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아름다운 판타 빌리지
리처드 매드슨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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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그림 같았던 영화 한편을 기억한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이 바로 그 작품이다. 유채화로 화폭을 그려 놓은듯 수놓아진 천국의 화려한 모습과 환상적인 영상들이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와 더불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이 작품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아 저곳이 천국이구나! 천국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고 가슴속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기도 했던 그 아름다웠던 영화의 원작을 이제서야 만나게 된다. 그때는 미쳐 몰랐던 이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과 함께...

 

지금에서야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작품으로 잘못알고 있었던 [나는 전설이다]라는 작품을 통해서 그 이름을 처음 만났고, 지난 가을 즈음 [시간여행자의 사랑] 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서 그 이름을 가슴속에 선명히 새겨놓았다. 사실 로빈 윌리엄스의 저 영화 원작이 이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책을 집어 들고서야 알수 있었다. 영화를 만났던 당시의 정말 화려하고 환상적인 영상과 감동적인 스토리에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원작자가 누구였을까 하고 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어찌됐건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활자를 통해 그 화려한 영상까지 떠올릴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앤, 상관없어. 당신이 없는 천국은 천국도 아니야.' '이 지옥을 우리의 천국으로 만들면 돼.'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그 제목부터 너무 예쁘다. 사랑이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로버트 닐슨은 어느날 자신이 영매라고 소개하는 한 사람에게 원고 꾸러미는 받게된다. 그 원고 속에는 1년전 죽은 자신의 동생, 크리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방송작가인 크리스는 어느날 교통사고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된다.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가족들 주변을 떠돌지만 결국 서머랜드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사촌형인 앨버트를 만나고 차츰 그곳에 적응해나가지만 예기치 못한 소식을 듣게된다. 그의 아내 앤이 그의 죽음을 비관해 자살을 했고 지옥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크리스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버리면서도 험난하고 거친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러가지 난관을 뚫고 그녀는 만나게 되지만...



불륜과 이혼이라는 말이 일상생활 용어가 되어버린듯한 요즘같은 시대에 크리스와 앤이 보여주는 이런 숭고하고 순수한 사랑는 너무나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랑만큼 흔한 말도 없지만 사랑이란 말처럼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고 감동적인 말 또한 없다. 크리스가 보여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과 희생은 어둠속에 반작이는 별빛처럼 그렇게 밝게 빛나고 있다. 지옥도 갈라 놓을 수 없는 사랑, 사랑하는 이가 없다면 그곳이 천국이라도 천국일 수 없다는 크리스의 말이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잠이 들면 꿈을 꾸겠지. 육체의 짐을 벗었을때 이 죽음의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꾸게 될까 두렵구나.'                            [햄릿 3막 1장]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죽음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 [사랑과 죽음]이 우리 삶 근처에 있는 사후세계를 보여주었다면 그 세계를 넘어 지옥의 하위세계와 서머랜드와 같은 천상의 세계를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리처드 매드슨이 그려낸 죽음의 세계, 천당과 지옥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대비가 아닌 지금의 삶에 충실한 현세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느끼게 된다. '영원히 살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사랑하라' 라는 말처럼 오늘을 꿈꾸고 오늘을 사랑하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듯 보인다.

 

'진정한 삶은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이야. 죽음은 이 과정에서 하나의 단계에 불과해. 삶을 뒤따르는건 끝이 아니야. 존재의 영속성만 있을 뿐이야' 라고 말하는 크리스의 마지막 말이 가슴속에 남는다. 이 말속에서 삶이 가지는 의미를 새롭게 음미하게 된다. 죽음이 끝이 아니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이 아닌 '오늘 하루 하루에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사랑하고 행복하라'라는 가르침이 이 말속에 녹아있다. 영화속에서 느꼈던 감동과 책이 전해주는 더 환상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감동적이고 고귀한 사랑이야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연해진다. 죽음이 아닌 삶을 이야기하는 '천국보다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색다른 감동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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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화 순례
최준식 지음 / 소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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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가까이 있어서, 너무 익숙해서 알지 못했던 숭례문의 존재감과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보면서 느꼈던 침통함, 그리고 우리가 잊고 지내온 수많은 것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그 때의 시간이 벌써 1년이 넘게 흘렀다. 하지만 그런 커다란 아픔과 마주했던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또 다시 예전의 무관심과 무지로 우리의 문화를, 서울을 흐르는 시간속에 맡겨버리고 있다. 그런 시점에 <서울 문화 순례>라는 멋진 선물과 마주한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서울과 역사의 향기속으로...

 

'주인과 손님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놓으며 <서울 문화 순례>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주인은 집의 숟가락, 젖가락 숫자까지 꿰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 과연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진정 서울, 이 도시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고개를 가로 젖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손안에 꼭 쥐어야 할 가치가있어 보인다. 가까이 잡힐 듯한 산의 이름도, 숭례문과 같이 익숙했던 역사의 숨결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멋들어진 공간들도 우리는 쉽게 잊고 지내왔다. 우리의 문화와 그 공간, 그리고 삶을 현재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이 작품은 마련해주고 있다.

 

<서울 문화 순례>는 네가지 길 여행으로 구성된다. 서울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고민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시작으로 풍수지리를 통한 서울의 탄생을 소개한다. 산과 강, 인공으로 건설되었던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아픈 과거의 역사속 서울과 현재의 잔재들까지 담아내면서 첫번째 길을 지나게된다. 두번째길에서는 경복궁과 창덕궁과 같은 왕실문화를 돌아보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기록물들과 한글탄생의 배경이된 수정전, 관리들이 살던 북촌의 현재, 작년에 개방되기 시작한 창덕궁의 비원 등의 산책길에 나선다.

 

세번째길에서는 종교학 박사인 저자가 바라본 서울의 종교유적을 중심으로 길나들이를 함께한다. 국립사당과 우리 전통의 무교를 찾아보고, 단순한 종교제례의 의미를 넘어 정치적 의례이기도 했던 종묘의 숨결을 느껴본다. 한국불교의 본산인 조계사를 통해 우리 불교의 모습도 들여다본다. 마지막길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인 인사동과 현재의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인 홍대앞을 소개한다.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는 순례길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과거를 느끼고 미래를 내다보는 신명나는 길여행은 계속된다.



<서울 문화 순례>의 시작은 원래 외국인을 위한 서울 문화 안내서였다고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로 발행될 안내서의 한글원고를 기초로 수정 출판한 작품인것이다. 단순히 서울의 역사를 쫓는 방식이 아닌 서울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 주인이라고 말은 하지만 결코 주인일 수 없었던, 주인잃고 방황하던 서울에게 이 작품은 주인을 찾아주고 있다. 서울이라는 이름이 신라의 수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조차 생소하니 그 주인되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할 뿐이다.

 

일제가 세웠던, 지금은 사라진 조선 신궁을 비롯해서 우리 황실이 겪었던 현대사의 비극적 아픔을 서울 순례속에서 느껴본다. 길여행에서 바라본 것은 단순히 건물과 산과 강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최장 단일 왕조의 역사서인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이 지닌 위대한 가치를 새삼 느껴본다. 왕조의 기록물관리를 우리처럼 왕이 볼 수 없게끔 해서 견제와 올바른 정치를 이끌었던 위대한 유산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자신의 맘에 맞게 고치고 수정했던 중국의 기록물이 문화유산이 될 수 없는 이유와 확연히 대비가 된다. 우리 주변국들의 역사왜곡도 아마 그런 과거의 답습은 아닐까? ^^

 

<서울 문화 순례>가 원래 외국인들을 위한 안내서였다는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인사동을 즐기는 방법에서 잘 드러난다. 사진과 곁들인 자세하고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21세기를 대표하는 문화의 하나인 젊음의 공간 홍대앞을 소개하는 맨 마지막 길여행도 그렇다. 홍대앞 다운 공간들에 대한 소개도 마음을 뒤흔든다. 저자는 서울의 문화유적을 중심으로 이 순례길을 구성했다. 하지만 그 시점은 과거가 중심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을 기준으로 하고있다. 과거의 유적과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 바로 이것이다.

 

서울, 익숙하지만 모든것이 새롭다. 단순히 시간만 거슬러 올라가 바라보는 서울의 문화가 아니라 현재의 눈으로 과거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어서 <서울 문화 순례>는 즐겁다. 죽어버린 과거의 역사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서울을 생동감있게 그려낸다. 서울에 존재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망라하는 문화 순례길이 너무나 즐겁다. 몰랐고, 모르고 있었고, 무관심했다. 그것이 이 책을 만나기전 자신의 모습이었다면 <서울 문화 순례>이후의 서울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그와는 정반대가 되어있을것이다. 두번 세번 되돌아보는 사랑과 관심의 시선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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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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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창조하는 작가, 진정한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 얼마전 그의 작품중 유카와 마나부를 주인공으로 한 3부작 시리즈중 [예지몽]과 만났었다. 혹시라는 기대를 역시라는 느낌표와 마침표로 바꾸는데 부족함이 없는 그에게 다시금 감탄과 찬사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의 초기 작품집을 손에 들었다. 이런것이 히가시노 게이고표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재미구나를 일깨우는, 조금은 평이하고 굴곡이 심하지 않은 단편들이 어떤 재미를 줄지 새로운 느낌표에 대한 기대를 품고 달려간다.

 

유카와가 풀어가는 여러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그와 연관된 초자연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가는 추리 탐정 시리즈와 블랙 유머가 작렬하는 그의 단편 시리즈들 속에는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창조할 수 있는 특별한 색깔의 트릭과 반전이 함께한다. 책을 펼치면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고 저자의 트릭에 한번 휩쓸리게되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마지막 결말 즈음에는 뒤통수를 세게 한대 얻어 맞은듯한 충격에 휩싸인다. 그것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색깔이된다. 그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 된다. 뒤통수를 후려치고 씨~익 웃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마주한다.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앞서 말한 트릭과 반전을 넘어서는 가슴 뭉클한 휴머니즘을 맛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사랑때문에 아파하는 현실적 고통에서온 작은 고의, 순간적인 오류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을 극단적 상황에 이끌게 만드는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 누가 범인인가를 쫓았던 [예지몽]과 같은 스토리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왜?에 대한 인간 내면의 섬세한 심리적인 묘사에 중점을 두고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는가? 트릭과 반전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그 이유와 마주하게된 독자라면 가슴 한편이 멍해지고 뻥 뚤린듯한 서글픔과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작품들이라고 하지만, 그만이 가진 색깔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해 보이는 작품들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범인없는 살인의 밤>이 주는 트릭과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구성은 부드럽고 섬세한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필력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단편집에 실려있는 나머지 작품들 모두 이 작품의 제목처럼 진정한 범인이 없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끔 한다. 사회성에 그만큼 관심을 가져온 작가답게 이번 작품도 소외받고 아픔을 겪고 있는 내면을 가진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는 그들을 벌하고 단죄하고자 하는 맘보다는 그들을 살며시 감싸 안아주고픈 마음이 더 진해진다.

 

명성은 단지 의도 한다고 해서 쌓아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단 몇편의 작품으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작품속에 일관되게 독자를 향한 메세지를 준비하고, 독자의 가슴에 무한히 커져가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때 비로소 작가의 네임밸류는 커져가게 된다.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정수, 히가시노 게이고!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아마도 그런 그의 네임밸류를 만들어 갈 시기의 초석이 되어준 단편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이름을 떠올릴때 번쩍 번쩍 떠오르는 그의 작품들중 번쩍하며 떠오를 또 하나의 작품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중 만나보지 못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전에 그를 더 많이 만나지 못한 아쉬움보다 앞으로 남은 기대와 그리움의 시간이 더 큰 즐거움이 될것 같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요시다 슈이치의 대표작인 [악인]속 미쓰요가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악인이었던 거죠?' 상처받은 가슴들이 빚어낸 안타까운 사건들을 읽으면서 그런 질문을 해보게 된다. 살인사건, 수수께끼, 트릭과 반전, 그리고 또 반전... 거기에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적절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마음의 울림처럼 오랜 여운으로 느낌표를 찍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에 딸린 설레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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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명문가 -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하여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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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9년 대한민국은 또 한번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

의 거센 한파가 한반도를 거침없이 얼어붙게 만들고있다. 대한민국을 말할때 참 살기좋은 나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財)를 가진자들의 낙원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무엇이든 가

능한 나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돈만 있으면 무슨일이든 가능한, 가진자들의 천국 대한민국속에

서 서민들의 시름, 못가진 자들의 고통과 상대적 빈곤은 그래서 더욱 심해져만간다.

 

조폭까지 동원해 아들을 때린 사람에게 복수하는 재벌회장, 재벌가의 이혼으로 누구는 얼마를

받네마네 떠도는 억억소리나는 이야기들, 한 나라의 법쯤은 우스울정도로 쥐락펴락하는 재벌

가의 탈법과 불법을 오가는 만행들... 명문가(名文家)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이름있는 문벌,

훌륭한 집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소위 재벌이라 불리는 그들에게 명문가라는 타이틀을 쥐

어 줄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NO!' 다. 그 이유는 바로 문(文)과 재(財)의 차이,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차이가 아닐까?

 

역사는 흔히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보수와 개혁의 끊임없는 마찰'...우리

근세사에서 아쉬운 대목은 공존의 교훈을 터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P. 99)

무엇이 명문가를 만들까? 이 질문에 앞서 왜 우리는 명문가에 대해 알려고 하는지가 앞선 질

문의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왜 명문가에 대해 알려고 할까?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고자 하는 바램때문이다. 재(財)로 어지럽혀진 사회를 문(文)으로 바

로 세우고자 함이다. 삐걱거리는 갈등과 마찰속에서 함께라는 '공존'과 '통합'의 빛을 찾기위

함이다. 이것이 바로 비바람치고 높은 파고의 어둠속 항해를 시작한 대한민국호의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용헌의 <명문가>는 평생을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던 백의정승 명재 윤증고택을 시작으로 해서

얼마전 드라마 바람의 화원속 신윤복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어 유명세를 탓던 간송미술관의 간송

전형필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입에, 마음에 이름을 올린

명문가 9곳의 역사와 인물, 현재를 조명해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몇년전에

출간되었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의 후속편인 이 작품의 주된 주제는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다.

 

저자는 책속에서 명문가가 가지는 특징적인 것으로 고택(古宅)을 말한다. 고택의 존재여부를 명

문가의 조건으로 꼽는 이유는 역사성, 도덕성, 인물, 재력, 그리고 명당이라는 조건들로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우당 이회영 일가와 같이 잃어버린 조국을 떠나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

운동을 벌인 집안은 고택이 존재하지 않지만 이런 일부를 제외하고는 오랜 역사성을 간직한 고

택을 가지고 있다. 고택의 이런 5가지 특성을 중심으로 <명문가>가 가지는 특별한 가치관과

명예의식, 그리고 명문가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한 역사속 그들의 노력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산중턱에 자리잡아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눈덮인 양동마을, 명재 윤증 고택의 담장없는 사랑채와

늘어선 장독대의 풍경, 반드시 공경해야하는 집 '필경재'의 궁촌별묘 묘역의 웅장한 모습, 영남

풍류의 전형을 보여주는 임청각.... 등. 이들 명문가의 인물과 역사와 함께 고즈넉하고 단아한 자

태를 뽑내는 고택과 주변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잊고 있었던 한국형 노

블레스 오블리주가 숨쉬는,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위해 가장 적합한 장소가 바로 이들의 고택이

아닐까싶다.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저술을 남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자

식을 낳는 일이다. 자식은... 혈자(血子)와 법자(法子)다. 혈자가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

라면 법자는 사상을 이어받은 자식이다.                     (P. 37  움베르토 에코)

 

다산 정약용 선생은 '3대에 걸친 의원 이라야 약에 효험이 있고, 3대에 걸쳐 글을 읽어야 다음

세대에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온다'고 했다. 명문가라는 이름을 유지해 나가기란 그만큼 쉽지 않음

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 저술과 자식! 피를 이어주거나 사상을 이어

주거나, 가장 좋은건 피와 사상 모두를 이어주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명문가를 이어주는 또 하

나의 방식인 것이다. 자식에게 이어주어야 할 것은 재(財)가 아니라 바로 문(文)인 것이다.

 

명문가가 가진 기본적인 조건중 하나는 바로 재력이다. 어느 정도의 재력이 뒷바침 되어야만 가
문을 유지하고 명맥을 이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졌던 돈, 재물에서는 지금의 재
벌들에게서 나는 그런 냄새? 가 나지 않는다. 현재의 재벌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상대적인
박탈감과 분노라면 명예를 소중히 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명문가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바로 
우러나는 존경심이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레인메이커(Rain maker) 라는 말은 말그대로 비를 내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요즘은 자선사업가

라는 의미로도 쓰여지는데... 우리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부문화이다. 연말연시 구세군, 자연재해 성금...등 우리의 기부문화는 단발성, 이벤트성, 그리고

상업적 측면이 강한 기업위주로 흘러간다. 지속적이고 개인이 주도가되는 기부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해외 최고 부자들의 기부사례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지도층이나 재벌들의 기부문화는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누구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부터 이야기한다. 재(財)가 가장 중요시되고 자식에게 물려줄 가

장 중요한 유산이 된다. 하지만 이들 <명문가>를 통해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보다 수신제가

(修身齊家)가, 존중되고 이어주어야 할 것은 재(財)가 아니라 바로 문(文)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함께 해야 더 즐거운 법이다. <명문가>를 통해서 공존과 상생의 길을 배운다.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깨닫게된다. 이 책을 통해 모두가 레인메이커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차갑게

메말라버린 경제한파속에서 작은 단비처럼 내리는, 삶의 희망과 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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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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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르가 가진 매력을 한가지로 꼽으라면 아마도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이라는 말로 대신

할 수 있을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잠시 벗어나 새로운 인물과 캐릭터들, 전혀 다른 공간적

구성, 특별한 상상력으로 이끌어낸 마법과 환상의 세계... 그속에서 꿈꾸고 그곳에서 상상의 나

래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잠시 현실의 무게를 잊고 가벼움이라는 옷을 입을 수 있게되는것, 그것

이 바로 판타지 장르의 매력이란 생각이든다.

 

[해피포터 시리즈]의 마법세계,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와의 불멸의 사랑, 용이 나오는 전쟁 판

타지 [테메레르]... 이름만 들어도 가슴설레게 하는 특별한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SF 작가가 노

벨상을 받는다면 단연 1순위’라고 불리는, 판타지 문학의 거장, 개인적으로는 [어시스의 마법사]

로 기억되어지는 이름 어슐러 K. 르귄 의 작품들이 그 특별함이라는 이름들속에 함께한다. 마법

이 아닌 능력에 관한이야기 '서부해안 연대기'를 그렇게 만나게된다.

 

어슐러 K. 르귄의 '서부해안 연대기'는  2006-2007년 발표한 작품이다. '기프트'와 '보이스'

그리고 '파워'로 이루어진 작품들중 그 첫번째 이야기 <기프트>를 만난다. 국내에서는 그 두번째

이야기만이 출간되었고 다음달엔 그 마지막 이야기까지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판타지 장르구나'

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올 정도로 표지 디자인이 환상적이다. <기프트>의 오렉, <보이스>의

메메르의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나올 <파워>의 가비르는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기프트>는 판타지라는 어슐러 K. 르귄만의 브랜드네임에 '성장'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

를 준비한다. 서부해안 고원지대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혈통들의 이야기, 혈통의 선물을 가진 한

소년의 고민과 성장을 그려낸다. 카스프로 일족을 이끌어가는 카녹과 아내 멜,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 이기도 한 오렉이 있다. 그들이 가진 혈통의 선물은 바로 '되돌림'이라는 능력이다. 고원

지대에는 그들과 더불어 다양한 혈통과 능력을 가진 일족들이 있는데, '칼날'의 능력을 가진 로드

혈통, '부름'의 능력을 가진 바레혈통, '말라죽고 황페하게만드는' 능력을 가진 드럼혈통과 '비틀

기' , '봉하기, '고삐매기' ...등 다양한 능력을 가진 혈통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지와

백성들, 그리고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능력을 계발하려한다.

 

'나는 파괴적인 눈을 가진 소년, 너무 강력해서 통제할 수 없는 재능을 지닌 소년,     

                                             새로운 눈먼 카다드였다'     (P. 170)

 

카스프로 일족의 브랜터인 카녹은 그의 아들, 후계자로 태어난 오렉에게 '되돌림'이란 혈통의 선물

을 일깨우고 가르치려 하지만 오렉에게 그 능력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련한 기회

에 살무사를, 개를, 풀밭과 오솔길을 되돌리게 된 오렉은 자신의 능력에 불안과 혼란을 갖게된다.

카다드의 전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일뻔했던 되돌림의 행위속에서 오렉은 자신도 그와 같을 수 있

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자신의 눈을 안대로 가려버린다. 드러만트의 브랜터 오그는 그들 카스프로

혈통에 계속적인 도전을 해오고, 오렉의 엄마 멜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후 '부름'의 능력을

가진 바레혈통의 그라이와 저지대에서 도망온 에몬과의 만남 등을 겪으면서... 오렉은 두려움과

혼돈에 빠진 삶속에서 새로운 선택의 길을 걷게된다.



 

혼돈으로 얼룩진 젊음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오렉의 모습에서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진다.

오렉에게 주어진 '되돌림', 파괴에 대한 능력은 신의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신이 내린 저주와도

같은 느낌이다. 백성과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그 능력으로써 파괴하고 보여야하는, 자신의 의지

와 배치되는 능력들은 더이상 선물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친구 그라이가 가진 '부름'의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사냥감으로 동물들을 불러내야 하는 그라이의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선물로 불려

지지만 그 능력때문에 힘겨워하고 고민하는 젊은 오렉과 그라이의 모습속에서 고뇌하고 혼돈속에

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아이에서 어른으로의 길을 걷는 청소년기의 성장이라는 모습을 바라

보게 된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혈족들의 이야기속에서, 선물로서의 능력때문에 아파하고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판타지적인 소설의 매력과 함께 성장소설이 담아내는 주제의식을 한번 더 일깨우

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의 초반은 조금은 어렵게 느껴진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낯선 등장인

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서부해안의 지도뿐만이 아니라 혈족과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정도의 친절함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나마 이야기에 빠져드는 즐거움이 그런

필요성을 넘어서는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거대한 상상력과 섬세한 묘사, 

안정감있고 탄탄한 스토리구성이 '역시' 라는 느낌표(!) 로 남는다.

 

앞서 언급했던 판타지 장르의 매력으로 꼽았던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진다. 기다림이라는 설렘과 기대로 '서부해안 연대기' 시리즈의 다음을 기다려본다.어슐러 K.

르귄은 책의 마지막에 있는 옮긴이와의 인터뷰에서 소설가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국내 작가들에게도 한국인의 방식으로 상상력을 끌어내라는 조언을 덧붙이고 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끝으로 어슐러 K. 르귄이 건네 준 '선물'을 내려놓으려 한다.

소설가는 답을 하기보다는 질문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답은 독자들에게 맡겨둬야지요...(어슐러 K. 르귄과의 인터뷰 P.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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