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 내 영혼을 새롭게 빚어가는
수 몽크 키드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때 한참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오락실에 다녔던 적이 있다. 그 때 우리가 열심히 한 오락 중에 "원탁의 기사"라는 것이 있었다. 제목을 보면 예측할 수 있듯이 원탁의 기사의 여러 주인공들 중 한 명을 선택해 적들을 물리치는 그런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특징 중에 하나는 적들을 계속 물리치다 보면 경험치가 쌓이게 되고 일정한 경험치가 쌓이면 "Level Up!"이라는 표시와 함께 파워도 올라가고 무기도 좀 더 험악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이 게임은 "Level Up"의 재미가 솔솔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레벨업이 재밌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게임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고 어려운 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게 태어난다. 인간이 완전히 레벨업된 상태에서 태어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치 인간은 덜 창조된 듯한 상태로 지구에 떨어진 것 같다.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내가 아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진화에 대한 믿음이다. 즉, 지금은 불완전하지만 인간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그나마 지금의 모습은 몇 만년 전 인간의 모습보다는 훨씬 나아진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과도기적인 현실이고 그래서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인간의 진화가 더 완벽해지는 날에는 지금의 불완전한 모습들이 극복될 것이라는 견해이다.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설명 중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지은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완전하게 창조되었지만 죄 때문에 인간의 본질은 훼손되었고 인간의 고귀한 완전성이 붕괴되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원래 모습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나의 이런 고민에 해답을 주지는 않았다. 왜 우리가 이런 레벨업 게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키드는 단지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기다림'이라는 주제는 성장을 위한 그녀가 제안하는 최고의 기술이다. 덕분에 기다림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기다림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토록 깊이 있게 묵상한 책을 만나본 적이 없다. 성장과 성공을 위한 수없는 행동 강령을 열거한 책은 많지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다림에 대해서 이토록 훌륭한 책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키드가 기다림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번데기의 모습이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기 위한 중간 과정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화려한 변신을 위한 대기실이다. 나는 번데기 속의 기다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의 질문의 요점을 바꾸었다. 왜 나비가 처음부터 나비로 태어나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어떻게 하면 애벌레가 나비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말이다. 기다림으로 가능할까? 기다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기다림이 꼭 있어야만 획기적인 발전이 가능한 걸까?


 나의 시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머물렀다. 기다림의 관점에서 그의 생애를 다시 생각해봤다. 그는 그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기다렸고 그 기다림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했다.  예수는 30년간 목수의 아들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살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고, 그가 사역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광야에서 40일간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사역을 시작하면서도 성급하지 않았고 그의 때를 기다리며 매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도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십자가 상에서 그의 생명이 흐릿해지는 순간에도 그의 능력을 발휘해 곤경에서 빠져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덤 속에서 그는 다시 한 번 기다렸다. 이러한 기다림이 없었다면 그가 부활할 수 있었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기다려야 했고 그 순간들을 통해서 성장했다면 나에게도 기다림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가 기다렸다면 나도 기다려야 하고 그것을 통해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불평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하나님이 나를 불완전하게 이 땅에서 시작하게 한 것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의 불완전함이 오직 죄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불완전한 시작은 죄가 없다고 알려진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도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픈 사람이었고 고통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유혹을 받는 존재였다. 내가 흥미를 느낀 이유는 마치 내가 내 스스로에 대해서 하나님과의 공동 창조자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의 창조는 태어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더 나은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가며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소설가가 쓴 소설이 소설가에게 영감을 주고 화가가 그린 그림이 화가에게 다시 영감을 주고 작곡가가 작곡한 노래가 작곡가에게 영향을 미쳐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글쎄 그런 분들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 리뷰가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격언을 하나 만들었다. "Boys! Be patient." 여기서 Boys는 성장하고 발전하기 원하며 애벌레에서 나비의 모습을 갖기를 원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인내심을 가지라,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라.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 혹은 그 이상을 이루는 것은 단지 야망을 갖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인내와 끈기의 기다림의 정신이다. 책의 가장 첫 부분에 나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내가 모든 것이다"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 같다. 인생살이의 놀라운 기술, 레벨업의 노하우를 전수해준 키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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