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명문가 -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하여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2009년 대한민국은 또 한번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

의 거센 한파가 한반도를 거침없이 얼어붙게 만들고있다. 대한민국을 말할때 참 살기좋은 나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財)를 가진자들의 낙원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무엇이든 가

능한 나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돈만 있으면 무슨일이든 가능한, 가진자들의 천국 대한민국속에

서 서민들의 시름, 못가진 자들의 고통과 상대적 빈곤은 그래서 더욱 심해져만간다.

 

조폭까지 동원해 아들을 때린 사람에게 복수하는 재벌회장, 재벌가의 이혼으로 누구는 얼마를

받네마네 떠도는 억억소리나는 이야기들, 한 나라의 법쯤은 우스울정도로 쥐락펴락하는 재벌

가의 탈법과 불법을 오가는 만행들... 명문가(名文家)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이름있는 문벌,

훌륭한 집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소위 재벌이라 불리는 그들에게 명문가라는 타이틀을 쥐

어 줄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NO!' 다. 그 이유는 바로 문(文)과 재(財)의 차이,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차이가 아닐까?

 

역사는 흔히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보수와 개혁의 끊임없는 마찰'...우리

근세사에서 아쉬운 대목은 공존의 교훈을 터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P. 99)

무엇이 명문가를 만들까? 이 질문에 앞서 왜 우리는 명문가에 대해 알려고 하는지가 앞선 질

문의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왜 명문가에 대해 알려고 할까?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고자 하는 바램때문이다. 재(財)로 어지럽혀진 사회를 문(文)으로 바

로 세우고자 함이다. 삐걱거리는 갈등과 마찰속에서 함께라는 '공존'과 '통합'의 빛을 찾기위

함이다. 이것이 바로 비바람치고 높은 파고의 어둠속 항해를 시작한 대한민국호의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용헌의 <명문가>는 평생을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던 백의정승 명재 윤증고택을 시작으로 해서

얼마전 드라마 바람의 화원속 신윤복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어 유명세를 탓던 간송미술관의 간송

전형필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입에, 마음에 이름을 올린

명문가 9곳의 역사와 인물, 현재를 조명해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몇년전에

출간되었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의 후속편인 이 작품의 주된 주제는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다.

 

저자는 책속에서 명문가가 가지는 특징적인 것으로 고택(古宅)을 말한다. 고택의 존재여부를 명

문가의 조건으로 꼽는 이유는 역사성, 도덕성, 인물, 재력, 그리고 명당이라는 조건들로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우당 이회영 일가와 같이 잃어버린 조국을 떠나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

운동을 벌인 집안은 고택이 존재하지 않지만 이런 일부를 제외하고는 오랜 역사성을 간직한 고

택을 가지고 있다. 고택의 이런 5가지 특성을 중심으로 <명문가>가 가지는 특별한 가치관과

명예의식, 그리고 명문가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한 역사속 그들의 노력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산중턱에 자리잡아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눈덮인 양동마을, 명재 윤증 고택의 담장없는 사랑채와

늘어선 장독대의 풍경, 반드시 공경해야하는 집 '필경재'의 궁촌별묘 묘역의 웅장한 모습, 영남

풍류의 전형을 보여주는 임청각.... 등. 이들 명문가의 인물과 역사와 함께 고즈넉하고 단아한 자

태를 뽑내는 고택과 주변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잊고 있었던 한국형 노

블레스 오블리주가 숨쉬는,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위해 가장 적합한 장소가 바로 이들의 고택이

아닐까싶다.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저술을 남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자

식을 낳는 일이다. 자식은... 혈자(血子)와 법자(法子)다. 혈자가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

라면 법자는 사상을 이어받은 자식이다.                     (P. 37  움베르토 에코)

 

다산 정약용 선생은 '3대에 걸친 의원 이라야 약에 효험이 있고, 3대에 걸쳐 글을 읽어야 다음

세대에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온다'고 했다. 명문가라는 이름을 유지해 나가기란 그만큼 쉽지 않음

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 저술과 자식! 피를 이어주거나 사상을 이어

주거나, 가장 좋은건 피와 사상 모두를 이어주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명문가를 이어주는 또 하

나의 방식인 것이다. 자식에게 이어주어야 할 것은 재(財)가 아니라 바로 문(文)인 것이다.

 

명문가가 가진 기본적인 조건중 하나는 바로 재력이다. 어느 정도의 재력이 뒷바침 되어야만 가
문을 유지하고 명맥을 이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졌던 돈, 재물에서는 지금의 재
벌들에게서 나는 그런 냄새? 가 나지 않는다. 현재의 재벌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상대적인
박탈감과 분노라면 명예를 소중히 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명문가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바로 
우러나는 존경심이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레인메이커(Rain maker) 라는 말은 말그대로 비를 내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요즘은 자선사업가

라는 의미로도 쓰여지는데... 우리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부문화이다. 연말연시 구세군, 자연재해 성금...등 우리의 기부문화는 단발성, 이벤트성, 그리고

상업적 측면이 강한 기업위주로 흘러간다. 지속적이고 개인이 주도가되는 기부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해외 최고 부자들의 기부사례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지도층이나 재벌들의 기부문화는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누구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부터 이야기한다. 재(財)가 가장 중요시되고 자식에게 물려줄 가

장 중요한 유산이 된다. 하지만 이들 <명문가>를 통해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보다 수신제가

(修身齊家)가, 존중되고 이어주어야 할 것은 재(財)가 아니라 바로 문(文)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함께 해야 더 즐거운 법이다. <명문가>를 통해서 공존과 상생의 길을 배운다.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깨닫게된다. 이 책을 통해 모두가 레인메이커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차갑게

메말라버린 경제한파속에서 작은 단비처럼 내리는, 삶의 희망과 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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