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 순례
최준식 지음 / 소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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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가까이 있어서, 너무 익숙해서 알지 못했던 숭례문의 존재감과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보면서 느꼈던 침통함, 그리고 우리가 잊고 지내온 수많은 것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그 때의 시간이 벌써 1년이 넘게 흘렀다. 하지만 그런 커다란 아픔과 마주했던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또 다시 예전의 무관심과 무지로 우리의 문화를, 서울을 흐르는 시간속에 맡겨버리고 있다. 그런 시점에 <서울 문화 순례>라는 멋진 선물과 마주한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서울과 역사의 향기속으로...

 

'주인과 손님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놓으며 <서울 문화 순례>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주인은 집의 숟가락, 젖가락 숫자까지 꿰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 과연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진정 서울, 이 도시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고개를 가로 젖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손안에 꼭 쥐어야 할 가치가있어 보인다. 가까이 잡힐 듯한 산의 이름도, 숭례문과 같이 익숙했던 역사의 숨결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멋들어진 공간들도 우리는 쉽게 잊고 지내왔다. 우리의 문화와 그 공간, 그리고 삶을 현재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이 작품은 마련해주고 있다.

 

<서울 문화 순례>는 네가지 길 여행으로 구성된다. 서울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고민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시작으로 풍수지리를 통한 서울의 탄생을 소개한다. 산과 강, 인공으로 건설되었던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아픈 과거의 역사속 서울과 현재의 잔재들까지 담아내면서 첫번째 길을 지나게된다. 두번째길에서는 경복궁과 창덕궁과 같은 왕실문화를 돌아보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기록물들과 한글탄생의 배경이된 수정전, 관리들이 살던 북촌의 현재, 작년에 개방되기 시작한 창덕궁의 비원 등의 산책길에 나선다.

 

세번째길에서는 종교학 박사인 저자가 바라본 서울의 종교유적을 중심으로 길나들이를 함께한다. 국립사당과 우리 전통의 무교를 찾아보고, 단순한 종교제례의 의미를 넘어 정치적 의례이기도 했던 종묘의 숨결을 느껴본다. 한국불교의 본산인 조계사를 통해 우리 불교의 모습도 들여다본다. 마지막길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인 인사동과 현재의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인 홍대앞을 소개한다.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는 순례길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과거를 느끼고 미래를 내다보는 신명나는 길여행은 계속된다.



<서울 문화 순례>의 시작은 원래 외국인을 위한 서울 문화 안내서였다고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로 발행될 안내서의 한글원고를 기초로 수정 출판한 작품인것이다. 단순히 서울의 역사를 쫓는 방식이 아닌 서울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 주인이라고 말은 하지만 결코 주인일 수 없었던, 주인잃고 방황하던 서울에게 이 작품은 주인을 찾아주고 있다. 서울이라는 이름이 신라의 수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조차 생소하니 그 주인되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할 뿐이다.

 

일제가 세웠던, 지금은 사라진 조선 신궁을 비롯해서 우리 황실이 겪었던 현대사의 비극적 아픔을 서울 순례속에서 느껴본다. 길여행에서 바라본 것은 단순히 건물과 산과 강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최장 단일 왕조의 역사서인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이 지닌 위대한 가치를 새삼 느껴본다. 왕조의 기록물관리를 우리처럼 왕이 볼 수 없게끔 해서 견제와 올바른 정치를 이끌었던 위대한 유산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자신의 맘에 맞게 고치고 수정했던 중국의 기록물이 문화유산이 될 수 없는 이유와 확연히 대비가 된다. 우리 주변국들의 역사왜곡도 아마 그런 과거의 답습은 아닐까? ^^

 

<서울 문화 순례>가 원래 외국인들을 위한 안내서였다는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인사동을 즐기는 방법에서 잘 드러난다. 사진과 곁들인 자세하고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21세기를 대표하는 문화의 하나인 젊음의 공간 홍대앞을 소개하는 맨 마지막 길여행도 그렇다. 홍대앞 다운 공간들에 대한 소개도 마음을 뒤흔든다. 저자는 서울의 문화유적을 중심으로 이 순례길을 구성했다. 하지만 그 시점은 과거가 중심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을 기준으로 하고있다. 과거의 유적과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 바로 이것이다.

 

서울, 익숙하지만 모든것이 새롭다. 단순히 시간만 거슬러 올라가 바라보는 서울의 문화가 아니라 현재의 눈으로 과거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어서 <서울 문화 순례>는 즐겁다. 죽어버린 과거의 역사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서울을 생동감있게 그려낸다. 서울에 존재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망라하는 문화 순례길이 너무나 즐겁다. 몰랐고, 모르고 있었고, 무관심했다. 그것이 이 책을 만나기전 자신의 모습이었다면 <서울 문화 순례>이후의 서울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그와는 정반대가 되어있을것이다. 두번 세번 되돌아보는 사랑과 관심의 시선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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