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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의자 ㅣ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6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그냥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바로 나니아 나라 이야기 그 여섯번째 이야기 '은의자'를 꼭 읽어봐야 한다. 은의자의 여행 안내자로 끊임없이 비관적이고 재수없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퍼들글럼이 그에 대한 대답을 해 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퍼들글럼의 이야기는 정말 멋졌다. 나도 순간, 유스터스와 질과 함께 "퍼들글럼 만세"를 외쳤다. 이 극적인 순간은 미리 이야기해주면 재미가 없으니까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나니아 나라 이야기가 지극히 기독교적인 책이라는 것은 여기서도 여러 가지 모습에서 드러난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5권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런 질문을 할 때도 되었다. "아슬란이 직접 나서면 안 되나? 왜 꼭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가 어려운 일을 시키는 걸까? 제대로 잘 하지도 못 하는데 말이지." 은의자에서도 아슬란은 어린 소녀 질에게 임무를 주지시킨다. 네 가지를 순서대로 해야하는데 질과 그의 일행들은 계속 아슬란의 표시를 놓친다. 그래서 결국 아슬아슬한 순간에 아슬란이 나타나서 도와준다. (헉, 그래서 아슬란인가? ^^) 아마 아슬란은 질, 유스터스, 퍼들글럼이 헤맬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슬란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성경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왜 자주 안 나타나고 급박한 상황에서만 도움을 주는지 나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이었다. 하루는 아내과 아이와 함깨 팥빙수를 같이 먹게 되었다. 우리 아이는 아직 두 돌도 지나지 않은 상태라서 숟가락질을 잘 못한다. 그런데 아내는 아이에게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아이는 팥빙수를 떠먹다가 옷과 테이블에 흘렸다. 그러자, 아내가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아이의 얼굴과 손, 옷에 묻은 것을 닦아 주었다. 나는 그 상황이 흥미로웠다. (내가 이런 식으로 관찰을 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흘릴 줄 알았으면서 왜 숟가락을 쥐어주었을까?
숟가락은 참 중요한 도구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가 성장하고 독립하기 위해서는 꼭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도구이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슬란도 아이들이 성장하고 독립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어쩌면 임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과 독립이 아슬란에게는 더 큰 관심사일지도 모른다. 아슬란이라면 한 방에 해결할 문제 아닌가. 성경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이 인간에게 숟가락을 쥐어주는데 사실 숟가락이라기보다 칼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왜냐면 위험하니까. 그것은 '자유의지'라는 칼이다. 결국 인간은 그 칼을 하나님께 들이대다가 쫓겨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는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자유 의지가 있어야만 인간의 사랑은 고귀해지고 인간의 노동은 숭고해진다. 원해서 하는 사랑,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일은 무슨 의미인가? 그렇다면 단지, 인간은 호르몬 분비에 의해서 조작되는 화학물질 덩어리, 프로그램된 로보트 혹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 자유의지라는 것을 잘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성장하기를 바라신 것이 아닐까?
퍼들글럼의 태도는 기독교적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용기있는 삶을 위해서 꽤 괜찮은 태도인 것 같다. 퍼들글럼이 혼자서 재수없는 소리는 다하지만 또 혼자서 용감한 행동도 다 한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이렇게 얘기했다. "난 항상 최악의 것을 알고 싶어하고, 그 다음에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하는 성격이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말도 안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만을 이야기한다. 거의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 태도가 좋은 점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항상 실제 이야기는 최악보다는 나은 상황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더라도 놀라지 않고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태도, 아마도 그래서 퍼들글럼이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독교적인 책이니까 비기독교인들은 읽으면 안 될까? 나는 오히려 비기독교인들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기독교는 패러독스-모순인 것 같으면서 진리-가 넘치는 종교이다. 그런데 동화책은 아무래도 그게 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분명 성경책으로 보았으면 "말도 안 돼"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무리없이 넘어갈 수 있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나니아 나라 이야기들을 읽으면 성경을 표절한 줄거리 때문에 스토리를 뻔히 예측할 수 있는 부분들이 꽤 있다. 아무리 재밌는 이야기도 예측가능하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책장에 꽂혀 있는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보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저것을 언제 우리 아이에게 읽어줄 수 있을까? 나니아와 아슬란, 퍼들글럼을 언제 소개시켜줄 수 있을까? 흠, 우리 아이도 나처럼 퍼들글럼의 매력에 빠져들겠지? ' 우리 아이는 아직 두 돌도 안 되었는데 이런 성급한 생각이 든다. 그만큼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