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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소년 ㅣ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3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칸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별이 수놓은 밤하늘과 진실이 수놓은 가슴이라고 했다. 도시에서는 아무래도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거의 볼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산에 둘러싸여 있고 가로등조차 없는 그런 곳에 가면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 그런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지구라는 섬에 떨어진 존재 같다는 느낌이 든다. 캄캄해서 주위 사물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나의 사고는 우주 공간까지 확장된다. 마치 낮에는 지구인이었다가 밤에는 우주인이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우주라는 건널 수 없는 바다 그 너머에 지구보다 훨씬 광활한 세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나는 그 세계를 동경하듯 바라볼 뿐이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 세번째인 '말과 소년'에서 별이 촘촘히 떠 있는 한밤중에 말을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샤스타라는 한 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노예로 팔려갈 위험에서 도망하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 이유는 밤하늘의 별과 자유를 찾아 달리는 한 영혼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년의 이름이 샤스타(Shasta)인 것도 우연은 아니니라. 덕분에 개인적으로 나니아 나라 이야기 중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되었다.
샤스타를 나니아로 인도하는 것은 나니아에서 살던 '브레'라는 말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자유를 찾아가는 여행, 그리고 자유의 나라 나니아와 그 나라에서 살던 것을 끊임없이 자랑하는 브레 덕분에 자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샤스타와 그의 일행이 사자에게 쫓기는 부분이다. 그 때 샤스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사자와 대항하지만 브레는 계속 도망친다. 그 순간 때문에 브레는 자책감에 빠져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에겐 노예 생활이 어울려. 나니아의 자유로운 말들 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 암말과 어린 여자 애와 사내애를 사자 밥이 되게 내버려 두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친 게 바로 나라고!"
나는 브레한테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브레, 자유란 그냥 네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니? 그런데, 네가 자유로운 말이기 때문에 더 괴로운 거야?" 아마 그런 듯 했다. 자유로운 말이기에 위험한 순간에 용기를 내서 선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브레를 더 부끄럽게 한 것 같다. 나는 기독교인로서 브레의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했다. 진리라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란 실상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을 봐도 금방 두 말씀 사이를 연결할 수 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사람을 자유케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교리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자유와 구원이 행위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이 교리는 방종을 조장할 수 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있는 질문 중에 하나가 "자유가 선을 격려할 수 있는가"이다. 즉,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이 선을 행하겠는가"라는 질문이다.
자유로운 말 브레의 태도를 보고 오래된 질문이 떠올라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졌다. 일단, 자유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를 한다면 브레가 괴로워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먼저, 브레가 도망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브레는 자신의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했다. 즉, 그는 자유가 없는,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말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이 진정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정말 자유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스피노자는 "말은 곤충으로 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변했을 때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말은 말이어야 하고 인간은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인간다워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가장 인간답게 행동하는 것, 즉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브레 때문에 너무 고민을 많이 했다. 덕분에 자유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유가 방종을 조장한다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도 좀 더 할 말이 생겼다. '말과 소년'은 이 외에도 볼거리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나니아 나라 이전 편에 비해서 스케일도 커지고 재미도 더해졌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나니아의 창조자 아슬란을 짐작해보는 것도 흥미를 더해 줄 것이다. 그리고, 노예처럼 살던 샤스타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마지막에 가서 모두 밝혀지는데 그 장면 또한 흐뭇하다. 아슬란과 샤스타가 만나는 장면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하루에도 수백 권의 책들이 새로 출간되고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나의 영혼을 자극할 만한 책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C.S.루이스는 동화 작가도 아니고 그가 주로 낸 책은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들을 고민해서 논증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그가 과연 '재미있는 판타지 동화를 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그러나, 읽고 나서 C.S.루이스의 재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통해 나의 영혼에 부는 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다면 별빛 아래 사막의 차가운 공기 속을 샤스타와 함께 달려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어린이들은 언제라도 환영이다.