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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
제럴드 L. 싯처 지음, 마영례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그것을 '진정한 철야 기도'라고 불렀다. 고등부 교사로 섬기던 2002년, '새생명 축제'라는 집회를 준비하면서 매주 금요일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몇 명의 교사들이 모여서 기도를 했다. 몇 달 정도 그렇게 기도회를 이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집회 당일 단 한 명의 결실도 맺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입 안이 쓰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열정을 다해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 응답의 기미조차도 보여주시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보다는 내게 크게 실망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이유는 아무래도 나의 자격 미달 탓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나름대로 긍정적인 이유들을 찾기는 했지만 기도 응답에 대한 나의 태도는 냉소적으로 변해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은 진리가 아니었다. 내가 열등한 신자이거나 혹은 부적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침묵하실 때가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내 경험상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실 때보다 침묵하실 때가 더 많았다. 아마, 하나님의 침묵은 나뿐만이 아닌 거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겪고 있고 궁금해하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아닌 응답일 것이다. 따라서, 응답을 받는 기도 방법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제럴드 싯처 교수의 진지하고도 정직한 질문과 깊은 고민이 담긴 치열한 답변은 기도에 대한 가장 난해한 문제 중 하나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었다.
제럴드 싯처의 책에 항상 가장 중심에 있는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은 바로 그의 아내와 아이와 어머니를 한 순간에 잃게 한 교통 사고이다. 그 사고로 싯처는 홀로 남은 아이 3명을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 혼란스러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이 책 역시 그 사건으로 싯처는 질문을 시작하고 고민을 이어간다. 기도에 침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문제인가, 그 자신이 문제인가? 나 역시도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였다. 수많은 기도 관련 서적이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문제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내 잘못이라는 확인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싯처는 그렇게 간단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싯처는 질문을 시작으로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대답을 찾기 시작한다. 그는 하나님의 침묵을 깨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응답되지 않았을 때 더 심한 절망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때 우리의 감정처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우리의 삶에 훨씬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들도 검토한다. 하나님의 침묵의 근본적 원인이 이기적 욕심, 원한, 의심과 같은 인간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는 위안을 주기도 한다. 왜 끈덕지게 기도해야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제공해주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싯처는 마지막으로 기도의 본질에 대해 언급하고 기도의 가장 중요한 기능에 대해 소개한다. 결국 하나님의 거대한 대서사시 가운데 우리의 기도가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도록 거시적 안목을 갖도록 도와 준다.
완벽한 사람의 완전한 기도가 아닌 부족한 사람의 솔직한 기도, 즉 개인의 문제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싯처의 제안은 좀 더 용기있고 과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자책감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또한, 싯처는 하나님의 침묵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준비 시간일 수도 있고 또는 기도하는 사람을 준비시키는 시간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침묵이지만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역사 가운데 내가 차지하고 있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변화의 바람이 시작하고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내가 감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고 계신다는 것은 싯처가 제시하는 성경의 커다란 내러티브를 통해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싯처는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 우리가 침묵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시해주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해야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옛날에 야곱을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로 부르셨던 것처럼 지금 내게도 그렇게 부르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기도는 기도로 인해 나타나는 환경적 변화보다는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에 더 큰 중요성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뒹굴며 씨름할 정도의 친밀함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쉬운 기도 응답은 오히려 관계의 소원함을 불러올 수 있다. 하나님의 침묵은 더 가까이 오라는 그의 언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아침마다 이렇게 기도를 한다. "하나님, 나의 마음과 생각, 말과 글과 행동, 내 모든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원합니다." 내 기도는 이처럼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다. 어디에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 합니다와 같은 뚜렷한 계획이 없다. 종종 하는 구체적인 기도는 꼭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절실함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의 수많은 기도 실패 아니 하나님의 침묵이 이렇게 나의 기도를 형성해 놓은 것 같다. 내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나님의 손에 어떻게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내가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점차로 깨닫게 된 것이다. 내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하나님의 뒤에 바짝 따라붙기 위해 가까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손을 완전히 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끌려 가기를 바라는 나 자신을 포기하는 기도의 과정에 있는 모습으로 나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기도는 중요하다. 신학자 포사이스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기도한다는 말보다, 기도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말이 더 정확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 응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하나님의 침묵에 올바르게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전체적인 기도의 자세와 태도, 마음가짐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싯처가 역설했듯이 하나님의 침묵은 그 자체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분명 그것이 최종적인 하나님의 응답은 아니다. 언젠가 기도자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의 무대 한 가운데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침묵은 편안한 휴식시간이 될 수 없다. 나는 아주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침묵 속을 거닐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며 다시 한 번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비로소 나는 나의 기도에 침묵하시는 하나님과 완전히 화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