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쇼지 유키야 지음, 김난주 옮김 / 개여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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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초목을 빠르게 흘러가는 자동차에서 찍은 듯한 한장의 사진이 표지를 장식한다. 푸르름은 청춘의 상징이다. 흐름은 시간을 말하겠지. 그리고 모닝(Mourning)이라는 제목이 오른쪽 중간에 있고, 그 이름 위에 하얀 선 한줄, 그 왼쪽에 또 하나의 하얀 선이 있다. 과거, 그리고 현재를 이어주는 이름이 바로 모닝이다. 우리말로 하면 모닝은 상중(喪中), 혹은 상복(喪服)으로 말해야할지, 슬픔이나 애도 정도로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죽음이라는 사실을 기점으로한 이야기이기에 전자가 더 어울릴듯싶다. 죽음, 애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청춘! 작은 사진 한장에 이 소설이 말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함축된다. 이제 그 시간속을 거슬러 올라보자.

 

이십년만에 다 같이 만났는데, 한 명이 모자란다.

1980년에서 사년, 열아홉에서 스물둘까지.. 청춘을 함께 보낸 다이, 준페이, 히토시와 와료, 그리고 신고. 다섯명의 친구들있다. 그리고 이십년... 신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다시 모인 친구들. 신고의 장례식이후 헤어지려던 그들에게 준페이는 자살 선언을 한다. 너무나 쉽게 던져버린 친구의 말에 중학교 선생인 히토시도, 두부가게를 하는 와료도, 카페를 하는 나, 다이도 할말을 잃어버린다. 후쿠오카에서 도쿄로 돌아가는 길, 신고를 떠나보내고 준페이의 자살선언에 놀란 그들은 이십년전 청춘의 추억속으로 긴 회상여행, 드라이브를 떠나게된다. 신고의 죽음과 준페이의 자살선언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물음과 함께...

 

혈기왕성했던 다섯명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 청춘의 우정과 사랑! 하지만 죽음과 자살이라는 문제가 남았있다. 왜 준페이는 자살을 하려는 것일까? 그들의 긴나긴 추억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의 추억속에 존재하던 이름, 아카네! 아카네와 준페이, 그리고 신고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모든것을 함께했지만 그들이 알지못하던 숨겨진 비밀이 있었던 걸일까? 그들의 차가 속력을 낼 수록 이야기는 선명한 젊음 가득한 추억속 시간을 내달린다.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매일 매일 이런 인사가 어울릴만한 날들의 연속이다. 입시로 고민하는 학생도, 왕따로 힘겨워하던 초등학교 어린 아이들도, 사랑에 아파하던 젊은 남녀도, 그리고 도덕성에 상처받은 대통령도... 자살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죽어가는 시대이기때문이다. 누군가 자살세를 내야 한다고 했던가? 정말 그렇게라도 해야할 것 같다.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고서라도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팽배해진 요즘이다.

 

죽고 싶을 만큼 아프다면 죽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해질 수 있도록 죽도록 노력해보자. 혼자로 태어나지만 세상에 결코 혼자인 사람은 없다. 그래서 혼자 죽지만 그 죽음은 혼자만의 것으로 결코 끝나지 않는다. 자살은 나를 죽이는 일인 동시에 내 곁의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다. 자살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런 소재가 주는 이미지때문에라도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만든다.

 

<모닝 Mourning>, 죽음을 삶으로 되돌리기 위한 추억여행속에서 그 선명했던 청춘의 푸르름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사는 현재라는 시간의, 새로운 삶의 색깔로 전해진다. 시간이라는 덫에 갖혀버린 사람들이 아픔의 무게에 눌려 힘겨워할때, 잠시 그 시간의 무게를 벗고 가볍고 푸르렀던 시간여행을 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돌파구와 활력을 찾게되는 것과같이 말이다. 무거움에 가득했던 Mourning 에서 조금은 가벼워지고 활력넘치는 추억의 빛이 서린 Morning 속으로, 그리고 Good Morning! 로 새롭게 태어나는 그들의 모습과 마주한다.

 

죽음이 전해준 청춘의 푸르름을 현재의 시간에 덫칠하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 행복했고, 불확실한 미래속에서도 현재의 상황을 즐기 수 있었고, 무엇인가를 향해 아무런 생각과 주저없이 돌진할 수 있었던 다섯명 친구들의 추억여행을 통해 오래지 않은 나의 청춘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살아갈 용기와 다시한번 기지개를 펼 삶의 희망과 마주하게 된다. 어찌보면 죽음이 주는 또하나의 선물과 마주한다. <모닝 Mourning>은 청춘이 가진 푸르름을 현재의 회색빛에 푸르르게 덫칠할 기회를 선물한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의 청춘은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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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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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어부, 김종삼시인]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말 한마디가 있다. 살아갈 용기와 살기 위한 희망을 전해주는 그런 말이 있다. 죽음이라는,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긴박한 상황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가는 한 여인의 가슴에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들려준 김종삼 시인의 이 시로 그녀가 살아온 기적 같았던 삶을 돌아보고, 하루하루 힘겹게 걸어가는 지친 어깨의 사람들과 더이상 발 디딜 곳조차 찾지 못할 만큼의 무게에 쓰러지는 이들에게 또 다시 살아갈 기적이 되어줄 희망이라는 이름의 용기와 함께해본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장영희교수의 두번째 수필집이다. 그리 오래 지난 일이 아니기에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이름을 알 듯도 하다.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이렇게 살아남은 자들에게 살아갈 희망을 선물하고 그녀는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저술을 남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자식을 낳는 일이라고 했다. 이 작지만 희망 가득한 미소가 번지는 책 한권을 통해 그녀는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나, 비가 되고 싶다' 가 이 작품의 제목이 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제목도 너무 예쁘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마음에든다. 나비와 같은 자유, 나비효과처럼 퍼지는 메세지, 봄비처럼 세상을 적시게하는 느낌을 주는 멋진 제목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녀가 암으로 고생하기 이전 미국에서 안식년을 지내던 경험과 투병후 치료를 받으며 한국에 머물렀던 시간에 쓰여진 작품이다. 하지만 책속에 그녀의 병이나 병과의 사투, 죽음과의 전쟁 따위는 없다. 오로지 살아온 기적과 살아갈 더 멋진 기적들만 가득하다.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마지막 시간쯤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학위논문을 거의 마무리짓던 시기의 그녀에게 사라져버린 논문은 암담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논문지도교수 거버박사의 '넌 뭐든 극복하는 사람(You're a survivor)'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던 것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1년이란 시간을 충분히 투자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녀의 기적들은 시작된다. 삶의 용기와 배려, 긍정적 사고와 믿음, 사랑과 살아갈 희망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글들을 읽다보면 그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책의 표지에 그려진 소녀처럼 순수한 수줍음이 떠오른다. 책속에는 어느 한 곳에서도 '어둠과 그림자'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순수하고 밝고 환한 미소만이 가득하다. 그녀가 말하는 오늘을 사는 방법을 들어보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 최선과 성실, 그리고 믿음, 그리고 배려와 사랑이 있다. 그녀가 말하는대로 오늘의 가능성을 열고 조그더 그렇게 걸어나간다면 미래는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행복의 세가지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들, 내일을 위한 희망, 그리고 나의 능력과 재능으로 할 수 있는일'이다.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때, '아마도 눈물~' 일꺼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내려놓으며 그런 생각은 존재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웃음~~' 미소가 가득해진다. 어둡게 드리웠던 작은 걱정과 미래에 대한 괜한 두려움이 씻긴다. 죽음과 삶은 한장의 얇은 종이만큼의 간격도 않되는듯하다. 죽음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아닌 삶의 이야기가 있어 밝고 흥겹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 그랬듯, 죽음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진정한 걸음이 더 인상깊고 따스하고 감동적인 듯하다.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그리고 배우라.

 

'애들은 뼈만 추리면 산다.'

삶에 대한 의연함과 용기, 당당함과 인내의 힘이자 바로 희망의 힘, 그것이 바로 이제껏 질곡의 삶을 꿋꿋하고 아름답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힘이라고 느꼈다는 그녀. 이 말한마디가 어머니를 통해 배운 그녀 인생의 힘이 된 말이라고 한다. 그녀조차 질곡의 삶을 살았지만 우리 앞에선 그녀의 모습은 의연하고 은은한 미소와 함께한다. 자기 자신을 깨닫고, 하루하루 살아갈 방법을 일깨우며, 걸어갈 미래의 시간속에 희망이라는 커다란 선물바구니를 그녀가 내민다. '기적'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하루하루 선물이 되어줄 그녀의 마지막 삶의 이야기들이 우리들의 '일상'으로 내려앉기를 바래본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행복한 미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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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인생>을 리뷰해주세요
헤세의 인생 - 삶은 아름답고 소중하다 헤르만 헤세 : 사랑, 예술 그리고 인생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 그책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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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헤세! 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낯익지만 그의 작품은? 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로지 벙어리가 되어버린다. [데미안]이라는 이름 정도만 되뇌일뿐... 그의 명성에 맞는 작품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부끄럽고 아쉽다. 젊은 날의 고민을 책과 나눈 것이 아니었던 지난 시간이 아쉽기만하다. 이제 늦게라도 헤세를 만난다. 그의 사랑과 인생과 예술을 담아낸 시리즈 중 그의 작품속 그가 가지고 있던 인생의 느낌표들을 그의 문학작품과 메모, 편지 등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삶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헤세의 인생론은 헤세가 걸어온 발자취와 인생에 대한 기록이 진한 향기로 묻어난다. 자신의 삶과 인생에 대한 느낌표, 우리의 인생에서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아이와 청춘, 그리고 노년이 가져야 할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그의 문학작품속에서 찾아낸다. 노년의 헤세, 그의 문학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는 삶의 이야기, 인생의 깊이 있는 질문과 대답들이 간결한 필치로 쓰여진다.

 

인간은 시도이며, 예감이자 미래이며, 자연이 새로운 형태와 가능성을 추구하도록 허락한 존재이다.  - P.17 ,  [전쟁과 평화, 1918년] -

 

인생은 무엇인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고, 어른들이 인생에서 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며, 교육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교육이 진정으로 가치있기 위해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짧지만 진지한 언어가 그려진다. 청소년이 성년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중요한 두가지 단계를 헤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자아를 깨닫고 의식하는 단계와 이 자아를 공동체속에 편입시키는 단계', 그리고 이런 개인과 사회사이의 충돌과 요구를 균형있게 지키고 찾아야한다는 가르침을 전한다.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과 직업, 그리고 오해와 번민들이 그의 주옥같던 문학작품과 일상이 그려진 편지와 메모속에서 새롭게 되살아난다. 개인적인 자유와 발전을 억압하는 권위와 관습에 대한 거부, 틀에 박히 교육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헤세의 삶속에는 자리한다. 그런 그의 의지와 가치관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인생속에서 그렇게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는것이다.

 

청춘에 요구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노년에 요구되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 P.162 ,  [M.K. 씨에게 보낸 편지, 1933년 1월] -

 

헤세는 동양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책을 보다보면 이런 헤세의 사상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 [맹자]에 나오는 '가혹한 말은 여섯달에 걸친 추위와 같은 상처를 준다. 관대한 말은 겨울을 세 번 날만큼의 온기가 있다'는 말의 인용도 그렇고, 음과 양에 대한, 주고받음에 대한 관계의 규정, 대립되는 가치들에 대해서 어느것에 치중하지 않는 중도적인 모습들을 찾을 수가 있다.

 

'헤세에게 삶이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적이고 변화하는 것이다.' 그의 문학과 삶속에서 찾아낸 인생에 대한 짧지만 진솔한 이야기는 그가 느낀 삶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또한 그의 문학작품속에 담겨진 인생이란 깊이 있고 심오한 주제를 통해 그 작품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도 될 수 있었다. 더불어 인생의 무게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그의 인생관을 되짚어 봄으로써 심도있는 대답을 들려준 행복한 시간이 되었음을 짐작해본다. 그와의 첫만남이 부끄럽다. 가벼움과 자극적이고 선명한 작품들만을 선택했던 시간들이 후회스럽다. 고전의 향기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르침과 만난다. 헤세가 전해준 '인생'의 그 길 위에서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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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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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가 가진 묘미는 어쩌면 속아주는 자의 몫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이야기속에 수많은 트릭을 넣어두고 마지막 미스터리의 문을 열어내는 순간 자아낼 독자들의 '아~'하는 탄성에 미스터리 작가는 기분좋은 웃음을 날릴지도 모른다. 속이는자의 몫보다는 속아주는 자의 몫, 지금까지 만나온 미스터리 작품들의 대부분이 그랬다면 이번엔 아마도 속이는 자의 몫이 크게 다가온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성과 트릭속에 담겨져있는 미스터리, 오리하라 이치에게 넋을 잃고 만다.

 

두 가지 사건이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쫓는 두 남녀가 있다. 작은 소도시 사이타마현 하스다시에서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다키자와 일가족 네명의 행방불명 사건과 또 다른 지역에서는 여성들을 노린 괴한습격사건이 발생한다.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은 소설가의 부인이자 그를 도와주는 르뽀라이터 이가라시 미도리에 의해서, 괴한 습격사건은 후루타 도모아키라는 무명작가에 의해 그 베일이 서서히 들추어지게 된다. 전혀 다른 두가지의 사건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 그 두 사건은 또 다른 고리로 연결되고 이어지는데...

 

지극히 평범하고 고지식한 선생님이었던 다키자와가의 가장 류타로, 부인 미에코씨의 바람기, 할머니의 광진리교, 딸 나쓰미의 불륜과 임신, 그리고 5년전 있었던 요시자와 일가 살인사건... 등 여러가지 정황들이 그들 가족의 행방불명과 얽혀 점점 더 사건을 미궁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한편 괴한 습격사건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관지어진 무명작가는 자신을 성추행범으로 몰았던 여장 남자를 범인으로 확신하고 그를 쫓기에 이르지만 번번히 그에게 뒤통수를 맞게되고 범행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이 무명작가는 그의 다음 작품을 위해 이 사건에 대해서 하나하나 기록하게 되는데...

 

미스터리 소설속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트릭들이 숨어있다.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과 괴한 습격사건이라는 두가지 이야기구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속에서 독자들은 처음부터 작가의 트릭에 속아버리고 만다. 프롤로그 '하얀안개'속 4가지 정도의 각자 다른 시점과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도무지 어떤 내용일지 모를 혼란의 시작과 마주하게 된것이 그 첫번째이다. 두가지 이야기, 일가족 행방불명사건과 괴한습격사건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이야기 전개속에서 이 두가지 이야기가 동일한 시간대의 진행일거라 생각하게된 것이 바로 그 두번째 트릭에 속아 넘어가게 된것이다.



결국은 읽는 사람들이 오해를 불러오도록 만들어 낸 작가의 트릭이 빛을 발한 것이다. <행방불명자>는 속이는 자의 몫이 그래서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고 말하고 싶은 작품인 것이다. 첫인상이 좋은 작가가 좋다. 일본에서는 행방불명자와 같은 시리즈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이 작가의 작품을 조금 더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도착의 론도]와 [타임캡슐]이라는 작품이 번역된걸로 아는데 그 작품들을 만나보면 이 작가에 대해서 조금더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수 있을것 같다.

 

투명한 물컵안에 떨어진 잉크 몇방울이 엉키고 설킨 모습을 한 이 작품의 표지가 맘에 든다. 작품의 배경이 된 구로누마, 검은 늪이라는 이름이 가진 빨아들이고 감추어버리는 이미지가 표지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미스터리가 가져야 할 트릭과 반전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쉽게 그 결과를 예측하려 하거나 여러가지 사건의 개연성과 관계를 연관시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서로 다른 두가지 사건은 전혀 연관성도 없고 개연성도 찾을 수 없어 그런 성향의 독자들을 꼼짝못하게 만드는 위력?을 가지게 만든다. 단지 '늪'이 가진 빨아들이려는 성격만을 이 작품은 가지려한다. 쉴 틈도 주지않고 책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집중력을 말이다. 전혀 연관이 없다고 믿었던 두 사건이 하나의 선을 따라 이어지고, 작가가 미리 마련해두었던 트릭에 빠져버렸구나 생각되는 순간, 이야기는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버린다. 무명작가 후루타 도모아키가 뒤통수를 맞고 기절해버렸던 것처럼....

 

오리하라 이치, '000자' 시리즈와 '도착...' 시리즈에 관심이 간다. 빠른 시일내에 첫인상이 너무 화려했던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주해야 할 것 같다. 아직 '000자' 시리즈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것 같아 아쉽지만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맘은 언제나 즐거움이기에 더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행방불명자>는 트릭과 반전이 살아있고, 평행선으로 시작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오리하라 이치의 독특한 서술 방식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사건의 진실속으로 다가갈 수록 섬뜩하게 다가오는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악'한 내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스피디한 전개와 이중적 구조가 자아낸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던 <행방불명자>를 오랜시간 기억하게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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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은 없다 - 2008 대표 에세이
김서령 외 41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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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나 소설, 장르의 구분, 각종 수사법.... 학창시절 배웠던 문학에 대한 가르침이 느낌과 감상이 아닌 기억으로 아직도 한구석 자리한다. 수필, 에세이라는 말은 그나마 왠지 모를 마음의 편안함이 되어 되돌아온다. '형.누.나.소.개' 라고 했던가? 형식도 없고, 누구나 쓸수있고, 나가 자신이 주인공이며, 소재가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하다는 특징을 가졌다고 배운(이또한 학창시절의 기억일테지만).. 수필이 마음을 그렇게 편안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런 자유로움에서 연유하는 듯하다.

 

보다 자극적인 내용, 화려하면서도 색깔있는 문학작품들이 사랑받는 요즈음 수필이 사람들의 손길을 부여잡기는 좀처럼 쉽지 않아보인다. 그렇지만 에세이가 사람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는 이유는 분명 있을것이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지루함과 안일함속에서 조금더 자극적인 상상의 세계를 꿈꾸기도 하지만 그런 잠시 잠깐의 시간에 빠져들었다가도 그 세계를 빠져나온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의 허탈함일지도 모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삶은 그랬지' 하는 또 다른 종류의 깨달음 만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작은 쉼표! 여행도 그렇고 잔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도 그렇다. 누군가와 마음놓고 마음편히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일은 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수다' 가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무거운 내 발걸음이 내딛던 길을 떠나 잠시 다른 이들의 삶속으로 걸어들어가 본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또 다른 이해이자, 삶의 새로운 길을 찾는 일이 아닐까! 자유, 에세이 속에는 자유가 있다.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어떤 형식도 구애도 받지 않는 자연스러움, 42명의 수필가들과 그렇게 수다의 밤을 보내본다.



김서령의 [약산은 없다]를 시작으로 마흔두명, 에세이스트들의 삶의 흔적들을 걸어본다. 오래전 어린시절의 아릿하고 따스했던 추억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안양천]과 같이 곁에 가까이 있던 생활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던지기도 하고, [물소 문진]이란 작은 작은 사물에도 이야기와 생명을 불어넣는다. [파한쇄담]속 노부부의 일상도, [간격]속 황혼 부부의 또 다른 삶도 새로운 색깔로 물들인다. [피아노]속 피아노는 새로운 이야기가 되고, [사랑이 사랑을 버리다]처럼 몸둘곳 없는 사랑의 이야기도 작은 이야기가 된다.

 

소설가 김탁환의 [천년습작]이란 책속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처음에 글은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감(感)하고 동(動)하면서 글은 '느끼는'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누구나없이 삶에 발을 내딪게되고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가 감(感)하고 동(動)하면서 새로운 느낌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일이 바로 삶일 것이다. 그속에서 에세이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느낌일 것이고 말이 아닌 글로 써내려간 무언의 기록이 될 것이다.

 

'적당한 거리는 소외가 아니라 조화이며 평화이고 소통이다. 극과 극이 오히려 자장(磁場)이 강한 이치이리라.'   - P. 256  [간격] 중에서 -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된다. 작가라는 이름이 아닌 나의 일상을, 마음을, 삶을 활자로써 만나보고 싶어진다. [약산은 없다] 2008년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수필들이라는 수식어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감탄' 이 아닌 '느낌' 그대로였다. 그렇기도 하겠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편안한 마음과 내 삶을 되돌아보고 무언가 적어보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긴다. 사실 어떤글이 잘 쓴글이고 어떤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게 수필은 '수다', '쉼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쉼표속에서 즐거운 수다에 그렇게 몸을 맏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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