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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ㅣ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판타지 장르가 가진 매력을 한가지로 꼽으라면 아마도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이라는 말로 대신
할 수 있을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잠시 벗어나 새로운 인물과 캐릭터들, 전혀 다른 공간적
구성, 특별한 상상력으로 이끌어낸 마법과 환상의 세계... 그속에서 꿈꾸고 그곳에서 상상의 나
래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잠시 현실의 무게를 잊고 가벼움이라는 옷을 입을 수 있게되는것, 그것
이 바로 판타지 장르의 매력이란 생각이든다.
[해피포터 시리즈]의 마법세계,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와의 불멸의 사랑, 용이 나오는 전쟁 판
타지 [테메레르]... 이름만 들어도 가슴설레게 하는 특별한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SF 작가가 노
벨상을 받는다면 단연 1순위’라고 불리는, 판타지 문학의 거장, 개인적으로는 [어시스의 마법사]
로 기억되어지는 이름 어슐러 K. 르귄 의 작품들이 그 특별함이라는 이름들속에 함께한다. 마법
이 아닌 능력에 관한이야기 '서부해안 연대기'를 그렇게 만나게된다.
어슐러 K. 르귄의 '서부해안 연대기'는 2006-2007년 발표한 작품이다. '기프트'와 '보이스'
그리고 '파워'로 이루어진 작품들중 그 첫번째 이야기 <기프트>를 만난다. 국내에서는 그 두번째
이야기만이 출간되었고 다음달엔 그 마지막 이야기까지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판타지 장르구나'
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올 정도로 표지 디자인이 환상적이다. <기프트>의 오렉, <보이스>의
메메르의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나올 <파워>의 가비르는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기프트>는 판타지라는 어슐러 K. 르귄만의 브랜드네임에 '성장'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
를 준비한다. 서부해안 고원지대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혈통들의 이야기, 혈통의 선물을 가진 한
소년의 고민과 성장을 그려낸다. 카스프로 일족을 이끌어가는 카녹과 아내 멜,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 이기도 한 오렉이 있다. 그들이 가진 혈통의 선물은 바로 '되돌림'이라는 능력이다. 고원
지대에는 그들과 더불어 다양한 혈통과 능력을 가진 일족들이 있는데, '칼날'의 능력을 가진 로드
혈통, '부름'의 능력을 가진 바레혈통, '말라죽고 황페하게만드는' 능력을 가진 드럼혈통과 '비틀
기' , '봉하기, '고삐매기' ...등 다양한 능력을 가진 혈통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지와
백성들, 그리고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능력을 계발하려한다.
'나는 파괴적인 눈을 가진 소년, 너무 강력해서 통제할 수 없는 재능을 지닌 소년,
새로운 눈먼 카다드였다' (P. 170)
카스프로 일족의 브랜터인 카녹은 그의 아들, 후계자로 태어난 오렉에게 '되돌림'이란 혈통의 선물
을 일깨우고 가르치려 하지만 오렉에게 그 능력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련한 기회
에 살무사를, 개를, 풀밭과 오솔길을 되돌리게 된 오렉은 자신의 능력에 불안과 혼란을 갖게된다.
카다드의 전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일뻔했던 되돌림의 행위속에서 오렉은 자신도 그와 같을 수 있
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자신의 눈을 안대로 가려버린다. 드러만트의 브랜터 오그는 그들 카스프로
혈통에 계속적인 도전을 해오고, 오렉의 엄마 멜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후 '부름'의 능력을
가진 바레혈통의 그라이와 저지대에서 도망온 에몬과의 만남 등을 겪으면서... 오렉은 두려움과
혼돈에 빠진 삶속에서 새로운 선택의 길을 걷게된다.
혼돈으로 얼룩진 젊음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오렉의 모습에서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진다.
오렉에게 주어진 '되돌림', 파괴에 대한 능력은 신의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신이 내린 저주와도
같은 느낌이다. 백성과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그 능력으로써 파괴하고 보여야하는, 자신의 의지
와 배치되는 능력들은 더이상 선물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친구 그라이가 가진 '부름'의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사냥감으로 동물들을 불러내야 하는 그라이의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선물로 불려
지지만 그 능력때문에 힘겨워하고 고민하는 젊은 오렉과 그라이의 모습속에서 고뇌하고 혼돈속에
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아이에서 어른으로의 길을 걷는 청소년기의 성장이라는 모습을 바라
보게 된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혈족들의 이야기속에서, 선물로서의 능력때문에 아파하고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판타지적인 소설의 매력과 함께 성장소설이 담아내는 주제의식을 한번 더 일깨우
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의 초반은 조금은 어렵게 느껴진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낯선 등장인
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단순히 서부해안의 지도뿐만이 아니라 혈족과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정도의 친절함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나마 이야기에 빠져드는 즐거움이 그런
필요성을 넘어서는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거대한 상상력과 섬세한 묘사,
안정감있고 탄탄한 스토리구성이 '역시' 라는 느낌표(!) 로 남는다.
앞서 언급했던 판타지 장르의 매력으로 꼽았던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진다. 기다림이라는 설렘과 기대로 '서부해안 연대기' 시리즈의 다음을 기다려본다.어슐러 K.
르귄은 책의 마지막에 있는 옮긴이와의 인터뷰에서 소설가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국내 작가들에게도 한국인의 방식으로 상상력을 끌어내라는 조언을 덧붙이고 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끝으로 어슐러 K. 르귄이 건네 준 '선물'을 내려놓으려 한다.
소설가는 답을 하기보다는 질문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답은 독자들에게 맡겨둬야지요...(어슐러 K. 르귄과의 인터뷰 P.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