동떨어진 깊이만을 만들어내는 듯 싶다. 사실 책의 마지막 작품해설을 통해서야 <을>을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숨겨진, 아니 이해하지 못했던 이야기 뒷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박솔뫼의 <을>을 읽고 나면 우리가 친구나 연인이나 가족이나 동료라고 이름 불러왔더너 모든 관계에 새로운 이름표를 달아줘야 할 것만 같다' - P. 204 , 작품해설 中에서 - 

 

젊은 청춘들에게 찾아온 특별했던 시간, <을>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그 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을까? 참신한 젊은 작가의 독특했던 이야기는 평론가들의 탁월한 평가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깊이를 잃어버린 우리 문학에 기대할만한 작가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그녀의 작품속엔 깊이 있는 예술혼, 그녀만의 뚜렷한 문체와 더불어 독자와 함께 호흡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간도 전해지기를 기대해본다. <을>은 그렇게 노을처럼 깊이 있는 색色을 가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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