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책속에 음악이 흐른다. 교회에서 들려오는 약간은 무거워보이는 바흐의 피아노 클래식 선율인지, 단조인지 장조인지 모를 바이올린 음율인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흥얼거림인지... 책속에서 이렇듯 음악이 흘러내린다. 보이는 것도, 냄새도, 만지는 것도 소리로 전해지는 한 남자, 카스퍼 크로네 ... 그의 이야기를, 아니 그의 소리를 들어보자.

 

'전능하신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음조를 점지해주셨고, 카스퍼는 그 음조를 들을 수 있다.'

 

<콰이어트걸>은 자신만의 '소리'로 세상을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커스 극단에서 광대일을 하는 카스퍼에게 한 소녀가 찾아온다. 침묵으로 그에게 다가온 소녀. 클라라마리아라는 이 소녀는 자신이 유괴되었가고, 엄마를 찾아서 자신을 구하러 와달라고 부탁하면서 해적의 보물지도와 같은 그림들과 단어 두개를 남기게된다. 아이들 소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어오던 카스퍼, 하지만 이 특별한 소녀와의 만남을 통해 색다른 모험속에 빠져들게 된다.

 

'난 음악가에요. 모든 음을 다 연주하기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죠. 불길한 음까지도.'

 

이 작품은 가까운 미래, 유럽의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소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카스퍼, 코펜하겐에 발생한 의문의 대지진, 마리아 수녀원장님, 클라라마리아를 포함한 열두명의 소년소녀들... '어느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문체를 가진 작가'라고 평가되는 이 작품의 작가 '페터 회'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한 독자로서 <콰이어트걸>은 독특함 그 자체로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클래식의 선율이 있고, 독특한 환상과 모험이, 문학적 철학적 교양이 향기처럼 묻어나는 작품이다.

 



'페터 회의 작품은 보석으로 수를 놓은 것 같다'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의 평가는 적절해보인다. 침묵의 소녀와 소리로 세상을 사는 남자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독특한 분위기속에서 전개된다. 중간 중간 담겨진 짧지만 고귀한 언어들이 책이 가진 성장과 모험, 환상을 쫓는 여정이라는 조금은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소재들에 무게를 부여한다.

 

'행복이란 얼마나 많이 모으고 잘 나가느냐에 달려 있는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지.' -P. 116 -

 

독특한 배경과 소재,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들, 스릴과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구성, 재미속에 녹아있는 철학적 사색, 모험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 작품은 익히 우리가 만날 수 없었던 특별한 매력과 매혹으로 자리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콰이어트걸>은 영웅들의 탄생과 활약, 판타지세계로의 초대로 우리를 이끌었던 조금은 편파적이었던 소설과 영화의 손짓에서, 조금은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즐거움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제가 좋아하는 게 한 가지있죠. 모든 사람은 한때 서로의 어머니 였다는 겁니다. 전생에 말이죠. 그리고 다시 그렇게 된답니다. 그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이 말은 우리 모두 서로의 연인이었단 뜻일 겁니다. 또다시 인연이 될 것이고, 당신과 나도 그렇죠.' - P. 164 -

 

책속에서 음악이 흐른다. 이야기의 초반 약간의 난해한 구성과 몰입에 조금은 방해를 받아 얼굴을 찌뿌리기도 했지만 이야기 전반을 흐르는 바흐의 선율에 곧 이야기속에 다시금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가 담아내는 색다른 소재와 주제들이 소리로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단순한 소리가 아닌 선명하고 매혹적인 색깔로 덫칠해진 무지개처럼... 한번 읽고는 그 깊이와 매력적 사색에 동화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듯 하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책을 손에 집어 들게 된다. 쉿! 나의 소리를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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