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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를 창조하는 작가, 진정한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 얼마전 그의 작품중 유카와 마나부를 주인공으로 한 3부작 시리즈중 [예지몽]과 만났었다. 혹시라는 기대를 역시라는 느낌표와 마침표로 바꾸는데 부족함이 없는 그에게 다시금 감탄과 찬사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의 초기 작품집을 손에 들었다. 이런것이 히가시노 게이고표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재미구나를 일깨우는, 조금은 평이하고 굴곡이 심하지 않은 단편들이 어떤 재미를 줄지 새로운 느낌표에 대한 기대를 품고 달려간다.
유카와가 풀어가는 여러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그와 연관된 초자연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가는 추리 탐정 시리즈와 블랙 유머가 작렬하는 그의 단편 시리즈들 속에는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창조할 수 있는 특별한 색깔의 트릭과 반전이 함께한다. 책을 펼치면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고 저자의 트릭에 한번 휩쓸리게되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마지막 결말 즈음에는 뒤통수를 세게 한대 얻어 맞은듯한 충격에 휩싸인다. 그것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색깔이된다. 그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 된다. 뒤통수를 후려치고 씨~익 웃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마주한다.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앞서 말한 트릭과 반전을 넘어서는 가슴 뭉클한 휴머니즘을 맛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사랑때문에 아파하는 현실적 고통에서온 작은 고의, 순간적인 오류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을 극단적 상황에 이끌게 만드는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 누가 범인인가를 쫓았던 [예지몽]과 같은 스토리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왜?에 대한 인간 내면의 섬세한 심리적인 묘사에 중점을 두고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는가? 트릭과 반전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그 이유와 마주하게된 독자라면 가슴 한편이 멍해지고 뻥 뚤린듯한 서글픔과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작품들이라고 하지만, 그만이 가진 색깔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해 보이는 작품들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범인없는 살인의 밤>이 주는 트릭과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구성은 부드럽고 섬세한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필력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단편집에 실려있는 나머지 작품들 모두 이 작품의 제목처럼 진정한 범인이 없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끔 한다. 사회성에 그만큼 관심을 가져온 작가답게 이번 작품도 소외받고 아픔을 겪고 있는 내면을 가진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는 그들을 벌하고 단죄하고자 하는 맘보다는 그들을 살며시 감싸 안아주고픈 마음이 더 진해진다.
명성은 단지 의도 한다고 해서 쌓아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단 몇편의 작품으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작품속에 일관되게 독자를 향한 메세지를 준비하고, 독자의 가슴에 무한히 커져가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때 비로소 작가의 네임밸류는 커져가게 된다.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정수, 히가시노 게이고!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아마도 그런 그의 네임밸류를 만들어 갈 시기의 초석이 되어준 단편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이름을 떠올릴때 번쩍 번쩍 떠오르는 그의 작품들중 번쩍하며 떠오를 또 하나의 작품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중 만나보지 못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전에 그를 더 많이 만나지 못한 아쉬움보다 앞으로 남은 기대와 그리움의 시간이 더 큰 즐거움이 될것 같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요시다 슈이치의 대표작인 [악인]속 미쓰요가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악인이었던 거죠?' 상처받은 가슴들이 빚어낸 안타까운 사건들을 읽으면서 그런 질문을 해보게 된다. 살인사건, 수수께끼, 트릭과 반전, 그리고 또 반전... 거기에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적절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마음의 울림처럼 오랜 여운으로 느낌표를 찍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에 딸린 설레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