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소노무라 사유리,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여동생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온다. 갑자기 피를 토해 검사를 해본 결과 암으로 판명된다. 평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짝사랑하던 젊은 의사 야마사토 본타로는 축소된 잠수정을 타고 환자 몸속으로 잠입해 수술을 하는 그녀의 치료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그와 그녀의 오빠, 다른 두명의 의사와 함께 그녀 몸속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성공을 자축하며 그녀의 몸속에서 음주를 한 그들은 길을 잃게 된다.

 

수술실과는 연락 두절, 그녀의 장을 따라 떠내려가던 그들 일행중에서 사유리의 오빠는 ’제가 수술용 메스로 여동생의 똥에 구멍을 뚫겠습니다. 이 잠수정이 지날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요.’ 하며 잠수정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본타로도 함께... 청순한 그녀의 대장, 체내의 이상한 냄새, 그때 등장한 회색의 커다란 물체, 회충과의 사투, 결국 그녀의 방귀를 유도해 태풍처럼 몸속을 빠져나온 본타로와 일행들...

 

<유모아극장>의 첫페이지를 장식한 이 [마이크로 결사대]라는 단편을 읽으면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정말 미칠듯이 우습고 처절하기 까지도한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모두 12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엔도 슈사쿠의 단편집이다. 어렵게 장만한 자신의 집 울타리가 남자들의 노상방뇨 장소가 되어버린 [하지 말지어다], 도플갱어처럼 자신을 닮은 사람과의 관계를 담은 [나와 쏙 빼닮은 남자가...], 인간과 침팬치와의 교감과 사랑을 다룬 [아르바이트 학생] 등 다양한 소재와 독특한 이야기들이 웃음속에 우리를 빠뜨려버린다.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유모아의 진수!

이거 무슨 만화야? 하며 펼쳐든 작품이 바로 <유모아극장>이다. 표지가 꼭 만화를 연상시키는, 어린시절 코미디 프로그램속 제목과도 같은 이 작품은 ’성석제도 웃었다’라는 소개글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출간된 성석제의 작품 [인간적이다] 도 어쩌면 엔도 슈사쿠의 <유모아극장>에 자극받은 작품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코를 막고 선 결사대의 모습, 침팬치와 찰싹 달라붙어 있는 한남자... 책을 읽고 난 후 ’아하~!’하는 감탄사와 함께 그림만으로도 코믹하기만 했던 표지에 소리내어 웃어보게 된다.

 



 

짝사랑하던 미인의 몸속 회충과의 사투, 이사한 집 담벼락 노상방뇨와의 혈투, 동물과의 이상 야릇한 교감과 사랑, 도플갱어와 불륜... 인간의 의식속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부분에서부터 그저 웃음으로만 넘길 수 없는 엔도 슈사쿠가 담아내는 사회적 인식의 깊이가 적절하게 배어있는 작품들로 책을 가득 채운다. 포복절도하는 웃음도 좋지만 책을 들고 잠시 킥킥 소리죽여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이 단편들을 더욱 재미있고 빛나게 만든다.

 

가을은 깊어가고, 저 소리, 뭐 하는 사람일까?

어느 산문집에나 담겨있을 것 같은 이 짧은 글, 하지만 이 글은 자신의 나무 울타리에 오줌 누는 소리를 듣고 주인공이 내뱉는 말이다. 절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이렇듯 툭툭 튀어나오는 말들이 어김없이 ’큭큭큭’ 웃음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도용당한 나는 당신하고도 자지 못한 거잖아요.’ 라며 자신과 쏙 빼닮은 남자때문에 손해본 여자에게 거침없이 말하는 공무원의 이 말 또한 독특한 유머를 전해준다.

 

엔도 슈사쿠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았다면 그의 이 작품들을 그저 그런, 우스운 이야기책 정도로만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20세기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문예비평가이며, 수많은 작품들로 일본을 넘어 해외에서까지 사랑받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 계통의 저술작가,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그의 작품을 통해 쉼없이 질문하는 작가, 오히려 그에게 붙여진 이런 딱딱하고 고정된 이미지를 벗으려 하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 작품 <유모아극장>이 조금은 새롭게 보여지기도 한다.

 

웃음이 있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고, 그 웃음속에 소통과 대화가 있어 편안함을, 웃음 이면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잠시 인생의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그저 소탈하게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에 가까운것이 있을까? 깊이있는 인생의 질문, 다양한 사회적 물음보다 웃음으로써 우리를,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즐거움을 전해준다면 그보다 더 커다란 문학적 가치와 의의는 없을 것으로 본다. 웃음으로 행복을 주는 작가! 엔도 슈사쿠, 그리고 <유모아극장>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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