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미스터리가 가진 묘미는 어쩌면 속아주는 자의 몫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이야기속에 수많은 트릭을 넣어두고 마지막 미스터리의 문을 열어내는 순간 자아낼 독자들의 '아~'하는 탄성에 미스터리 작가는 기분좋은 웃음을 날릴지도 모른다. 속이는자의 몫보다는 속아주는 자의 몫, 지금까지 만나온 미스터리 작품들의 대부분이 그랬다면 이번엔 아마도 속이는 자의 몫이 크게 다가온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성과 트릭속에 담겨져있는 미스터리, 오리하라 이치에게 넋을 잃고 만다.

 

두 가지 사건이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쫓는 두 남녀가 있다. 작은 소도시 사이타마현 하스다시에서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다키자와 일가족 네명의 행방불명 사건과 또 다른 지역에서는 여성들을 노린 괴한습격사건이 발생한다.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은 소설가의 부인이자 그를 도와주는 르뽀라이터 이가라시 미도리에 의해서, 괴한 습격사건은 후루타 도모아키라는 무명작가에 의해 그 베일이 서서히 들추어지게 된다. 전혀 다른 두가지의 사건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 그 두 사건은 또 다른 고리로 연결되고 이어지는데...

 

지극히 평범하고 고지식한 선생님이었던 다키자와가의 가장 류타로, 부인 미에코씨의 바람기, 할머니의 광진리교, 딸 나쓰미의 불륜과 임신, 그리고 5년전 있었던 요시자와 일가 살인사건... 등 여러가지 정황들이 그들 가족의 행방불명과 얽혀 점점 더 사건을 미궁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한편 괴한 습격사건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관지어진 무명작가는 자신을 성추행범으로 몰았던 여장 남자를 범인으로 확신하고 그를 쫓기에 이르지만 번번히 그에게 뒤통수를 맞게되고 범행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이 무명작가는 그의 다음 작품을 위해 이 사건에 대해서 하나하나 기록하게 되는데...

 

미스터리 소설속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트릭들이 숨어있다.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과 괴한 습격사건이라는 두가지 이야기구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속에서 독자들은 처음부터 작가의 트릭에 속아버리고 만다. 프롤로그 '하얀안개'속 4가지 정도의 각자 다른 시점과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도무지 어떤 내용일지 모를 혼란의 시작과 마주하게 된것이 그 첫번째이다. 두가지 이야기, 일가족 행방불명사건과 괴한습격사건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이야기 전개속에서 이 두가지 이야기가 동일한 시간대의 진행일거라 생각하게된 것이 바로 그 두번째 트릭에 속아 넘어가게 된것이다.



결국은 읽는 사람들이 오해를 불러오도록 만들어 낸 작가의 트릭이 빛을 발한 것이다. <행방불명자>는 속이는 자의 몫이 그래서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고 말하고 싶은 작품인 것이다. 첫인상이 좋은 작가가 좋다. 일본에서는 행방불명자와 같은 시리즈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이 작가의 작품을 조금 더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도착의 론도]와 [타임캡슐]이라는 작품이 번역된걸로 아는데 그 작품들을 만나보면 이 작가에 대해서 조금더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수 있을것 같다.

 

투명한 물컵안에 떨어진 잉크 몇방울이 엉키고 설킨 모습을 한 이 작품의 표지가 맘에 든다. 작품의 배경이 된 구로누마, 검은 늪이라는 이름이 가진 빨아들이고 감추어버리는 이미지가 표지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미스터리가 가져야 할 트릭과 반전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쉽게 그 결과를 예측하려 하거나 여러가지 사건의 개연성과 관계를 연관시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서로 다른 두가지 사건은 전혀 연관성도 없고 개연성도 찾을 수 없어 그런 성향의 독자들을 꼼짝못하게 만드는 위력?을 가지게 만든다. 단지 '늪'이 가진 빨아들이려는 성격만을 이 작품은 가지려한다. 쉴 틈도 주지않고 책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집중력을 말이다. 전혀 연관이 없다고 믿었던 두 사건이 하나의 선을 따라 이어지고, 작가가 미리 마련해두었던 트릭에 빠져버렸구나 생각되는 순간, 이야기는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버린다. 무명작가 후루타 도모아키가 뒤통수를 맞고 기절해버렸던 것처럼....

 

오리하라 이치, '000자' 시리즈와 '도착...' 시리즈에 관심이 간다. 빠른 시일내에 첫인상이 너무 화려했던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주해야 할 것 같다. 아직 '000자' 시리즈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것 같아 아쉽지만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맘은 언제나 즐거움이기에 더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행방불명자>는 트릭과 반전이 살아있고, 평행선으로 시작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오리하라 이치의 독특한 서술 방식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사건의 진실속으로 다가갈 수록 섬뜩하게 다가오는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악'한 내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스피디한 전개와 이중적 구조가 자아낸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던 <행방불명자>를 오랜시간 기억하게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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